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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뼈 휘고, 온몸에 땀 흘리며 일해도 ‘하루 식대는 고작 50원’

손가락 뼈 휘고, 온몸에 땀 흘리며 일해도 ‘하루 식대는 고작 50원’
부산지하철 청소노동자 이야기
[민중의소리] 장윤서 기자 | 발행 : 2019-10-03 18:40:56 | 수정 : 2019-10-03 20:56:10


▲ 호포기지창 청소노동자의 청소 모습. ⓒ민중의소리


2019년 9월 27일 오전 9시~11시 30분

경남 양산시 동면 호포역. 지하철이 느린 속도로 차량 쉼터인 ‘기지창’으로 향했다. 이 지하철이 기지창에 도착하자, 다른 차량을 청소하던 여성 노동자가 다급한 목소리로 “차 왔다! 이동하자!”고 외쳤다. 그러자 지하철 칸 곳곳에 있던 청소노동자 13명이 빠른 걸음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이들은 방금 온 지하철로 들어가 각자 맡은 청소를 시작했다. 한 노동자가 빠른 속도로 쓰레기를 빗자루로 쓸면, 뒤 따르는 노동자는 쭈그려 앉아 바닥에 붙은 껌 등 오물을 긁어냈다. 그 곁에서 한 노동자는 손잡이, 봉, 창문 등을 마포로 닦아냈고, 다른 노동자는 두 팔을 높이 든 상태를 유지하며 천장을 물걸레질 했다. 또 다른 노동자는 칸마다 6번을 왕복하며 바닥에 물걸레질도 했다. 이외에도 다양한 청소 작업들이 순서에 맞춰 빠르게, 동시에 진행됐다. 120m 지하철 내·외부를 청소하는 사이, 온몸으로 지하철을 닦은 노동자들은 땀을 비 오듯 흘렀다.

▲ 호포기지창 청소노동자의 청소 모습. ⓒ민중의소리

▲ 호포기지창 청소노동자의 청소 모습. ⓒ민중의소리

아직 ‘왁스 박리’가 남았다. ‘왁스 박리’는 바닥에 묵은 떼를 제거하기 위해 강한 화학제품을 바닥에 도포한 뒤 닦아내는 작업이다. 이때 노동자들은 도포한 화학제품을 무거운 기계를 통해 한 번 벗겨내고, 손힘을 통해 긁개로 도포된 화학제품을 밀어낸다. 그 뒤에도 수차례 물걸레, 마포 걸레질 등을 진행하고, 왁스를 다시 한 번 발라 오염 방지까지 해 청소를 마친다. 이 과정은 여성 노동자들 힘만으로 부족해 남성 노동자들이 투입되는 ‘고된 작업’이기도 하다.

이런 업무를 ‘대차’라고 부른다. ‘대차’란 ‘지하철 대청소’를 뜻하며 지하철 내·외부를 마치 분해하듯 꼼꼼히 닦아내는 작업이다. 특히 왁스 박리와 같이 묵은 떼 제거 작업을 필수로 진행한다. 이외에도 ‘중차’도 진행한다. ‘중차’는 차량 내부를 8~13명의 노동자들이 40~50분 안에 빠르게 청소하는 업무를 말한다. 노동자들은 청소 도구를 들고 대차와 중차를 반복한다. 노동자들에 따르면 하루 평균 1~2대의 대차 업무를 하면서 최소 3~4대, 최대 7~8대의 중차를 함께 한다고 밝혔다. 호포기지창 노동자 30여 명이 약 56대의 지하철을 맡아 청소하고 있다.

▲ 호포기지창 청소노동자의 청소 모습. ⓒ민중의소리


2019년 9월 29일 오전 11시 30분~오후 1시

오전 11시경. 한참 일에 몰두하던 최수진(가명) 씨가 “점심 준비할 시간이네”라고 혼잣말을 하고는 지하철 밖으로 사라졌다. 30분 뒤, 사라졌던 최 씨가 다시 나타나 “밥 먹자”고 동료들을 불렀다. 이들이 함께 향한 곳은 기지창과 5분 거리에 위치한 ‘구내식당’이 아니라 ‘휴게실’이었다. 이동하던 이숙자(가명) 씨는 기자가 ‘휴식 시간을 가진 뒤, 구내식당으로 이동하나’라고 묻자 “밥 먹으러 가는 것”이라며 멋쩍어했다.

실제로 휴게실 안에는 접이식 간이 테이블 두 개가 펼쳐져 있다. 테이블 위에는 최 씨가 한 밥과 미역국을 담은 그릇들이 놓여 있었다. 청소노동자들은 휴게실에 들어가자마자 각자의 가방에서 플라스틱 통 하나씩을 상 위에 놓았다. 이 통에서 멸치볶음, 가지나물, 호박무침 등 직접 한 반찬들이 펼쳐졌다. 업무 직후, 직접 점심을 차려 먹는 이유에 대해 이경자(가명) 씨는 “회사에서 식대를 한 달에 1만 1천원밖에 안 줘서...”라고 답했다. 그러자, 함께 휴게실에 있던 다른 호선의 청소노동자 김희경(가명) 씨는 “우리는 한 달 식대 1천원인데!”라고 발끈했다.

