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비명 가득한 팔당…유기농 대신 유람선?
[현장] '4대강'에 밀려난 유기농, 공권력 투입되던 날
기사입력 2010-02-24 오후 6:34:54
24일 오전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 북한강을 따라 포도 농장과 비닐하우스 농가가 넓게 펼쳐진 이곳에 새벽부터 무거운 긴장감이 흘렀다. 이 지역 농민과 종교인 30여 명은 농장 입구에 모여 초조하게 아침을 기다렸다.
중장비의 굉음과 주민들의 비명 소리가 송촌리의 아침을 갈랐다. 마침내 오전 9시가 되자, 굴착기를 앞세워 서울지방국토관리청 직원 40여 명이 들이닥쳤다. 경찰 6개 중대 600여 명도 함께 투입됐다. 정부의 4대강 사업 구간으로 지정된 이곳, 조안면 일대 농가에 대한 토지 측량 작업을 위해서다.
측량이 단순한 조사가 아닌, 4대강 공사를 위한 수순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농민들이었다. 길게는 꼬박 30년간 공들여 지어온 농사였다. 땅을 빼앗긴 이들이 측량조차도 반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오늘은 이렇게 끌려가지만, 우리의 싸움은 절대 이대로 끝나지 않습니다." ('농지 보존·친환경 농업 사수를 위한 팔당상수원공동대책위원회(팔당 공대위)' 유영훈 대표)
밧줄로 서로의 몸을 묶어 버티던 농민들이 한 명 한 명 경찰에 연행됐다. 상황은 10분 만에 종료됐다. 경찰은 팔당 공대위 유영훈 대표를 비롯, 4대강 사업을 반대하며 오랫동안 농성을 벌여온 농민 11명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및 업무 방해 혐의로 연행했다.
"3대째 이어진 농토, 자전거 도로로 내줘야 하나"
"내 땅에서 당장 나가요. 땅 주인 허락도 없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측량에 반발하던 농민들이 연행되고, 마침내 이 일대 농지에 대한 측량이 시작되자, 농민 윤한상(가명·49) 씨가 거세게 항의했다. 측량이 진행된 포도 농장은 윤 씨의 사유지로, 그는 이날 측량에 대한 어떤 사전 통지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천법 제75조2항은 '타인의 토지에 출입하려는 자는 출입할 날의 3일 전까지 그 토지 소유자 또는 점유자나 관리인에게 그 일시와 장소를 통지하여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지만, 이 절차가 지켜지지 못한 것이다.
지난해 10월 진행된 두 차례의 측량 조사에서도, 국토관리청은 사전 통지 없이 측량을 강행해 농민들의 반발을 샀다. 이에 이 지역 농민들은 국토관리청과 토지 측량 업체를 하천법 위반 혐의로 고소,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3대째 조안면 일대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윤한상 씨는 18년차 농사꾼이다. 그러나 그는 4대강 사업으로 전체 농지 1,600평 중 1,500평을 잃게 될 처지다. 정부는 윤 씨의 농토에 테마 공원과 자전거 도로를 만들 계획이다. 윤 씨는 "자전거 도로와 공원 만들겠다고 우리더러 나가라고 하는데, 이게 다 열심히 농사 지어온 사람들이랑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세계 유기 농업의 '메카', 4대강 '공사판'으로
양평군 두물머리 일대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김병인(55) 씨의 경우도 상황은 비슷하다. 김 씨는 자동차 정비 사업을 하다 6년 전 귀농해 애호박, 케일, 브로콜리 등을 재배하고 있다. 친환경 농업을 한다는 자부심으로 수입이 줄어든 것도 무릅쓰고 뛰어든 농사였다.
팔당 지역은 국내에서 유기농의 '태동지'로 꼽힌다. 수도권 최대의 유기농 단지로, 수도권의 35만 가구에 친환경 식품을 공급한다. 1975년 팔당호 일대가 상수원 보호 구역으로 지정된 뒤부터, 하루아침에 생계 수단을 잃어버린 농민들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지가 유기농이었다.
한 때 정부의 지원도 활발했다. 1995년부터 경기도와 농협은 상수원 보호 차원에서 농민들에게 지원금을 지급하며 직거래 판로를 열어줬고, 정부는 이곳을 '유기 농업 특구'로 지정하고 유기 농업을 적극 권장했다.
