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손으로 만진 반도체, 그리고 어린이날 시한부 선고"
['죽음의 반도체 공장' 피해자 열전·③] 이윤정·유명화 씨
기사입력 2010-10-26 오후 5:18:17
이윤정 씨와 반올림 사람들이 처음 만난 자리였다. 작업환경을 알아보기 위한 몇 가지 질문이 이어지던 중, 윤정 씨가 말했다.
"같이 삼성에 입사한 내 친구 둘도 뇌에 종양이 생겼어요. 그리고 우리 라인에도 제가 퇴사할 즈음에 아픈 애가 있었어요. 아파서 회사도 잘 못 나오고 그랬는데…"
"혹시 유명화 씨를 말하는 건가요?"
"네, 맞아요."
"명화 씨는 중증 재생불량성빈혈에 걸렸어요. 혈액 쪽 질환이죠."
이윤정 씨와 유명화 씨는 같은 라인 선후배다. 그녀들은 삼성 반도체 온양공장 테스트공정에서 일했다. 이윤정 씨는 6년, 유명화 씨는 1년을 일했다.
이윤정 씨의 남편 정희수 씨는 병원에서 삼성 반도체 백혈병 문제가 나오는 시사프로그램을 보게 된다. 뇌암에 걸린 아내를 간호하던 중이었다. 간호사에게 "내 아내도 직업병일 가능성이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간호사는 "저 사람들은 백혈병인 혈액 쪽 암이고요, 윤정씨는 뇌 쪽이니 관계가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과연 관계가 없을까? 그녀들은 모두 건강했다. 유명화씨는 입사 전 교육을 받던 중 건강검진 결과 빈혈지수가 높게 나온 직원의 채용이 취소된 사건을 기억했다. 그만큼 삼성은 건강한 이들만을 채용했다.
그러나 그녀들은 회사에서 일을 한 후, 병든 몸이 됐다.
이윤정 씨는 뇌에 종양이 생겼다. 삼성 반도체 퇴사 후 결혼을 한 그녀는 아들, 딸을 두었다. 증상이 발병해 병원 응급실로 실려간 날은 하필 5월 5일 어린이날이었다. 어린 아들과 딸이 아빠를 따라 놀이터로 간 사이였다. 수술 후에도 뇌의 종양은 계속 자랐다. 그녀는 시한부 1년을 선고받았다.
유명화 씨의 병명은 중증 재생불량성빈혈이다. 이름도 생소한 이 병은 골수의 모든 기능이 감소하는 혈액질환이다. 대학등록금을 벌겠다며 삼성에 취직한 지 1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녀는 타인의 피를 받는 수혈에 의지해 9년째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
그녀들만이 아니다. 같은 라인 동료는 폐에 장애가 있는 아이를 출산했다. 이윤정 씨와 삼성에 같이 입사한 친구 둘은 뇌에 종양이 생겼다. 유명화 씨의 친구 또한 유산을 경험했다.
이들은 모두 삼성 반도체에 다녔다.
그녀들은 무슨 일을 했을까?
이윤정 씨와 유명화 씨는 무슨 일을 했을까.
전자제품은 열을 내는 기기이기 때문에 안에 들어가는 반도체 칩은 제조 과정에서 고온테스트 과정을 거친다. 반도체 칩을 열기계(고온챔버)에 넣어 일정정도의 열에 견딜 수 있는지 테스트하는 것이다. 이때 고온챔버를 거쳐 나온 보드를 꺼내어, 보드에 꽂힌 반도체 칩 중 타버린 불량품을 육안으로 고르는 것이 윤정 씨와 명화 씨의 주 업무였다.
당시 일이 어땠냐고 묻자 이윤정씨는 고개를 저었다.
"일하기 싫었던 것만 기억에 남아요."
"일이 힘들었나 봐요."
"수습기간 끝난 뒤부터는 거의 12시간 근무를 했어요."
