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과 진보당, 과연 누가 죽을까
[장윤선의 톡톡! 정치카페] 대선개입 국정조사 끝나자 내란음모 사건 터트린 국정원
[오마이뉴스] 장윤선 | 13.08.29 18:55 | 최종 업데이트 13.08.29 18:55
"그냥 국가보안법 정도로 엮었다면 고개를 끄떡였을 텐데, 내란음모죄로 엮었다고 하는 순간, 젊은 기자들도 푹푹 웃음이 나왔다는 거야. 국정원이 자기 살자고 오버하는 거 아니냐는 거지. 이게 지금 통합진보당 사태를 바라보는 우리 국민들의 정확한 시각 아닐까."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지난 28일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의 간담회에 참석한 젊은 기자들의 정치수다를 이렇게 스케치해주었습니다. 이틀째 국정원이 보수언론과 종합편성채널에 흘리는 통합진보당(아래 진보당) 이석기 의원 관련 피의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한편으로는 진짜? 당황하게 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설마…하며 황당하기 짝이 없는 게 사실입니다.
<동아일보>가 29일 국정원을 인용해 단독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이석기 진보당 의원이 이끄는 옛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조직원 130여 명은 'RO(Revolutionary Organization, 혁명조직)'라는 이름의 단체를 결성, 북한의 침범 때 북한군을 돕기 위한 구체적인 활동을 계획했다는 겁니다.
이어 "RO(혁명조직)는 남북간 전쟁이 벌어질 경우 KT혜화지사와 분당인터넷데이터센터(IDC) 등 대규모 국가 통신시설을 파괴하고 군수물자 이동과 민간인 이동을 차단, 지연시키기 위해 경부선 호남선 등 주요 철도 시설을 파괴할 계획"도 세웠고, "경기 평택물류기지도 타격 대상에 포함됐는데, 이 평택물류기지는 정유사나 수입사 외에도 SK가스, 석유공사 비축기지 등이 입주한 국가 기간시설로서 수도권에 석유, 가스를 공급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또한 "전쟁 발발 시 북한군의 공격을 돕기 위해 전국의 미군기지 위치와 규모 등 현황 파악이 필요하다는 점을 전체 회의에서 논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며 "국정원과 검찰은 이 의원이 RO 조직원들에게 국가 기간시설 파괴에 필요한 사제 총기 제작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린 혐의도 포착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의원과 조직원들은 전체 회의 때마다 북한의 군가이자 혁명가요로 알려진 '적기가'를 제창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썼습니다.
이 보도를 그저 머릿속 그림으로 상상해 보면 블록버스터급 영화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총기 소유가 금지된 우리나라에서 이들은 총기를 얻기 위해 인근 파출소 지구대를 타격, 총기를 탈취한 뒤 그것으로 무장혁명을 한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것도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장면 같습니다.
국정원이 '관계자' 전언으로 피의사실 흘리는 까닭
정치권은 지난 이틀간 국정원이 보수언론에 흘린 정보가 '사실'이라면 매우 충격적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김한길 민주당 대표도 "지금까지 나온 혐의내용이 사실이라면 용납할 수 없는 충격적인 사건"이며 "또 하나의 국기문란사건으로 철저한 수사가 있어야 마땅하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지금 벌어진 이 사안 자체의 중대성보다 이 사건이 몰고 올 정치적 파장에 훨씬 긴장하는 눈치입니다. 국정원은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보수언론과 종편을 통해 끊임없이 '관계자' 전언으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흘릴 것이고, 그 흘려진 정보는 매일 아침 신문과 방송 매체를 타고 전국을 유람할 게 뻔하다는 것이지요. 정국이 이렇게 흘러가면 다른 의제와 쟁점은 모조리 사라지고 오로지 이석기 의원과 진보당 관계자들이 내란음모를 했다는 거야, 안 했다는 거야, 이것만 머릿속에 꽂히게 된다는 것이지요.
