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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산

“‘반일종족주의’ 이영훈, 스무살 때 어땠을 것 같나?” “‘반일종족주의’ 이영훈, 스무살 때 어땠을 것 같나?”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친일파에 역청산 당한 역사, 김원봉 정신이 필요하다” [오마이뉴스] 글: 김종훈, 사진: 권우성 | 19.09.17 13:39 | 최종 업데이트 : 19.09.17 15:23 “이영훈이 스무 살 때 어땠을 것 같나? 전태일 열사가 분신했을 때 가장 먼저 달려간 서울대생 중 한 명이 바로 저자인 이영훈이었다.” 역사학자로 평생을 살아온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가 여름 서점가를 휩쓴 이영훈 전 교수의 책 를 언급하며 강조한 말이다. 한 교수는 “故 신영복 교수님 말씀인 ‘처음처럼’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인물이 바로 이영훈”이라면서 “사람이 살면서 바뀔 수 있지만, 그럼에도 최소한 스무 살 때의 자신에.. 더보기
“약산 빼놓고 한국독립운동사 쓸 수 없다…예외로 서훈하는 게 옳다” “약산 빼놓고 한국독립운동사 쓸 수 없다…예외로 서훈하는 게 옳다” [특별 인터뷰] 한국현대사 원로 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 [한겨레] 강성만 선임기자 | 등록 : 2019-06-16 19:32 | 수정 : 2019-06-17 16:49 “약산 김원봉은 한국의 레지스탕스(2차 대전 중 프랑스의 저항 운동)를 이끈 분이다. 약산을 빼고 한국 독립운동사를 쓸 수 있느냐는 말을 할 수 있을 만큼 혁혁한 독립운동 업적을 남겼다. 북한 정권에 참여했다고 해도 그만은 예외로 독립유공자로 서훈하는 게 옳다고 본다.”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 연구실에서 만난 서중석 성균관대 사학과 명예교수의 말이다. 그는 한국 사학계의 대표적인 현대사 전공 학자다. 해방 뒤 현대사를 파고들어 여러 저술을 냈고 1910년대 독립.. 더보기
의열단 ‘의백’ 김원봉은 뼛속까지 민족주의자였다 의열단 ‘의백’ 김원봉은 뼛속까지 민족주의자였다 [경향신문] 이기환 선임 기자 | 입력 : 2019.05.03 09:23 | 수정 : 2019.05.03 21:47 “내가 왜놈 등쌀에 언제 죽을지 몰라.” 약산 김원봉(1898~1958)과 친일경찰 노덕술(1899~1968)의 악연과 관련된 이야기는 전설처럼 전해진다. 물론 1차 사료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의열단 동지인 유석현(1900~1987)과 임시정부에서 활약한 정정화 선생(1900~1991)의 회고담, 독립운동가 송남헌(1914~2001)의 , 그리고 이런 자료들을 재구성한 과 각종 논문 등을 종합해보자. 1947년 3월 22일 서울 청계천 은신처에서 변소에 앉아있던 약산 김원봉(1898~1958) 선생이 체포됐다. 김원봉 선생이 누구인가. 일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