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통합진보당 관련 소송 ‘배당 조작’은 법원행정처 지시였다

통합진보당 관련 소송 ‘배당 조작’은 법원행정처 지시였다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지위확인소송 배당 조작 사건
[민중의소리] 김미희 전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 발행 : 2019-10-24 18:32:12 | 수정 : 2019-10-24 18:32:12


▲ 김미희 전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필자 제공

사건 배당의 주관자는 각급 법원이므로 법원행정처의 요청이 적절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행정 총괄 기관이 요청하는데, 일선 법원이 거절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고, 가능하면 그대로 할 수밖에 없다. 지시에 가까운 요청이었다.

양심에 따라 재판 업무를 수행하는 판사들에게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해야 할 ‘피의자’로서의 양심이 필요해졌다. 그러나 법정에서 그들은 법망을 피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배당 조작’은 사법농단 사태의 한 축이다. ‘배당 조작’이 사실로 밝혀지면 법치주의의 붕괴가 증명되는 셈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재판장 윤종섭) 심리로 17일 심상철 전 서울고법원장(현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부장판사) 등의 속행 공판이 열렸다. 2015년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행정소송 항소심 재판 배당에 법원행정처의 의중을 관철시켰다는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된 심상철 전 서울고법원장은 법원행정처에 책임을 돌렸다. 재판에서 공개한 수사 당시 진술 조서에 따르면, 심 전 원장은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으로부터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지위확인소송은 법원행정처에서 관심을 갖고 있는 중요사건인데 행정6부에 배당되게 해달라’고 요구받았다고 진술했다.

이날 법정에서 검사가 심상철 전 원장이 검찰에서 몇차례 조사받은 진술서 내용을 화면에 띄우고 읽어갔다. 재판의 쟁점은 ‘배당조작 여부’이다. 재판 배당은 사건을 재판부에 자동 배당해 나누어주는 법적 절차를 말한다. 내규를 보면 사건은 수석부장판사와 협의가 필요한 예외를 제외하고는, 설계된 배당 프로그램에 의해 ‘자동 배당’된다.

앞서 지난달 23일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는 재판 배당조작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배당 프로그램 개발자 박 아무개 씨를 증인으로 불러 검증한 바 있다. 배당 프로그램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고, 남아 있는 로그 기록으로 배당 과정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배당룰, 재판부 코드, 로그 기록, 채번, 랜덤함수 등 생소한 단어들이 쏟아졌다.

자동 배당 과정에 개입하는 것 자체가 재판 독립성을 침해하고, 재판 개입을 하는 위법 행위이다. 특정 재판부에 의도를 가지고 사건을 배당하면 이후 재판 결과는 뻔하다. 법치주의가 무너지는 것이다. 재판의 공정성, 중립성이 무너진다. 명백한 재판독립성 침해이며, 법관의 재판상 독립과 신분상 독립을 정면으로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를 저질렀음에도 자신의 범죄 행위를 피하기 위해 법정에서 꼼수를 부린다.

심상철 서울고등법원장이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서울고등법원과 서울중앙지방법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양지웅 기자


이규진 양형위 상임위원 업무수첩에서 발견된 사건번호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행정소송 항소심 배당 조작 의혹은 압수수색 과정에서 이규진 전 양형위원의 업무수첩에서 발견됐다. 업무수첩에서 통합진보당 행정소송의 항소심 사건번호(2015누68460)를 발견했다. 사건이 12월 1일로 항소심 재판부에 배당되기 전에 적힌 것이었다. 통상적으로 전자 배당의 경우 사건번호는 배당 과정에서 생성된다. 배당하기 전에 사건번호가 생성돼 있었다면 ‘배당 조작’의 증거가 되는 셈이다.

최고 사법기관의 위상을 두고 헌법재판소와 힘겨루기를 하던 대법원이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행정소송을 법률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관계로 이용하려 시도한 것이 ‘배당 조작’이다. 당시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은 이민걸 전 기조실장과 친분이 있는 김광태 서울고법 부장판사(당시 서울고법 행정6부 재판장)에게 항소심 사건을 맡기려 했다.

이날 재판에서는 항소심 사건이 배당된 2015년 12월 2~4일, 통상의 업무 패턴과는 다른 정황이 여럿 발견되었음이 밝혀졌다. 통합진보당 사건이 통상적 절차를 밟았다면 사건번호 ‘2015누68545’를 부여받아야 했는데, 항소심 법원으로 사건 기록이 전달되기도 전에 이미 ‘2015누68460’으로 사건번호가 별도로 채번(새로운 번호를 부여)돼 있었다. 또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사건만 배당 결재·실행이 지연되면서 결과적으로 행정6부가 재판을 맡게 된 것이 입증되었다.