무엇보다 정치권은 지금까지 나온 건 예고편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국정원은 날마다 수위를 높여가면서 진위 여부를 떠나 국민들의 입이 쫙 벌어질 정도의 충격적인 내용을 내놓고 정국을 휘감아 칠 것이다, 라는 거죠. 정치권이 걱정하는 것은 바로 그 점입니다.
'내란음모 블랙홀'이 정치권의 모든 뉴스를 빨아들여 그간 주요의제로 다뤄졌던 국정원 개혁이나 남재준 국정원장의 해임, 박근혜 대통령 사과 등 이른바 지난 대선에서 벌어졌던 국정원의 불법적인 선거개입 문제가 수면 아래로 아예 '수장'될 수 있다는 걱정입니다. 물론 21세기 대명천지에 과거 유신정권, 군사독재정권에나 있었던 수법을 쓰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국정원이 어떤 괴물을 만들어낼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우려이기도 하지요.
국민 51% "국정원이 대선개입"... 선거법 무죄 '증거찾기' 나섰나
실제 국정원은 지난 53일간 진행된 국정원 댓글의혹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로 조직이 상당히 큰 망신을 당했다고 생각하고, 이에 대한 확실한 명예회복이 없다면 앞으로 국정원 조직 활동에 상당한 무리가 온다고 보는 듯합니다. 따라서 가장 화급한 문제는 지난 대선의 정치개입에 대해 선거법상 무죄 판결을 받아내는 거지요.
원세훈 전 원장 등 국정원 관계자들은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줄곧 국내 인터넷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북한 첩자들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기 때문에 이들의 활동을 억제할 방법으로 국정원 직원들이 여러 인터넷 사이트에 댓글을 달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지난 대통령선거에 일부러 개입하려고 국정원 직원들이 댓글을 단 게 아니고, 대북심리전단 활동의 일환으로 활동한 비밀업무였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우리 국민들의 여론은 보수적인 종편채널 JTBC 여론조사에서조차 국민의 51%가 국정원의 대선개입은 있었다고 평결하고 있으니 국정원 입장에서는 답답했겠지요. 그래서 좀더 충격적이고 심각한 '증거찾기'가 필요했던 것 아닐까요?
그래서 3년간 묵혀둔 '내란 예비 음모' 혐의 사건을 전격적으로 꺼내든 것 아닐까요? 이 타이밍에 이 사건을 써야 적기다, 이렇게 판단했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과연 국정원은 정확히 잘 정조준한 것일까요?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도를 지나치면 부족한 것과 같다는 뜻이지요. 그런 지적은 보수진영 안에서도 나옵니다.
강철 김영환도 "내란음모는 운동권 상식으로 말 안 되는 얘기"
1980년대 대학가에 '주체사상의 대부'로 통했다가 북한인권 운동가로 변신한 '강철' 김영환씨는 이번 내란 음모 의혹에 대해 "운동권 상식으로 말이 안 되는 얘기"라고 일축했습니다.
김씨는 최근 <연합뉴스>와 전화통화를 통해 "그쪽 계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보통 이보다 더 낮은 수위의 얘기도 3∼4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하지 않는다"며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서 한 말이라면 지나가는 말일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지요.
또한 김씨는 "(이 의원 등이) 술을 마시면서 농담 식으로 비슷한 말을 수시로 하는 사람들인 만큼 어떤 맥락에서, 얼마만큼의 중요성을 두고 한 얘기인지 자세히 살펴야 할 것"이라며 "(이 의원 등이 속한 것으로 지칭되는) 경기동부연합 세력의 특징은 혁명을 꿈꾸는 비이념형 종북 세력"이라고 규정하기도 했습니다.
법조계도 비슷한 지적입니다. 내란죄를 적용해 처벌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 이걸 들고 나오느냐, 현실적으로 처벌이 어렵다는 거지요.