농민들의 오랜 노력 끝에, 팔당에서는 2011년 세계유기농대회가 열린다. 상수원 보호 구역이라는 '악조건'을 친환경 농업으로 이겨낸 사례가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으면서 아시아 최초로 유기농 대회를 유치한 것이다. 김문수 도지사는 이 대회를 유치하기 위해 이곳 농민들과 함께 이탈리아를 방문해 "팔당을 세계 유기 농업의 메카로 만들겠다"고 공언하기도 했었다.
짧았던 '팔당의 신화'
그러나 '팔당의 신화'는 여기까지다. 지난해 6월 정부가 4대강 사업 계획을 발표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세계 유기 농업의 메카'였던 팔당은 한 순간에 '한강살리기 사업 9공구'로 '전락'했다. 국토해양부는 하천 부지의 비닐하우스를 철거해 유기농 단지를 없앤 뒤 자전거 도로·테마 공원 등의 위락 시설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로 인해 사라질 면적은 총 21만여 평. 전체 유기농 단지 면적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이날 측량 조사가 진행된 송촌리의 겨우, 농지 90% 이상이 사라지게 됐다. 정부의 느닷없는 발표로 삶의 터전을 잃게 되는 농민들도 100여 가구에 이른다.
4대강 사업 때문에 알토란같은 농토를 잃게 된 김병인 씨의 배신감은 클 수밖에 없다. 김 씨는 2007년 9월 대선 후보 시절의 이명박이 팔당을 방문했던 날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대통령이 팔당에 왔을 때, 직접 퇴비도 뿌려보고 농민들이 재배한 상추로 점심도 함께 먹으면서 온갖 칭찬을 하고 갔어요. 대통령이 되면 유기 농업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까지 하면서…. 그런데 이제 와서 수도권 시민의 물탱크에 농사를 짓는다고 우리를 비난합디다. 자신이 그렇게 칭찬했던 유기 농업을 이젠 수질 오염의 주범이라 몰아 붙이고…솔직히 사기당한 기분이죠."
이에 이곳 주민들은 항의의 표시로 2007년 당시 팔당을 찾은 이명박의 사진을 거꾸로 들고 다닌다. 김 씨는 '팔당 유기농이 상수원 오염의 주범'이라는 정부의 논리에 대해서도 억울함을 드러냈다.
"친환경 농사를 짓는다는 자부심으로 여태껏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오염이라니요. 정부는 비닐하우스를 모두 없애고 공원이나 위락 시설을 짓는다고 하는데, 그게 더 상수원을 오염할 겁니다. 이곳을 관광 명소로 육성하겠다는데, 앞뒤 안 맞는 논리 아닌가요? 상수원에 유람선 띄우는 건 오염이 아니고, 자연 퇴비만 쓰는 유기 농업은 오염이라니요."
자기 땅에서 두 번 쫓겨나는 사람들
사실 이곳 농민들이 '어이없이 쫓겨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팔당에서 6대째 농사를 지어온 정정수(69) 씨는 팔당 지역을 "사연이 많은 땅"이라고 말했다.
이 지역 농민들은 그동안 여러 차례 땅을 잃을 뻔한 위기를 넘겼다. 1975년 팔당댐 건설이 그 시초였다. 댐이 생기면서 전체 농지의 70%가 수몰되거나 강제 수용을 당했다. 당시 정 씨의 아버지도 제대로 된 보상없이 땅 5,000평을 국가에 넘겨야 했다.
하루아침에 생계 수단을 박탈당한 농민들은 하천 부지에 점용 허가를 얻어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위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농민들은 경작권을 얻기 위해 2년여 동안 싸움을 벌이기도 했고, 농지를 가로지르는 국도 확장 정책을 막아내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4대강 사업으로 인해 또 한 번 자기 땅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정 씨는 "팔당댐이 들어선 이후 농민들은 고통의 생활을 보내왔지만, 엄격한 규제 속에서도 유기 농업을 일궈왔다"며 "정치인들의 약속은 손바닥 뒤집듯 뒤집혔고, 4대강 사업으로 일자리 창출을 한다면서 농민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고 토로했다.
