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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박정부 사제단 압박, 일제총독이 즐겨 쓰던 협박

박근혜 사제단 압박, 일제총독이 즐겨 쓰던 협박
[자주민보] 김행수 전 사립학교개혁국민운동본부 정책국장 | 기사입력: 2013/11/30 10:27


▲ 국민들에게 '용납않겠다'는 말을 너무 쉽게 내뱉는 박근혜 정부. © 자주민보

박근혜의 사퇴를 촉구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시국미사에서 박창신 신부가 한 발언 중 NLL과 연평도 관련 부분만 침소봉대하여 박근혜, 정홍원 총리, 황우여 대표에서 윤상현, 김태흠, 유승민 등등으로 이어지는 새누리당 의원과 어버이연합과 고엽제전우회 등 보수단체들까지 집단으로 나서서 사제에게 막말과 협박을 쏟아대고 있다.

다수의 총공세라 할 만한 십자포화다. 그러면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과 박창신 신부의 조국이 어디냐?”고 묻는다. ‘구속시키라’는 구호는 점잖은 편이고, 성당에 난입을 시도하며 화형식이 진행되고, ‘즉각 사형에 처하라.’는 끔찍한 구호까지 등장했다. 무법천지다.

가장 섬뜩한 것은 “국민을 분열시키는 시도를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박근혜의 협박이다. ‘종북구현사제단’이니 “그들의 조국이 어디인지 의심스럽다”는 총리와 새누리당 지도부의 ‘종북타령’, ‘조국타령’이다. 정작 자기 국민에게 조국이 의심스럽다는 총리가 일제 침략 미화 의혹을 받고 있는 교과서에 대해서는 “질문지를 미리 받지 않아 대답하기 어렵다”고 꽁무니를 빼서 ‘어느 나라 총리냐?’는 비아냥을 듣는 코메디가 동시에 벌어진다.

대통령과 새누리당, 자칭 보수세력들의 시각으로 보면 NLL이나 천안함, 연평도 포격 등에 대해서 조금의 의문만 가져도 ‘종북주의자’가 되고, 대통령 선거 부정에 대해 말만 하면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비국민’이 된다. 끔찍한 ‘딱지붙이기’, 있어서는 안 되는 ‘국민 편가르기’이다.


‘비국민’ 협박은 일제 총독이나 하던 짓이다

이제 국민의 자격을 따지는 시대가 다시 이 땅에 도래한 것이다. 사실, 지배층과 다른 견해를 가진 국민들에 대해서 ‘조국이 어디냐, 국민 아니다.’라는 질문은 과거 일제강점기 조선총독이 조선 백성들에게 하던 협박이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비국민(非國民)』을 찾아보면 “일제 강점기에, 황국신민(皇國臣民)으로서의 본분과 의무를 지키지 않는 사람을 통치 계급의 관점에서 이르던 말”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사전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일제 지배에 반대하거나 이에 저항하던 조선인들을 주로 지칭하던 것으로 ‘황국신민이 아니다’라는 의미라는 점은 공통적이다.

그래서 “여기가 전쟁터라면 너 같은 ‘비국민’은 벌써 일본도로 두 조각을 내 버렸다!”(장용학, 위사가 보이는 풍경)이나 “이 자식, ‘비국민’이라고! 그럼 넌 충량한 황국신민이란 말이로구나”(이병주, 지리산)라는 용례로 문학작품들에서 사용되었다고 나와 있다.

이와 비슷한 의미의 단어로 ‘불온한 조선 사람’이라는 뜻하는 『불령선인(不逞鮮人)』이 있었는데 일제와 그 앞잡이들이 그들의 말을 따르지 않는 조선인을 지칭하던 말이다. 그러니까 일제 침략에 고분고분히 따르던 친일파는 ‘국민’이고, 일제 침략에 저항하면 ‘국민’이 아니었다.

독립운동가는 당연히 비국민이고, 창씨개명을 하지 않거나, ‘국민총동원령’에 따른 징병이나 징용에 협조하지 않는 조선인이 모두 ‘불령선인’으로 분류되었다. ‘비국민’, ‘불령선인’으로 분류되는 것만으로 사찰 감시의 대상이 되고 체포 고문을 받았다. 공무원은 꿈도 못 꾸었으며 취직도 제한되고, 심지어 우편물 배달도 해주지 않았다. 나아가 ‘비국민, 불령선인’의 아이들은 학교에서 쫓겨나거나 매를 맞아야 했다.

