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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섬 논바닥을 사파리로… 3선 도지사의 ‘삽질’

외딴섬 논바닥을 사파리로… 3선 도지사의 ‘삽질’
목포서 뱃길로 50분 도초도에 1324억 투자
[한겨레] 신안 도초도/글·사진 안관옥 기자 | 등록 : 2013.07.07 20:18 | 수정 : 2013.07.08 08:57


▲ 전남 목포에서 43㎞ 떨어진 서해 신안군 도초도 들판에 ‘사파리 아일랜드 조성 예정 지구’라고 한 글자씩 크게 적은 간판들이 서 있다.

전남 목포항에서 43㎞, 쾌속선으로 50분쯤 떨어진 신안군 도초도 화도항에서 15분쯤 걸으면 ‘사파리 아일랜드 조성 예정 지구’라고 한 글자씩 큼지막하게 써넣은 간판들이 눈에 확 들어온다.

이곳 도초면 월포리에서 지난달 25일 만난 이장 조안배(60)씨는 전남도가 추진하는 ‘사파리’ 조성 터를 가리키며 뒤숭숭한 속내를 털어놨다. 마을 뒷산 오봉산 자락에서 시작해 월포제·발매제 등 저수지 2곳을 감싸안고 들판 건너 앞산까지 이어진 분지였다.

“이장단 총무로서 동물의 섬 사업에 힘을 보탰지만 정작 우리 마을로 올지는 몰랐습니다. 동물 수천 마리가 도로 하나 건너 들어온다는데,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며 계속 살아야 할지 아직 모르겠네요.”

조씨는 5년 넘게 말만 무성하고 지루하기만 했던 사업 진행에 적잖이 지친 듯했다. 20년 전 서울에서 귀향한 그는 “2년 전엔 안 한다더니 두 달 전에 입간판을 세우더라”며 고향의 정겨운 모습과 순박한 인심이 달라질 것을 우려했다.

경운기를 몰고 지나던 마을 주민 박복암(55)씨는 “토질이 좋아 시금치 등 안 되는 작물이 없다. 이제 농사를 못 지으면 어디 가서 땅을 부치냐”고 아쉬워했다. 들판에서 만난 농민 김해찬(50)씨도 “주민들은 호랑이를 키운다더라는 정도만 알고 있다. 울음소리나 배설물, 쓰레기 등 신경 쓰이는 게 한두가지가 아니다”라고 거들었다. 조성 터에 맞닿은 이웃 마을 발매리 이장 박길석(50)씨는 “아직 눈에 보이는 변화는 없다. 대체로 나이든 주민은 반대하고, 50대 이하는 찬성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1㎞쯤 떨어진 면소재지 수항리 주민들한테선 개발에 대한 기대심리를 엿볼 수 있었다. 주민 박아무개씨는 “논 한 마지기(660㎡)에 400만 원이 나왔다더라. 보상 뒤 주변 논값이 500만 원으로 뛰어 땅 내놓는 이들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감사원이 사파리를 재검토하라고 했다는데, 앞으로 사업을 하는 거냐 마는 거냐”며 궁금해했다.

사파리 아일랜드 사업은 박준영 전남지사의 선거공약이다. 2004년 6월 보궐선거로 당선한 박 지사는 내리 3선을 하는 동안 전남이 비교우위를 지닌 섬들을 관광자원으로 개발하는 데 의욕을 보였다. 이듬해 전남 섬의 관광자원 개발계획을 수립하면서 도초도에 산양·여우 같은 멸종위기종 야생동물을 복원하는 ‘동물의 섬’ 밑그림을 그렸다. 이 계획은 2009년 ‘상업형 사파리’로 바뀌더니, 2011년엔 ‘사파리 아일랜드’로 거창해졌다. 사파리는 동물을 가둬놓지 않고 자연 상태로 풀어놓고는 사람이 차량·보트·도보로 관람하는 방식을 이른다.

전남도는 2011년 7억 원을 들여 사파리 아일랜드 조성 사업 용역을 맡겼다. 도초도 서북쪽 118만㎡(36만평)에 공공자본 510억 원, 민간자본 814억 원 등 1,324억 원을 투입해 동물 97종 2,110여 마리를 입식한다는 계획이었다. 사파리 방문객은 2020년 16만 명, 2028년 55만 명으로 추정했다. 도초도(都草島)를 선정한 것은 관광객이 몰리는 홍도·흑산도·가거도 항로의 중간 기항지이고, 연평균 기온 14도, 연 강수량 1000㎜로 수목이 많아 옛 문헌에 말을 키웠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동물 생육 조건이 좋다는 점을 들었다. 이승옥 전남도 관광문화국장은 “중국인을 끌어들이려면 내륙관광이 아니라 해양관광으로 승부해야 한다. 일본의 후지 사파리, 싱가포르의 나이트 사파리 등 선진 사례도 들여다봤다. 국내 최고, 최대의 사파리를 조성해 체류형 관광지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사업은 지난달 4일 감사원이 ‘사파리 조성을 위한 용역 과정에서 전남도의 지시로 사업성이 부풀려졌다’는 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중대 고비를 맞았다. 감사원은 “이 사업의 추진 여부를 재검토하고, 구체적인 민자 유치 방안 없이 사업 터를 매입하지 않도록 하라”고 권고했다.


