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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감시하고 표적 징계…LG의 노조 와해 전략

직원 감시하고 표적 징계…LG의 노조 와해 전략
LG디스플레이, 복수노조 추진 직원 상대로 회유와 협박, 부당 인사조치
[경향신문] 반기웅 기자 | 입력 : 2020.01.12 09:03


▲ 파주 LG디스플레이 공장에서 한 연구원이 나노셀 TV에 사용될 편광판을 살펴보고 있다. / LG전자 제공

LG그룹 계열사 LG디스플레이가 노조 설립을 방해하고 직원을 불법 사찰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사측이 노조 설립에 동참한 직원을 상대로 회유와 협박, 부당한 인사조치를 한 정황도 확인됐다. 경기 파주 사업장에서 새 노조 설립을 주도했던 노동자는 준비 과정에서 회사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가 퇴사했다. LG디스플레이에서는 2017년 구미 사업장에 복수노조(우리노조)가 설립됐다가 1년 만에 해산된 바 있다. 당시 노조위원장도 사측으로부터 징계 통보를 받았고, 노조 설립 1년 만에 퇴사했다.

LG디스플레이에는 노조가 있다. 조합원 2만600명(한국노총 소속·2017년 기준)에 달하는 노조로 현 노조는 친사용주 성향으로 분류된다. 2011년 복수노조 설립이 허용된 뒤에도 LG디스플레이 노조는 단일 노조 체제를 유지했다. 노조위원장 선거 역시 단일 후보·찬반 투표로 이뤄졌다. 그간 노조위원장 선거에는 기호 2번이 존재하지 않았다. 현 체제에 반발한 노동자들이 새 노조 설립을 시도했고, 실제로 출범한 사례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모두 실패했다.


현 노조는 친 사용주 성향

현 노조에 대한 불신은 2018년부터 3차례에 걸쳐 시행된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 이후 심화됐다. 500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희망퇴직으로 회사를 떠났지만 노조는 회사의 인력 구조조정 방침을 이견없이 받아들였다. 극심한 고용불안 속에 노동자들 사이에서 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할 조직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확산됐다. 새 노조 설립을 준비한 김민한씨(40세·가명·2004년 입사)도 그중 한 명이었다. 김씨는 “노조가 목소리를 내지 않다보니 회사는 일방통행으로 노동자를 다뤘다”며 “성희롱을 비롯한 상급자의 비위 행위를 신고해도 묵살당했다”고 말했다.

2019년 5월 김씨는 직원들만 가입할 수 있는 익명 게시판 ‘블라인드앱’에 실명을 내걸고 복수노조를 설립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곧바로 사측의 회유가 시작됐다. 직속 상사(현장 감독직) 2명은 김씨에게 “복수노조가 생길 경우 자신들은 물론 CPO(최고생산책임자)까지 인사상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차라리 현 노조(한국노총)의 노조위원장 선거에 출마하라”고 말했다. 김씨를 회유한 상사는 조합원 자격이 없는 사용자 측 인사다.

상사의 회유에 고민하던 김씨는 현 노조위원장 선거 출마로 방향을 바꿨다. 위원장이 된 후 노조의 체질을 바꿔볼 계획이었다. 앞서 1997년 한국노총·전국화학노동조합연맹을 탈퇴하고 민주노총을 상급단체로 둔 노조로 탈바꿈한 LG화학 사례를 염두에 둔 결정이었다.

김씨는 선거 출마의 뜻을 담은 e메일을 작성한 뒤 직원들에게 발송해도 문제가 없는지 여부를 LG디스플레이 노경팀에 질의했다. 노경팀은 “업무 외 용도로 메일을 보낼 경우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회신한 뒤 “만나서 얘기하자”는 뜻을 전했다. 김씨와 만난 노경팀 담당자는 “선거 출마는 자유지만 꼭 위원장이 돼야만 노조를 바꿀 수 있는 건 아니다”라며 “노조 대의원이 돼서도 가능하다”고 했다. 김씨는 “결과적으로 회사가 선거 출마를 하지 말 것을 회유한 것”이라며 “그 자체가 압박으로 느껴졌다”고 밝혔다.

