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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반성 없는 검찰, 권한만 나눈다고 개혁되나”

“반성 없는 검찰, 권한만 나눈다고 개혁되나”
고용노동행정개혁위 위원 김상은 변호사가 느낀 검찰
권한 남용 “불법파견, 노조파괴만큼 심각”

[민중의소리] 이승훈 기자 | 발행 : 2019-11-19 16:35:42 | 수정 : 2019-11-19 16:35:42


▲ 김상은 변호사가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새날 법률사무소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11.05. ⓒ김철수 기자

“검찰의 수사지휘에 노동부는 유명무실했다. 독자적인 판단도 없고…”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이하, 개혁위) 외부위원으로 참가해, 지난 10여 년간 불합리하게 진행됐던 노동사건 수사과정을 검토한 김상은 변호사의 말이다. 지난 5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현대·기아자동차 불법파견 사건과 유성기업 노조파괴 등 각종 노동관계법 위반 사건을 열거하며 “(이 사건 수사에 있어서) 수사주체인 노동부 근로감독관은 아무런 권한이 없어 보였다”고 지적했다.

내부자의 제보와 노동부의 압수수색 등으로 확보된 결정적 증거에도 불구하고, 몇몇 열의가 있는 근로감독관도 ‘검찰의 권한 남용’ 앞에 고개 숙일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다.

발레오전장·유성기업·보쉬전장 등 사업장이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으로부터 컨설팅 받아 2010~2012년 사이에 벌인 노조파괴 사건에 대해 근로감독관들은 해당 사업장 사업주들에게 혐의가 있다고 보고 재판에 넘겨야 한다고 검찰에 여러 차례 건의했지만, 이 모든 의견은 묵살됐다.

또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사내하청 해고 노동자가 현대자동차 정규직이라는 대법원판결이 나온 2010년 이후 고발된 수많은 불법파견 사건에서 “파견법 위반 사실이 확인된다”는 근로감독관의 의견도 별 의미가 없었다. 이는 기존의 판례보다도 혐의를 축소해 제시한 의견이었지만, 검찰은 사업주의 불법파견 혐의를 더욱 축소해, 재판에 넘겼다. 사건을 축소하면서 근거로 댄 논리는 사측이 불법파견 재판 과정에서 내세웠다가 사측 스스로도 무리가 있다고 느껴선지 지금은 사용하지도 않는 논리였다.

▲ 검찰 ⓒ뉴스1


“검찰 권한 남용, 불법파견 사건에선 더욱 심각”

5일 서울시 서초구 남부터미널 인근 한 허름한 빌딩에 위치한 ‘새날’ 법률사무소에서 그를 만났다. 2016년 갑을오토텍 노사분규 현장에서 처음 만났던 그는 여전히 바쁜 일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듯 얼굴이 수척해 보였다.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주변에 발 디딜 틈도 없이 수북하게 쌓인 재판기록 문서는 법률사무소 새날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노동사건을 다뤄왔는지 짐작케 했다.

그는 한국사회에서 벌어진 굵직한 노동사건을 다뤄왔다. 그렇다 보니, 노동부 근로감독관과 검찰 공안부(지금의 공공수사부) 검사들을 대면할 일도 꽤 있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선, 개혁위 외부위원으로 참여하면서 지난 10여 년간 벌어진 노조파괴 및 불법파견 사건을 재조사하기 위해 근로감독관들을 면담했다. 그만큼 노동사건에 있어서 수사기관의 문제점을 직간접적으로 많이 고민해 온 법조인 중 한 명이었다.

그래서 그에게 개혁위에서 지난 노동사건을 조사하면서 ‘검찰의 부당한 수사지휘 또는 적절치 않은 기소·불기소 처분이 있었다고 느낀 사건’, ‘개혁위 활동을 하면서 느낀 한계’, ‘최근 논의되고 있는 검찰개혁에 대한 견해’ 등에 관해서 물었다.

그가 꼽은 ‘검찰의 부당한 수사지휘가 가장 많이 드러나는 사건’ 중 하나는 현대기아차 불법파견 사건이었다. (유성기업 노조파괸 건 등도 있었으나, ‘사업주의 방패가 된 검사 1·2편’에서 다뤘으니, 본편에선 다루지 않기로 한다.)

“현대차 불법파견 사건에선 아예 (검찰의 수사지휘가 부당하다고 느낀) 근로감독관들이 ‘검사가 이렇게 수사지휘를 했기에 내가 이렇게 불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고 수사보고서에 써 두었더라. 노골적으로. 나중에 자기 의견은 그게 아니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 2018년 11월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금속노조 조합원들과 자동차 판매 대리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비롯한 참가자들이 부당노동행위 정몽구 사장 처벌 촉구 결의대회를 갖고 있다. 이날 참가자들은 정부에 현대·기아자동차 부당노동행위의 대한 엄중 조사와 처벌을 촉구하고 자동차 판매 시장의 왜곡을 바로 잡아줄 것을 촉구했다. ⓒ김슬찬 기자


이미 판례가 나온 불법파견 사건

‘파견’은 사용자가 파견업체에 비용을 지불하고 파견업체 소속 노동자를 받아 자신의 사업장에서 직접 업무 지휘·감독을 하는 구조로, 대표적인 간접고용 중 하나다.