요즘 조안면 유기농지에서는 매일 같이 기도회가 열린다. 한국기독교장로회는 사순절이 시작되는 지난 17일부터 부활절(4월 4일)까지 4대강 사업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금식 기도회를 연다.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천주교연대' 사제와 신도 100여 명도 양평군 양서면 두물머리 일대에서 천막 농성장을 만들어 철야 기도와 미사에 돌입했다.
금식 기도를 진행하고 있는 용진교회 김선구 목사는 "신앙인의 입장에서 4대강 사업은 창조와 생명의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라며 "죽어가는 생명체와 쫓겨나는 농민들에 대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행사를 마련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국토관리청의 측량이 진행된 직후 정치권 인사들도 잇따라 팔당을 찾아 4대강 사업에 대한 비판의 말들을 쏟아냈다. 민주당 이종걸 의원은 "국민의 70% 이상이 반대하는 4대강 사업을 위해 100여 가구의 농민들이 30년간 지켜온 삶의 터전을 빼앗아 위락 시설을 만든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더구나 사유지 보상을 위한 측량임에도 불구하고, 땅 소유자에게 통지조차 하지 않는 것은 명백히 절차상 하자가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경기도지사 출마를 선언한 진보신당 심상정 대표는 "이명박과 김문수 도지사는 어제는 대안 농업의 중심이라고 팔당을 선전하더니, 오늘은 팔당 유기농 단지를 4대강의 공사판으로 만들고 있다"며 "이렇게 말을 뒤집는 정부는 사기꾼 정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팔당 농민들은 법원에 행정 소송을 비롯해 '하천공사시행계획고시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을 낸 상태다. 이들은 팔당생명살림 앞 농성장을 중심으로 종교계·시민사회와 연대해 앞으로도 4대강 사업 반대를 위한 활동을 계속하겠다는 방침이다.
/선명수 기자(남양주)
[현장] '4대강'에 밀려난 유기농, 공권력 투입되던 날
기사입력 2010-02-24 오후 6:34:54
24일 오전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 북한강을 따라 포도 농장과 비닐하우스 농가가 넓게 펼쳐진 이곳에 새벽부터 무거운 긴장감이 흘렀다. 이 지역 농민과 종교인 30여 명은 농장 입구에 모여 초조하게 아침을 기다렸다.
중장비의 굉음과 주민들의 비명 소리가 송촌리의 아침을 갈랐다. 마침내 오전 9시가 되자, 굴착기를 앞세워 서울지방국토관리청 직원 40여 명이 들이닥쳤다. 경찰 6개 중대 600여 명도 함께 투입됐다. 정부의 4대강 사업 구간으로 지정된 이곳, 조안면 일대 농가에 대한 토지 측량 작업을 위해서다.
▲ 중장비의 굉음과 주민들의 비명 소리가 송촌리의 아침을 갈랐다. 정부의 4대강 사업 구간으로 지정된 조안면 일대 농가에 대한 토지 측량 작업을 위해서다. ⓒ프레시안(최형락) |
측량이 단순한 조사가 아닌, 4대강 공사를 위한 수순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농민들이었다. 길게는 꼬박 30년간 공들여 지어온 농사였다. 땅을 빼앗긴 이들이 측량조차도 반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오늘은 이렇게 끌려가지만, 우리의 싸움은 절대 이대로 끝나지 않습니다." ('농지 보존·친환경 농업 사수를 위한 팔당상수원공동대책위원회(팔당 공대위)' 유영훈 대표)
밧줄로 서로의 몸을 묶어 버티던 농민들이 한 명 한 명 경찰에 연행됐다. 상황은 10분 만에 종료됐다. 경찰은 팔당 공대위 유영훈 대표를 비롯, 4대강 사업을 반대하며 오랫동안 농성을 벌여온 농민 11명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및 업무 방해 혐의로 연행했다.
▲ 팔당 공대위 유영훈 대표가 서울지방국토관리청의 측량에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유 대표는 이날 경찰에 연행됐다. ⓒ프레시안(최형락) |
▲ 경찰에 연행되는 팔당 농민들. ⓒ프레시안(선명수) |
"3대째 이어진 농토, 자전거 도로로 내줘야 하나"
"내 땅에서 당장 나가요. 땅 주인 허락도 없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측량에 반발하던 농민들이 연행되고, 마침내 이 일대 농지에 대한 측량이 시작되자, 농민 윤한상(가명·49) 씨가 거세게 항의했다. 측량이 진행된 포도 농장은 윤 씨의 사유지로, 그는 이날 측량에 대한 어떤 사전 통지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천법 제75조2항은 '타인의 토지에 출입하려는 자는 출입할 날의 3일 전까지 그 토지 소유자 또는 점유자나 관리인에게 그 일시와 장소를 통지하여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지만, 이 절차가 지켜지지 못한 것이다.