이것이 일제가 파견한 조선총독이 한민족의 국민 자격을 따지던 일제강점기 조선의 슬픈 풍경이다. 그런데 일제 잔재인 ‘국민 자격 따지기, 비국민 편가르기’라는 못된 버릇이 종북척결이라는 미명하에 100년만에 이 땅에 다시 부활했다.

▲ 총리까지 나서서 정부 비판하는 국민들을 종북으로 낙인찍어 압박. © 자주민보

일제 강점기의 비국민, 불령선인은 이승만-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사정부 시절에는 불순분자, 또는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생명을 유지하더니 이제는 종북좌빨로 포장을 바꿔서 완전히 부활했다. 이렇게 불리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부패한 정권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들이고, 그들에게 가장 비타협적으로 싸우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이승만에게는 3.15부정선거에 항의하던 마산시민이 불순분자이며, 박정희에게는 4.19에 함께한 학생과 시민들이 빨갱이를 이롭게 하는 이적행위자들이었고, 전두환에게 5.18 광주시민들 역시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독재에 저항한 모든 국민들이 사회혼란을 부추기며 북한공산집단을 이롭게 하는 집단, 그러니까 일제에게 불령선인 같이 ‘국민 아닌 비국민’으로 규정됐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사라지는가 했던 이 비국민 규정이 이명박 정부에서 다시 부활했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부 발표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며 유엔안보리에 보고서를 보낸 참여연대에 대해서 정운찬 총리가 직접 나서서 “어느 나라 국민인지 의문이 생긴다”고 비국민 취급을 하였으며, 당시 한나라당 원내대표인 김무성 의원은 “이런 사람들을 국민이라 말 할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며 난리를 폈고 지금과 똑같이 보수단체들은 참여연대 사무실에 몰려가서 난동을 부렸으며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정몽준 전 대표는 당시 유시민 경기지사 후보에 대해서 ‘(대한민국) 국민 자격이 없다.’고 비난했다.

새누리당의 김진태 의원은 "이번에 파리에서 시위한 사람들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도록 하겠습니다. (…) 그걸 보고 피가 끓지 않으면 대한민국 국민 아닐 걸요"라면서 대선 부정 의혹을 제기하며 프랑스 파리에서 시위를 한 이들에게 대한민국 국민 아니라고 했다. 그러더니 이번에 정의구현사재단과 박창신 신부에게 대통령부터 동시다발적으로 비국민 편가르기를 하고 있다. 3년 전 천안함 사건 때 있었던 일이 데자뷔처럼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의 ‘불령선인’이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불순분자, 빨갱이’로 창씨를 개명하더니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 이르러서는 ‘종북(주의자)’로 다시 포장을 바꾸었다. 모두를 관통하는 이름이 ‘국민 아님’, 즉 비국민이다. 결국 ‘불령선인’부터 ‘불순분자’, ‘빨갱이’를 거쳐 오늘날 ‘종북’에 이르기까지 비국민은 포장만 바꾼 채 딴이름 한소리로 살아남아서 국민을 탄압하고 있는 것이다.


조국을 비판하지 않는 자 조국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정치적 견해와 이념적 지향이 다르다고 대뜸 "어느 나라 국민이냐? 조국은 어디냐?"고 국민들을 협박하는 권력은 자유민주주의를 말할 자격이 없다.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이 정치적 견해가 다름을 관용하는 것이고, 이를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국민 아니라고 협박하는 것이 바로 파쇼이고 독재이다. 달리 말해, 정의구현사제단과 박창신 신부에게 비국민 십자포화를 쏘아대는 자칭 보수들의 행태는 어쩌면 보수가 아니라 파쇼집단, 전체주의라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다.