국가보안법 사건을 많이 맡았던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 김형태 변호사는 <미디어오늘> 인터뷰에서 "이석기 의원이 실제로 '무기를 준비하라'는 말을 했는지 모르겠으나 설령 녹취록에 그런 말이 있다 해도 그것은 실현가능한 얘기가 아니라 그냥 한 말일 수밖에 없다, 원천적으로 말이 안 되는 얘기를 떠벌리는 것에 해당되기 때문에 그것은 '불능범'으로 치부된다, 그 사람이 국회의원 되기 전인 2000년대 초중반은 '무기고 탈취'가 가능한 여건이 아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김 변호사는 "이 혐의로 기소돼 법정에 간다 해도 해프닝이나 장난, 또는 정신병자 얘기로 받아들여지지 형법으로 처벌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며 "내란음모 혐의는 그 요건이 엄격하기 때문에 실제 행위와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직격탄은 진보당이 맞았지만 유탄은 민주당에게로
그는 "기껏해야 국가보안법 위반 정도로 엮을 소지가 있다고 할지는 몰라도 내란 예비 음모라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예를 들어 누군가가 '오바마를 쏴죽이겠다'고 말한다 해도 실현 가능성이 없으며 형벌로써 재량할 수 없는 말이 된다, 오이로 죽인다고 말했다고 살인예비죄가 성립되지 않는 것과 같다"고 전했습니다.
만약 이 사건이, 국정원이 자신들의 대선개입 범죄행각에 문제없음을 입증하기 위해 꺼낸 카드라면 이것은 정말 엄청난, 아니 끔찍한 일입니다. 그간 진보당 운영 등에 많은 문제점이 지적됐고, 비례대표선거 부정시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국회에 진출한 원내 제3정당을 행정부 일각에 속한 국정원이 무소불위의 힘을 이용해 마구잡이로 흔들어대도 되는지도 실은 의문입니다.
하지만 팔을 걷어붙이고 함께 싸워주겠노라 어깨를 거는 '야권의 동지'가 없는 게 진보당의 현실입니다. 지난해 쌓은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누구도 같이 하겠다 말을 꺼내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면 '내란음모' 직격탄은 진보당이 맞았지만, 긴 줄기에서 보면 사건의 유탄은 민주당도 피할 수 없으며 오히려 최대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견해가 나돕니다. 노숙투쟁 하루만에 김한길 대표의 서울광장 천막 기사는 자취도 없이 사라졌고, 내달 4일 이전 양자든 3자든 5자든 대통령과 만나 담판을 짓겠다는 주장도 이 거대한 쓰나미에 휘말려 쏙 들어가 버렸습니다.
더불어 국정원이 이번 사건으로 얻을 성과는 별로 없어 보인다는 게 언론 관계자들의 시각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 국민의 51%는 이미 지난 대선에 국정원이 한 일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보당 일각의 내란 음모 문제는 그 자체로, 또 국정원의 대선개입 문제는 그 자체로 각각 따로 판단할 줄 안다는 얘기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왕에 나선 국정원이 칼을 뽑았으니 쉽게 그 칼을 칼집으로 넣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국정원이 진보당에 친 '내란음모의 덫'은 길고도 지난하게 갈 겁니다. 어쩌면 국정원은 진보당을 공중분해하고 '종북세력 척결'의 꼭짓점을 따겠다고 벼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이렇게 증거가 많이 나왔는데, 국정원의 대선 개입은 선거법상 무죄를 받을 수 있을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출처 : 국정원과 진보당, 과연 누가 죽을까
[장윤선의 톡톡! 정치카페] 대선개입 국정조사 끝나자 내란음모 사건 터트린 국정원
[오마이뉴스] 장윤선 | 13.08.29 18:55 | 최종 업데이트 13.08.29 18:55
▲ "이건 국정원의 날조 조작사건" 목소리 높이는 이석기 의원 내란예비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의원단 연석회의에 참석한 뒤 회의실을 나오고 있다. 이 의원은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 "한마디로 황당하다. 이건 국정원의 날조 조작사건이라고 본다"며 총기 준비, 통신 철도 유류저장고 등 파괴 계획 등에 대해서도 "사실이 아니다" "철저한 모략극이고 날조극이다"라고 주장했다. ⓒ 권우성 | 2013.08.29 |
"그냥 국가보안법 정도로 엮었다면 고개를 끄떡였을 텐데, 내란음모죄로 엮었다고 하는 순간, 젊은 기자들도 푹푹 웃음이 나왔다는 거야. 국정원이 자기 살자고 오버하는 거 아니냐는 거지. 이게 지금 통합진보당 사태를 바라보는 우리 국민들의 정확한 시각 아닐까."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지난 28일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의 간담회에 참석한 젊은 기자들의 정치수다를 이렇게 스케치해주었습니다. 이틀째 국정원이 보수언론과 종합편성채널에 흘리는 통합진보당(아래 진보당) 이석기 의원 관련 피의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한편으로는 진짜? 당황하게 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설마…하며 황당하기 짝이 없는 게 사실입니다.
