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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노동과 삶

중앙대에 나붙은 '100만 원짜리 대자보'

중앙대에 나붙은 '100만 원짜리 대자보'
학교가 청소노동자 상대로 법원에 '간접강제신청' 한 사실 알려지자 반발
[오마이뉴스] 유성애 | 14.01.04 09:38 | 최종 업데이트 14.01.04 15:18


[기사 보강: 4일 오후 2시 50분]

중앙대가 파업 중인 청소노동자가 교내 대자보를 붙일 경우 1인당 100만원씩 내게 해달라고 법원에 신청한 가운데, 중앙대 학생들이 "이 자보는 100만 원짜리"라며 학교 측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붙여 화제다.

'이건 백만원짜리 자보... 누구나 말할 수 있는 학교 됐으면' 중앙대가 파업 중인 청소노동자가 교내 대자보를 붙일 경우 1인당 100만원씩 내게 해달라고 법원에 신청한 가운데, 한 중앙대 학생이 "이 자보는 100만 원짜리"라며 학교 측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붙여 화제다. ⓒ 중앙대 학생 제공

이는 3일 <한겨레> 등 언론 보도를 통해, 중앙대가 청소노동자들이 학교 건물에서 구호를 외치거나 대자보를 붙일 경우 1인당 100만 원씩 학교에 지불하게 하는 '간접강제신청'을 지난달 23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한 사실이 밝혀진 데 따른 것이다.

해당 대자보는 전지 3장 분량으로 같은 날 오후 10시 10분께 정문 쪽 교양학관 건물과 법학관 건물 옆 등 학교 내 두 곳에 부착됐다. 학생들은 자보에 풍자의 의미로 '100만원'짜리 게임화폐를 붙이기도 했다. 친구 두 명과 함께 이 대자보를 붙인 K씨(24)는 4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친구들이 많을 것"이라며 익명을 요구했다.

K씨는 "학교는 이걸 '업무방해 금지 신청'이라고 해명하지만, 어쨌든 청소노조 측의 의사표현에 '100만원' 가격표를 붙인 건 부정할 수 없으며 이는 매우 부당하다"고 말했다. 이어 "상대적으로 약자인 노동자들이 교섭권이나 발언권을 얻으려면 이런 식의 방법밖에 없음에도, 학교는 '업무방해'로만 몰아세우며 그분들이 왜 농성을 하는지는 말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는 "중앙대는 이전에도 학교에 비판적인 포스터는 부착을 금지하는 등 학생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측면이 있었다, 그래서 청소노동자분들을 지지하는 한편 중앙대 내 표현의 자유에 관해 지적한 것"이라며 "원청인 중앙대가 청소노동자분들을 중앙대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지역서비스지부 중앙대분회 조합원 40여 명은 근로환경 개선 등을 요구하며 지난해 12월 16일부터 파업 중이다. 이 과정에서 한 조합원이 학생들에게 "파업 중이라 깨끗하게 못해줘서 미안해요"라고 직접 쓴 자보를 남기고, 학생들이 "불편해도 괜찮다"며 화답하는 대자보를 붙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누구나 말할 수 있는 공간이 대학인데... 말 할 때마다 백만 원씩?"

'이건 백만원짜리 자보... 누구나 말할 수 있는 학교 됐으면' 중앙대가 파업 중인 청소노동자가 교내 대자보를 붙일 경우 1인당 100만원씩 내게 해달라고 법원에 신청한 가운데, 한 중앙대 학생이 "이 자보는 100만 원짜리"라며 학교 측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붙여 화제다. ⓒ 중앙대 학생 제공

학생은 대자보를 통해 "2014년을 맞은 지 사흘 만에, 언론보도를 통해 학교 본부가 청소노동자들에게 교내 자보를 붙이면 백만 원씩 배상하라고 했다는 기사를 봤다"며 "그래서 이 자보는 백만 원짜리 자보"라고 썼다.