지난해 10월 진행된 두 차례의 측량 조사에서도, 국토관리청은 사전 통지 없이 측량을 강행해 농민들의 반발을 샀다. 이에 이 지역 농민들은 국토관리청과 토지 측량 업체를 하천법 위반 혐의로 고소,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3대째 조안면 일대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윤한상 씨는 18년차 농사꾼이다. 그러나 그는 4대강 사업으로 전체 농지 1,600평 중 1,500평을 잃게 될 처지다. 정부는 윤 씨의 농토에 테마 공원과 자전거 도로를 만들 계획이다. 윤 씨는 "자전거 도로와 공원 만들겠다고 우리더러 나가라고 하는데, 이게 다 열심히 농사 지어온 사람들이랑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세계 유기 농업의 '메카', 4대강 '공사판'으로
양평군 두물머리 일대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김병인(55) 씨의 경우도 상황은 비슷하다. 김 씨는 자동차 정비 사업을 하다 6년 전 귀농해 애호박, 케일, 브로콜리 등을 재배하고 있다. 친환경 농업을 한다는 자부심으로 수입이 줄어든 것도 무릅쓰고 뛰어든 농사였다.
팔당 지역은 국내에서 유기농의 '태동지'로 꼽힌다. 수도권 최대의 유기농 단지로, 수도권의 35만 가구에 친환경 식품을 공급한다. 1975년 팔당호 일대가 상수원 보호 구역으로 지정된 뒤부터, 하루아침에 생계 수단을 잃어버린 농민들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지가 유기농이었다.
한 때 정부의 지원도 활발했다. 1995년부터 경기도와 농협은 상수원 보호 차원에서 농민들에게 지원금을 지급하며 직거래 판로를 열어줬고, 정부는 이곳을 '유기 농업 특구'로 지정하고 유기 농업을 적극 권장했다.
농민들의 오랜 노력 끝에, 팔당에서는 2011년 세계유기농대회가 열린다. 상수원 보호 구역이라는 '악조건'을 친환경 농업으로 이겨낸 사례가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으면서 아시아 최초로 유기농 대회를 유치한 것이다. 김문수 도지사는 이 대회를 유치하기 위해 이곳 농민들과 함께 이탈리아를 방문해 "팔당을 세계 유기 농업의 메카로 만들겠다"고 공언하기도 했었다.
▲ 2007년 대선 후보 시절의 이명박은 팔당을 찾아 유기 농업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었다. 팔당 농민들의 배신감이 더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프레시안(최형락) |
짧았던 '팔당의 신화'
그러나 '팔당의 신화'는 여기까지다. 지난해 6월 정부가 4대강 사업 계획을 발표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세계 유기 농업의 메카'였던 팔당은 한 순간에 '한강살리기 사업 9공구'로 '전락'했다. 국토해양부는 하천 부지의 비닐하우스를 철거해 유기농 단지를 없앤 뒤 자전거 도로·테마 공원 등의 위락 시설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로 인해 사라질 면적은 총 21만여 평. 전체 유기농 단지 면적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이날 측량 조사가 진행된 송촌리의 겨우, 농지 90% 이상이 사라지게 됐다. 정부의 느닷없는 발표로 삶의 터전을 잃게 되는 농민들도 100여 가구에 이른다.
4대강 사업 때문에 알토란같은 농토를 잃게 된 김병인 씨의 배신감은 클 수밖에 없다. 김 씨는 2007년 9월 대선 후보 시절의 이명박이 팔당을 방문했던 날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대통령이 팔당에 왔을 때, 직접 퇴비도 뿌려보고 농민들이 재배한 상추로 점심도 함께 먹으면서 온갖 칭찬을 하고 갔어요. 대통령이 되면 유기 농업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까지 하면서…. 그런데 이제 와서 수도권 시민의 물탱크에 농사를 짓는다고 우리를 비난합디다. 자신이 그렇게 칭찬했던 유기 농업을 이젠 수질 오염의 주범이라 몰아 붙이고…솔직히 사기당한 기분이죠."