<동아일보>가 29일 국정원을 인용해 단독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이석기 진보당 의원이 이끄는 옛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조직원 130여 명은 'RO(Revolutionary Organization, 혁명조직)'라는 이름의 단체를 결성, 북한의 침범 때 북한군을 돕기 위한 구체적인 활동을 계획했다는 겁니다.
이어 "RO(혁명조직)는 남북간 전쟁이 벌어질 경우 KT혜화지사와 분당인터넷데이터센터(IDC) 등 대규모 국가 통신시설을 파괴하고 군수물자 이동과 민간인 이동을 차단, 지연시키기 위해 경부선 호남선 등 주요 철도 시설을 파괴할 계획"도 세웠고, "경기 평택물류기지도 타격 대상에 포함됐는데, 이 평택물류기지는 정유사나 수입사 외에도 SK가스, 석유공사 비축기지 등이 입주한 국가 기간시설로서 수도권에 석유, 가스를 공급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또한 "전쟁 발발 시 북한군의 공격을 돕기 위해 전국의 미군기지 위치와 규모 등 현황 파악이 필요하다는 점을 전체 회의에서 논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며 "국정원과 검찰은 이 의원이 RO 조직원들에게 국가 기간시설 파괴에 필요한 사제 총기 제작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린 혐의도 포착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의원과 조직원들은 전체 회의 때마다 북한의 군가이자 혁명가요로 알려진 '적기가'를 제창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썼습니다.
이 보도를 그저 머릿속 그림으로 상상해 보면 블록버스터급 영화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총기 소유가 금지된 우리나라에서 이들은 총기를 얻기 위해 인근 파출소 지구대를 타격, 총기를 탈취한 뒤 그것으로 무장혁명을 한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것도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장면 같습니다.
국정원이 '관계자' 전언으로 피의사실 흘리는 까닭
정치권은 지난 이틀간 국정원이 보수언론에 흘린 정보가 '사실'이라면 매우 충격적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김한길 민주당 대표도 "지금까지 나온 혐의내용이 사실이라면 용납할 수 없는 충격적인 사건"이며 "또 하나의 국기문란사건으로 철저한 수사가 있어야 마땅하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지금 벌어진 이 사안 자체의 중대성보다 이 사건이 몰고 올 정치적 파장에 훨씬 긴장하는 눈치입니다. 국정원은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보수언론과 종편을 통해 끊임없이 '관계자' 전언으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흘릴 것이고, 그 흘려진 정보는 매일 아침 신문과 방송 매체를 타고 전국을 유람할 게 뻔하다는 것이지요. 정국이 이렇게 흘러가면 다른 의제와 쟁점은 모조리 사라지고 오로지 이석기 의원과 진보당 관계자들이 내란음모를 했다는 거야, 안 했다는 거야, 이것만 머릿속에 꽂히게 된다는 것이지요.
