본문 바로가기

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우리가 이겼다” 직접고용 이뤄 낸 서울대병원 비정규직 눈물의 해단식

“우리가 이겼다” 직접고용 이뤄 낸 서울대병원 비정규직 눈물의 해단식
공공병원 파견·용역 노동자 최초로 직고용 정규직화
“다른 공공기관에 큰 울림 되길”

[민중의소리] 이승훈 기자 | 발행 : 2019-09-04 21:04:15 | 수정 : 2019-09-04 21:04:15


▲ 지난 3일 서울대병원과 노조가 경비, 환경미화, 급식 등 비정규직 614명 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 합의 한 다음날인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본관 앞 농성장에서 정규직 전환 촉구 농성 해단식을 마친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9.09.04 ⓒ김철수 기자

“차별 없는 정규직 전환! 우리가 이겼다!”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앞에서 기쁨의 함성과 구호가 울려 퍼졌다. 서울대병원 파견·용역직 노동자들을 전부 직접고용 정규직으로 전환키로 한 것에 대해, 정규직·비정규직 할 것 없이 함께 기뻐하는 소리였다.

서울대병원 노사는 전날 오전 11시 40분 조인식을 열고 서울대병원과 보라매병원 파견·용역직 노동자 800명 전원을 직접고용하기로 합의했다. 이어 이날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지부는 지난 5월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설치한 천막농성장을 철거하는 ‘서울지부 정규직 전환 투쟁 승리, 천막농성 해단식’을 개최했다.

서울대병원 비정규직 노동조합인 민들레분회 이연순 분회장과 상급단체인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지부 김진경 지부장은 조합원들과 끌어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조합원들도 눈물을 흘리긴 마찬가지였다.

민들레분회 소속 미화노동자 민희규(56) 씨는 “너무 좋아서, 그동안 힘들었던 것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라 눈물이 났다”며 “함께 하면 된다는 걸 이번에 많이 느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있을 때 빠지지 않고 함께 하려고 한다. 우리가 전환됐다고 끝난 게 아니다. 이제 더 크게 (전국 공공병원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투쟁을) 시작하는 거다”라고 말했다.

미화노동자 김재순(60) 씨는 “2001년도에 비정규직으로 일을 시작해서, 노조에 가입해 13년 간 싸워서 얻어낸 거다. 50~60대 아줌마들이 싸워서 이긴 승리다. 지금 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당당하다”며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정말 기쁘다”라고 말했다.

▲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지부는 4일 오후서울대병원 천막 농성장 앞에서 ‘서울지부 정규직 전환 투쟁 승리, 천막농성 해단식’에 앞서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노사는 지난 3일 파견·용역직 노동자 전원을 직접고용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합의했다. 2019.09.04 ⓒ김철수 기자

▲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지부는 4일 오후서울대병원 천막 농성장 앞에서 ‘서울지부 정규직 전환 투쟁 승리, 천막농성 해단식’에 앞서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노사는 지난 3일 파견·용역직 노동자 전원을 직접고용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합의했다. 2019.09.04 ⓒ김철수 기자


정규직·비정규직이 함께 한 ‘정규직 전환’ 싸움
서울대병원 사례...“다른 공공기관에도 울림이 되길”

서울대병원엔 하나의 상급단체(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부)를 둔 두 개의 노조가 있다. 정규직 노동조합인 ‘서울대병원분회’와 비정규직 노동조합인 ‘민들레분회’다. 파견·용역직 노동자들의 직고용 정규직 전환은 두 노조가 함께 손을 잡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날 해단식도 두 노조가 함께 했다.

해단식에서 서울대병원분회 김태엽 분회장은 “우리(정규직과 비정규직)가 손을 놓았다면, 지금의 승리는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는 이번에 한 번 잃으면 20년 간 되찾기 힘들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게 됐다. 정규직이 됐어도 무슨 일이 터지면 함께 하자.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말자”라고 말했다.

원래 서울대병원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대부분은 정규직이었다. 그런데 IMF 이후, 2000년대 초부터 병원은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같은 일을 하는데, 누구는 파견·용역직 급여를 받고, 다른 누군가는 정규직 급여를 받는 일이 발생했다. 그리고 2015~2016년도를 마지막으로 청소, 경비, 조경, 승강기 안내, 전화 설비, 소아급식 분야의 모든 정규직이 퇴직했고, 그 자리는 파견·용역직으로 채워졌다.

보통 이렇게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면 노조가 세워져도 하나로 뭉치기가 어렵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기존의 정규직들이 피해를 본다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대병원에선 달랐다. 서울대병원에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비정규직 없는 병원’을 만들기 위해 힘을 모았다.

2018년 서울대병원 노동자들은 정규직, 비정규직 할 것 없이 함께 공동파업에 나섰다. 그리고 그 힘을 받은 민들레분회가 올해 4차에 걸친 8일 간의 파업집회와 120일간의 천막농성을 진행했다.

최근 직접 고용 정규직 전환을 강하게 반대하던 서창석 병원장이 퇴임하면서 분위기도 바뀌었다. 새로 취임한 김연수 병원장은 서울대병원의 공공성 회복을 강조했다.

이에 두 노조는 “병원의 공공성을 회복하려면 우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한다”고 김 원장을 설득하며, 동시에 투쟁을 전개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노사 양측이 합의에 이르며 800명 전원 정규직화라는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다.

▲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지부는 4일 오후서울대병원 천막 농성장 앞에서 ‘서울지부 정규직 전환 투쟁 승리, 천막농성 해단식’을 진행 참가자들이 눈물과 웃음이 섞여 있다. 서울대병원 노사는 지난 3일 파견·용역직 노동자 전원을 직접고용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합의했다. 2019.09.04 ⓒ김철수 기자

▲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지부는 4일 오후 4시 서울대병원 천막 농성장 앞에서 ‘서울지부 정규직 전환 투쟁 승리, 천막농성 해단식’을 열었다. 서울대병원 노사는 지난 3일 파견·용역직 노동자 전원을 직접고용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합의했다. 2019.09.04 ⓒ김철수 기자

그렇다고 모든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지부는 이날 성명을 내며 “이번 합의의 내용을 동일하게 적용하기로 했으면서도 시기를 정하지 못한 서울 시립 보라매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 문제, 국립대병원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함에도 민간위탁 사업장으로 편재돼 있는 식당 노동자들의 전환 문제 등이 여전히 과제로 남았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서울지역지부는 “모든 국립대병원이 자회사 방식을 고집하며 직접고용을 거부하는 상황에서 서울대병원 노사가 자회사 방식이 아닌 직접고용을 통한 정규직 전환을 합의한 것은 매우 소중한 의미가 있다. 다른 공공기관에 큰 울림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공공병원 중 파견·용역직 노동자들에 대한 직고용 정규직화를 결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본부장은 “경북대, 강원대, 제주대, 충북대, 부산대 등 전국 모든 공공병원에 있는 5,200여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이 될 때까지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서울대병원 노사 합의로 오는 11월 1일 614명의 서울대병원 파견·용역직 노동자 614명이 먼저 직고용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이후 서울시 위탁으로 서울대병원이 운영 중인 보라매병원의 노동자 200명은 서울시와의 협의를 거쳐 직고용 정규직으로 전환할 예정이다.


출처  [현장] “우리가 이겼다” 직접고용 이뤄 낸 서울대병원 비정규직 눈물의 농성장 해단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