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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되면 찾아오는 불청객 ‘세월호 혐오표현’, 누가·언제 퍼뜨렸나

때 되면 찾아오는 불청객 ‘세월호 혐오표현’, 누가·언제 퍼뜨렸나
[경향신문] 김원진 기자 | 입력 : 2020.04.11 11:19 | 수정 : 2020.04.11 13:10


▲ 전남 진도군 팽목항 방파제에 설치된 세월호 추모 조형물 뒤로 해가 지고 있다. / 서성일 기자

벚꽃이 흩날리면 마음이 먼저 주저앉는다. 어느덧 6년째다. 김광배씨(53)는 “해마다 벚꽃이 보이면 나무를 다 베어버리고 싶다”고 했다. ‘기념일 반응’으로 불리는 증상이다. 김씨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故 김건우 군의 아버지다. 그는 4월 16일이 다가오면 매번 우울감·불안을 겪는다.

경기 안산 단원고에는 4월이면 벚꽃이 늘 만개했다. 2014년 4월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우리 아이들이 2014년에 반별로 벚꽃나무 아래서 찍은 사진이 있는데, 사진이 자꾸 떠올라 벚꽃을 제대로 보기가 어렵다”고 했다. 올해는 벚꽃이 예년보다 14일이나 빨리 피었다. 보채듯 찾아온 봄기운은 불청객이었다.

벚꽃이 필 때마다 그의 속이 문드러지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김씨는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사무처장이다. 해마다 4월 16일 전후로 쏟아지는 ‘혐오’에 대처해야 한다. 유족들은 벚꽃과 함께 “지겹다”, “돈이 그렇게 좋으냐”는 등의 혐오표현을 마주한다. 그는 “올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김씨의 예상은 꼭 들어맞았다. 올해는 세월호 참사 6주기와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겹쳤다. 6주기를 앞두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세월호 참사를 ‘해상 교통사고’라고 빗댄 보수 유튜버가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차명진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후보자는 방송토론회에서 세월호 혐오발언을 했다.


이슈마다 등장한 혐오표현

<경향신문>이 단독 입수한 연구보고서 ‘재난 피해자 명예훼손 등 실태조사 및 개선방안’을 보면 주요 정치적 변곡점마다 세월호 혐오표현은 얼굴을 드러냈다. 이 보고서는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연구팀에게 용역을 맡겨 제작했다.

혐오표현이란 소수자를 향한 편견·차별을 확산하고 조장하는 행위나 소수자 속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멸시·모욕·위협을 하는 표현을 뜻한다. 연구팀은 세월호 혐오표현 33개를 추린 뒤 종합일간지 10개사, 방송 8개사, 인터넷 언론 7개사 기사를 검색했다. 기간은 2014년 4월 16일에서 2019년 6월 30일 사이였다. 혐오표현을 포함한 기사는 총 5,727건이었다. 긍정·중립·부정 보도를 모두 아우른 수치다. 혐오표현을 비판한 기사도 집계됐다는 의미다. 유족과 희생자를 겨냥한 혐오표현이 담긴 기사가 각각 3,030건과 1,448건으로 가장 많았다.

보고서는 “특정 시점마다 세월호 혐오표현이 특정 정치세력의 의해 나온다는 점에서 다른 혐오표현과 차이가 있다”고 했다. 보통 혐오표현은 오랜 억압의 전통 속에서 사회적 편견이 맞물려 표출된다.

▲ 세월호 ‘혐오포현’ 주요 키워드별 보도 추이

2014년 4월 22~23일과 2019년 4월 16~17일에 혐오표현을 포함한 기사가 급격히 늘어났다. 박근혜 정부 책임론이 거세게 불거진 세월호 참사 일주일 뒤와 세월호 참사 5주기인 시점이다. 2014년 4월 22~23일에는 ‘종북’·‘빨갱이’ 등 혐오표현을 담은 기사가 190건에 달했다. 2019년 4월 16~17일에는 ‘지겹다’는 혐오표현이 담긴 기사가 160건을 넘었다. 차명진 전 의원과 정진석 미래통합당 의원이 각각 “찜 쪄먹고 그것도 모자라 뼈까지 발라먹고 진짜 징하게 해 처먹는다”, “세월호 그만 좀 우려먹으라 하세요”라는 혐오발언을 한 시기였다.