1997년에 입사한 그녀는 IMF시기 가격저하로 인한 손실을 물량으로 보충하려는 삼성의 방침으로 인해 과도한 업무에 시달렸다.
"물량 빨리 빼라, 눈치를 많이 줬어요. 반도체 정렬해주는 (용역업체) 아저씨도 하이닉스나 이런 데보다 삼성이 너무 빡세다, 작업자들이 앉아있지를 못한다고 그랬어요. 물량으로 때리니까 일이 많은 거죠."
이윤정 씨는 혼자 30개의 고온챔버 기계를 담당했다. 몇백 개의 칩이 꽂혀 있는 판을 직접 들고 이동하여 30여 개의 기계 안에 넣었다. 팔과 허리에 무리가 갔다. 근속년수가 2~4년 밖에 안 되는 곳으로 유명할 만큼 일은 힘들었다.
유명화씨는 '불량'이 그녀를 제일 괴롭혔다고 한다.
"불량을 못 잡아냈을까 봐 기숙사에 와서도 잠이 안 왔어요."
바쁘게 돌아가는 공정이지만, 실수를 용납하지 않았다. 불량을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칠 경우 타박을 듣는 것은 물론 인사고과에 반영됐다. 복도에는 조별 생산량이 성적표처럼 붙어 있었다. 빠르게 일하면서도 정확해야 했다. 방법은 몸을 더 혹사시키는 것뿐이었다.
고온챔버를 열면 연기가 올라왔다. 손톱만한 반도체 칩을 불량인지 가리기 위해서는 보드(판)에 최대한 얼굴을 가까이해 들여다 봐야 했다. 역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반도체 칩은 얼마나 독한지, 손으로 직접 만지면 피부가 벗겨졌다. 그 손으로 얼굴을 만지면 빨갛게 발진이 돋았다. 이를 두고 작업장에서는 디바이스(제품) 독이 올라왔다고 말하곤 했다.
"보호장비는 뭐가 있었어요?"
"면장갑을 줬어요. 하지만 다들 잘 끼진 않았어요. 칩을 만지면 장갑이 금세 더러워졌고, 또 장갑을 끼고 있으면 칩이 작아서 끼울 때 속도가 잘 나지 않아서요."
"고글이나 마스크는요?"
"없었어요."
그녀들에게 주어진 반도체 칩은 납이 도금된 것일 가능성이 컸다. 반올림 제보자인 송창호 씨의 진술에 따르면, 그는 납도금을 하다가 악성림프종에 걸렸다. 그는 온양공장에 일했으며, 납도금 과정은 공정 초반에 있었다고 한다. 납은 발암물질 중 하나다. 또한 황산, 불산, IPA, 트리클로로에틸렌, 톨루엔 등의 화학약품도 반도체 칩에 묻어 있을 터였다.(여기 적힌 화학약품들은 1997년 삼성 반도체 엔지니어들에게 지급된 환경수첩과 최근 서울대에서 발표한 '삼성 반도체 사업장 위험성 평가 자문 보고서'에 의거한 것이다. 환경수첩에는 앞서 언급된 유기용제들이 '독성'이라고 표시돼 있다.)
이윤정 씨에게 안전교육을 받았냐고 물었다.
"한 달에 한 번 안전교육을 했어요."
"어떤 내용이었나요?"
"요번에 기계가 하나 더 들어온다. 신제품이 출시됐다. 어디가 생산량이 안 나온다, 그런 거요."
"그게 안전교육이었다고요?"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보호장비에 대해 물었다.
"방진복은 입었어요. 정전기 때문에 입는 건데, 디바이스(제품)에 정전기는 최악이니깐."
제품을 위해 하얀 방진복으로 노동자의 몸을 돌돌 감쌀지라도, 공장에 만연한 화학약품과 방사선을 막아줄 장비는 제공하지 않았다. 마스크조차 없었다. 면장갑 하나가 주어졌지만 사용을 의무화하지 않았다.
성과급과 맞바꾼 건강
이곳에서 이윤정 씨는 6년을 일했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하셨어요?"