실제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항소심 사건은 법원행정처가 요청한 재판부에 배당

"특례배당을 시도했을 뿐 배당조작 하지 않았다“

심 전 원장 측 변호인은 법원행정처가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통상적인 배당 업무로 알았고,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재판이 정치 경제 사회적 파장이 커서 특례배당을 검토하였을뿐 채번 자체를 알지 못한다고 주장하였다.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행정소송이 공정한 자동배당이 아닌 특례배당으로 처리되어야 할 근거는 이야기 하지 못했다. 법적 책임만 떠넘길 뿐이다. 당시 재판부 간 사건 불균형을 해결한다는 이유로 '특례 배당'을 제안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 특례 배당은 적용되지 않았고, 무작위로 배당되는 일반 사건과 달리 미리 사건번호가 부여된 과정을 확인했다.

심 전 원장은 즉시처리 규정에 따라 특례배정을 지시했는데 행정과장이 무리하게 배정한 것 같다고 책임을 행정과장에게 돌렸다. 재판 배당 규정에 따르면 배당은 법원장의 권한 아래 수석부장판사에게 위임하여 배당하되 즉시처리 요건이 되는 경우 특례배당도 가능하다. 이 경우 수석부장판사가 담당 재판부와 협의해야 한다.

이에 따라 법원장이 특례 배당을 주장하려면 수석부장판사에게 지시해야 하는데 배당 실무자인 행정과장에게 지시한 행위는 배당조작을 지시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당시 양 전 대법원장 등은 이민걸 전 기조실장과 친분이 있는 김광태 서울고법 부장판사(당시 서울고법 행정6부 재판장)에게 항소심 사건을 맡기려 했다.

‘법관 등의 사무분담 및 사건 배당에 관한 예규’에 따라 사건 배당을 주관하는 심 전 원장이 이러한 지시를 실무자에게 하달해 ‘채번’하도록 함으로써 특정 재판부가 특정 사건을 배당받을 수 있도록 조처한 사실이 밝혀졌다.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항소심 사건은 행정6부에 배당됐지만 인사이동이 이뤄지면서 이동원 현 대법관이 판결했다.

당시 이동원 현 대법관은 국회의원지위확인 권한은 법원에 있으나 법원 판단은 의원직 박탈이 맞다고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문건대로 판결했다. 통합진보당 국회의원들은 항소심 판결문과 법원행정처 문건을 비교 분석한 결과 10여 곳에서 거의 지시 문건과 판결문이 같음을 확인했다.

이후 사법농단 사태가 불거진 뒤 검찰 조사를 받은 이동원 현 대법관은 법원행정처 임종헌 실장으로부터 문건과 방침을 전달받은 사실은 시인하였으나 판결은 자기 소신이라고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주장하였다.

▲ 대법원 전경. ⓒ대법원


‘행정과장, 행정사무관 24분 녹취 재생’ 증거인멸 말맞추기 정황

이날 법정에서는 심 전 원장, 수석부장판사, 행정과장, 행정사무관, 행정직원 등의 말맞추기 정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심 전 원장의 비서실장 업무수첩은 파쇄 되고, 관련자들의 증거인멸 증거조작 정황은 곳곳에서 밝혀졌다. 만나고 통화하면서 상황에 따라 진술을 달리했다.

이날 오후 재판에서는 행정과장과 행정사무원 통화 녹취 내용을 재생했다. 24분 정도 분량의 녹취를 행정과장이 임의 제출하였으나 자신은 녹음 사실을 몰랐다고 진술했다. 행정과장이 녹취한 파일은 몇 개 더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다음 재판에 제출하는 것으로 재판부가 명했다.

녹취에는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행정소송 사건을 행정 6부로 배당해야 한다는 심 전 원장과 수석부장판사의 개입 내용과 이루어진 과정이 상세히 나와 있다.

“배당 특례에 따라 심상철 전 서울고법원장은 특례 의견을 행정과장에게 제시하며 논의한 것에 불과하다. 행정과장에게 지시한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 배당조작 전산처리 프로그램도 심상철 전 서울고법원장 컴퓨터에 설치되어 있지 않다. 직접 증거가 없다”

심 전 원장의 변호인단의 주장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 모든 것이 진실을 보여주고 있는데 법망을 빠져나갈 생각만 하고 있다.

다음 재판은 11월 21일 오전 10시에 열어 심 전 원장의 배당조작 쟁점에 대해서 서증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정리하기로 결정한 뒤 재판을 마쳤다.


출처  [방청기] 통합진보당 관련 소송 ‘배당 조작’은 법원행정처 지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