세월호 혐오표현인 ‘교통사고’가 포함된 기사량이 늘어난 시기도 눈에 띈다. 연구팀은 교통사고를 ‘사건의 부인과 축소’ 혐오표현으로 규정했다. 교통사고가 포함된 세월호 기사는 2014년 7~8월(52건), 2018년 1월(16건)에 크게 늘어났다. 2014년 7~8월에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둘러싸고 갈등이 심화됐던 시기다. 2018년 1월에는 박근혜 정부의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조사 활동 방해 수사가 한참 진행 중이었다. 발화자(發話者)는 주로 안상수·이완구·주호영·홍문종 등 현 미래통합당 계열의 보수정당 의원이었다. 보고서는 “보수정당 의원들이 협상력 극대화를 위해 혐오표현을 이용했다”고 봤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비슷한 추세를 읽을 수 있다. 중앙대 사회학과 석사 졸업생 강태수씨와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가 지난해 쓴 논문 <세월호 ‘노란 리본’과-일베의 ‘폭식 투쟁’ 공감과 혐오의 전형과 그 비전형적 생활세계>는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 베스트(일베)’를 분석했다. 일베에서는 주요 정치적 국면마다 세월호 관련 게시글 빈도가 늘어났다. 일베는 세월호 혐오표현의 주요 확산지 중 하나다.

논문은 이전 달과 비교해 세월호 게시글이 많이 증가한 시점으로 2015년 4월과 2016년 4월, 2016년 12월을 꼽았다. 2015년 4월은 세월호 1주기였다. 2016년 4월은 20대 총선과 세월호 주기가 맞물린 시기였다. 2016년 12월은 박근혜의 ‘세월호 7시간’ 의혹이 불거진 시점이었다. 논문은 “일베 유저는 세월호 참사가 우파 진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슈가 발생한 시점에 세월호 참사에 관심을 보였다”고 했다.

▲ 세월호 참사 유족들이 지난 3월 23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6주기 추모의 달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세월호 참사 전면 재수사, 책임자 처벌 등을 촉구하고 있다. 기자회견에 앞서 유족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이익 챙긴 언론

혐오표현의 주된 전달자는 언론이었다. 언론은 혐오표현을 정제하지 않고 보도해 클릭수 장사를 하거나 정파적 입장을 강화했다. ‘어묵·오뎅’은 피해자를 증오하고 조롱하는 반인륜적 세월호 혐오표현이다. 연구팀이 재판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세월호 참사 당일부터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쓰인 혐오표현이다. 2015년 1월 27일 20대 남성이 일베에 관련 게시물을 올리며 논란이 커졌다.

세월호 혐오표현 중 가장 많은 수치인 903건이 보도됐다. MBN은 150차례나 보도했다. 게시물을 올린 피의자의 수사·재판 과정과 어머니의 사과가 보도되면서 혐오표현이 반복해 등장했다. “세월호 생존 학생 모욕 사진 논란, 어묵 들고 하는 말이… 충격”(MBN, 2015년 1월 27일), “단원고 일베 논란 ‘친구 먹었다’ 충격적 사진의 정체는?”(<서울신문> 2015년 1월 27일), “일베 어묵 피의자, 어머니 공개 사과… 왜?”(<서울신문> 2015년 8월 1일)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자극적인 제목은 조회수 증가와 수익 증대로 이어진다. 연구팀은 “기사 대부분이 황색 저널리즘 형태의 선정적인 제목을 달고 있었다. 기사가 지나치게 반복 노출돼 혐오표현 각인 효과를 부른 측면도 있다”고 했다.