"했죠. 나중에는 일이 너무 힘드니까 우울증도 오려고 그랬어요. 그래도 일은 많아도, 돈은 많이 주니까 계속 다녔죠."
'삼성'은 높은 보너스로 유명하다. 1000%에 다다르는 연말 성과급이 나올 때도 있다. 기본급은 많지 않았다. 삼성 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故 황유미씨의 통장을 보면, 1년차 기본급이 100만 원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낮은 기본급을 메워주는 성과급이 있었고, 그녀들은 성과를 내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했다.
윤정씨는 삼성에서 번 돈을 친정 살림에 보탰고, 결혼 자금으로도 모았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면서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녀가 혼수로 해온 가구와 그릇은 집안 곳곳에 남아있다. 그러나 그녀의 결혼생활은 끝나가고 있다. 삼성에서 일한 세월은 돈 몇 푼을 담보로 그녀의 미래를 앗아갔다. 그리고 그녀의 가족에게도 손을 뻗쳤다. 남편 정희수 씨에게는 아내에게 털어놓지 못한 걱정이 있다.
"산재라고 밝혀져도 문제인 게 유전이 되는 병이잖아요. 만약에 삼성 다닐 때 그러니까 애들 임신하기 전에 아내가 병에 걸린 거면…. 애들까지 그렇게 되어 버리면…. 나는 진짜 가서 누구 한 놈 죽여 버릴 거 같아요. 집사람도 그렇게 됐는데 자식까지 대물림 된다면…. 심각한 거죠."
그녀가 이뤄놓은 모든 것이 무너질지도 모른다. 돈을 벌기 위해 삼성 반도체에 들어갔고 아무 의심도 하지 않은 채 참고 일했다는 죄로 말이다.
1년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윤정씨는 담담해 보였다. 그러나 툭툭 던지는 말에서 조급함이 느껴진다.
"얼굴이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좀 원래대로 돌아와야 밖에도 자유롭게 나가고, 움직이기도 쉽고 그런데."
뇌의 통증을 줄여준다는 약물치료를 받느라 얼굴과 몸이 부어오른 그녀는, 그럼에도 몸이 허락하는 한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 무언가를 경험할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그녀도 알고 있다.
"의사가 1년이라고 그랬으니까 '1년을 어떻게 살아야 되나' 이런 생각을 해요. 그냥 열심히 사는 거죠."
그녀가 어느 날, 유명화 씨 이야기를 꺼냈다.
"어떻게 9년 동안 집에만 있을 수 있데요. 나는 이것저것 생각이 너무 많아져 가만히 있질 못하겠는데."
중증 재생불량성빈혈에 걸린 유명화 씨는 9년 째 집밖 출입을 거의 못 하고 있다. 그런 명화 씨가 얼마 전에 제주도에 다녀왔다. 주변 사람들 걱정이 많았다. 그녀는 조금만 무리를 해도 혈관이 터지고 빨간 반점이 올라왔다. 그녀에게 있어 '무리'란 얇은 방석을 깔고 방바닥에 앉는 일, 가볍게 걷는 일 등을 말했다. 대학 등록금까지 스스로 벌겠다고 나설 만큼 당찼던 명화 씨였지만 이제는 가까운 마트도 혼자 가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그런 그녀가 제주도에 가겠다고 했다.
"고등학교 졸업식도 못하고 삼성에 들어가서 일하는 바람에 수학여행 한번 가보지 못했어요. 그러고는 이 몸이 돼서 여행은 꿈꿀 수도 없었고요."
수학여행 한번 가본 적 없다는 말이 그녀의 아버지를 움직였다. 그녀는 수혈을 받고 휠체어를 준비하고 제주도로 떠났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첫 여행이었다.
