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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오키나와 땅속 ‘강제동원 조선인’ 유골 나올까

오키나와 땅속 ‘강제동원 조선인’ 유골 나올까
모토부 조선인 군속 유골 발굴 현장
한·일·대만 시민들 공동 유골 발굴 작업
75년 전 미국 잡지 사진 단서로 장소 특정
예비 발굴 때 사람 등뼈 등 나왔으나
당시 숨진 이들 유골인지는 확신할 수 없어
“영혼으로라도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한겨레] 모토부초/글·사진 조기원 특파원 | 등록 : 2020-02-09 17:49 | 수정 : 2020-02-09 20:49


▲ 9일 오전 일본 오키나와현 구니가미군 모토부초 겐켄에 있는 주차장에서 시작된 유골 발굴 작업 현장에서 안경호 4·9통일평화재단 사무국장이 은박지에 싸여 있던 사람 등뼈를 바위 위에 펼쳐놓고 있다. 유골은 지난 7일 예비 발굴 때 나왔지만 태평양전쟁 당시 희생자 유골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9일 오전 일본 오키나와현 구니가미군 모토부초 겐켄에 있는 주차장에서 안경호 4·9통일평화재단 사무국장이 은박지에 싸여 있던 사람 등뼈를 바위 위에 펼쳐놓았다. 그러고는 다시 접어 바위 위에 올려놓았다. 등뼈뿐만 아니라 미군이 쓰던 탄두, 옷이나 가방 이음새에 쓰였을 것으로 보이는 버클과 옛 일본 동전도 은박지에 펼쳤다가 다시 접었다.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 있는 겐켄 주차장은 태평양전쟁 당시 동원됐던 조선인 군속(군무원) 2명의 유골이 매장돼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다. 이날 한국과 오키나와, 일본 본토 및 대만 시민들이 모여 공동 유골 발굴 작업을 시작했다. 안 국장도 발굴 작업 참가자다. 뼈와 탄두 등은 공동 발굴 작업 이전인 지난 7일 예비 발굴 때 나왔다. 등뼈가 나온 자리를 중심으로 땅을 파 내려가면서 유골 발굴 작업을 벌였다.

오키나와는 태평양전쟁 때 일본에서 유일하게 본격적인 지상전이 벌어진 곳으로 일본군과 오키나와 주민, 동원된 조선인·대만인 등 20여만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인 유골 발굴 작업 진행은 희귀한 예다.

▲ 1945년 5월 미국 잡지 <라이프>에 실린 사진. 사진 속 묘표 중에 금산만두(오른쪽 둘째), 명촌장모(오른쪽 넷째)라고 쓴 한자가 보인다. 이들은 강제동원된 조선인 군속이었다.

발굴 작업은 1945년 5월 미국 잡지 <라이프>에 실린 사진 한장에서 시작됐다. 나무로 세운 묘비표지 옆에서 미군 병사가 바다를 보고 있는 사진이다. 묘표 14개 중 2개에 한자로 음독했을 때 ‘금산만두’와 ‘명촌장모’라는 이름이 보였다. 창씨개명된 조선인 이름으로 추정됐다. 오키나와 시민운동가들은 조선인 강제동원자 명부를 대조해, 이들이 일본군 군속으로 동원됐던 김만두씨와 명장모씨임을 확인했다. 사망 당시 각각 23살과 26살이었다. 일본군 기록을 보면 이들은 일본군 수송선으로 징발된 선박 ‘히코산마루’에 탔는데 1945년 1월 22일 미군기의 공격으로 히코산마루에서 다수가 사망했다. 묘표 이름으로 확인된 희생자 14명은 히코산마루 선장과 군인, 군속이다.

7일 발굴된 등뼈가 당시 묘표 속 14명의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조선인 유골인지도 불분명하다. 유해 발굴 전문가인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고고미술사학)는 “뼈의 성숙도를 봤을 때 18~19살이 되지 않은 이의 유골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4m 깊이에서 유골이 나왔는데 이곳은 전후에 흙을 쌓아 올린 곳이다. 발굴 깊이 등으로 봤을 때 14명의 유골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했다.

마을 사람들이 희생자들을 화장해 묻었다며 구체적인 위치까지 특정한 것도 발굴 작업을 이끈 동력이었다. 다만, 나온 뼈에서 화장의 흔적은 없다. 발굴 작업을 이끈 한 사람인 오키모토 후키코는 “화장을 했다는 마을 주민 증언도 있고, 그냥 묻었다는 증언도 있다”며 아직 발굴된 유골이 누구의 것인지는 확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신원을 특정하려면 감정이 가능한 정도의 디엔에이(DNA)가 나와야 한다. 그는 “유골이 방치돼서는 안 된다. 세월이 지나 유족 곁으로 돌아가기 어렵다 해도, 생전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회복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발굴 작업 시작 전에 위령식이 열렸다. 참가자들은 “유골의 영혼이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바다 건너편에는 75년 전 사진의 모습처럼 세소코섬이 보였다. 한국 시민단체인 ‘평화디딤돌’과 일본 단체인 ‘모토부초 겐켄의 유골을 고향에 돌려보내는 모임’ 등으로 구성된 ‘겐켄 유골 발굴 공동실행위원회’는 11일까지 공동 발굴 작업을 한다.

▲ 9일 오전 일본 오키나와현 구니가미군 모토부초 겐켄에 있는 주차장에서 시작된 유골 발굴 작업 현장에서 동아시아 각국 시민들이 발굴 작업을 하고 있다.


출처  오키나와 땅속 ‘강제동원 조선인’ 유골 나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