무엇보다 정치권은 지금까지 나온 건 예고편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국정원은 날마다 수위를 높여가면서 진위 여부를 떠나 국민들의 입이 쫙 벌어질 정도의 충격적인 내용을 내놓고 정국을 휘감아 칠 것이다, 라는 거죠. 정치권이 걱정하는 것은 바로 그 점입니다.
'내란음모 블랙홀'이 정치권의 모든 뉴스를 빨아들여 그간 주요의제로 다뤄졌던 국정원 개혁이나 남재준 국정원장의 해임, 박근혜 대통령 사과 등 이른바 지난 대선에서 벌어졌던 국정원의 불법적인 선거개입 문제가 수면 아래로 아예 '수장'될 수 있다는 걱정입니다. 물론 21세기 대명천지에 과거 유신정권, 군사독재정권에나 있었던 수법을 쓰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국정원이 어떤 괴물을 만들어낼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우려이기도 하지요.
국민 51% "국정원이 대선개입"... 선거법 무죄 '증거찾기' 나섰나
▲ 지난 1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현직 국정원 직원 김하영씨가 흰색 가림막 뒤에 몸을 숨긴 채 증인심문에 응하고 있다. 심문 내내 김씨는 미리 준비해 온 자료를 읽어내려가는 답변 태도를 보였다. ⓒ 남소연 | 2013.08.19 |
실제 국정원은 지난 53일간 진행된 국정원 댓글의혹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로 조직이 상당히 큰 망신을 당했다고 생각하고, 이에 대한 확실한 명예회복이 없다면 앞으로 국정원 조직 활동에 상당한 무리가 온다고 보는 듯합니다. 따라서 가장 화급한 문제는 지난 대선의 정치개입에 대해 선거법상 무죄 판결을 받아내는 거지요.
원세훈 전 원장 등 국정원 관계자들은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줄곧 국내 인터넷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북한 첩자들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기 때문에 이들의 활동을 억제할 방법으로 국정원 직원들이 여러 인터넷 사이트에 댓글을 달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지난 대통령선거에 일부러 개입하려고 국정원 직원들이 댓글을 단 게 아니고, 대북심리전단 활동의 일환으로 활동한 비밀업무였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우리 국민들의 여론은 보수적인 종편채널 JTBC 여론조사에서조차 국민의 51%가 국정원의 대선개입은 있었다고 평결하고 있으니 국정원 입장에서는 답답했겠지요. 그래서 좀더 충격적이고 심각한 '증거찾기'가 필요했던 것 아닐까요?
그래서 3년간 묵혀둔 '내란 예비 음모' 혐의 사건을 전격적으로 꺼내든 것 아닐까요? 이 타이밍에 이 사건을 써야 적기다, 이렇게 판단했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과연 국정원은 정확히 잘 정조준한 것일까요?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도를 지나치면 부족한 것과 같다는 뜻이지요. 그런 지적은 보수진영 안에서도 나옵니다.
강철 김영환도 "내란음모는 운동권 상식으로 말 안 되는 얘기"
1980년대 대학가에 '주체사상의 대부'로 통했다가 북한인권 운동가로 변신한 '강철' 김영환씨는 이번 내란 음모 의혹에 대해 "운동권 상식으로 말이 안 되는 얘기"라고 일축했습니다.
김씨는 최근 <연합뉴스>와 전화통화를 통해 "그쪽 계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보통 이보다 더 낮은 수위의 얘기도 3∼4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하지 않는다"며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서 한 말이라면 지나가는 말일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지요.
또한 김씨는 "(이 의원 등이) 술을 마시면서 농담 식으로 비슷한 말을 수시로 하는 사람들인 만큼 어떤 맥락에서, 얼마만큼의 중요성을 두고 한 얘기인지 자세히 살펴야 할 것"이라며 "(이 의원 등이 속한 것으로 지칭되는) 경기동부연합 세력의 특징은 혁명을 꿈꾸는 비이념형 종북 세력"이라고 규정하기도 했습니다.
