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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노동과 삶

[단독] “박 대통령 발언·화면 사용 말라”…대법원, 노동계 변론 간섭

[단독] “박 대통령 발언·화면 사용 말라”…대법원, 노동계 변론 간섭
5일 통상임금 공개변론 앞두고 논란
“정치·경제 논리서 판결 자유로워야”
변론 내용 문제 삼아 삭제 요구
대법 “사용자쪽에도 자료 조정 요청”

[한겨레] 임인택 김원철 기자 | 등록 : 2013.09.05 08:08 | 수정 : 2013.09.05 11:07


▲ 대법원의 통상임금 소송 공개변론에서 원고 대리인이 프리젠테이션을 하기 위해 준비한 전체 33쪽 분량의 자료 가운데 대법원으로부터 삭제 요구를 받은 부분.
임금노동자들에게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통상임금 소송 공개변론을 앞두고 대법원이 노동계가 펼칠 변론 내용에 간섭하고 통제하려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사자의 변론권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주요 사건의 법적 공방을 전 국민에게 그대로 보여준다는 공개변론의 취지에도 맞지 않는 부적절한 재판 진행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5일 열리는 공개변론 사건의 원고(노동자) 쪽 대리인인 김상은 변호사(노동법률원 새날)는 4일 “전날 대법원에서 이뤄진 공개변론 예행연습 뒤 대법원 재판연구관이 전화해 최후변론의 일부 대목을 문제삼으면서 ‘해당 발언을 하지 말라. 관련 파워포인트 화면 사용도 못하게 하겠다’고 알려왔다”며 “근거가 전혀 없는 부당한 변론권 제한이다”라고 밝혔다.

대법원이 간섭한 대목은 김 변호사의 5분짜리 최후변론 가운데 “금번 전원합의체 판결이 정치적·경제적 논리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국민 여론이 있음을 감안하여 주시기 바란다”는 등의 30초 분량 발언과 박근혜 대통령 얼굴이 등장하는 파워포인트 화면 자료다. 해당 자료는 지난 5월 미국을 방문한 박 대통령이 통상임금 문제 해결을 요청한 제너럴모터스(GM) 회장에게 “통상임금은 지엠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경제가 갖는 문제로 꼭 풀어나가겠다”고 답한 내용의 신문·방송 기사를 보도 사진과 함께 담은 것으로, 전체 파워포인트 33쪽 가운데 2쪽 분량이다.

원고 쪽과 대법원은 예행연습 뒤 협의를 통해, 애초 최후변론 5분 동안 계속 노출하려던 파워포인트 화면을 해당 발언을 하는 30초 동안만 노출하기로 조율했다. 하지만 이후 대법원 쪽이 해당 발언과 화면을 아예 사용하지 말라고 요구한 것이다.

대법원 쪽은 삭제를 요구한 근거로 ‘사법부 모독’을 들었다. “대통령 발언이 대법원 계류 사건에 영향을 미치고 재판의 독립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원고 쪽의 변론 내용이 사법부의 권위를 훼손한다고 본 셈이다. 김 변호사는 “재계와 정치권의 압력에서 독립돼 법리적 판단을 해달라는 요청이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통상임금은 기업이 추가근로 수당과 연차휴가 수당을 결정하는 핵심 기준이어서 재계와 노동계는 이번 공개변론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달 5일 갑을오토텍 노동자가 2심까지 승소한 통상임금 소송을 전원합의체로 회부하면서 공개변론을 열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일선 법원은 대법원 판례에 따라 ‘일률적이고 정기적, 고정적으로 지급되면 통상임금’이라는 일관된 판결을 해왔다. 그럼에도 정부가 통상임금을 확대한 기존 판례가 전원합의체 판결이 아니라며 폄하하고 재계도 대법원의 판례 변경을 요구하는 가운데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을 결정하자 노동계는 강한 의구심을 품어왔다.

이에 대해 대법원 쪽은 “법정에서 법률적 쟁점만 주장하면 되는데 ‘대법원이 대통령의 압력에 굴복하면 안 된다’는 주장을 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 피고(사용자) 쪽 파워포인트 자료에 있는 노사 양쪽이 악수하는 사진도 변론과 관련 없는 내용이라 판단해 빼달라고 했다. 하지만 변론은 원고 쪽 자유다. (우리는) 그냥 의견만 전한 것으로, 파워포인트 사용도 제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출처 : [단독] “박 대통령 발언·화면 사용 말라”…대법원, 노동계 변론 간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