브라질의 유명한 사회운동가이자 신부였던 돔 헬더 까마라 주교는 “가난한 사람에 대한 교회의 책임을 말하며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고 말하자 나를 성자라고 불렀다. 그러나 내가 가난의 원인을 따지며 가난을 만드는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고 하자 나를 공산주의자라고 했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분명 천안함 사건이나 연평도 사건에서 죽은 군인들과 민간인들의 생명은 소중한 것이다. 그래서 국민성금을 모아서 또는 세금으로 이들의 유족을 돕자고 하는 것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며 칭찬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서해교전과 연평도 사건의 원인인 NLL 문제를 해결하자고, 군사행동 대신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나 서해공동어로를 제안한 노무현 대통령에 동조하는 것이 왜 종북이 되고, 비국민이 되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독일 통일 후 첫 독일 대통령(1994~1999)이 된 로만 헤어초크는 독일 대통령 선거(독일은 의원내각제라서 우리와 달리 대통령을 연방의회에서 간선으로 뽑음)를 앞둔 어느 날 TV 토크쇼에서 “독일을 사랑하십니까?”라는 진행자의 질문에 “나는 아내를 사랑하지만 결혼 제도를 사랑하지는 않는다”라고 대답했다.

우리 정치인 같으면 ‘내가 나라를 얼마나 사랑하느냐 하면...’으로 시작해서 날밤을 새워서 자신의 애국심을 증명하려고 했을 것이다. 만약, 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면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이 애국심이 없다면서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러나 법률가 출신의 보수정치인인 헤어초크가 보기에 독일이라는 국가는 사랑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결혼과 같은 제도일뿐이었다. 그가 사랑하는 것은 독일이라는 국가가 아니라 아내와 같은 독일 국민들이었던 것이다.

헤르초크의 대답을 직설적으로 바꾸면 “나는 사람(독일 국민)을 사랑하지만 독일(이라는 국가)을 사랑하지는 않는다”로 된다. 이것이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국가관이며, 이것이 진정한 보수정치인의 모습 아닌가? 국가는 국민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강요할 자격이 없다. 맹목적인 애국주의만큼 위험한 것이 없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나치 독일과 일본 군국주의, 미국의 매카시즘이 잘 증명해주고 있다.

러시아의 시인 니콜라스 네크라소프의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시구처럼 박근혜 당선의 부정선거 의혹에 분노하는 정의구현사제단과 박창신 신부며 분노하는 이들도, 전교조 노조 아님 통보에 분노하는 교사들도, 그리고 위헌정당 해산 심판 청구에 분노하는 진보당 당원들도 모두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후퇴에 슬퍼하고 노여워하는, 그래서 조국을 사랑하는 대한민국 국민임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국민을 비난하는 정권은 그 자체로 무자격

외국 사례가 나온 김에 마지막으로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꼭 명심했으면 하는 할 외국 사람의 말씀 한 가지만 더 전한다.

미국의 진보학자 하워드 진은 “내가 사랑하는 것은 조국, 그리고 국민이지 어쩌다 정권을 잡게 된 정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일시적으로 청와대의 주인이 된 정권이 ‘조국’ 그 자체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정권이 국민에게 정권에 충성할 것을 요구할 수는 없다. 근대 이후의 민주국가에서 ‘짐은 곧 국가다.’라는 전제군주 시대의 국가관은 설 자리가 사라진지 오래다.

정권과 국가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정권은 국민의 선택에 의하여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그러므로 정권에 대한 비판은 국민이 가지는 당연한 권리 행사이다. 가장 극단적 구호인 ‘정권 퇴진’ 요구 역시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정의구현사제단은 박근혜 정권 뿐 아니라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도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며 정권 퇴진 운동을 천명한 바 있다.

국민은 대통령과 정권을 비난할 수 있지만 정권은 국민을 비난할 권리가 없다. 국민을 비난하는 정권은 그 자체로 정치권력을 누릴 자격이 없다. 정권을 비판하는 국민을 비국민 취급하는 것은 일본제국주의와 친일파의 지배 논리이며, 군사정권 시기의 시대착오적 관점이다.

그래서, 2013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수준이 유신시대를 건너 일제강점기로 점프해버린 느낌이다. 전제군주를 이상적인 대통령의 상으로. 왕권신수설을 이상적인 통치론으로 보지 않는다면 2013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판세력, 특히 전교조와 진보당, 그리고 현재의 정의구현사제단과 박창신 신부에 대한 종복몰이는 당장 멈추어야 한다.


출처 : 박정부 사제단 압박, 일제총독이 즐겨 쓰던 협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