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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박정희·박근혜

박근혜 시대의 우경화… 장기집권 노린 이념전쟁?

박근혜 시대의 우경화… 장기집권 노린 이념전쟁?
보수세력 중에는 기득권 수호를 위해 필요에 따라 이념을 버릴 수도 있는 ‘보수’와 이념을 앞세우는 ‘수구’세력이 있다. 최근 나타나고 있는 우경화 징후들은 옛날로 회귀하려는 반동적·이념적 보수에 가깝다.
[경향신문] 백철 기자 | 입력 : 2013-11-02 10:48:18 | 수정 : 2013-11-02 14:24:32


“아버지 대통령 각하”, “유신시대가 더 좋았다”, “박정희 독재는 매우 실용적”, 제2의 새마을운동, 박정희 관련 인사 중용, 전교조 법외노조화, 40년 만에 등장한 내란음모 사건, 인혁당 보상금 반환소송, 경제민주화·기초연금 후퇴….

박근혜 시대 들어 나타나고 있는 한국 사회 우경화의 징후들이 심상치 않다. 이 현상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박정희’다. 박근혜 시대 들어 박정희 시대를 추억하는 반동적 보수세력의 목소리가 극적으로 커졌다.

그동안 야권과 진보단체는 사회 전반적인 우경화 현상을 “민주주의의 시계가 거꾸로 가고 있다”는 말로 표현했다. 이명박 정부 때도 정부가 민주주의를 후퇴시킨다는 비판은 많았지만 정확히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민주주의 시계는 ‘박정희’를 향해 달려간다는 점이 명확해지고 있다.

보수주의 사상 연구자인 이나미 한국방송통신대 연구교수는 “박근혜 시대 들어 실리와 이익보다 ‘원칙’을 따지는 이념적 수구세력의 해방구가 열렸다”고 진단했다. 진짜 이념전쟁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2011년 출간한 저서 <보수와 수구>에서 보수세력의 두 가지 면모를 분석했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필요에 따라 이념을 버릴 수 있는 ‘보수’와 무엇보다 이념을 앞세우는 ‘수구’로 구분했다. 이 분석틀에 따라 현재 나타나고 있는 징후들을 분석하면 박근혜 시대의 주류 보수세력은 이념적 보수, 즉 수구세력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 10월 20일 박근혜가 전남 순천에서 열린 ‘2013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에 입장하며 참석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MB정부도 독재미화까지는 안 해

