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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컵밥 데우는 몇 분조차, 응급실 생사 앞에선 한가로운 사치다

컵밥 데우는 몇 분조차, 응급실 생사 앞에선 한가로운 사치다
[2020 노동자의 밥상] ⑪응급실 간호사들
1시간 동안 ‘환자 26명·보호자 11명’
진단·치료대기 레벨3~5 ‘예진구역’
쉴 새 없이 밀려드는 환자에
식사도 퇴근도 거른 ‘이브닝 근무’
‘티룸’엔 간편식이 상자째 있지만
개봉은커녕 우유·두유로 때울 뿐
“구내식당? 12월에 딱 두번 가봤죠”

[한겨레] 정환봉 기자 | 등록 : 2020-02-07 04:59 | 수정 : 2020-02-07 07:00


▲ 김유정 간호사가 일하는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 의료진 ‘티룸’에는 김치 참치 덮밥과 서울식 설렁탕 국밥, 전주식 돌솥비빔밥 등 다양한 컵밥 상자째 쌓여 있고(왼쪽), 밤샘 근무자(‘나이트’)를 위한 도시락도 쌓여 있다(오른쪽 위). 간호사들은 이 도시락을 먹을 시간이 거의 없다고 한다. 이 병원 응급 중환자실에서 일하는 신수진 간호사가 지난달 27일 동료 간호사들과 함께 구내식당에서 먹은 점심 밥상(오른쪽 아래). 쌀밥과 육개장, 김치와 감자채볶음, 미역볶음, 만두 맛탕 네 조각 등이 담겨 있다. 정환봉 기자, 신수진 간호사 제공

지난달 26일 밤 10시 30분, 의료진들의 무전기 구실을 하는 ‘파워텔’이 빽빽 울렸다. 뼈가 보일 정도로 팔을 심하게 다친 ‘트라우마’(외상) 환자가 곧 실려 올 예정이라고 했다. 도로에 서 있다가 버스에 치인 ‘티에이’(TA·Traffic Accident) 환자였다. 오후 3시부터 일하는 ‘이브닝 근무’ 담당인 응급실 간호사 김유정(가명·31)은 퇴근을 30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트라우마 환자가 1명이라도 응급실에 오면 밤 10시 30분부터 아침 7시 30분까지 일하는 ‘나이트’ 근무자만으로 감당이 되지 않는다. 나이트는 이브닝보다 근무자가 2명 적다. 김유정은 퇴근은 생각하지도 않았다는 듯 팔을 걷어붙이고 피범벅이 된 환자의 옷을 갈아입혔다. “트라우마 환자는 손이 많아 가거든요. 심각하게 다쳤으면 수혈도 많이 해야 하고, 추워하니까 체온도 유지해줘야 하고, 피로 범벅이 된 옷을 갈아입히기도 쉽지 않아요.” 이날 김유정은 새벽 1시 가까이에야 퇴근할 수 있었다.

김유정은 좀처럼 표정을 바꾸는 법이 없다. 목소리의 높낮이와 속도, 강세만으로 긴장을 조율할 줄 안다. 그가 일하는 곳이 수많은 위태로움이 몰려드는 대학병원 응급실임에도 말이다. 당장의 고통이 넘치는 곳에서 영양제를 놔달라는 환자의 한가한 요구에는 “응급실은 치료하는 곳”이라는 단단한 목소리로 벽을 쌓는다. 반면 산소통에 호흡을 의지하는 환자에겐 “산소 하시면 좀 덜 힘들어요?”라며 봄날 백사장 모래처럼 따뜻하게 위태로움을 감싼다. 설 연휴 끝자락인 지난달 27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만난 김유정은 그렇게 응급실의 긴장을 당겼다가 풀며 예진(본격적인 처치 전 단계)구역의 리듬을 조율했다.

응급환자들은 ‘트리아지’(중증도 분류)를 거쳐 가장 위급한 ‘레벨1’에서 비교적 양호한 ‘레벨5’까지 다섯 단계로 분류된다. ‘레벨1’ 환자는 대부분 소생실로 옮겨지고, 이 가운데 집중치료와 관찰이 필요한 환자는 중환자실에 자리 잡는다. ‘레벨2’부터 ‘레벨3’ 중환자는 보통 응급실 침상에 눕는다. 김유정이 근무하는 예진 구역은 ‘레벨3’부터 ‘레벨5’ 환자가 진단을 기다리며 치료받는 곳이다. 환자 보호자들이 가슴 졸이며 대기하는 곳이기도 하다.


