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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탑 아래에도 수많은 ‘김용희’가 있습니다

철탑 아래에도 수많은 ‘김용희’가 있습니다
고공농성은 355일 만에 끝났지만…끝나지 않은 문제들
[경향신문] 김희진 기자 | 입력 : 2020.05.31 21:13 | 수정 : 2020.05.31 22:37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씨(61)가 지난 29일 강남역 폐쇄회로(CC)TV 철탑 위에서 지상으로 내려왔다. 355일간의 고공농성 끝에 삼성과 합의문을 작성했지만, 김씨와 연대해 싸웠던 다른 해고노동자와 피해자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개별적 피해에만 초점을 맞춘 삼성의 해법으로 노조 활동 피해자들의 싸움이 종료되지 않을 것임을 의미한다.

강남역 사거리에는 김씨 말고도 삼성 해고노동자가 있었다. 삼성중공업에서 노조 활동을 하다 1997년 해고된 이재용씨(61·사진)다.

동갑인 두 사람은 각자 삼성을 상대로 투쟁을 해오다 2018년 만나 함께 싸웠다. ‘철탑 위 김용희’가 있었다면 ‘철탑 아래 이재용’이 있었다. 지난해 6월 김씨가 철탑에 오른 뒤 이씨는 맞은편 강남역 8번 출구 앞 천막을 지켰다.

이씨는 김씨가 철탑에 올라간다고 결정했을 때 위험하다는 이유로 반대하다 첫 단식 소식에 농성장으로 와 곁을 지켰다. 여름엔 물과 소금을, 겨울엔 핫팩을 두 끼 식사와 함께 김씨에게 올려 보냈다. 지난 4월 건강이 악화돼 강남역 천막을 떠나기 전까지 전화 통화로 김씨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곤 했다.

삼성과의 초반 협상 과정에서는 김씨와 이씨 문제가 함께 다뤄졌다. 하지만 29일 도출된 ‘삼성과의 김용희 삼성해고노동자 고공농성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와 삼성의 합의에는 이씨 문제는 포함되지 않았다.


‘인도적 차원’ 강조한 삼성, 해고 문제 전반엔 언급 없어
암보험·철거민·산재피해 등 남은 문제 해결에는 소극적

이씨는 31일 통화에서 “삼성은 해고노동자에 대한 사과나 명예복직에 초점을 맞춘 해결에 나섰다기보다, 김용희씨가 철탑에서 내려오게끔 하기 위한 보상을 한 것에 가깝다”고 말했다.

김씨 문제가 해결된 것은 다행이지만, 삼성이 해고노동자 문제 자체에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고 앞으로의 노조 활동 등 노동권을 보장했다고 볼 수 없다는 의미다.

이씨는 “(나에게는) 사과나 명예복직 내용이 빠진 채 보상만 담긴, 수용할 수 없는 합의안이 제시됐다”며 “삼성으로부터 진정 어린 사과를 받을 때까지 싸울 것”이라고 했다.

삼성은 김씨가 철탑에서 내려온 29일 입장문을 통해 ‘인도적 차원’에서 대화를 했다고 밝혔다.

삼성은 “김용희씨에게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지 못한 데 대해 사과의 뜻을 밝히고 김씨 가족에게도 위로의 말씀을 전했다”며 “시민의 생명과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해 인도적 차원에서 대화를 지속했다”고 밝혔다. 이씨를 비롯한 삼성 해고노동자 문제 전반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김씨와 함께 싸워온 ‘삼성피해자공동투쟁’(공동투쟁) 문제도 풀리지 않았다. 공동투쟁은 공대위와 더불어 ‘과천 철거민 대책위원회’(과천 대책위), ‘보험사에 대응하는 암환우 모임’(보암모) 등으로 이뤄졌다. 과천 대책위는 삼성물산의 재개발 추진에 따른 강제철거 피해를, 보암모는 삼성생명의 암 입원비 미지급 피해를 호소하며 김씨와 함께 시위를 이어왔다.

김씨는 철탑에서 내려온 뒤 “삼성생명 암보험 피해자들, 과천 철거민 등 남은 문제에 삼성이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했다.

하성애 공동투쟁 대표는 “이재용씨 문제도 공대위 차원에서 함께 풀려고 노력했다”며 “김씨에 대한 합의 자체도 힘든 과정을 거쳐 이뤄졌지만 삼성의 문제 해결은 미진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상황이 위태로웠던 김씨뿐만 아니라 다른 해고노동자, 삼성 피해자 등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남아 있다”고 했다.

이재용(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6일 대국민 사과에서 “노조 문제로 상처 입은 모든 분들에게 사과드린다”며 무노조 경영을 종식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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