이명박 시대에는 이념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시장보수세력이 주류를 형성했다. 이 전 대통령도 ‘중도 실용주의’를 표방했고, 2008년 촛불시위와 같은 위기의 순간에선 대국민 사과를 발표했다. 이 전 대통령 시절 이념적 보수파들은 이승만·박정희 시대를 긍정하는 방향으로의 역사교육과정 개편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만을 받아들였을 뿐, 독재시대 미화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가 실용적 태도를 취할 때마다 ‘애국보수’를 자칭하는 극우파들은 이 전 대통령을 강력히 비난했다. 2009년 1월 용산참사 이후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가 사퇴한 일을 두고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는 “장사꾼 대통령의 배신”이라며 “(이 전 대통령은) 비겁으로 법치를 파괴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당시 조 대표는 “진정한 전략과 용기는 이념에서 나온다”며 이 전 대통령의 실리주의적 성향을 비판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 34주기인 지난 10월 26일을 전후로 터져나온 발언들은 수구세력의 ‘해방의 함성’이었다. 이나미 교수는 “보수와 다른 수구의 특징으로는 반동주의를 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보수적 가치의 기본은 ‘현 체제 유지’다. 하지만 반동주의는 현상유지를 넘어 ‘옛날로 돌아가자’는 이념이다. 박근혜 시대의 수구가 원하는 ‘옛날’은 바로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 시대라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현장의 시민운동가들도 올해 들어 확실히 분위기가 변했다고 지적한다. 김덕진 천주교 인권위원회 사무국장은 “아무리 보수라고 해도 일정한 선은 지켰다”고 말했다. 김 사무국장은 “보수들도 공식적으론 친일파를 비판하고 일본의 위안부 강제동원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광주민주화항쟁의 의의도 인정해 왔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책이 교과서로 선정되고, 광주민주화운동을 부정하는 일들이 생기는 것을 보며 ‘뭔가 달라졌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박정희 시대에 비판적인 학자들은 새마을운동의 구호(‘근면·자조·협동’)에 반동주의 세력의 ‘원칙’이 압축적으로 담겨 있다고 평가한다. 근면은 노동착취, 자조는 복지 축소, 협동은 총화단결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본인도 올해 들어 여러 차례 ‘제2의 새마을운동’을 강조하면서 사실상 이념보수의 손을 들어줬다. 10월 20일에는 전국 새마을지도자대회에 참석해 “새마을운동은 우리 현대사를 바꿔놓은 정신혁명”이었다며 ‘제2의 새마을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새마을운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영남대 ㄱ교수는 “1970년대식 새마을운동을 부활시키자는 것은 아니다”라며 “제2의 새마을운동은 과거의 근면·자조·협동보다 나눔·배려·봉사의 가치를 강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ㄱ교수는 현재에도 과거 새마을운동의 가치가 일정 부분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민들이 세금은 안 내려고 하면서 더 많은 복지를 원한다. 공동체정신, 자조정신을 되살려내면 복지문제의 상당 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며 “새마을운동은 과거의 낡은 운동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 9월 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근현대 역사교실’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오른쪽)이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의 저자인 이명희 공주대 교수와 대화하고 있다. /박민규 기자


실리·이익 보다 계산된 이념전쟁

박근혜 대통령 당선 이후 최외출 영남대 부총장 등 새마을운동 연구자들이 국가 요직에 등용될 것이란 설은 끊이지 않았다. 이에 대해 ㄱ교수는 “국가가 정책적으로 새마을운동을 주도하면 국민의 자발성을 떨어뜨릴 수 있어 반대한다”며 “오해가 있을까봐 정부로부터 직접적인 지원은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새마을운동에 비판적인 김보현 성공회대 민주자료관 연구교수는 “새마을운동이 말하는 ‘정신혁명’은 지배층이 원하는 인간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박정희 정권이 이상시한 인간형은 남들과 경쟁하며 쉬지 않고 일하는 사람”이라며 “이제 와서 근대화 시대의 인간형을 좋게 보는 것은 우려할 만한 지점”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의 과거회귀 움직임에 국정원이 빠질 수 없다. 지난 7월 국정원은 인혁당 사건 유가족들을 상대로 부당이득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2년 전 대법원이 과잉배상 우려를 이유로 인혁당 배상금을 대폭 낮추는 판결을 내린 것을 근거로 한 소송이다. 인혁당 사건은 박정희 정권 시절 권력의 핵심이었던 중앙정보부의 대표적 조작 사건으로, 사형 판결 18시간 만에 형을 집행해버린 사법살인 사례로 역사에 기록돼 있다. 10월 들어 법원은 인혁당 유가족들에게 ‘국정원에 배상금 일부를 반환하라’는 판결을 연이어 내리고 있다.

인혁당 유가족들을 변호한 김형태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이명박 정부 때는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아무 움직임이 없었는데 박근혜 정부 들어 국정원이 뒤늦게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법원 판결 이후 3년간 정부가 소송을 제기하지 않으면 시효가 종료돼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던 문제였다. 박근혜 정부 들어 국정원이 전면에 등장하면서 벌인 과거회귀 공세의 일환으로 소송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우연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박정희 시대의 일들이 하나둘씩 재현되고 있다. 새마을운동 부활 시도, 인혁당 유가족 배상금 환수뿐만 아니라 교원노조 법외노조화, 내란음모사건도 박정희 시대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최종 목적지는 보수·수구 동맹 세상

문제는 이러한 일련의 반동적 이념전쟁이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에도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시민들이 느낄 수 있는 유신회귀적 현상으로는 경찰력의 강화를 들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4대악을 강조한 이후 경찰들의 태도가 크게 경직되고, 단속 횟수가 많아졌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고 말했다.