응급실, 그 안도와 절망 사이

예진 구역에는 안도와 절망이 교차한다. 이날 예진 구역 한 귀퉁이에서 초조하게 몇 시간을 머물던 한 60대 부부는 안도로 마감할 수 있었다. 뇌경색을 앓았던 아내가 갑자기 몸이 뻣뻣하게 굳었는데, 여러 검사를 마친 의사는 “병세가 진행되지 않았다. 심리적인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돈도 시간도 없어서 제때 병원도 못 왔는데…”라던 남편은 아내의 손을 꼭 붙잡았다.

절망은 곧 찾아왔다. 이날 오후 3시 30분께, 파워텔이 다시 빽빽 울렸다. 레벨1 환자 발생. 곧 구급차를 타고 도착한 70대 남성은 바로 소생실로 옮겨졌다. 서울 종로구의 어느 거리에서 쓰러진 뒤 심장이 멎어 구급대원이 심폐소생술을 했다고 한다. 심장 박동은 돌아왔지만, 그 사이에 뇌 산소공급이 끊겨 의식이 돌아올지 모르겠다고 했다. 곧 병원에 도착한 이 남성의 아내가 “내가 보호잔데 볼 수 없겠냐. 내가 불러보면 내 목소리는 알아듣지 않겠냐”며 의사를 붙잡고 호소했지만, 아내의 바람은 이뤄지지 못했다. 보호자는 소생실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김유정은 그렇게 늘 안도와 절망이 교차하는 자리에 서 있다. 그러나 김유정에게 그 감정을 소화할 여력은 없다. 예진 구역에 놓인 35개 의자 속 환자들에게 엑스레이나 채혈, 컴퓨터단층촬영(CT) 등 검사 시기를 알려주고, 수액과 치료제가 든 링거를 주사하고, 혈압을 재거나 진단서 확인을 돕는다. 우리는 언제 봐주냐는 환자나 보호자의 날카로운 독촉도 응대한다. 이날 응급실 현장에서 1시간 동안 세어보니, 김유정은 26차례에 걸쳐 환자의 링거를 달거나 혈압을 재거나 진단서 확인을 도왔다. 검사가 늦어지는 이유를 설명하거나 응급실 병상이 있느냔 질문들에 답하며 보호자를 상대한 것만 11차례다. 그러다 가끔 예진 구역 전체를 눈으로 훑으며 상태가 악화하거나 위급한 환자가 없는지 살핀다. 환자의 상태를 다른 간호사와 상의하고 컴퓨터로 의사에게 ‘노티’(환자 상태를 알리는 일) 하며 버릇처럼 손 소독제를 손에 비볐다. 상황을 냉철하게 판단해야 하는 그런 순간에 감정이 끼어들 틈은 없다.

끼어들 틈이 없는 건 감정만이 아니다. 이날 ‘이브닝 근무’ 동안 김유정을 비롯한 응급실 간호사 11명은 아무도 저녁밥을 먹지 못했다. 이날 날씨가 궂어 평소보다 응급실을 찾는 환자가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예진 구역 응급실 간호사들에게 ‘결식’은 고정값이란 말이 된다. 의료진 ‘티룸’에는 간호사 등을 위해 김치 참치 덮밥과 서울식 설렁탕 국밥, 전주식 돌솥비빔밥, 뚝배기 불고기 밥 등 다양한 종류의 컵밥이 상자째 쌓여 있지만, 누구도 이를 데워먹을 시간조차 내지 못했다. 나이트 때는 병원에서 도시락 야식을 사다 주지만, 이 역시 대부분 먹지 못한다. “지난 12월 구내식당에서 밥 먹은 걸 세어봤더니 2번뿐이더라고요. 너무 당이 떨어지는 것 같으면 딸기우유나 두유 같은 걸 하나씩 먹는 정도에요. 최근에 병원 간부 한 분이 신년 인사라며 백설기를 돌렸는데, 배고플 때 그걸 먹으니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어요.” 김유정이 웃으며 말했다.

