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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기타

‘단군의 후예’가 단군성전을 이 따위로...

‘단군의 후예’가 단군성전을 이 따위로...
흉물이 되어버린, 전북 고창 모양성로 단군성전을 가다
하주성 (tradition) | 11.10.25 14:46 | 최종 업데이트 11.10.25 15:49


석비 고창군 고창읍에 자리한 단군성전의 계단 입구에 놓여진 석비 ⓒ 하주성

한옥의 맞배지붕 양편에는 지붕 용마루 끝에서 벽을 따라 내려오는 구조물이 있다. ‘풍판’이라고 하는 이 구조물은 바람을 막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비바람에 건물의 벽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풍판은 대개 목재로 마련하고 칠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북 고창군 고창읍 모양성로 88번지. 이곳에는 단군성전이 자리하고 있다. 단군성전은 전국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건물이기도 하다. 지난 23일 고창군에 일이 있어 갔다가 길가에 있는 한옥을 보고 올라갔는데, 계단 입구에 단군성전이라는 석비가 보인다. 비지정 문화재인 이 건물은 계단 위에 솟을삼문이 있고 그 안에 성전이 자리하고 있다.

솟을문 솟을삼문은 계단 위에 자리한다. 문의 중앙에는 홍익문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 하주성

단군성전 문이 잠겨 있어 담 밖에서 촬영한 단군성전. ⓒ 하주성

단군성전이 자리하고 있는 이곳은 비탈진 곳에 계단을 놓고, 그 위에 터를 마련했다. 길가에 있어 사람들이 찾기에 편할 듯하다. 맞은편에는 고창여고인가 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계단을 올라보니 문이 굳게 잠겨 있다.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을 때는 담장 밖을 몇 바퀴 돌아야 한다.

그렇게라도 답사를 하는 것이 이제는 버릇처럼 되어 버린 지 오래다. 뒤편으로 돌아가면서 사진을 찍다가 보니, 뒤 담장에 붙은 밭에서 노부부가 고구마 수확을 하고 있다. 어르신께 말씀을 드렸더니, 일 년에 한 번 개천절에 사람들이 모여 제를 올린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이분이 열쇠를 갖고 있었는데, 이제는 직접 관리를 하는지 열쇠를 안 맡긴다는 것.

모양성로 새로운 번지인 모양성로 88번지 주소판. ⓒ 하주성

고구마를 캐는 노부부 단군성전의 열쇠를 갖고 있었다는 어르신. 고구마밭에서 고구마를 수확하고 계셨다. ⓒ 하주성


벗겨진 칠 속에 나타난 것은

“요 아래쪽에 낮은 담이 있어. 그리로 넘어가.”

문이 잠겨 있더라고 말씀을 드리니, 어르신이 하시는 말씀이다. 딴 곳 같으면 담치기라도 하겠지만, 명색이 단군성전인데 어찌 담을 넘으랴. 이런저런 말씀을 듣고 나서, 다시 한 바퀴 돌아본다.

그런데 돌아보다가 보니 풍판이 영 이상하다. 칠이 벗겨진 것도 목재와는 다르다. 뒤편으로 돌아 칠이 벗겨진 곳을 바라보니 아무래도 양철인 듯하다. 앞으로 내려와 솟을문을 보았다. 벗겨진 칠 안으로 찍혀 있는 글씨가 철판에 찍는 글씨다. 풍판을 양철로 해놓았다. 비바람에 오래 견디어내도록 그리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명색이 단군성전인데, 그 건물의 풍판을 양철 조각으로 해 놓았다니.

측면 단군성전의 측면, 풍판의 칠이 벗겨져 흉하다. ⓒ 하주성

뒤편 뒤편에서 바라본 단군성전, 정면 세 칸에 측면 두 칸인 맞배지붕이다. 풍판이 보기 흉하다. ⓒ 하주성

풍판 솟을삼문의 풍판은 손이 닿는다. 벗겨진 칠 사이로 양철에 찍은 글씨가 보인다. 풍판을 양철로 만들었다. ⓒ 하주성

그래도 이 나라의 정신적인 지주인 단군이다. 그리고 우리는 늘 단군의 후손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런 단군을 모신 사당의 건물, 양철로 마련한 풍판은 칠까지 벗겨져 흉물이 되었다. 문이 잠겨 있는 것이야 어쩔 수가 없다고 하지만, 양철 풍판을 보고는 울화가 치민다. 비지정 문화재라고 해서 이렇게 대우를 하는 것일까?

지정, 비지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단군의 제를 모시는 곳을 이런 식으로 홀대를 했다는 것이 화가 나는 것이다. 아무리 의식이 없어도 그렇지, 어찌 풍판을 양철로 댈 생각들을 한 것인지. 큰돈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제발 제대로 된 풍판 하나 마련해주길 원한다. 앞쪽 학교의 학생들이 이런 몰골을 보았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 것인지. 낯이 뜨거워 오래 지체할 수가 없다.


출처  ‘단군의 후예’가 단군성전을 이 따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