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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코로나19, ‘영웅’들에게만 맡길 수는 없다

코로나19, ‘영웅’들에게만 맡길 수는 없다
감염병 위협에 맞서 공공의료 확충이 필요한 때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약 5개월 간 계속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언제든 대유행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하는 한편 한국의 방역이 상당히 성공적인 편이라고 평가합니다.

국제사회에서도 한국의 방역 시스템을 배워야 한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10일 취임 3주년 연설을 통해 “‘K-방역’이 세계의 표준이 되었다” 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K-방역’의 성공, 하지만 의료진들은?

전문가들은 이른바 ‘K-방역’의 성공과 다르게 의료 시스템에는 문제가 많다고 말합니다. 먼저 지금같은 감염병 유행 상황에서는 의료진, 특히 간호사의 숙련도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간호사가 얼마나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고 얼마나 성실하게 환자를 돌보는지가 환자의 생사를 가른다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나라 간호사들의 평균 근속년수는 8년 이하로, 10년차 이상의 숙련된 인력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합니다. 신입 간호사 중 절반 가까이가 채 1년을 버티지 못하고 병원을 떠난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왜 우리나라의 간호사들은 일찍 일터를 떠나는걸까요? 전문가들은 병상 수에 비해 간호사 수가 지나치게 적은 구조를 원인으로 지적합니다.

우리나라 간호사들의 노동조건

간호사 수 : 인구 천 명당 3.5명으로 OECD 평균(7.2명)의 절반 정도

병상 수 : 인구 천 명당 12.3개로 OECD 평균(4.7개)보다 2.6배 많음

일할 사람은 부족한데 돌봐야 될 사람은 많으니 노동강도가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간호사들이 이런 노동환경에 지쳐서 일터를 떠나곤 합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 때도 숙련된 간호 인력이 부족한 탓에 갓 임관한 간호장교들이 현장에 투입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으로 향하는 그들에게 ‘영웅’이라는 찬사가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사실 대규모 감염 위험이 있는 현장에 숙련되지 않은 인력을 투입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 전문가들은 구조적인 문제를 간과하고 의료진의 영웅성과 헌신만 강조하는 태도는 오히려 위험하다고 지적합니다.


월급도 못 줄 위기에 처한 공공병원들

전문가들은 공공병원에 대한 지원이 부족한 것도 문제라고 말합니다. 공공병원은 감염병 유행 등 국가적 재난사태가 발생했을 때 가장 앞서서 대처하는 의료기관입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됐을 때도 공공병원은 가장 먼저 병상을 비우고 확진 환자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공공병원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충분치 않습니다. 부산의료원의 경우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약 56억 원의 손실이 발생했지만 정부의 손실보상금은 35억 원에 불과했습니다. 일부 지방의료원은 지원금이 부족해 직원들의 월급까지 못 줄 위기라고 합니다.

공공병원 비율이 계속해서 줄어드는 것도 문제입니다. 약 10년 간 우리나라의 공공병원의 비율은 꾸준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가장 공공병원 비율이 낮은 나라인 일본과 미국이 24~27% 수준인데, 우리나라의 공공병원 비율은 10%에 불과합니다. (2018년 기준)

꾸준히 감소하는 공공병원 비율

2012년 : 11.2%

2015년 : 10.4%

2018년 : 10.0%


‘소 잃고 외양간 못 고친’ 메르스 사태의 교훈

5년 전 메르스가 유행했을 때도 많은 사람들이 공공의료 확충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당시 정부도 공공의료 기반을 확충하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지난 5년간 공공병원 비율은 오히려 더 축소됐습니다. 이런 상황을 두고 ‘소 잃고 외양간 못 고쳤다’ 라는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언제든지 다시 대유행할 수 있으며, 새로운 감염병의 위협 역시 무시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감염병에 맞서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공공의료 확충이 필요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