▲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 간호사들이 끼니로 가끔 먹는 설렁탕 컵밥. 신수진 간호사 제공


환자에게 맞아도, 환자 존엄 위해 버틴다

다른 이의 목숨을 지키려 자신의 목숨을 갈아 넣는 게 응급실 간호사의 일이다. 그러니 동료는 시도 때도 없이 바뀐다. 2018년 병원 생활을 시작한 김유정이 이미 업계에서 중견인 까닭이다. “1년만 하고 그만두는 간호사도 많아요. 직업에 비전이 없다고 생각해서요. 환자들한테 맞아서 그만두는 사람도 많고, 의사나 다른 직군들과의 갈등 때문에 병원을 나가는 경우도 있어요.” 김유정 역시 지난해 추석 직전 환자에게 얻어맞은 기억이 있다. 보호자를 때리는 환자를 말리다 안경이 부러지고 눈에 멍이 들었다. “한동안 병원에 못 나왔어요. 우울증 치료를 받고 수면제도 먹었죠. 추석 연휴에 집에도 가지 못했어요. 혼자서 정말 많이 울었죠.”

그래도 김유정은 버티고자 한다. 환자에게 얻어맞는 괴로움보다 환자의 작은 증상이라도 놓쳤을 때 느낄 죄책감이 더 무섭다. 환자의 상태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간호사는 때로 의사보다 더 환자 상태에 민감하게 반응할 줄 안다. 유능한 간호사는 환자의 변 냄새만으로도 환자의 상태를 알아차린다고 한다. “그래서 더 예민해지고 집중하려고 노력해요. 환자를 살리고 싶고, 잃고 싶지 않으니까.”

환자의 존엄을 지키는 것도 역시 간호사의 몫이다. 말기 암을 앓다 패혈증이 생겨 응급실을 찾은 한 할머니를 만났을 때 김유정은 보호자에게 화를 낸 적이 있다. 할머니를 병상에 눕히고 산소포화도 측정기를 손가락에 붙이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할머니 손톱 위 젤 내일이 측정을 방해한 것이다. 아세톤으로도 그 젤 내일은 잘 지워지지 않았다. 화를 내는 김유정 앞에서 보호자는 우물쭈물하며 할머니가 좋아하셔서 해드린 것이라고 말했다. 손가락으로 산소포화도를 재지 못하면 아픈 주사를 찔러 동맥혈로 측정해야 한다. 김유정은 고통스러워하는 할머니에게 주사를 찔러야 한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 것이다. 그런 와중에 할머니가 풀 죽은 목소리로 귀에다 “몸에서 냄새가 나는 것 같다”고 속삭였다. 극심한 통증이 몸 밖으로 땀을 밀어내 옷이 절 때로 절은 상태였다. 김유정은 ‘손톱에 젤 내일까지 한 멋쟁이 할머니인데, 내가 이 할머니라면 아무리 응급실이라도 단정하게 있고 싶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유정은 바쁜 와중에도 굳이 옷을 갈아입히자고 고집을 부렸다. 그게 할머니의 존엄을 지키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아들은 그때, 엄마의 몸을 닦으면서 “젤 내일을 괜히 해서”라고 자책하며 울었다. 할머니는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레벨1 환자로 분류됐고, 끝내 세상을 떠났다.

▲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 의료진 ‘티룸’에 밤샘 근무자(‘나이트’)를 위한 도시락이 쌓여 있다. 하지만 간호사들은 이 도시락을 먹을 시간이 거의 없어 대부분 그대로 버려질 때가 많다. 신수진 간호사 제공