파견은 사용자 입장에서 매우 매력적인 고용계약형태다. 자신이 직접 고용한 노동자에게 일을 시키듯 지휘·감독하면서도 사용자로서 져야 할 각종 책임에선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자기 회사 직원이 아닌 파견노동자에겐 본인 회사 직원에게 적용되는 각종 복리후생을 지원하지 않아도 되며, (취지와는 다르게) 정규직보다 훨씬 싼 인건비로 부릴 수 있고, 사업을 축소할 필요가 있을 때 계약을 연장하지 않는 방식으로 손쉽게 고용을 해지할 수 있다.

남용될 경우, 전체 노동시장에서 심각한 노동환경 악화로 이어질 수 있는 고용계약 형태인 셈이다.

이런 이유로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파견법)에선 파견이 가능한 분야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특히 파견법에는 파견이 가능한 분야를 설명하는 조항에서 ‘제조업의 직접생산공정업무는 제외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 근로자파견 대상 업무 ⓒ국가법령정보센터 화면 갈무리

하지만 사용자 중에선 이 같은 고용계약과 비슷한 형태의 ‘도급’을 가장해 불법파견을 저지르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건이 ‘현대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노동자 김 모 씨 외 3명의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이다.

이 사건은 2003년 해고된 김 씨 외 3명의 현대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노동자가 2005년 12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현대차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2007년 1심은 “원고(김 씨 등 3명)는 피고(현대차)의 노동자임을 확인한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현대차는 김 씨 등이 도급계약을 맺은 사내하청 소속 노동자라고 주장했지만, 이 주장이 법원에선 통하지 않은 것이다. 현대차는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상고하지만, 2심 재판부와 대법원 재판부 또한 1심의 판결이 맞다 결론 내렸다.

특히 2015년 2월 대법원은 그동안 자동차 제조업체에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사용하던 각종 꼼수를 정리하는 판결을 내놨다. 대법원은 프레스로 찍어낸 철판을 용접해 자동차의 뼈대를 만드는 과정, 차체에 색을 입히는 도장 등 ‘현대자동차 생산 공정 전반’에 대해 불법파견이라는 판단을 내놨다. 또 현대차가 직접 고용한 노동자와 분리된 공간에서 일한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해서도 불법파견이라고 판단했다.

이렇게 불법파견 문제는 일단락된 셈이다.

이 판결에 앞서서 2010년 7월에도 비슷한 취지의 대법원판결이 나온 바 있다. 2차례의 재판 과정으로 분명히 확인된 사안인 것이다.

그런데도, 노동부는 자동차 제조업 분야에서 만연한 불법파견 실태를 방치했다. 이런 이유로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또다시 똑같은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이 다시 전개해야만 했다.

이에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이전 정권에서 벌어진 불합리한 고용노동행정을 바로잡기 위해 2017년 11월 탄생한 고용노동행정개혁위는 이 사건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노동부의 소극적인 태도도 확인됐지만, 곳곳에서 ‘검찰의 부당한 수사지휘’도 확인됐다.


검찰, 법원 판결 외면
“법리적 판단으로 보이지 않아”

“이미 (2015년 2월 26일 대법원 2010다106436판결 등) 최종 판결이 나온 판례가 있는데, 그와 똑같은 건에 대해서 노동부는 사내하청 노동자와 직고용 정규직 노동자가 혼재된 공정만 불법파견이라는 식으로 (혐의를 축소해서) 기소의견을 검찰에 내고, 검찰은 거기서 한 발 더 나가 계약기간이 6개월 미만이면 불법파견에 해당하고, 계약기간이 그 이상이면 합법적인 도급이라는 이상한 기준을 제시하며, 노동부 의견을 정리해 버린다.”

고용노동행정개혁위 조사결과, 생산 공정 전반과 혼재가 아닌 분리된 공정에서도 사내하청 식으로 도급을 준 행위는 모두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는 대법원판결을 무시한 것도 모자라, 검찰은 계약기간 기준을 새롭게 도입하면서 불법파견 범위를 대폭 축소해 일부 혐의만 기소했다.