감사원은 용역업체 ㈜한국종합기술 등의 민간 측면 사업성 분석 결과가 6개월 만에 ‘낮다’에서 ‘양호’로 뒤집힌 이유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용역업체는 2011년 6월 중간보고 때, 비용 대비 편익 비율이 0.73, 순현재가치는 284억원 적자로 사업성이 낮다고 했다. 그런데 같은해 12월 최종보고 때는 비용 대비 편익 비율은 1.08, 순현재가치는 116억원 흑자로 사업성이 양호하다고 번복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 수입은 물가상승률(연 3%)을 반영해 늘리고, 비용은 물가상승률을 반영하지 않아 낮추는 것이 이런 마술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감사원이 비용까지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재분석했더니 비용 대비 편익 비율은 0.70, 순현재가치는 369억 원 적자 등 사업성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엇갈린 사업성 분석 결과를 두고, 전남도 쪽은 “감사원의 재분석이 틀렸다고 보지 않는다”고 사실상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전남도는 “사업성을 부풀리라고 지시한 적이 없다”고 했으나, 감사원은 “용역업체가 비용 대비 편익 비율이 1보다 높게 나오도록 매출·예상수요 등을 전남도와 협의해 적용했다”고 지적했다.

전남도는 용역 결과를 제출받자 사업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토지를 미리 확보해야 투자 유치가 용이하다며, 지난해 10월부터 조성 터 매입에 나섰다. 앞서 7개월 전 재정투융자 심사에서 행정안전부가 ‘민자 유치 방안을 마련한 뒤 예산을 반영하라’는 조건을 걸어 승인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전남도는 85억 원을 들여 올해 안에 조성 터를 모두 확보하겠다며 현재 65만㎡(55%)를 사들였다. 전남도는 “민간 투자자의 조성 터 매입에 어려움이 예상돼 전남도의회의 승인을 받아 예산을 투입했다. 매입비는 사업에 들어갈 공공자본의 일부”라고 밝혔다. 터 매입에 대해 감사원은 사업 추진을 명분삼아, 정부의 재정투자 승인 조건을 무시한 조처라는 의견을 냈다.

이를 두고 전남진보연대는 성명을 내어 “적자로 나온 사업성을 흑자로 둔갑시키는 것은 도민을 우롱하는 범죄행위이다. 박 지사는 이 사업을 전면 백지화하고 도민 앞에 사죄하라”고 촉구했다.

도초도의 접근성도 논란거리다. 한해 30일가량은 풍랑과 안개의 영향으로 배가 뜰 수 없다. 목포~도초는 쾌속선으로 50분, 일반선으로 2시간 30분 걸린다.

육로로는 서울에서 400㎞ 떨어져 있다. 2018년 압해도~암태도를 잇는 새천년대교와 2028년에 암태도~비금도 연도교가 놓이면 비로소 뭍에서 차량만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된다. 2016년 흑산도에 소형 공항이 건설되면 서울에서 오는 시간이 2시간으로 단축될 수 있다.

그런데도 전남도는 사업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토교통부의 투자유치 지원 사업에 잇따라 선정됐고, 국내 3개 업체가 관심을 보이는 등 전망이 밝다는 태도다. 민간투자자만 선정되면 급물살을 타 2020년 사파리를 개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한다.

반면 내년 지방선거에서 이 사업의 존폐가 쟁점이 될 것이란 관측도 엄존한다. 예산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세금 먹는 애물단지’로 전락한 코리아 그랑프리(F1)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비판도 거세다. 안주용 전남도의회 의원은 “박 지사가 퇴임을 한해 앞두고 무리하게 사업을 서두르는 이유를 알 수 없다. 현재로선 민자 유치가 불투명한 만큼 사업 추진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사업이 일몰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의사 최종욱씨는 “무인도를 배경으로 한 영화 <쥬라기공원>의 환상에 빠져서는 안 된다. 대부분의 야생동물은 연평균 25도 이상인 열대의 조건에서 살아 비용도 예상보다 많이 들어간다. 세계적으로 흑자 나는 동물원은 거의 없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출처 :외딴섬 논바닥을 사파리로… 3선 도지사의 ‘삽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