말없이 육개장과 밥을 마셨다

김유정과 같은 병원 응급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는 신수진(가명·34)은 그나마 김유정보다 자주 구내식당을 찾는다. 레벨1로 분류되는 환자들이 주로 치료받는 응급 중환자실은 위태로움의 정도가 예진 구역보다 컸지만, 갑자기 환자 수가 확 몰리는 일은 없다. 다만 이곳은 언제 어떻게 위기가 닥칠지 모른다. 식사 도중 갑자기 환자에게 심정지가 왔다는 알림이 오거나 환자가 의료진을 공격하는 ‘코드 블랙’이 발생하면 밥을 욱여넣을 정신 같은 건 사라지고 만다. 이날 오후 1시, 신수진은 동료 간호사 2명과 함께 구내식당에서 밥상을 들었다. 메뉴는 쌀밥과 육개장, 김치와 감자채볶음, 미역볶음, 만두 맛탕 네 조각. 간호사들의 점심시간은 30분이다. 어차피 1시간을 다 쓰지 못하니, 노조와 병원이 합의해 30분으로 줄이고 대신 퇴근 시간을 30분 당겼다. 세 명의 간호사는 아무런 말도 나누지 않은 채 육개장 국물과 밥을 후루룩 마시고, 15분도 되지 않아 식사를 끝냈다. 세 명이 남긴 국그릇엔 대파나 고사리 같은 건더기가 대부분 남아 있었다.

10년 차 간호사로 2년 넘게 응급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면서 눈앞에서 수많은 죽음을 겪은 신수진은 그중에서도 특히 스물도 안 된 청년의 죽음을 잊을 수 없다. “열아홉인가 그랬을 거예요. 배달하다 교통사고가 나서 머리를 심하게 다쳤죠. 뇌출혈이 너무 심해서 병원에 왔을 때는 이미 희망이 없는 상태였어요. 혈액순환이 잘되지 않아 이미 시반이 군데군데 생기고, 피부색도 변하고 있었죠. 어머니가 달려오셨는데, 차가운 아들의 발에 얼굴을 비비며 ‘엄마가 어떻게 해줄까. 엄마가 뭘 할 수 있는 게 없을까’라며 오열하는 거예요. 저도, 어머니도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죠.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젊은 환자들은 심장이 튼튼해서 멎는 데까지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고 한다. 아무리 감정을 차단하고 사는 간호사라고 해도, 그 시간만큼은 심장을 조여오는 고통이 버겁다. “그 부질없는 시간을 지켜보는 게 너무 안타까웠어요. 정말 살려주고 싶은데…, 진짜 살았으면 좋겠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너무 미안했어요.” 눈물을 삼키며 신수진이 겨우 말을 맺었다.

▲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 중환자실에서 일하는 신수진 간호사가 지난달 27일 동료 간호사들과 함께 구내식당에서 먹은 점심 밥상. 쌀밥과 육개장, 김치와 감자채볶음, 미역볶음, 만두맛탕 네 조각 등이 담겨 있다. 신수진 간호사 제공


밥상보다 중요한 공백

끼니를 채우기도 버거운 응급실 간호사들이 정작 채우길 소망하는 것은 끼니가 아니다. 신수진은 환자들이 여전히 목말라하는 간호, 그 자체의 공백을 채울 수 있길 갈망했다. “여유가 있다면 환자들에게 정서적으로 지지해주고 응원해주고 싶어요. 중환자실에는 섬망 증상이 나타나는 환자들이 많아요. 24시간 불이 켜져 있으니까. 헛것이 보인다고 할 때 여기가 어디고 지금 어떤 상황인지 붙잡고 여러 차례 얘기만 해줄 수 있어도 좀 덜할 수 있을 텐데, 그럴 여유가 없어요. 환자 한 명에게만 붙어 있는 게 아니니까. 캐나다 같은 경우는 중환자실에서 간호사 1명이 환자 1명을 본대요. 좀 더 환자의 존엄과 자유를 지켜줄 수 있도록 간호사가 늘어날 필요가 있어요.”

김유정이 채우고자 하는 공백은 간호사라는 존재다. “간호사는 의료의 한 축을 담당하는 중요한 의료진이에요. 그런데 저희를 간호사라고 불러주는 환자나 보호자는 10명 중 1명도 안 되죠. ‘언니’, ‘어이’, ‘아가씨’, ‘저기요’, ‘야’라고 불리고, 반말은 당연합니다. 그런 상황을 마주하면 서운하고 자존감이 떨어져요. 우리는 환자 치료에 많은 기여를 하는 데, 마치 없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거죠.”

응급실 간호사들의 이 공백은 채워질 수 있을까. 김유정과 신수지는 오늘도 환자의 존엄을 지키고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밥과 동료와 쉴 틈이 비어있는 그곳에서, 한 명의 환자라도 잃지 않기 위해.


출처  컵밥 데우는 몇분조차, 응급실 생사 앞에선 한가로운 사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