법조계도 비슷한 지적입니다. 내란죄를 적용해 처벌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 이걸 들고 나오느냐, 현실적으로 처벌이 어렵다는 거지요.
국가보안법 사건을 많이 맡았던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 김형태 변호사는 <미디어오늘> 인터뷰에서 "이석기 의원이 실제로 '무기를 준비하라'는 말을 했는지 모르겠으나 설령 녹취록에 그런 말이 있다 해도 그것은 실현가능한 얘기가 아니라 그냥 한 말일 수밖에 없다, 원천적으로 말이 안 되는 얘기를 떠벌리는 것에 해당되기 때문에 그것은 '불능범'으로 치부된다, 그 사람이 국회의원 되기 전인 2000년대 초중반은 '무기고 탈취'가 가능한 여건이 아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김 변호사는 "이 혐의로 기소돼 법정에 간다 해도 해프닝이나 장난, 또는 정신병자 얘기로 받아들여지지 형법으로 처벌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며 "내란음모 혐의는 그 요건이 엄격하기 때문에 실제 행위와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직격탄은 진보당이 맞았지만 유탄은 민주당에게로
▲ 국정원과 통합진보당 언쟁 국정원과 검찰이 내란음모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을 비롯한 보좌관들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한 지난 2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이석기 의원실에서 국정원 관계자들과 통합진보당 관계자들이 언쟁을 벌이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 2013.08.28 |
그는 "기껏해야 국가보안법 위반 정도로 엮을 소지가 있다고 할지는 몰라도 내란 예비 음모라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예를 들어 누군가가 '오바마를 쏴죽이겠다'고 말한다 해도 실현 가능성이 없으며 형벌로써 재량할 수 없는 말이 된다, 오이로 죽인다고 말했다고 살인예비죄가 성립되지 않는 것과 같다"고 전했습니다.
만약 이 사건이, 국정원이 자신들의 대선개입 범죄행각에 문제없음을 입증하기 위해 꺼낸 카드라면 이것은 정말 엄청난, 아니 끔찍한 일입니다. 그간 진보당 운영 등에 많은 문제점이 지적됐고, 비례대표선거 부정시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국회에 진출한 원내 제3정당을 행정부 일각에 속한 국정원이 무소불위의 힘을 이용해 마구잡이로 흔들어대도 되는지도 실은 의문입니다.
하지만 팔을 걷어붙이고 함께 싸워주겠노라 어깨를 거는 '야권의 동지'가 없는 게 진보당의 현실입니다. 지난해 쌓은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누구도 같이 하겠다 말을 꺼내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면 '내란음모' 직격탄은 진보당이 맞았지만, 긴 줄기에서 보면 사건의 유탄은 민주당도 피할 수 없으며 오히려 최대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견해가 나돕니다. 노숙투쟁 하루만에 김한길 대표의 서울광장 천막 기사는 자취도 없이 사라졌고, 내달 4일 이전 양자든 3자든 5자든 대통령과 만나 담판을 짓겠다는 주장도 이 거대한 쓰나미에 휘말려 쏙 들어가 버렸습니다.
더불어 국정원이 이번 사건으로 얻을 성과는 별로 없어 보인다는 게 언론 관계자들의 시각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 국민의 51%는 이미 지난 대선에 국정원이 한 일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보당 일각의 내란 음모 문제는 그 자체로, 또 국정원의 대선개입 문제는 그 자체로 각각 따로 판단할 줄 안다는 얘기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왕에 나선 국정원이 칼을 뽑았으니 쉽게 그 칼을 칼집으로 넣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국정원이 진보당에 친 '내란음모의 덫'은 길고도 지난하게 갈 겁니다. 어쩌면 국정원은 진보당을 공중분해하고 '종북세력 척결'의 꼭짓점을 따겠다고 벼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이렇게 증거가 많이 나왔는데, 국정원의 대선 개입은 선거법상 무죄를 받을 수 있을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출처 : 국정원과 진보당, 과연 누가 죽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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