유명화 씨는 이제 2주에 한 번 수혈을 받는다. 수혈 받는 빈도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오랜 세월 수혈을 받은 탓에 체내에 철분 찌꺼기가 쌓여 골수이식을 하지 않고는 지금까지의 생활조차 위태롭다. 그녀와 맞는 골수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의 죄 또한 젊다 못해 어린 나이에 일을 했다는 것뿐이다.(☞반올림 까페 바로가기)
/희정 집필노동자
['죽음의 반도체 공장' 피해자 열전·③] 이윤정·유명화 씨
기사입력 2010-10-26 오후 5:18:17
이윤정 씨와 반올림 사람들이 처음 만난 자리였다. 작업환경을 알아보기 위한 몇 가지 질문이 이어지던 중, 윤정 씨가 말했다.
"같이 삼성에 입사한 내 친구 둘도 뇌에 종양이 생겼어요. 그리고 우리 라인에도 제가 퇴사할 즈음에 아픈 애가 있었어요. 아파서 회사도 잘 못 나오고 그랬는데…"
"혹시 유명화 씨를 말하는 건가요?"
"네, 맞아요."
"명화 씨는 중증 재생불량성빈혈에 걸렸어요. 혈액 쪽 질환이죠."
이윤정 씨와 유명화 씨는 같은 라인 선후배다. 그녀들은 삼성 반도체 온양공장 테스트공정에서 일했다. 이윤정 씨는 6년, 유명화 씨는 1년을 일했다.
이윤정 씨의 남편 정희수 씨는 병원에서 삼성 반도체 백혈병 문제가 나오는 시사프로그램을 보게 된다. 뇌암에 걸린 아내를 간호하던 중이었다. 간호사에게 "내 아내도 직업병일 가능성이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간호사는 "저 사람들은 백혈병인 혈액 쪽 암이고요, 윤정씨는 뇌 쪽이니 관계가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과연 관계가 없을까? 그녀들은 모두 건강했다. 유명화씨는 입사 전 교육을 받던 중 건강검진 결과 빈혈지수가 높게 나온 직원의 채용이 취소된 사건을 기억했다. 그만큼 삼성은 건강한 이들만을 채용했다.
그러나 그녀들은 회사에서 일을 한 후, 병든 몸이 됐다.
이윤정 씨는 뇌에 종양이 생겼다. 삼성 반도체 퇴사 후 결혼을 한 그녀는 아들, 딸을 두었다. 증상이 발병해 병원 응급실로 실려간 날은 하필 5월 5일 어린이날이었다. 어린 아들과 딸이 아빠를 따라 놀이터로 간 사이였다. 수술 후에도 뇌의 종양은 계속 자랐다. 그녀는 시한부 1년을 선고받았다.
유명화 씨의 병명은 중증 재생불량성빈혈이다. 이름도 생소한 이 병은 골수의 모든 기능이 감소하는 혈액질환이다. 대학등록금을 벌겠다며 삼성에 취직한 지 1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녀는 타인의 피를 받는 수혈에 의지해 9년째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
그녀들만이 아니다. 같은 라인 동료는 폐에 장애가 있는 아이를 출산했다. 이윤정 씨와 삼성에 같이 입사한 친구 둘은 뇌에 종양이 생겼다. 유명화 씨의 친구 또한 유산을 경험했다.
이들은 모두 삼성 반도체에 다녔다.
ⓒ프레시안(최형락) |
그녀들은 무슨 일을 했을까?
이윤정 씨와 유명화 씨는 무슨 일을 했을까.
전자제품은 열을 내는 기기이기 때문에 안에 들어가는 반도체 칩은 제조 과정에서 고온테스트 과정을 거친다. 반도체 칩을 열기계(고온챔버)에 넣어 일정정도의 열에 견딜 수 있는지 테스트하는 것이다. 이때 고온챔버를 거쳐 나온 보드를 꺼내어, 보드에 꽂힌 반도체 칩 중 타버린 불량품을 육안으로 고르는 것이 윤정 씨와 명화 씨의 주 업무였다.
당시 일이 어땠냐고 묻자 이윤정씨는 고개를 저었다.
