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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청소노동자들이 이용해 온 ‘가스관 휴게실’...“수십 년 이런 취급”

KBS 청소노동자들이 이용해 온 ‘가스관 휴게실’...“수십 년 이런 취급”
전문가 “가스가 누출됐다면 질식 위험” 우려도
[민중의소리] 이승훈 기자 | 발행 : 2019-10-03 18:05:47 | 수정 : 2019-10-03 18:05:47


▲ 1일 폐쇄된 휴게실. ⓒKBS 청소노동자 제공

대한민국 최대 방송사 KBS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이 가스배관이 설치돼 있고 환풍기조차 없는 한 평 남짓한 공간을 휴게실로 사용해 온 사실이 드러났다. 해당 공간이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최근에서야 확인한 사측은 급하게 해당 공간을 폐쇄했다. 이 과정에서 회사는 청소노동자들에게 내어줄 공간이 없다며, 좁은 휴게공간에 여러 명의 청소노동자를 욱여넣어, 또 다른 불편을 야기하고 있다.

2일 민주일반연맹 공공연대노조와 KBS 청소노동자 등에 따르면, 지난 1일 KBS 자회사 ‘KBS 비즈니스’는 여의도 KBS 신관 3층과 1층에 있는 청소노동자들의 휴게실 2곳을 폐쇄했다. 최근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관계자가 휴게공간을 방문했다가 해당 공간의 문제점을 사내 게시판(KOBIS)에 올리자, 사측이 급하게 해당 공간은 폐쇄한 것이다.

사내 게시판에서 언론노조 관계자는 “지난달 대한민국 최고 학부라는 서울대에서 청소노동자가 숨졌다. 지하 1층 계단 아래 비좁은 휴게소에서 말이다. 대한민국 최대 방송사이자 공영방송인 KBS의 사정은 어떠한가”라며 “KBS 청소노동자들의 쉼터도 비극이 벌어졌던 서울대와 별반 다르게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가스관, 오수관 등 온갖 배관에
창문·환풍기도 없는 폐쇄된 곳

실제로 청소노동자와 노조가 제공한 휴게실 내부 사진을 보면, 일반적인 휴게실로 보이지 않는다. 각종 관이 보이고, 아무런 마감 없이 짙은 회색의 시멘트 표면이 그대로 드러난 천장이 보인다. 공사에 경험이 많은 건설노조 서울건설지부 관계자는 사진 속 ‘노란색 관’을 두고 “하론가스 배관”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가스가 누출되면 질식사의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또 사진 속에선 오수관·스팀관으로 보이는 관도 보인다. 해당 휴게실을 사용했던 청소노동자들도 이 관에서 “수시로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린다”거나, “기차가 지나가는 듯하다”고 말했다. 또 승강기가 붙어 있는지 “엘리베이터 소음도 들린다”고 한다. 절대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번에 폐쇄된 공간의 크기는 한 평 남짓이지만, ‘환풍기’조차 설치돼 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워낙 많은 사람이 지나다니는 곳이라, 문을 열어둘 수도 없다고 한다.

이곳엔 많은 게 있다. 옷장, 텔레비전, 각종 청소용품도 쌓여 있다. 그리고 밥통과 냉장고도 있다. 이곳은 청소노동자들에게 ‘탈의실이자 창고’이고, ‘휴게소이자 식당’이었던 것이다.

청소노동자들은 이곳에서 모든 걸 해결해 왔다. 새벽 4시 반에 출근해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직접 밥을 지어 먹었다. 임금은 최저시급에다가 따로 식대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한여름엔 더워도 냄새가 새어나갈까 봐 문을 열지도 못했다고 한다. 무더위를 식힐 방법은 선풍기 1대가 전부였다.

▲ 가스관 옆에 밥통. ⓒKBS 청소노동자 제공


“내어줄 공간 없다”는 KBS
정규직화 정책 사각지대

해당 공간의 문제점이 언론노조를 통해 KBS 사내 구성원들에게 알려지자, 회사는 지난달 30일 청소노동자들에게 방을 폐쇄한다고 통보하고 다음 날 폐쇄했다. 3층 휴게실을 사용하던 5명의 청소노동자는 야간 조 2명이 사용하던 1층 휴게실로 자리를 옮겼다. 또 2층 휴게실을 사용하던 4명의 청소노동자는 옆 건물 2층, 3명이 사용하는 휴게실로 이동해만 했다.