게다가 2번째 대법원판결이 나온 이후인 2015년 10~11월 검찰은 노동부 울산·천안 지청의 의견 송치 과정에서, 불법파견 혐의를 대폭 축소하는 방향으로 수사지휘를 해서 노동부 송치의견을 변경하게 했다. ‘사업주의 방패가 된 검사 1·2편’에서 다뤘던 검사의 부당한 수사지휘가 불법파견 사건 처리 과정에서도 일어났던 것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부분은 이 사건의 경우 이미 대법원판결로 판가름이 끝난 사건임에도, 검사가 판례를 무시하는 수사지휘를 했다는 점이다.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일부 현대차 불법파견 사건에서 노동자 측 대리인을 담당하고 있는 변호사도 불법파견 사건에서 검찰의 권한 남용이 심각하다고 봤다. 19일 서면인터뷰에서 김태욱 변호사는 “현대차가 불법파견을 했다는 민사판결은 대법원 판결 2건을 포함해 수십 건의 판결이 있었다. 그런데 근 20년간 현대차가 파견법 위반으로 처벌받은 것은 1건도 없었다”며 “검찰이 불법파견 형사처벌만 제대로 했어도 파견 문제가 이렇게 심각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상은 변호사는 검찰의 이 같은 수사지휘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유성기업 등의 노조파괴는 사후적인 법원의 판결로 검찰의 판단이 틀렸다는 게 드러난 건이지만, 현대차 불법파견 사건의 경우엔 다수의 판례가 검찰의 판단이 잘못됐음을 보여주고 있지 않나.”

또 그는 검찰이 수사지휘 과정에서 갑자기 제시한 ‘계약기간에 따른 불법파견과 합법도급 기준’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아봤다고 말했다.

“검찰이 갑자기 꺼내온 계약기간 기준 관련해서 이 사건을 담당했던 변호사에게 물어보니, 사측 대리인이 민사 1심에서 주장했던 논리고, 그 뒤로 더 이상 나오지 않는 논리라고 한다. 그런데 검찰이 그 논리를 끄집어 와서 불기소 처분한 것.”

그러면서 그는 “검찰의 판단이 법리적인 판단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공안적 시각에서 노사관계를 고려하는 듯하다. 실제 노동자들이 피의자가 됐을 땐 구속수사하고 기소의견을 올릴 것도, 역으로 사용자가 피의자일 땐 그렇게 하지 않는다.”

▲ 김상은 변호사가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새날 법률사무소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11.05. ⓒ김철수 기자


“반성 없는 검찰개혁 동의하기 어려워”

김 변호사가 고용노동행정개혁위에서 문제의 사건을 조사하면서 들었던 생각 중 하나는 ‘노동부가 검찰의 하위기관처럼 노동사건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었다.

“경찰이 다루는 사건에선 경찰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는데, 검찰이 불기소 처분했다는 사례를 많이 볼 수 있지 않나? 그런데 노동사건에선 그렇지가 않다. 노동부 근로감독관들은 송치단계에서조차 의견을 마음대로 낼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지청은 지청대로, 위는 위대로, 검찰의 통제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 노동사건이 왜 이렇게 왜곡돼서 처리되는지 의아했는데, 이런 이유 때문인 듯하다.”

김 변호사는 최근 검찰의 개혁 방안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다.

최근 검찰은 노동사건을 담당했던 검찰 공안부를 공공수사부로 바꾸고 직접수사를 축소하는 등의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간판만 바꾸었지 실제 얼마나 다를지에 대해선 신뢰가 안 간다. 그동안 내놓았던 자본 편향적 수사를 반성하는 건 아니지 않나? 반성적 평가 속에서 그렇게 이름을 바꿨다고 보진 않는다. 노동사건을 대하는 공안적 태도가 여전히 남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검찰개혁을 위해선 내부 문제를 드러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 공안부에서 잘못된 수사를 해왔던 원인이 무엇인지, 사람의 문제인지, 아니면 내부 뿌리 깊은 기조의 문제인지, 지금이라도 드러내 놓고 평가를 해야 한다. 그래서 책임질 건 얼른 책임지고, 그래야 하는데 간판부터 바꾸고 있다. 아마 기존의 검찰 공안3과가 갖고 있는 매뉴얼 같은 게 있을 것 같다. 만약 내가 검찰개혁위에 있었다면 그것부터 내놓으라고 했을 것 같다.”

또 그는 단순히 권한을 분배하면 검찰의 권한 남용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검찰개혁에 관한 논의가 전개되고 있는 점에 대해서도 “동의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재 검찰개혁에 관한 논의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배하는 데에만 집중되고 있다. 마치 검찰이 독점하던 걸 다른 수사기관에 분배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하는데, 지금까지 보여 왔던 편향적 수사의 문제를 권한 분배로 해결할 수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권한이 분배되면 반성해야 할 부분 등도 모두 해결될 것처럼 논의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그 권한을 경찰이 갖는지, 검찰이 갖는지가 중요한 건 아니라고 본다. 그 권한을 어떤 방향으로 행사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본다. (검찰의 권한 남용으로) 고통받았던 사람들이 볼 때, 도대체 뭐가 달라지나 문제를 제기할 수 있지 않나. 거기에 답변은 못 해주는 듯하다.”



출처  [사업주 방패가 된 검사 ③] “반성 없는 검찰, 권한만 나눈다고 개혁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