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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져서, 끼여서…올 들어 벌써 58명이 죽었다

떨어져서, 끼여서…올 들어 벌써 58명이 죽었다
노동건강연대, ‘2020 산업재해 현황’ 공개
‘김용균법’ 시행에도 하루 1.4명꼴 산재 사망
공사 현장 등에서 떨어져 숨진 이가 13명으로 가장 많아

[한겨레] 김완 배지현 기자 | 등록 : 2020-02-12 17:23 | 수정 : 2020-02-13 02:42


▲ ‘일하다 죽지 않게, 차별받지 않게! 2차 촛불행진 준비위원회’와 ‘문중원 열사 2·22희망버스 기획단’이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죽음을 멈추는 2.22 희망버스 출발 및 종합계획 발표’ 기자회견을 열어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호소하고 있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올해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들의 사망 이유가 적힌 영정손팻말을 들었다. 사진은 다중노출 기법을 이용해 찍었다. 김혜윤 기자

지난달 1일,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작업 중이던 노동자 ㄱ(52) 씨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머리 등을 크게 다쳤다. ㄱ 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오전 7시 51분, 새해 첫해가 뜬 지 10분도 채 안 된 시간이었다.

지난 10일 오전 10시 40분께, 부산 기장군 정관읍의 한 밧줄 만드는 작업장에서 끊어진 원사를 연결하던 노동자 ㄴ(60) 씨가 압축기 롤러에 다리가 빨려 들어가는 사고를 당해 숨을 거뒀다.

2020년이 시작되고 지난 10일까지 42일 동안 모두 58명의 노동자가 하루 1.38명꼴로 산업재해를 당해 숨졌다. 노동자들은 매일 떨어지고, 무너지고, 끼이고, 깔리고, 화재나 화학물질에 노출되고, 발파석 등에 맞고, 폭발이나 감전을 당해 죽어갔다.

노동건강연대는 1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런 내용을 담은 ‘2020 산업재해 현황’을 공개했다. 자료를 보면, 지난 1월부터 이른바 ‘김용균법’이라고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돼 보호받아야 할 노동자의 범위가 확대됐고 사업자의 안전·보건 조처 의무가 강화했지만, ‘김용균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산업현장의 위험들은 여전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58명의 죽음을 유형별로 살펴보면, 아파트나 쇼핑몰 신축 공사 현장이나 공사용 승강기 등에서 떨어져 숨진 이가 13명으로 가장 많았다. 지난달 22일에는 인천 송도국제도시의 한 쇼핑몰 신축 공사 현장에서 노동자 ㄷ(50) 씨가 5층 높이 이동용 임시 구조물을 지나던 중 발판이 무너져 추락해 숨졌고, 지난달 31일에는 부산 진구 오피스텔 신축 공사장 18층 엘리베이터 통로에서 콘크리트 타설 배관 해체 작업을 하던 40대 노동자가 1층으로 떨어져 숨졌다.

김용균 씨처럼 컨베이어 벨트나 유압기, 원통형 성형 자동화 설비 등에 끼여서 숨진 노동자도 7명이 됐다. 지난 1월 5일 울산 울주군 한 사업장에서 세탁물 자동투입 컨베이어를 조작하던 노동자가 컨베이어에 머리가 끼여 숨졌고, 지난 7일에는 충남 예산군 플라스틱 제조공장에서 스리랑카 국적의 ㄹ(29) 씨가 사출성형기를 수리하다가 설비가 갑자기 작동하면서 기계에 끼인 뒤 1.2m 아래 바닥으로 추락해 숨졌다.

원초적인 죽음도 있었다. 지난달 16일 서울 금천구의 한 건물 신축공사 현장에서 일하던 ㅁ(52) 씨는 천장 타공 작업을 하던 사다리 위에 올려놓은 앵커 드릴이 떨어지면서 머리를 때려 사망했다. 안전모를 썼거나 공구가 떨어질 때 옆에서 소리를 질러줄 동반 작업자만 있었어도 어쩌면 죽음을 피할 수 있었다.

고용노동부는 전날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올해 산재 사망자 수를 지난해보다 15.2% 적은 725명 이하로 대폭 줄이겠다’는 목표를 보고했다. 하지만 노동 현장의 안전 문제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남준규 노동건강연대 활동가는 “죽어가는 노동자들은 차별받거나 외주화로 위험이 증가한 현장에서 일하는 등의 경향성을 보였다. 서로 책임을 미루는 와중에 위험에 더욱 노출된 것”이라며 “일 때문에 죽고 차별받아 죽는 이런 죽음을 기업에 의한 살인이라고 말해야 한다. 정부가 기업들이 실질적인 산재 책임을 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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