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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편도’ 먹으며 버티는 밤, ‘에러투성이’ 몸은 오늘도 단잠 꿈꾼다

‘편도’ 먹으며 버티는 밤, ‘에러투성이’ 몸은 오늘도 단잠 꿈꾼다
[2020 노동자의 밥상] ⑩‘투잡’ 뛰는 IT노동자
대기업 프로젝트 맡아 일하지만
하도급 말단인 ‘반프리’ 비정규직
야근이 끝나면 개인 사무실로 출근
새벽까지 웹사이트 코딩 매달려
“어머니 투병으로 진 빚 갚으려…”
7개월 밤샘 강행군에 몸 망가져

[한겨레] 전광준 기자 | 등록 : 2020-02-04 05:00 | 수정 : 2020-02-04 09:43


▲ 웹 개발자 박정훈(가명)씨가 지난달 22일 밤 서울 강남구의 개인 사무실에서 식사를 하면서 코딩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 웹 개발자 박정훈(가명)씨가 지난달 22일 밤 서울 강남구의 개인 사무실에서 식사를 하면서 코딩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도시락은 5분 만에 자취를 감췄다. 손가락만 한 프라이드치킨 네 조각에 양념치킨 네 조각. 여덟 개의 치킨 조각을 해치우는 동안 박정훈(가명·35)은 플라스틱 도시락에 담긴 밥을 정확하게 여덟 번으로 나누어 입으로 가져갔다. 시선은 모니터에 고정한 채였다. 털어 넣듯 편의점 도시락을 먹으면서도 그의 동작은 마치 프로그래밍이 된 것처럼 오차가 없었다. 치킨을 넣은 입에 밥이 들어가면, 박정훈은 곧바로 젓가락을 내려놓고 키보드로 손을 가져갔다. 손가락을 움직여 프로그래밍 코드 한 줄을 입력하는 동안 몇 번 씹지도 않은 치킨과 밥을 재빨리 목구멍으로 밀어 넣고, 다시 나무젓가락을 집었다.

야식을 먹는 그의 손놀림이 기계적일 정도로 정확한 것은 지난 3~4년 동안 거의 날마다 편의점에서 이 반반치킨 도시락을 사 먹은 덕이다. 몸이 밥의 양과 반찬의 위치를 기억하고 있다. 질릴 법도 하건만 야식을 먹을 때 그에게 중요한 건 오로지 ‘속도’뿐이다. “찬이 많은 도시락보다 ‘굵고 짧은’ 도시락이 좋아요. 그래서 어지간하면 반반치킨 도시락만 먹어요. 젓가락질 여덟 번이면 해결할 수 있잖아요.” 지난달 22일 밤, 서울 강남의 3평(9.9㎡) 크기 개인 사무실에서 만난 박정훈이 입에 남은 치킨 조각을 우물거리며 말했다. 5분 만에 식사를 ‘마셔버린’ 그는 입에 남은 마지막 밥을 삼키지도 못한 채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싱크대에서 플라스틱 도시락 용기를 헹궜다. 사무실 구석의 분리수거 휴지통을 열자 플라스틱 용기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모두 웹 개발자 박정훈이 지새운 밤의 흔적이다.

▲ 웹 개발자 박정훈(가명)씨의 편의점 도시락 밥상. 김명진 기자


철야의 동반자…‘편도’와 ‘에너지 드링크’

불야성의 도시 강남에서도 어지간한 사무실들의 불이 대부분 꺼진 새벽 1시, 박정훈은 침대가 아닌 편의점으로 향한다. ‘편도’(편의점 도시락) 하나와 강력한 카페인을 품은 에너지 드링크 하나를 손에 쥔다. 이날은 도시락만으로 배가 차지 않겠다 싶어 바나나도 챙겼다. 바나나 한 개면 충분한 그가 바나나 송이 앞에서 고민하니 편의점 주인이 “하나만 떼어주겠다”고 흔쾌히 말을 걸어왔다. 날마다 편의점을 찾는 박정훈은 이 편의점 주인이 아끼는 ‘우량 고객’이다. 편의점에 쓰는 돈만 한 달에 15만 원이 넘는다.

편의점 없이 살 수 없을 정도로 박정훈의 밤은 길다. 그는 하루에 두 번 출근하고 퇴근한다. 오전 9시까지 출근하는 곳은 강남의 한 대기업이다. 대기업 건물 안에서 일하지만, 대기업에 소속된 노동자는 아니다. 박정훈은 ‘반프리’다. 4대 보험도 적용되는 정규직이지만, 여러 단계의 하도급을 거쳐 사실상 비정규직인 노동자를 IT 업계에서는 그렇게 부른다. ‘갑’인 대기업 밑에 ‘을’인 계열사가 있고, 을에게 기업 관리 프로그램 개발 프로젝트를 따낸 회사 ‘병’이 있다. 병은 또다시 도급 회사 ‘정’에 프로젝트를 맡기고, 정은 다시 ‘무’인 개발자 ‘박정훈들’과 반프리 계약을 맺는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고용계약도 종료된다. 1년 넘게 일해도 퇴직금이 없는 경우가 흔하다. “저도 그냥 구두계약으로 지금 일하고 있어요. 인정과 의리로 돌아가는 거죠.”