언론이 정파적 이익을 대변하는 과정에서 혐오표현을 부추긴 사례도 나왔다. ‘대입특례’는 당초 중립적인 표현이었지만 언론의 보도태도로 인해 혐오표현이 된 사례다. 대입특례 이슈는 세월호 혐오표현 중 유일하게 방송보도가 신문보도보다 많았다. KBS(15건)와 SBS(14건) 보도량이 많았는데, 문제의 보도는 MBC에서 나왔다. MBC는 2015년 1월 6일 대입특례를 유족들이 요구한 것처럼 보도했다. 유족들은 ‘악의적 보도’라며 반발했다. 연구팀은 “가치중립적인 단어인 ‘대입특례’는 언론에 의해 확산되는 과정에서 단원고 학생들과 유가족들이 피해자가 되어버린 이례적 사례”라고 분석했다.

MBC는 연구팀이 추린 33개 세월호 혐오표현을 39건의 보도에서 다뤘다. 이중 37건(94.9%)을 단순 인용 보도했다. 혐오표현을 비판적 분석 없이 단순 인용 보도하면 혐오표현을 조장하는 결과를 낳는다. MBC는 세월호 피해자를 부정적 보도 태도로 다루기도 했다. MBC(44건)는 <조선일보>(147건), TV조선(111건) 다음으로 부정적 보도 건수가 많았다.

▲ 수원 4·16연대와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가 지난 4월 8일 오전 경기도 수원역 문화광장에서 ‘4·16 표지석’ 설치식을 하고 있다. / 수원 4·16연대 제공.


“혐오표현 세부 규제해야”

보고서에는 검·경이 수사한 세월호 혐오표현 사건 210건을 추려 분석한 결과도 담겼다. 수사 중인 사건과 기소돼 재판에 넘겨진 사건 모두 포함됐다. 혐오표현 발화자는 정치인이나 언론인이 아닌 일반 시민이다.

발화자를 보면 10대(47명)와 20대(64명)가 각각 22.3%와 30.4%로 가장 많았다. 세월호 혐오표현이 상당수 온라인 공간에서 나왔기 때문으로 보인다. 혐오표현 피해 대상은 주로 유가족(159건·75.7%)과 참사 희생자(48건·22.9%)였다. 반인륜적인 증오 표현(65건·31%), 모욕(60·28.6%)이 많았다. 연구팀은 “혐오 강도가 낮으면 불기소나 기소유예가 돼 재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심각한 혐오표현이 담긴 사례만 남았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보고서는 세월호 혐오표현의 확산에는 ‘정치적 동기’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고 결론지었다. 온라인에서 무차별적으로 확산되는 혐오표현보다 정치적 동기에서 나오는 세월호 혐오표현이 근본적인 문제라는 취지다.

연구팀은 “참사 당일부터 세월호 혐오표현은 온라인 공간에서 극단적인 반인륜인 증오표현의 형태로 발화됐다. 억압되고 소외된 청소년층이 혐오표현의 주요 발화자로 가세했고, 세월호 혐오표현의 발생 원인이 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세월호 혐오표현의 생성·확산은 정치적 원인이 크다. 보수세력은 세월호 참사를 정쟁의 대상, 정치적 사건으로 규정하면서 혐오표현을 의도적·조직적으로 생성·확산했다”고 봤다.

연구팀은 언론에 구체적인 혐오표현 보도준칙을 제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사회적 재난 및 혐오표현에 대한 보도지침 합의’로 개별 언론사의 자체 보도준칙도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정부 차원의 혐오표현 규제는 세분화해 추진할 것을 제안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혐오표현은 국가가 나서서 단호하게 규제해야 하는데, 지금은 뚜렷한 움직임이 없다”며 “규제 방식을 다양하게 하면서 혐오표현의 수준별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와 관련해 “일정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서 자율 규제를 유도하는 방식, 행정지도를 하는 방식, 구체적 양형기준으로 제한하는 방식, 기소나 구속 기준에 혐오표현을 넣는 방식 등 층층이 단계적으로 치밀하게 구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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