학생은 "홍보실은 학내 커뮤니티에 '배상을 신청한 게 아니라 불법 판결 후에도 퇴거하지 않을 때 할 수 있는 요구'라 밝혔지만, 그럼에도 학교가 앞으로 청소노동자들이 구호·현수막·대자보로 내려는 목소리에 '백만 원'이라는 딱지를 붙인 건 부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정신없는 시험기간, 우리는 '깨끗하게 못해줘서 미안해요'라는 (청소노동자의) 자보를 보고 무엇을 느꼈었나요"라며 "그런데 앞으로 그들이 자보로 말을 걸 때마다 백만 원씩 내야 할지도 모른답니다"라고 썼다.

'파업 중이라.. 미안합니다' 12월 말, 파업 중이던 한 청소노동자가 학생들에게 "시험기간인데 깨끗하게 못 해줘서 미안해요"라고 직접 쓴 자보를 남겨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학생들은 "괜찮다, 힘내시라"며 응답하는 대자보를 붙였다. ⓒ 트위터사용자(@ewooo*****)

학생은 "불과 얼마 전 우리는 서로 '안녕'을 묻는 자보를 나누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전하고 서로 하고 싶은 말을 나누는 것의 소중함을 알았다"며 "대학은 누구나 말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함에도, 오늘의 중앙대학교는 이들의 말할 기회마저도 백만 원짜리 가격표를 붙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누구나 말할 수 있는, 수중에 백만 원이 없어도 자보를 붙일 수 있는 대학에 다니고 싶다"며 "중앙대가 모든 구성원들이 안녕한 대학이었으면 좋겠다"고 대자보를 마무리했다.

아래는 중앙대에 붙은 대자보 전문이다.

이것은 백만 원짜리 자보입니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하지만 중앙대 청소노동자들은 새해에도 여전히 농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나마 작년에는 본관 건물 안이었지만, 새해에는 추운 겨울 야외의 천막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2014년을 맞은 지 사흘 만에, 우리는 어떤 언론보도를 접했습니다. 학교 본부가 청소노동자들이 교내에서 구호를 외치거나 자보를 붙이면, 백만 원씩 배상하라고 법원에 신청했다는 기사였습니다.

그래서 이 자보는 백만 원짜리 자보입니다.

홍보실은 즉각 학내 커뮤니티에 '오해의 여지가 있다'며, '배상을 신청한 것'이 아니라 '불법을 판결 받은 후에도 퇴거하지 않을 때 1회당 100만원씩' 본부에 지급하게 해달라는 '일종의 요구'라고 밝혔습니다. 맞습니다. 이것은 소송이 아니라 가처분 신청입니다. 그럼에도 본부가 앞으로 청소노동자들이 구호로, 현수막으로, 피켓으로, 벽보로, 대자보로 담고자 하는 목소리에 '백만 원'이라는 딱지를 붙였음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간 만나지 못했던 청소노동자들을 서툰 글씨의 자보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정신없는 시험기간, 그들의 파업으로 지저분해진 캠퍼스에 잔뜩 짜증을 부리고 있던 우리는 '깨끗하게 못해주어서 미안해요'라는 자보를 보고 무엇을 느꼈었나요. 그런데 앞으로 그들이 우리에게 자보로 말을 걸 때마다 백만 원씩 내야 할지도 모른답니다.

대학은 어떤 공간입니까. 중앙대학교는 어떤 대학입니까. 불과 얼마 전, 우리는 서로 안녕을 묻는 자보를 나누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전하는 것, 서로 하고 싶은 말을 나누는 것의 소중함을 알았습니다. 대학은 그런 공간이어야 합니다. 하고 싶은 말, 해야 하는 말, 그러나 하지 못해왔던 말을 누구나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의 중앙대학교는 청소노동자들의 살아보자는 외침마저도 외면하고, 이들의 말할 기회마저도 백만 원짜리 가격표를 붙이고 있습니다.

저는 누구나 말할 수 있는 대학, 수중에 백만 원이 없어도 자보를 붙일 수 있는 대학에 다니고 싶습니다. 모든 구성원들이 안녕한 대학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중앙대가 이런 대학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백만 원짜리 자보를 씁니다.

의혈의 이름으로


출처 : 중앙대에 나붙은 '100만 원짜리 대자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