이에 이곳 주민들은 항의의 표시로 2007년 당시 팔당을 찾은 이명박의 사진을 거꾸로 들고 다닌다. 김 씨는 '팔당 유기농이 상수원 오염의 주범'이라는 정부의 논리에 대해서도 억울함을 드러냈다.
"친환경 농사를 짓는다는 자부심으로 여태껏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오염이라니요. 정부는 비닐하우스를 모두 없애고 공원이나 위락 시설을 짓는다고 하는데, 그게 더 상수원을 오염할 겁니다. 이곳을 관광 명소로 육성하겠다는데, 앞뒤 안 맞는 논리 아닌가요? 상수원에 유람선 띄우는 건 오염이 아니고, 자연 퇴비만 쓰는 유기 농업은 오염이라니요."
자기 땅에서 두 번 쫓겨나는 사람들
사실 이곳 농민들이 '어이없이 쫓겨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팔당에서 6대째 농사를 지어온 정정수(69) 씨는 팔당 지역을 "사연이 많은 땅"이라고 말했다.
이 지역 농민들은 그동안 여러 차례 땅을 잃을 뻔한 위기를 넘겼다. 1975년 팔당댐 건설이 그 시초였다. 댐이 생기면서 전체 농지의 70%가 수몰되거나 강제 수용을 당했다. 당시 정 씨의 아버지도 제대로 된 보상없이 땅 5,000평을 국가에 넘겨야 했다.
하루아침에 생계 수단을 박탈당한 농민들은 하천 부지에 점용 허가를 얻어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위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농민들은 경작권을 얻기 위해 2년여 동안 싸움을 벌이기도 했고, 농지를 가로지르는 국도 확장 정책을 막아내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4대강 사업으로 인해 또 한 번 자기 땅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정 씨는 "팔당댐이 들어선 이후 농민들은 고통의 생활을 보내왔지만, 엄격한 규제 속에서도 유기 농업을 일궈왔다"며 "정치인들의 약속은 손바닥 뒤집듯 뒤집혔고, 4대강 사업으로 일자리 창출을 한다면서 농민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고 토로했다.
▲ 팔당 농민들은 1975년 팔당댐 건설 이후 이 지역이 상수원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친환경 유기 농업에 종사해왔다. 댐 건설로 땅을 빼앗긴 농민들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지였다. ⓒ프레시안(선명수) |
요즘 조안면 유기농지에서는 매일 같이 기도회가 열린다. 한국기독교장로회는 사순절이 시작되는 지난 17일부터 부활절(4월 4일)까지 4대강 사업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금식 기도회를 연다.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천주교연대' 사제와 신도 100여 명도 양평군 양서면 두물머리 일대에서 천막 농성장을 만들어 철야 기도와 미사에 돌입했다.
금식 기도를 진행하고 있는 용진교회 김선구 목사는 "신앙인의 입장에서 4대강 사업은 창조와 생명의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라며 "죽어가는 생명체와 쫓겨나는 농민들에 대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행사를 마련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국토관리청의 측량이 진행된 직후 정치권 인사들도 잇따라 팔당을 찾아 4대강 사업에 대한 비판의 말들을 쏟아냈다. 민주당 이종걸 의원은 "국민의 70% 이상이 반대하는 4대강 사업을 위해 100여 가구의 농민들이 30년간 지켜온 삶의 터전을 빼앗아 위락 시설을 만든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더구나 사유지 보상을 위한 측량임에도 불구하고, 땅 소유자에게 통지조차 하지 않는 것은 명백히 절차상 하자가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경기도지사 출마를 선언한 진보신당 심상정 대표는 "이명박과 김문수 도지사는 어제는 대안 농업의 중심이라고 팔당을 선전하더니, 오늘은 팔당 유기농 단지를 4대강의 공사판으로 만들고 있다"며 "이렇게 말을 뒤집는 정부는 사기꾼 정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팔당 농민들은 법원에 행정 소송을 비롯해 '하천공사시행계획고시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을 낸 상태다. 이들은 팔당생명살림 앞 농성장을 중심으로 종교계·시민사회와 연대해 앞으로도 4대강 사업 반대를 위한 활동을 계속하겠다는 방침이다.
/선명수 기자(남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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