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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차명진 막말에 후원금 쏟아낸 그들은 누구인가?

차명진 막말에 후원금 쏟아낸 그들은 누구인가?
[민중의소리] 이완배 기자 | 발행 : 2020-04-13 17:55:52 | 수정 : 2020-04-13 17:55:52


미친통곡당이 13일 세월호 유족들에 대해 입에 담기도 민망한 막말을 쏟아낸 차명진 후보를 뒤늦게 제명했다. 하지만 이 제명마저 미적거리는 바람에 파문은 조금도 가라앉지 않는 모습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특이한 현상이 한 가지 발견됐다. 막말꾼 차 후보에게 후원금이 쏟아졌다는 거다. 차 후보에 따르면 막말 파문이 벌어진 이후 전국에서 후원금이 쇄도해 한도가 다 찼단다.

이러면 이제 궁금해진다. 도대체 어떤 정신 나간 사람들이 굳이 소중한 자기 돈을 쓰면서까지 세월호 유족들을 모독한단 말인가? 원래 나쁜 짓이란 자기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들은 자기를 희생해서 착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를 희생(!)하면서까지 나쁜 짓을 하는 셈이다. 이른바 ‘헌신적(?)인 돌아이’들인 셈인데, 이런 자들의 심리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반(反)사회적 처벌

행동경제학에는 ‘이타적 처벌(Altruistic punishment)’이라는 개념이 있다. 주류경제학은 인간을 자기만 아는 이기적 존재라고 규정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이타적 처벌 이론과 실험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이 굳이 자기 돈과 시간을 쓰면서 나쁜 놈들을 응징한다. 인간은 주류경제학의 주장과 달리 정의와 도덕을 아는 존재라는 뜻이다. 우리가 굳이 내 돈과 내 시간을 들여 그 추운 겨울 촛불을 들고 박근혜 퇴진을 외쳤던 이유도 마찬가지다.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부도덕한 대통령을 응징해야 한다는 정의감 때문이었다.

그런데 행동경제학에서는 이와 정반대로 반사회적 처벌(antisocial punishment)이라는 개념도 있다고 설명한다. 행동경제학자 베네딕트 헤르만(Benedikt Herrmann) 노팅엄 대학교 교수가 전 세계 16개 도시에서 이타적 처벌 실험을 한 적이 있었다. 어느 도시 시민들이 자기를 희생하면서까지 나쁜 놈들을 응징하는 정의로운 시민인지를 측정해본 것이다.

그런데 이 실험에서 정의로운 시민 외에, 굳이 자기 돈을 내면서까지 착한 사람을 처벌하는 희한한 돌아이들이 대거 발견됐다. 비유하자면 이들은 굳이 내 돈 들여가면서 테레사 수녀님한테 해코지를 하는 셈이다. 헤르만 교수는 ‘혹시 참가들이 실험 내용을 오해한 것이 아닌가?’ 싶어 다시 참가자들에게 자세히 실험 내용을 설명했지만, 반복된 실험에서 이런 헌신적 돌아이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 인간말종 차명진 후보. ⓒ뉴시스

이 실험에서 특히 주목할 점이 있다. 정의로운 이타주의자건 헌신적 돌아이건 16개 도시에서 나타나는 분포가 모두 다르다는 점이다. 각 나라와 도시의 문화에 따라 정의로운 이타주의자들이 많은 도시도 있고, 헌신적 돌아이들이 많은 도시도 있다.

헤르만 교수가 연구 대상으로 삼은 16개 도시 중 서울도 포함돼 있었다. 그렇다면 서울은 정의로운 이타주의자가 많은 도시였을까? 아니면 헌신적인 돌아이들이 많은 도시였을까?

