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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세월호 기레기에서 코로나 기레기로

세월호 기레기에서 코로나 기레기로
[민중의소리] 고희철 기자 | 발행 : 2020-01-30 09:09:17 | 수정 : 2020-01-30 09:36:51


민중의소리는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전체 언론을 놓고 보면 연륜이 길지 않다. 기자 숫자나 재정 규모도 크지 않다. 날마다 ‘어떤 이슈를 쓸지=어떤 이슈를 버릴지’ 고민이다. 늘 아쉽고 헷갈린다. 다른 매체 보도를 참고하고 반면교사 삼으면서도 기사로 내기를 신중히 하는 이유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보도를 보며 괴롭고 화가 나는 하루하루임을 감추고 싶지 않다. 명절 연휴 속속 보도되는 중국 소식을 접하며 엄습한 불길함이 그대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중국 현황과 관련한 확인되지 않은 외신 및 SNS발 괴담, 자극적인 제목의 클릭 유도, 극히 가능성 낮은 최악을 가정한 보도... 이런 보도는 결국 감염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중국에 대한 극단적 혐오를 낳았다. 정부 대응의 취약점도 짚어야 하고, 독자들이 알아야 할 정보도 분명 있으나 악화가 양화를 압도한다.

영화 ‘택시운전사’를 방불케 하는 중국 주재 기자의 우한 탈출기, 19세기 말 서구인이 쓴 듯한 중국인의 비위생과 무질서를 고발한 대림동 르포는 이번 소동을 되짚을 때 기억할 만하다. 전세기로 귀국하는 우한 교민 격리수용 장소가 천안으로 결정됐다는 단독기사도 빼놓을 수 없다. 기사를 보며 이걸 왜 이렇게 급하게 보도하지? 싶었다. 천안이 큰 피해를 본다는 직관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산과 진천 주민들이 도로를 점거하고 “우한 교민 수용 결사 반대”를 외치는 것도 예상된 그림이다.

일순간에 중국 우한에 살던 교민들은 핵발전소나 쓰레기소각장보다 더한, 단 2주일도 반경 1킬로미터 안에 같이 있을 수 없는 이들이 됐다. 따지고 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란 말도 무슨 죄가 있겠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LA독감과 같은 느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또는 그렇게 사용하지 않는 현실이 문제다.

이 글을 쓰는 시각 우리나라 확진자는 4명이다. 농기계를 앞세운 시위대와 중국인 추방 서명을 보며 이게 현실인가 싶다. 기괴한 현실을 낳은 불안과 공포는 공기 중으로 빠르게 전파된다. 매개하고 확산시키는 주요 개체가 언론이라는 점이 아프다. 언론 보도와 일부 정치권의 ‘아무말’이 권위를 실어주지 않았다면 유튜브나 트위터 괴담도, 119 장난전화도, 방진복 입은 추격전 놀이도 혀나 차고 말 일이었다.

▲ 29일 오후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 정문 앞에서 아산 주민들이 경찰인재개발원에 우한 교민 격리 수용하는 것을 반대하는 현수막을 붙여놓았다. ⓒ뉴스1

한국은 거대한 코로나 공포와 중국 혐오로 끓어 넘치고 있다. 얼마 전까지 생각보다 더 큰 나라였는데 지금은 생각보다 더 취약한 나라가 됐다. 우발적 상황인지 기획된 결과인지 모르겠다. 혹시라도 갈등과 분열에 몰래 웃음 짓는 이들이 있다면, 긴 고통이 따를 것이라는 악담을 보낸다.

보도할 것은 하지 않고 하지 않아야 할 것은 보도하는 언론, 정확히 세월호 기레기의 재판이다. 그 봄과 여름, 그리고 그 뒤 계속된, 기자라는 무리를 향한 적개심을 잊을 수 없다. 신임 기자협회장이 기자 전체를 대표해 세월호 피해 유가족을 찾아 공식 사과할 예정이라는데 곧 다른 분들께 또 사과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어쩌면 나중에 코로나 기레기란 말이 생길지 모르겠다. 오늘 하루 나도, 민중의소리도 사람은 못 돼도 괴물은 되지 않기를.

사족) 주말에 서울역이나 광화문을 가면 북한 못지 않게 중국에 적대적인 선동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는 한국전쟁에 개입해 북진통일을 막은 분단원흉이고 현재는 일자리를 빼앗고 미세먼지나 날려 보내는 적대적 존재라는 것이다. 이런 혐오는 윤리적으로도 문제지만 현실에 맞지도 않는다. 중국인 추방하자는 이들은 중국 없이 잘살 수 있을까. 일본 수출규제로도 그 살얼음판을 건넜는데 중국과 등지자는 주장을 정부, 기업, 노동자가 받아들일 수 있겠나. 이는 혐오를 자존 실현으로 오도하는 행태다. 사드 배치로 뒤통수를 치는 격이 됐지만 2015년 9월 3일 박근혜가 천안문 성루에 올랐던 일을 모두 기억한다. 중국의 전승 70주년 열병식이었다.


출처  [기자수첩] 세월호 기레기에서 코로나 기레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