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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직도 노동사건을 간첩 잡는 ‘검찰공안부’서 담당하나

왜 아직도 노동사건을 간첩 잡는 ‘검찰공안부’서 담당하나
불공정 노동사건 담당 변호사들 “명칭만 바뀌었지 달라진 게 없어”
[민중의소리] 이승훈 기자 | 발행 : 2019-12-10 08:34:43 | 수정 : 2019-12-10 08:34:43


▲ 검찰 ⓒ뉴스1

유성기업·발레오전장·보쉬전장 노조파괴 사건과 현대·기아차 불법파견 사건처럼 명백한 사업주의 불법행위를 봐주기로 일관했던 ‘검찰 공안부’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개혁대상에 놓였다. 특히, 1기 법무·검찰개혁위원회(위원장 한인섭)는 검찰 공안부의 핵심 개혁과제로 공안에서 노동을 분리하라고 권고했다. 공안부가 간첩 잡는 공안의 시각에서 노동사건을 다루고 있어, 사건수사가 왜곡되게 흘러간다는 지적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검찰 공안부의 행보를 보면, 개혁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기존의 방식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태도로 사건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 공안부는 공안검사들의 반발로 노동사건을 분리하지 않은 채, 공안부의 명칭만 공공수사부로 바꿨다. 사실상 간판만 교체한 셈이다. 이후 공안검사들이 처리한 사건을 보더라도 기존의 ‘검찰 공안부’에서 달라진 점은 별로 없었다.

▲ 법무검찰개혁위원회 1기 발족식에서 한인섭 위원장에게 위촉장을 수여하고 있는 박상기 법무부 장관. ⓒ뉴시스


공안, 바뀐 건 간판뿐
공안부→공공수사부

지난해 6월 법무·검찰개혁위는 ‘공안 기능의 재조정’에 관한 권고안을 발표한 바 있다.

당시 법무·검찰개혁위는 “원래 공안이란 ‘공공의 안전’을 의미하고, 형법상 ‘공안을 해하는 범죄’에는 범죄단체 등의 조직죄, 소요죄, 다중불해산죄 등이 규정돼 있다. 그러나 그동안 검찰은 사회단체, 종교단체, 노동, 학원 등에 관한 사건까지 포함해 공안사건을 폭넓게 분류해 처리해 왔다”고 지적하며, 검찰에 ‘공안의 개념을 재정립할 것’을 권고했다.

이어 “2017년 기준 공안사건의 89%가 근로기준법 위반 사건인바, 노동사건을 무조건 공안사건으로 분류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더욱이 노동사건의 경우 그동안 파업 등에 대하여 업무방해죄를 과도하게 적용하고 부당노동행위와 부당해고 등에 대해선 사용자에게 미온적으로 대응하여 불공정한 법 집행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이는 노동사건을 공안사건으로 분류하고 공안의 시각으로 처리한 이른바 ‘노동사건 공안형법화’의 영향”이라며, 노동 분야를 공안영역에서 분리하여 ‘전담·전문검사 체제로 개편할 것’을 권고했다.

또 “노동사건을 처리함에 있어 노동자의 헌법상 권리가 부당하게 침해되지 않는 방향으로 검찰권을 행사하도록 유의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검찰 공안부가 권고를 받아들인 건 2가지 정도였다. 검찰은 올해 1월과 4월에 ▲ ‘공안부’에서 ‘공공수사부’로 명칭 변경(1월 17일) ▲ 노동사건 전문성과 공정성 제고를 위한 ‘노동수사 전문 자문단’ 구성(4월 17일) 등의 개혁을 단행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존 공안부에서 얼마나 달라졌는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권고의 핵심 내용에 대해선 전혀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기 법무·검찰개혁위 권고의 핵심은 “노동을 공안에서 분리하라”였다. 그래야만, 그동안 검찰 공안부에서 문제가 되어온 편향된 사건처리 관행이 바로잡힐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검찰청 공안부는 간판만 바꿔 달았다. ‘정통 공안’ 등 내부 반발에 부딪히면서다. 일선 공안검사들은 ‘수십 년 동안 노동사건을 공안부에서 처리해 온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권고’라며 반발한 것으로 전해진다.

