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에 이럴수가/WTO·FTA·TPP

정부 ‘FTA 협정문 번역오류’는 습관성?

정부 ‘FTA 협정문 번역오류’는 습관성?
한-EU 이어 아세안·인도 문건도 오탈자
정부 “영문본 우선…문제없다” 황당해명

한겨레




» 각종 협정 비준동의안 번역 오류 사례


지난해 10월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에 번역 오류가 확인돼 비준 동의안을 철회한 가운데 정부가 국회에 낸 다른 통상 조약에도 심각한 번역 오류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나라에서 대외 조약은 국회 비준 동의를 거치면 곧바로 법률로서 효력이 발생해, 조약문의 번역 오류는 법 집행 과정에 심각한 혼선을 초래한다.

박주선 민주당 의원은 1일 “이미 발효된 한-아세안(ASEAN) 자유무역협정과 한-인도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EPA)의 국회 비준 동의안과 검토보고서를 살펴보니 심각한 번역 오류가 여러 곳에서 나타났다”며 “국제조약의 한글본을 대충 작성하는 게 정부의 관행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2007년 2월 국회 외교통상위원회에서 작성한 한-아세안 자유무역협정 비준 동의안 검토보고서를 보면 “협정의 한글본에 오탈자와 잘못 번역되거나 부적절하게 번역된 부분이 많아 영문본을 보지 않고서는 그 내용을 명확히 파악하기 어렵다”고 돼 있다. 예컨대 상품협정안 부속서3(원산지 규정)의 제10조 제1항 나목에는 ‘통일상품 등에 규정되어 있지 아니한 상품에 대해서는, (중략) 비원산지 재료의 가격이 그 상품의 총중량의 10퍼센트를 초과하지 아니할 것’이라 적혀 있는데, 이는 ‘규정되어 있지 아니한’의 경우 ‘규정된’, ‘재료의 가격’은 ‘재료의 중량’의 번역 오류라는 것이다. 외교통상부는 또 총수입액의 25%를 ‘총수입액의 10%’로, 식물위생을 ‘식물위행’으로, 말레이시아를 ‘말레이사아’로, 당사국을 ‘당상국’으로 잘못 표기해 국회에 제출했다.

이런 오류는 2009년 8월 정부가 체결하고 지난해 1월 정식 발효된 한-인도 경제동반자협정에서도 확인됐다. 2009년 9월 국회 외통위에서 작성한 한-인도 협정 비준 동의안 검토보고서를 보면 “이행요건은 투자 및 경영활동에 직결되는 실질적인 사항이라 협정문의 국문 번역 과정에서 세심한 주의와 철저한 검토가 이뤄져야 하는데 제10.5조 제1항에서 국문 번역상 오류가 발견된다”고 지적돼 있다. 협정문 영문본은 “협정에 합치하는 방식으로”라고 적혀 있는데, 한글본은 “협정에 불합치하는 방식으로”라고 뒤바뀌어 쓰여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당시 외교부는 “한글본과 영문본이 충돌하면 영문본이 우선하기 때문에 법적 해석에는 문제가 없다”고 해명해, 우리 국회는 물론 영어 해독 능력이 없는 국민은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한편 번역 오류가 있는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 협정문을 철회한 외교부는 지난 28일 국무회의에 오류를 고친 비준 동의안을 상정해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남경필 국회 외통위원장은 오는 3일 비준 동의안을 상임위에 상정하겠다고 밝혔지만 난항이 예상된다. 박 의원은 “국회법(제59조)에 따르면 위원회에 회부된 법률이 일부 개정된 경우 15일이 지나야 상임위에서 상정할 수 있다”며 “외교부의 번역 오류가 상습적이라고 드러난 상황이라 더욱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은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