대기업 갑을 구조의 말단인 반프리 생활을 하는 동안 그는 야근이 몸에 익었다. 평일 내내 새벽 1~2시까지 일했다. 그나마 주 52시간제 정책이 시행되면서 퇴근이 당겨졌다. “정규직이 빨리 퇴근하겠어요, 반프리가 빨리 퇴근하겠어요? 주 52시간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전인 2018년만 해도 1년에 개발자 50명 정도가 과로로 죽었어요.” 박정훈이 덤덤히 말했다. 대학 때 컴퓨터를 전공한 뒤 10여 년 동안 개발 일을 해왔지만, 몸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야근을 밥 먹듯 하던 그때부터다. “편의점 도시락을 먹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네요. 그때는 회사로 도시락을 반입할 수도 없어서 매일 새벽 편의점에 선 채로 도시락을 먹었어요. 야근하고 마무리로 먹었죠.”

주 52시간제 시행 뒤에도 박정훈은 ‘야근’을 자처하고 있다. 사무실에서 오후 6시에 퇴근한 박정훈은 근처 백반집에서 급히 저녁을 때우고 개인 사무실로 다시 출근한다. 그곳에서 빠르면 밤 10시, 늦으면 새벽 1~2시까지 일하는 것이다. 개인 사무실에선 일반 기업에서 웹사이트 개발 일을 수주해 웹페이지를 만드는 코딩 작업을 한다. 개인 사무실 일은 주말에도 이어진다. 최소 6~7시간 동안 일한다. 단 하루도 쉬지 않는 ‘투잡’ 생활을 박정훈은 지난해 7월부터 이어가고 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투병 생활로 진 빚을 갚기 위해서다.

▲ 웹 개발자 박정훈(가명)씨가 지난달 22일 밤 서울 강남구의 한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고르고 있다. 김명진 기자

긴 밤을 지낼 힘은 에너지 드링크에서 나온다. 이달 들어 박정훈의 야근 작업은 정점을 찍었다. 웹 개발 의뢰가 겹친 탓에 나흘간 잇달아 밤을 새웠다. 이렇게 밤샘 작업을 할 때면 하루 한 차례 마시던 에너지 드링크를 두 개씩 비운다. 새벽 1~2시 사이에 한 캔, 새벽 6시께에 한 캔을 비우는 게 그만의 ‘루틴’이다. 에너지 드링크를 마셔도 잠을 이기지 못할 때면 박정훈은 사무실 구석의 접이식 간이침대를 편다. 그나마 매트리스라도 있는 ‘라꾸라꾸’ 대신 얇은 천 하나로 만든 불편한 간이침대를 일부러 마련했다. “너무 편하면 집에 안 가고 여기서만 잘 것 같아서요.” 그마저도 시간이 여의치 않을 땐 집 대신 사우나로 퇴근한다. 서둘러 씻고 다시 도급회사인 대기업으로 출근하기 위해서다.

▲ 웹 개발자 박정훈(가명)씨가 졸릴 때 마시는 에너지 드링크. 김명진 기자


‘으드득’, 야근이 남긴 상흔

살인적인 밤샘 노동이 박정훈의 몸과 마음에 남긴 상흔은 선명하다. 밤낮없이 일하다 보니 박정훈은 밤이 돼도 잠들 수 없게 됐다. 지난해 여름부터 심해진 수면장애 탓에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다. 소주 한 병 반을 들이켠 뒤에야 잠들 수 있었다. 넉 달 전부터 수면제 처방을 받아 겨우 잠을 잤지만, 이달 초 잇단 밤샘 작업으로 다시 악화했다. “마음 놓고 쉰 적이 없어서 그런지 성격도 많이 예민해지더라고요. 별것도 아닌 일에 신경이 곤두서고….”

잠잘 때 말고 대부분의 시간을 컴퓨터 앞에서 보내다 척추가 망가진 많은 개발자처럼 박정훈도 심각한 허리 통증에 시달린다. 누군가에게 추상적인 용어에 불과할 ‘크런치 모드’가 그에게는 몸과 뼈에 새겨진 상흔 그 자체다. 크런치 모드는 소프트웨어 개발 업계에서 수면과 영양 섭취, 위생, 기타 사회 활동 등을 희생하며 장시간 노동하는 상태를 뜻한다. 크런치의 본뜻은 ‘으드득’(단단한 것이 으스러질 때 나는 소리)이다. 개발자의 삶을 택한 뒤 박정훈의 일상이 으드득, 부서졌듯 그의 허리도 으드득, 뒤틀렸다. 앉아 있을 때는 물론이고 누울 때 통증이 더 심하다. 척추교정원에 가서 1주일에 두 차례 교정을 받지 않으면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렇다고 누구를 원망할 수도, 책임을 돌릴 수도 없다. ‘구로 등대(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빌딩을 빗댐)’나 ‘판교 등대’에서 회사의 강요로 야근을 이어가는 여타 IT 노동자와 달리 투잡은 박정훈의 선택일 뿐 아니냐고, 세상은 말한다. 투잡을 강행한 7개월 동안 그는 건강을 희생한 대가로 목적을 달성했다. 빚을 전부 갚았다. 오는 3월이면 대기업 도급일도 마무리된다.

이 일을 마치면 박정훈은 ‘갑-을-병-정-무’의 고리로 되돌아가지 않을 작정이다. 3월부터는 동료들과 웹 개발 회사를 차려 ‘원잡’으로 돌아가려 한다. 이대로라면 정말 목숨이 위협받을 것 같아서다. “수입은 줄겠지만 어쩔 수 없어요. 더 버틸 수가 없어요. 야근을 줄이는 게 최대 목표예요.”

모두 잠든 새벽, 캔에 남은 마지막 에너지 드링크를 비워내고 박정훈은 다시 세 개의 모니터 불빛 앞에 고개를 들이밀었다.


출처  ‘편도’ 먹으며 버티는 밤, ‘에러투성이’ 몸은 오늘도 단잠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