실제로 올해 들어 교통법규, 경범죄 단속이 큰 폭으로 늘었다. 국정감사장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까지 경찰의 교통 범칙금 부과건수는 114만2414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배 이상 늘었다. 교통법규 범칙금 부과액수도 지난해의 2배가 넘는 425억원이 걷혔다. 마찬가지로 경범죄처벌법 위반 범칙금도 지난해 대비 8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덕진 천주교 인권위 사무국장은 박근혜 정부가 시민들의 인권에는 아예 관심이 없는 것 아니냐는 평가를 내놓았다. 김 사무국장은 “실효성이 의심스러운 북한인권을 제외하면 박근혜 정부의 인권정책은 무인권정책”이라며 “용산참사 책임자인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을 다시 공항공사 사장에 임명하는 것을 보고 인권이나 서민들의 정서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 1975년 박정희와 딸 박근혜가 유신헌법 철폐 국민투표소에서 투표용지를 교부받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고용노동부의 전교조 법외노조화 역시 학교 현장에 이런저런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전교조는 각 시·도교육청과의 단체협상을 통해 친환경 무상급식, 0교시 폐지 등을 관철시켜 왔다. 정한철 전교조 부산지부 정책실장은 “조만간 부산교육청에서 단체협약 무효를 통보할 것으로 보인다”며 “부산지역에서는 사실상 자취를 감췄던 0교시가 벌써부터 사립학교를 중심으로 되살아나고 있다”고 말했다.

정 실장은 “단체협약이 파기되면 1년에 15만원씩 지급되던 학급운영비가 크게 감소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학급운영비는 학급 자치활동, 학생 포상 및 격려 등에 쓰이는 비용이다. 큰 비용이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학급운영비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학생들의 수업 참여 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게 전교조측의 설명이다.

정부와 수구세력이 주도하는 우경화의 종착지는 결국 보수·수구 동맹의 장기집권이다. 홍문종 새누리당 사무총장은 지난 10월 8일 “나라 돌아가는 꼴을 보니 20년 더 (집권)해야 한다”며 본심을 드러낸 바 있다.

이나미 교수는 수구·극우세력의 이념전쟁은 교육적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분석한다. 전교조 법외노조화를 통해 진보적 교육기회를 차단하고, 교학사 교과서와 언론매체를 이용한 ‘독재시대 재평가’를 통해 이승만·박정희 시대가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었다’는 관념을 퍼뜨리겠다는 것이 이념전쟁의 목적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 교수는 이념전쟁으로는 ‘보수 장기집권’이라는 실리를 챙기기 어려울 것으로 봤다. 그는 “이념적인 색채가 강해지면 오히려 역풍이 불 수도 있다. 박정희 옹호논리의 핵심은 경제발전인데, 같은 논리라면 전두환 정권도 재평가하자는 말이 학자들 중심으로 나올 수도 있다. 박정희 시대를 경험했지만 합리적인 사고가 가능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박정희 미화가 지나친 것 아니냐’는 의견이 슬슬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중도보수적인 학자로 알려진 윤평중 한신대 교수의 발언이 그렇다. 윤 교수는 10월 29일 MBC라디오에서 박정희 찬양 발언에 대해 “퇴행적인 또는 수구적인 성격이 강한 발언은 (…) 오히려 박근혜 정부에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또한 윤 교수는 “10월 유신은 대한민국의 헌정질서와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극심한 인권탄압을 동반했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과 과를 냉철히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지난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은 좌파적인 ‘경제민주화’ 구호를 수용하고, 기초연금 공약을 내세우는 등 실리주의자적인 면모를 보였지만 지금은 수구주의자에 가깝다고 본다”며 “우리 근현대사를 되돌아보면 반동적 원칙만을 고수해온 집단은 결국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고 덧붙였다.


출처 : 박근혜 시대의 우경화… 장기집권 노린 이념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