호포역 기지창을 포함한 몇 용역업체의 경우 최근 합의를 ‘잘’ 해준 덕에 ‘한 달 식대 1천원’를 1만 1천원’으로 올렸다. 반면 이외의 용역업체는 여전히 ‘한 달 식대 1천원’을 받고 있다. 식대에 다소 차이가 있음에도 이들은 “1천원이나, 1만 1천원이나 어차피 한 끼 2천 500원 짜리 구내식당 밥 먹긴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때문에 이들은 사비를 각출해 쌀을 산다고 했다. 쌀 20kg에 약 5만 8천원. 그나마도 며칠 못갈 분량이라고 했다.

▲ 호포기지창 청소노동자들의 식사 시간. ⓒ민중의소리

▲ 호포기지창 청소노동자의 식사 모습. ⓒ민중의소리

‘낮은 식대’로 인해 약간의 소란도 생겼다. 설거지도 직접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날 설거지 당번인 장선희(가명) 씨는 “나 오늘 너무 힘들어. 몸이 부서질 거 같이 아프단 말이야. 오늘만 설거지 다른 사람이 해주면 안 돼?”라고 울먹였다. 그러자, 밥과 국을 만들었던 최수진 씨가 “여기, 안 힘든 사람 어디에 있어. 당번이면 해야지”라고 말했다. 한참 어두운 표정을 하던 장 씨는 설거지를 하기 위해 테이블 위 그릇을 수거해갔다.

“호포기지창은 그래도 나은 편이지” 함께 있던 다른 호선 청소노동자 김희경 씨는 1.5평짜리 휴게실에서 밥조차 제대로 해 먹을 수 없다고 밝혔다. 노동자 휴게실 환기구가 고객들이 머무는 대합실로 연결돼 있어, ‘고객 민원’이 많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들은 결국 먼지가 가득한 기계실 등에서 국, 반찬을 해 먹는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서울은 어떨까. 서울교통공사 자회사 소속 기지창 청소노동자인 민갑수(가명) 씨는 ‘한 달 식대 10만원’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민 씨는 회사에서 주는 식대로 서울교통공사 내 구내식당을 이용하고 있다며 “밥값은 괜찮게 나오는 편”이라고 말했다. 현재 서울교통공사 구내식당은 2천원에 이용할 수 있다. 게다가 휴게실에는 개인 옷장, 온기를 더해줄 장판, 미세먼지에 대비할 공기청정기, 발 냄새 잡아줄 건조기, 에어컨, 안마기 등이 설치되어 있어 ‘복지’도 갖춰 나가고 있다. 부산지하철과 서울지하철 모두 청소노동자의 업무는 동일하다.

▲ 호포 기지창 노동자의 손. ⓒ민중의소리


부산지하철 청소노동자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직접고용”

부산지하철 청소노동자들이 힘든 일을 하고 있는 만큼 제대로 된 밥을 먹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해 황귀순 비정규직 서비스지부장은 “부산교통공사는 청소노동자를 직접고용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직접고용을 주장하는 이유에 대해 한옥녀 지회장은 “임금을 올려달라는 것이 아니라, 밥 먹을 수 있게 식대 등을 제대로 달라는 것이다. 정부는 공공업무를 하는 노동자들에게 ‘한 달 식대 13만 원’을 지급하던데, 공사 소속이면 식대 등 복지는 제대로 할 것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실제로 민중의소리가 확보한 부산지하철 호포기지창 청소노동자 임금 명세서에 따르면 노동자들은 한 달에 180여만 원을 받는다. 이 가운데 용역업체가 복지로 제공하는 수당은 △식대 1만 1천원 △교통비 3만원이 전부다. 심지어 교통비는 지하철 60회 이용 무료 혹은 3만원 지급 중 하나를 택하도록 하고 있다.

취재를 마무리할 즈음 호포기지창 노동자 한상희(가명) 씨가 말을 걸어왔다.

“용역업체 소속으로 있으면 다쳐도 산업재해도 안 해줘요. 그래서 우리는 안전하게 일하고 싶어서, 직접고용되길 바라는 거예요”라며 한 씨는 기자에게 손을 보여줬다. 걸레질을 하던 손 모양 그대로 뼈가 굳어 휘어버린 모습이었다.

다친 노동자는 한 씨뿐이 아니었다. 천장을 계속 닦는 청소노동자들은 어깨 인대가 찢어지기 일쑤였고, 쭈그린 채 바닥 구석에 낀 떼를 제거하느라 대부분 노동자들이 무릎 연골을 다쳤다. 심지어 한 씨는 함께 일하던 동료가 지하철 내부를 청소하던 중 철로로 떨어져 갈비뼈가 부러졌다고도 전했다.

많은 노동자들이 철로로 떨어져 다쳤지만, 당시 용역업체는 산업재해조차 제대로 해주지 않았다. 그마저 부산교통공사와 계약관계가 얽히기 시작하며 산업재해도 인정해준 거 같다고 한 씨는 말했다. 그게 불과 7~8년 전부터의 일이다.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그래요” 기자에게 보여준 한 씨의 손이 고된 일로 가늘게 떨렸다.

▲ 호포 기지창 청소노동자 임금명세서. ⓒ민중의소리


출처  손가락 뼈 휘고, 온몸에 땀 흘리며 일해도 ‘하루 식대는 고작 5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