"일하기 싫었던 것만 기억에 남아요."
"일이 힘들었나 봐요."
"수습기간 끝난 뒤부터는 거의 12시간 근무를 했어요."
▲ 이윤정 씨가 건강했던 당시 모습 |
"물량 빨리 빼라, 눈치를 많이 줬어요. 반도체 정렬해주는 (용역업체) 아저씨도 하이닉스나 이런 데보다 삼성이 너무 빡세다, 작업자들이 앉아있지를 못한다고 그랬어요. 물량으로 때리니까 일이 많은 거죠."
이윤정 씨는 혼자 30개의 고온챔버 기계를 담당했다. 몇백 개의 칩이 꽂혀 있는 판을 직접 들고 이동하여 30여 개의 기계 안에 넣었다. 팔과 허리에 무리가 갔다. 근속년수가 2~4년 밖에 안 되는 곳으로 유명할 만큼 일은 힘들었다.
유명화씨는 '불량'이 그녀를 제일 괴롭혔다고 한다.
"불량을 못 잡아냈을까 봐 기숙사에 와서도 잠이 안 왔어요."
바쁘게 돌아가는 공정이지만, 실수를 용납하지 않았다. 불량을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칠 경우 타박을 듣는 것은 물론 인사고과에 반영됐다. 복도에는 조별 생산량이 성적표처럼 붙어 있었다. 빠르게 일하면서도 정확해야 했다. 방법은 몸을 더 혹사시키는 것뿐이었다.
고온챔버를 열면 연기가 올라왔다. 손톱만한 반도체 칩을 불량인지 가리기 위해서는 보드(판)에 최대한 얼굴을 가까이해 들여다 봐야 했다. 역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반도체 칩은 얼마나 독한지, 손으로 직접 만지면 피부가 벗겨졌다. 그 손으로 얼굴을 만지면 빨갛게 발진이 돋았다. 이를 두고 작업장에서는 디바이스(제품) 독이 올라왔다고 말하곤 했다.
"보호장비는 뭐가 있었어요?"
"면장갑을 줬어요. 하지만 다들 잘 끼진 않았어요. 칩을 만지면 장갑이 금세 더러워졌고, 또 장갑을 끼고 있으면 칩이 작아서 끼울 때 속도가 잘 나지 않아서요."
"고글이나 마스크는요?"
"없었어요."
그녀들에게 주어진 반도체 칩은 납이 도금된 것일 가능성이 컸다. 반올림 제보자인 송창호 씨의 진술에 따르면, 그는 납도금을 하다가 악성림프종에 걸렸다. 그는 온양공장에 일했으며, 납도금 과정은 공정 초반에 있었다고 한다. 납은 발암물질 중 하나다. 또한 황산, 불산, IPA, 트리클로로에틸렌, 톨루엔 등의 화학약품도 반도체 칩에 묻어 있을 터였다.(여기 적힌 화학약품들은 1997년 삼성 반도체 엔지니어들에게 지급된 환경수첩과 최근 서울대에서 발표한 '삼성 반도체 사업장 위험성 평가 자문 보고서'에 의거한 것이다. 환경수첩에는 앞서 언급된 유기용제들이 '독성'이라고 표시돼 있다.)
이윤정 씨에게 안전교육을 받았냐고 물었다.
"한 달에 한 번 안전교육을 했어요."
"어떤 내용이었나요?"
"요번에 기계가 하나 더 들어온다. 신제품이 출시됐다. 어디가 생산량이 안 나온다, 그런 거요."
"그게 안전교육이었다고요?"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보호장비에 대해 물었다.
"방진복은 입었어요. 정전기 때문에 입는 건데, 디바이스(제품)에 정전기는 최악이니깐."
제품을 위해 하얀 방진복으로 노동자의 몸을 돌돌 감쌀지라도, 공장에 만연한 화학약품과 방사선을 막아줄 장비는 제공하지 않았다. 마스크조차 없었다. 면장갑 하나가 주어졌지만 사용을 의무화하지 않았다.