놀랍게도 서울은 두 부류가 모두 많이 존재하는 도시로 나타났다. 정의로운 이타주의자 순위의 경우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과 덴마크 코펜하겐이 압도적 성적으로 1, 2위를 차지했다. 그 뒤로 영국 노팅엄, 터키 이스탄불, 스위스 취리히, 미국 보스턴, 그리고 대한민국의 서울이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곰곰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대한민국 민중들은 불의를 보면 참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의 역사는 저항과 투쟁의 역사였다. 자기 돈과 시간, 혹은 목숨까지 바치며 불의에 맞선 우리의 역사는 이런 정의로운 이타주의자들이 이끌었다.

그런데 자기 돈 써가면서까지 테레사 수녀님을 해코지하는 헌신적 돌아이 분야에서도 서울은 7위로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말이 7위이지 6위인 이스탄불(터키)이나 5위인 민스크(벨라루스), 4위인 사마라(러시아)와 거의 점수 차이가 없는 박빙의 7위였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것도 이해가 된다. 대한민국에는 이런 비정상적인 돌아이들이 한 무더기가 산다. 단식을 하는 세월호 유족 천막 앞을 찾아가 굳이 수고스럽게 자기 시간과 돈을 들여 그 앞에서 피자와 치킨을 처먹는 자들, 이 미친 짓을 하는 헌신적인 돌아이들이 꽤 많다는 이야기다.


이상한 공존의 이유는?

정의로운 시민이 많은 도시에는 돌아이들이 없고, 돌아이들이 많은 도시에는 정의로운 이타주의가 부족한 게 정상이다. 16개 도시 대부분이 하나의 뚜렷한 성향을 갖는다. 그런데 서울은 정의로운 이타주의자와 헌신적 돌아이 두 분야에서 모두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이런 이상한 도시는 서울이 유일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헤르만 교수는 헌신적 돌아이들이 많은 도시에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고 분석한다. 세계 100개 나라의 문화적 가치를 조사하는 세계가치조사(world value survey)가 각 나라의 준법정신이나 시민규범 준수 정도를 측정할 때가 있다.

그런데 헌신적 돌아이들이 많은 도시 대부분이 준법정신과 시민규범 준수 분야에서도 하위권에 처졌다. 즉 ‘법을 잘 지키고, 시민들 사이에 합의된 규범을 잘 지키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생각하는 나라에서는 이런 돌아이들이 별로 없다. 반면 ‘법? 그걸 왜 지켜? 시민 합의? 그건 뭐에다 쓰는 건데?’라며 무시하는 나라에서는 이런 돌아이들이 창궐한다.

우리는 그런 나라다. 민중들은 정의감이 넘쳐 불의를 보면 참지 않는다. 그런데 준법정신이나 시민 합의? 이 나라의 기득권들이 이걸 다 망쳐놓았다. 생각해보라. 한국 사회는 60억 원을 9조 원으로 불리는 초대형 사기극의 주인공 이재용을 아직도 구속하지 못했다.

수많은 재벌 총수들이 온갖 범죄를 저지르고도 법망을 피해간다. 대한항공 조 씨 일가는 사람을 패고, 얼굴에 물컵을 던지고, 괴성을 질러도 여전히 경영권을 보호받는다. 이런 나라에서 법을 준수하고 시민합의를 지키고 싶은 생각이 들 턱이 없다. 그리고 이런 자들을 철저히 옹호하는 세력이 제1야당이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활개를 친다.

연구에서 드러났듯 우리 민중들은 도덕적이고 정의롭다. 하지만 이 나라에는 세월호 유족들을 모독한 차명진에게 굳이 자기의 돈을 기부(?)하면서까지 돌아이 짓을 하는 자들도 공존한다.

이들을 제거해야 이 사회가 보다 도덕적이고 효율적으로 돌아간다. 이들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법과 시민 합의를 무시해온 재벌과 기득권 세력을 응징해야 한다. 모든 선거가 중요하지만 이번 총선도 그래서 중요하다. 이런 자들과 한 편 먹은 정당을 이번 선거에서 반드시 심판해야 할 책무가 우리에게 있다.


출처  차명진 막말에 후원금 쏟아낸 그들은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