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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첫 희생자’ 이세종 열사 표지석 안내판 세운다

‘5·18 첫 희생자’ 이세종 열사 표지석 안내판 세운다
전북대, 5·18 첫 희생자 이세종 열사 표지석 안내판 설치
2003년 숨진 현장에 표지석 땅에 새겼으나 눈에 안 띄어
김남규 시의원 “이 열사 추모사업에 전향적 자세 가져야”

[한겨레] 박임근 기자 | 등록 : 2020-05-18 13:54 | 수정 : 2020-05-19 02:48


▲ 지난 17일 전북대 민주광장에서 ‘제40주년 5·18민중항쟁 전북기념식 및 이세종 열사 추모식’이 열렸다. ‘5·18민중항쟁 구속부상자동지회’ 전북지부 제공

“다시 살아 하늘을 보고 싶다...이곳은 1980년 5월18일 새벽 민주주의의 숭고한 열망을 품다 계엄군에 쫓겨 사망한 이세종 열사가 발견된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전북대학교가 “이달 안에 제1학생회관 앞 땅바닥에 있는 이세종(당시 20·농학과 2년 재학) 열사 추모 표지석을 소개하는 안내판을 설치할 예정”이라고 18일 밝혔다.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자리인데도 밟고 지나가는 학생들이 잘 몰라서 안내판을 추진했다고 학교는 설명했다. 안내판 크기는 가로 50㎝, 세로 30㎝, 높이 110㎝이다.

표지석은 열사가 추락한 학생회관 앞 바로 그 자리에 2003년에 세워졌다. 표지석엔 “우리 모두의 발걸음으로 다져져 열사의 뜻이 간직되길 소망합니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하지만 땅과 수평인 표지석은 안내판이 없어 행인의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이 열사는 1980년 5월17일 전북대 학생회관에서 ‘비상계엄 철폐 및 전두환 퇴진’을 교구하며 농성하던 중, 18일 0시부터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하면서 계엄군이 교내로 진입하자 학생회관 옥상으로 달아났다. 그 뒤 18일 새벽 6시께 학생회관 옆에서 온몸이 피투성이로 숨진 채 발견됐다.

▲ 17일 이세종 열사 추모 표지석 주변에 동판으로 만들어진 이 열사 얼굴 등이 놓여 있다. ‘5·18민중항쟁 구속부상자동지회’ 전북지부 제공

당시 경찰은 그의 죽음을 단순 추락사로 발표했다. 그의 주검을 검안했던 이동근 전북대병원 교수는 훗날 “두개골 골절과 간장 파열 등은 추락이라는 한 가지 원인에 의해 동시에 발생할 수 없다”며 계엄군에 의한 집단폭행 의혹을 제기했다. 이민규 순천향대 교수는 2002년 학술세미나에서 “5·18 최초의 희생자는 이세종”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전북지역 민주화 인사와 전북대 선후배 등은 1983년 전북대 학생회관 앞에서 첫 추모제를 지내고, 학생회관 맞은 편에 1985년 추모비를 세웠다. 이 열사는 고향인 전북 김제에 묻혔다가 1998년 5·18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받아 이듬해인 1999년 국립 5·18민주묘지에 안장됐다. 대학 쪽은 1995년 2월 명예졸업장을 수여했다. 전라고를 졸업한 이 열사의 추모비는 2002년 총동창회 주관으로 전주시 덕진구 송천동 모교 교정에도 세워졌다.

▲ 이세종 열사 표지석 안내판 견본(왼쪽)과 새겨질 문구(오른쪽). 전북대 제공

‘제40주년 5·18민중항쟁 전북기념식 및 이세종 열사 추모식’이 지난 17일 전북대 민주광장에서 ‘기억하라 오월정신! 꽃피어라 대동세상’을 주제로 열렸다. 이 열사의 대학선배로 40년 전 그날 밤 학생회관에 있었던 ‘5·18민중항쟁 구속부상자동지회’ 전북지부 전 회장 김남규 전주시의원은 “5·18은 비단 광주·전남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북과 전주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민중항쟁”이라고 말했다.


출처  '5·18 첫 희생자' 이세종 열사 표지석 안내판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