2~3명이 사용하던 좁은 휴게실이 하루아침에 7명이 사용하는 곳으로 바뀐 것이다. 7명의 짐은 덤이었다. 누우면 발 디딜 틈도 없었다.

갑작스러운 휴게실 이동에 청소노동자들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청소노동자 박 모(59) 씨는 “1층 휴게실 앞엔 24시간 경비가 대기하고 있고, 원래 사용하던 동료들과 갑자기 합치는 바람에 서로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밥도 먹고, 틈날 때마다 이곳에 와서 쉬기도 해야 하는데, 동선이 너무 길어져서 매우 불편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휴게실 폐쇄 조치와 관련해, KBS 비즈니스 관계자는 “최근 서울대에서 한 분이 돌아가신 뒤, 고용노동부에서 내려온 휴게공간 설치운영에 관한 가이드라인이 있다”며 “가이드라인 규정에 의해 자체적으로 조사를 했었는데, 기준에 많이 미흡해 휴게실을 통합하여 운영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폐쇄한 공간은) 예전부터 청소노동자들이 일하는 장소와 가깝기 때문에 대기실 비슷하게 사용하게 해 달라고 해서 관례로 써 왔던 곳”이라고 덧붙였다.

노동부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휴게시설은 1인당 1㎡, 최소 6㎡를 확보해야만 한다. 냉난방, 환기시설 등을 설치해 쾌적한 실내 환경을 유지해야 하며,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제시된 조명과 소음기준을 준수해야 한다. 또 휴게시설은 작업장이 있는 건물 안에 설치해야 하고, 불가피할 경우 작업장에서 100m 이내나 걸어서 3~5분 안에 이동할 수 있도록 마련해야 한다.

KBS 비즈니스 관계자는 “통합된 휴게실은 인원수가 문제이긴 하지만, 노동부 운영 가이드라인에 적합하다”고 말했다.

▲ KBS 청소노동자 휴게실. ⓒKBS 청소노동자 제공

폐쇄된 공간 근처에 새로운 공간을 마련할 수 없었냐는 질문에, 이 관계자는 “KBS 측과 계속해서 협의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 공간이 새로 생기면 먼저 이분들을 배치해주고 싶다”며 “하지만 우리(KBS 비즈니스)는 시설관리를 해주는 업체이기에 권한이 없다. 건물주인 KBS에서 공간을 확보해 주어야만 한다. 본사 관리 부서에서도 빈 곳을 찾아봤지만,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청소노동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청소노동자 박 씨는 “카메라가 있는 방을 좀 치우고 우리가 사용하게 해 주면 안 되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기존의 휴게실을 창고로 쓰고, 각종 방송장비를 보관하고 있는 곳을 휴게실로 사용하면 안 되냐는 것이다.

박 씨는 “이런 취급을 받으며 수십 년을 참아온 분도 있지만, 너무하는 것 같다. 내가 이렇게 나서면, 동료들조차 괜히 더 불편해진다고 말린다. 우린, 꼬집는데 아프다고 소리도 내면 안 되는 건가”라고 토로했다.

한편,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신관, 연구동, 별관 등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는 약 110명 정도 된다. 이들은 모두 계약직으로,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대상자에 포함되지 못해 여전히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달 30일 만난 3명의 청소노동자는 모두 “열심히 일해야 내년에도 계약해 줄 수 있다”는 말을 듣는다고 말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KBS 본사의 경우 공공기관은 아니지만, 공공성이 강하기 때문에 정규직 전환 1단계 대상기관에 포함돼 있다”며 “하지만 “정규직 전환 2단계 대상기관은 공공기관 자회사 또는 자치단체 출연기관으로 한정하고 있기에, KBS 자회사는 포함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출처  KBS 청소노동자들이 이용해 온 ‘가스관 휴게실’...“수십 년 이런 취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