9일 법무부 관계자도 “대검에서 아직까지 공공수사부(공안부)에서 노동을 분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적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 전국금속노조 현대‧기아차 비정규직지회는 18일 대검찰청 앞에서 ‘현대기아차 불법파견 비호 검찰 규탄 및 직무유기 검찰 고소고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전국금속노조 현대‧기아차 비정규직지회


공안검사의 변함없는 노동사건 처리

최근 처리되고 있는 노동사건을 보더라도, 검찰 공안부가 달라졌다고 보기 어렵다.

지난해 거제 조선소 하청업체에서 발생해 올해 10월 21일 처리된 취업방해 사건에서도, 담당 검사는 법조문을 최대한 편협하게 해석해 피의자로 고발당한 회사 사업주와 관계자들을 모두 무혐의 불기소 처분했다. (■ 관련기사 : ‘취업방해 금지법’ 위반 사건에 대한 검사의 ‘창조적’ 무혐의 처분)

피해 노동자 측은 검찰에 ‘노동자가 노조에 가입한 사실을 타사 관계자가 취업한 회사에 알려준 정황’과 ‘이를 이유로 합격을 취소시켰다는 회사 관계자의 말’이 녹음된 녹취자료 등을 증거자료로 제시했으나, 검사는 “‘통신’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만나서 ‘말’로 노조가입 사실을 알렸기에 죄가 성립될 수 없다”는 다소 황당한 이유를 들며, 불기소 처분했다.

금속노조 법률원 탁선호 변호사는 “근로기준법 제40조의 입법 취지는 자유로운 근로계약 체결을 타인이 방해해선 안 된다는 것인데, 그런 입법 취지는 고려하지 않고 통신비밀보호법의 ‘통신’ 개념을 그대로 적용해 무혐의 처분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 금속노조 현대·기아차 비정규직지회가 지난해 10월 18일 공안검사 2명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한 건에 대해서도, 최근 무혐의 처분 결과가 나왔다. 이 고발 건은 지난 10여 년 동안 고질적인 현대·기아차 불법파견 문제를 봐주기 수사로 일관해 온 검찰이 반성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검찰은 여전히 변함없었다.

고용노동행정개혁위와 노조 변호인단 등에 따르면,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당한 김 모 검사는 2017년 9월 검사실에 방문한 근로감독관으로부터 지휘건의를 받고도 지휘건의서 접수를 거부하고 수사보류를 지시했다가, 2018년 1월 18일에서야 수사지휘를 했다. 4개월 동안 수사를 지연시킨 것이다. 유 모 검사 또한 2018년 4월 4일 근로감독관으로부터 지휘건의를 받았음에도 접수를 거부하고, 근로감독관이 사건을 접수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 사건을 담당한 서울중앙지검 권 모 검사는 불기소이유서를 통해 “어떠한 형태로든 직무집행의 의사로 자신의 직무를 수행한 경우에는 그 직무집행의 내용이 위법한 것으로 평가된다는 점만으로 직무유기죄의 성립을 인정할 순 없고, 공무원이 태만·분망·착각 등으로 인하여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지 아니한 경우에도 직무유기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 권 검사는 파견법 사건의 수사경과 및 참고인 진술을 열거하며 “피의자들이 주관적으로 직무를 버린다는 인식이 있었다거나, 객관적으로 직무를 벗어나는 행위를 했다고 보기 어려우며, 달리 피의사실을 인정할만한 증거가 없다”며 불기소 이유를 밝혔다.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 위원으로 지난 10여 년 사이에 불공정하게 처리된 노동사건을 조사했던 김상은 변호사는 “간판만 바꿨지, 그동안 노동사건을 공안사건화 해서 자본에 편향적인 수사결과를 내놓았던 행태에 대해 반성을 한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여전히 노동사건을 공안사건처럼 대하는 기조가 남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발레오전장 노조파괴 사건과 현대·기아차 불법파견 사건의 노조 측 변호인이었던 김태욱 변호사도 “(공안부에서 공공수사부로) 이름만 바뀐 것 외에 무엇이 바뀌었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검찰에 바랄 것이 없다”는 매우 회의적인 심정을 드러내며, “검찰이 불기소 처분한 사건에 대해 재정신청 할 기회가 더 많이 열리고, 재정신청 시 기록 열람권 보장과 재정신청 인용 시 (검찰이 아니라 고소대리인이 공소 유지할 수 있도록) 공소유지 변호사제도 재도입 등이나 이루어졌으면 한다”고 밝혔다.


출처  [사업주 방패가 된 검사 ④] 왜 아직도 노동사건을 간첩 잡는 ‘검찰공안부’서 담당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