성과급과 맞바꾼 건강
이곳에서 이윤정 씨는 6년을 일했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하셨어요?"
"했죠. 나중에는 일이 너무 힘드니까 우울증도 오려고 그랬어요. 그래도 일은 많아도, 돈은 많이 주니까 계속 다녔죠."
'삼성'은 높은 보너스로 유명하다. 1000%에 다다르는 연말 성과급이 나올 때도 있다. 기본급은 많지 않았다. 삼성 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故 황유미씨의 통장을 보면, 1년차 기본급이 100만 원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낮은 기본급을 메워주는 성과급이 있었고, 그녀들은 성과를 내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했다.
▲ 이윤정 씨는 삼성 반도체에서 일하며 번 돈으로 가정을 꾸몄다. 하지만 이제 그에게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
"산재라고 밝혀져도 문제인 게 유전이 되는 병이잖아요. 만약에 삼성 다닐 때 그러니까 애들 임신하기 전에 아내가 병에 걸린 거면…. 애들까지 그렇게 되어 버리면…. 나는 진짜 가서 누구 한 놈 죽여 버릴 거 같아요. 집사람도 그렇게 됐는데 자식까지 대물림 된다면…. 심각한 거죠."
그녀가 이뤄놓은 모든 것이 무너질지도 모른다. 돈을 벌기 위해 삼성 반도체에 들어갔고 아무 의심도 하지 않은 채 참고 일했다는 죄로 말이다.
1년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윤정씨는 담담해 보였다. 그러나 툭툭 던지는 말에서 조급함이 느껴진다.
"얼굴이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좀 원래대로 돌아와야 밖에도 자유롭게 나가고, 움직이기도 쉽고 그런데."
뇌의 통증을 줄여준다는 약물치료를 받느라 얼굴과 몸이 부어오른 그녀는, 그럼에도 몸이 허락하는 한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 무언가를 경험할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그녀도 알고 있다.
"의사가 1년이라고 그랬으니까 '1년을 어떻게 살아야 되나' 이런 생각을 해요. 그냥 열심히 사는 거죠."
그녀가 어느 날, 유명화 씨 이야기를 꺼냈다.
"어떻게 9년 동안 집에만 있을 수 있데요. 나는 이것저것 생각이 너무 많아져 가만히 있질 못하겠는데."
중증 재생불량성빈혈에 걸린 유명화 씨는 9년 째 집밖 출입을 거의 못 하고 있다. 그런 명화 씨가 얼마 전에 제주도에 다녀왔다. 주변 사람들 걱정이 많았다. 그녀는 조금만 무리를 해도 혈관이 터지고 빨간 반점이 올라왔다. 그녀에게 있어 '무리'란 얇은 방석을 깔고 방바닥에 앉는 일, 가볍게 걷는 일 등을 말했다. 대학 등록금까지 스스로 벌겠다고 나설 만큼 당찼던 명화 씨였지만 이제는 가까운 마트도 혼자 가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그런 그녀가 제주도에 가겠다고 했다.
"고등학교 졸업식도 못하고 삼성에 들어가서 일하는 바람에 수학여행 한번 가보지 못했어요. 그러고는 이 몸이 돼서 여행은 꿈꿀 수도 없었고요."
수학여행 한번 가본 적 없다는 말이 그녀의 아버지를 움직였다. 그녀는 수혈을 받고 휠체어를 준비하고 제주도로 떠났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첫 여행이었다.
유명화 씨는 이제 2주에 한 번 수혈을 받는다. 수혈 받는 빈도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오랜 세월 수혈을 받은 탓에 체내에 철분 찌꺼기가 쌓여 골수이식을 하지 않고는 지금까지의 생활조차 위태롭다. 그녀와 맞는 골수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의 죄 또한 젊다 못해 어린 나이에 일을 했다는 것뿐이다.(☞반올림 까페 바로가기)
/희정 집필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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