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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

광주 아픔 취재해온 기자가 ‘5·18 40돌 5개 이야기’를 기획한 이유 광주 아픔 취재해온 기자가 ‘5·18 40돌 5개 이야기’를 기획한 이유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한겨레] 광주/정대하 전국부 선임기자 | 등록 : 2020-05-15 20:03 | 수정 : 2020-05-16 06:11 망월동 가는 길엔 이팝나무들이 서 있습니다. 쌀밥처럼 흰 이팝나무 꽃들이 때론 눈물처럼 보입니다. 광주에서 취재하는 저에게 5·18 기삿거리를 찾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사실 1997년 4월 12·12 및 5·18 대법원 판결 이후 5·18은 그리 큰 뉴스거리가 아니었습니다. 해마다 5월 18일 당일 화제성 상자 한두 꼭지를 보내면 됐습니다. 5·18 뉴스를 키운 사람이 바로 전두환씨입니다. 2016년 4월 자서전 발간을 앞두고 “나는 광주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던 전씨 발언 .. 더보기
“잔혹하게 찔린 주검 자꾸 떠올라 그때 수습 못해준 게 평생 걸려” “잔혹하게 찔린 주검 자꾸 떠올라 그때 수습 못해준 게 평생 걸려” [5·18 40돌 기획] 다섯개의 이야기-④참회 80년 5월 계엄군으로 광주 출동 정현수씨 총도 쏘지 않고 누구 하나 때리지 않았지만 처참한 주검 목격하고 평생 죄책감 시달려 [한겨레] 안관옥 기자 | 등록 : 2020-05-13 05:01 | 수정 : 2020-05-13 07:10 “차라리 탈영했더라면…. 인생이 송두리째 망가지지는 않았을 거예요.” 1980년 5월 27일, 전남도청 진압작전에 동원된 계엄군 2만여 명 가운데는 20사단 60연대 91대대 운전병이었던 육군 일병 정현수(62)씨도 포함돼 있었다. 스물두 살이던 그는 계엄령 발동 뒤 경희대에 주둔하다,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 직후 광주로 이동했다. “성남비행장에서 난생처음 수.. 더보기
“명령 따라 5·18 투입된 보통 군인도 역사 속 피해자” “명령 따라 5·18 투입된 보통 군인도 역사 속 피해자” [5·18 40돌 기획] 다섯개의 이야기-④참회 “살인·성폭행 등 가해유형 조사 처벌하되” “명령에 따른 군인 트라우마 치유책 필요” [한겨레] 정대하 기자 | 등록 : 2020-05-13 04:59 | 수정 : 2020-05-13 07:10 전남 나주 출신 하태영(1958년생) 하사는 1980년 5월 11공수 특전여단 통신병으로 광주에 왔다. 5·18 학살 참상을 목격한 뒤 31사단 보충역으로 전속됐다가 전역한 그는 주변에 “난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고 말하는 등 ‘광주 트라우마’를 겪었고, 1988년 입원 중이던 국립나주병원에서 숨졌다. “5·18이 끝나고 건강이 안 좋아져 제대 말 휴가를 나왔는데, 밥 먹으면서도 막 웃고 계속 전파가 들린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