김씨는 선거 출마의 뜻을 접지 않았다. 7월이 되자 회사는 김씨를 포함한 소속 부서원 16명 전원을 상대로 전수조사에 착수했다. 해당 부서의 근무 태만(시간 준수)에 대한 무기명 투서가 접수됐다는 게 이유였다. 김씨로서는 입사 이래 처음으로 겪는 일이었다. 조사 결과 징계 사유가 될 만한 행위는 적발되지 않았다. LG 노경팀은 “해당 건은 단순 계도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며 “일단 제보가 들어오면 회사 차원에서는 조사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해당 조사 이후 김씨는 동료들과 멀어졌다. 부서원들은 ‘너 때문에 회사생활이 힘들어졌다’며 등을 돌렸다.

▲ 저녁 모임 뒤 노경팀과 노조에 불려간 정황이 담긴 카톡 내용. / 김민한씨(가명) 제공


집요한 방해로 결국 노조 설립 포기

사측이 김씨 등 직원들을 불법 사찰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2019년 8월 12일 김씨는 퇴근 후 지지 의사를 표명한 타 부서 직원 3명과 만났다. 다음날 노경팀은 해당 모임에 참석한 직원 가운데 한 명을 호출해 김씨에 대한 지지 여부와 대화 내용 등을 캐물었다. 다른 직원 2명도 현 노조에 불려가 면담을 했다. 이들은 하루 만에 김씨에 대한 지지 의사를 철회했다. “어제 4명 만난 거 다 알고 물어보던데요. OO형과 제가 난감해졌어요. OO형도 노경한테 연락받았더라고요. 일단 우연히 거기서 만났다고 했어요.”(8월 13일 카카오톡 메신저 발췌) 이에 대해 LG 노경팀은 “노조에서 직원들을 불렀을지는 몰라도 노경에서는 부른 적은 없다”며 “당사자가 노조와 노경을 착각해서 말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김씨와 가깝게 지내던 주변 동료들도 회사의 타깃이 됐다. 김씨를 지지해온 타 부서 노동자(반장 직급)는 법인카드 부당 사용 관련 투서가 들어왔다는 이유로 취조 형식의 조사를 받았다. 투서 속 제보는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 이 과정에서 회사는 선거가 끝날 때까지 김씨에 대한 지지 의사를 표명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이후 해당 노동자는 인사발령을 통해 다른 사업장으로 배정됐다.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김씨는 고립됐다. 사측과 현 노조가 함께 선거에 부당 개입을 하고 있다고 판단한 김씨는 다시 새 노조 설립으로 노선을 변경했다. 블라인드앱에 실명을 밝히고 민주노총 산하 노조를 설립하겠다는 글을 올렸다.

다음날(2019년 8월 16일) 김씨는 LG디스플레이 징계위원회로부터 출석통보서를 받았다. 사측이 내건 징계 사유는 ‘상습 근무지 이탈’, ‘사내 메신저 내용 무단 공유’ 등 4가지였다.

징계와 별개로 회사는 개인 블로그에 올린 글도 문제 삼아 삭제를 지시했다. 김씨가 블로그에 복수노조·민주노총 관련 게시글을 올리자 직속 상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해당 상사는 “노경에서 블로그 글 지우라고 연락이 왔으니 당장 해당 글을 내리라”며 “회사 압박이 심하다”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노경팀은 “회사 차원에서 블로그 게시글 삭제 지시를 한 적 없다”며 “글을 내리라고 지시한 것은 당사자 개인의 의사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결국 김씨는 선거 출마와 새 노조 설립을 포기했다. 동시에 회사도 그만두기로 했다. 사측에 퇴직 의사를 밝히자 ‘징계 건을 취소해주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김씨는 퇴사 과정에서 그간 겪은 부당노동행위를 정리해 LG그룹 정도경영팀에 보냈지만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노조 설립을 표명한 지 6개월 만인 지난해 10월 31일 김씨는 회사를 떠났다. 김씨의 퇴사 이후인 지난해 12월 인사평가에서 김씨와 뜻을 함께했던 노동자 대다수가 최하 등급을 받았다.

박주영 민주노총 법률원 노무사는 “사용자들이 노조 설립을 방해하고 파괴하는 전형적인 수법”이라며 “부당노동행위일 뿐 아니라 직장 내 괴롭힘에도 해당된다”고 말했다.

LG디스플레이 측은 “노조 설립 방해는 김씨의 주장일 뿐 회사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개입한 사실은 없고 부당한 인사평가도 사실무근”이라며 “해당 사안에 대해 그룹 정도경영팀에서 조사를 벌이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출처  [단독]직원 감시하고 표적 징계…LG의 노조 와해 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