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 방해자 ‘대한문 대통령’은 어떻게 승진했나?
[토요판] 뉴스분석 왜? / ‘대한문 대통령’ 최성영의 승진
[한겨레] 허재현 기자 | 등록 : 2014.01.24 20:09 | 수정 : 2014.01.25 12:26
▶ ‘대한문 대통령’이란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최성영 남대문경찰서 경비과장을 두고 시민들이 붙인 별명입니다. 서울 대한문 앞에서 열리는 집회는 늘 이분이 맡아 관리를 해왔지요. 이번 경찰 인사 때 총경으로 승진했는데, 이를 두고 뒷말이 많습니다. 왜 시민들은 이분의 승진을 못마땅해하는 것일까요. <한겨레>가 논란이 되고 있는 최성영 경비과장의 행적을 짚어보았습니다.
지난 14일 오전 11시 서울 정동 민주노총 건물 입구. 제복을 갖춰입은 의경 부대가 건물 출입구를 둘러쌌다. 파업을 벌였던 철도노조 간부들이 경찰서로 자진 출두한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현장 지휘는 최성영 남대문경찰서 경비과장이 맡고 있었다. 긴장감이 감돌았다.
주봉희 민주노총 부위원장이 건물 앞에서 최 과장과 어색한 인사를 나눴다. “당신, 우리 때문에 이번에 진급한 거니까 밑의 애들(의경)한테 좀 잘해요.” 최 과장은 씩 웃을 뿐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지난달 22일 최성영 경비과장은 압수수색 영장 없이 민주노총 건물에 경찰력을 투입해 철도노조 간부 체포를 시도해 논란이 일었다.
잠시 뒤 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과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건물 앞으로 나왔다. 건물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의경들이 김명환 위원장 쪽으로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이크를 든 한 남성이 다급하게 외쳤다. “경찰에 경고합니다. 여기는 합법적으로 집회 신고한 장소입니다. 경찰은 빠져주십시오.”
최성영 경비과장이 혼잣말을 했다. “가만있어봐. 여기 집회 신고 때 몇명 참석한다고 했지?” 인근에 대기하고 있던 경찰버스로 달려갔다. 이어 그의 목소리가 버스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여러분은 신고한 30명의 인원보다 더 많이 모여 있습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위반하여, 남대문 경찰서장의 명을 받아 경비과장이 1차 해산명령을 발합니다.”
집회 신고 인원보다 20여명 더 모였다고 집회를 금지시키는 것은 남대문경찰서뿐이다. 김명환 위원장과 모여 있던 50여명의 노조원들 표정이 일그러졌다. 철도노조 간부들은 인사말을 끝낸 뒤 10여m를 걸어 경찰차에 자진해서 올라탈 예정이었다. 최 경비과장은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11시 25분께 그는 다급한 목소리로 “52, 54(의경 중대) 들어가”라고 지시했다. 의경들이 노조원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나고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마이크를 든 한 남성이 “경찰들의 불법적인 집회 장소 난입으로 오늘 계획한 모든 일정을 취소합니다”라고 외쳤다. 철도노조는 경찰 자진출두를 일시적으로 연기했고 김 위원장 등은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최성영 경비과장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철도노조 간부 11명은 오후 5시께 건물 밖으로 나와 밖에서 대기중이던 경찰 승합차 5대에 나눠 타고 경찰서로 갔다.
이날은 최 경비과장이 남대문경찰서에서 마지막으로 현장 지휘를 하는 날이었다. 지난 몇년간 서울 도심의 중요 경비업무를 맡으며 숱한 논란을 일으켰던 경비과장의 마지막 업무였지만 이를 알아차린 사람은 많지 않았다.
최성영(50·경정) 경비과장은 10일 경찰청 인사 때 총경 승진 대상으로 발표됐다. 이제 그는 일선 경찰서의 서장이 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남대문서 경비과장 업무도 지난주로 마무리됐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를 졸업한 그는 1992년 경찰 임용시험에 합격한 뒤 일선 경찰서에서 두루 근무해왔다. 2006년 경정으로 승진해 강원지방경찰청 동해경찰서 생활안전과장을 지내다가 2008~2010년 서울지방경찰청 1기동단 부단장을 맡았다. 2008년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촛불집회가 벌어졌을 때 전경부대를 직접 지휘했다. 2010년 2월 1일 서울지방경찰청 중부경찰서 경비과장으로 부임한 뒤 2011년 1월 14일부터 최근까지 남대문경찰서 경비과장으로 일해왔다.
최성영 경비과장의 총경 승진 소식이 알려지자 그간 서울 도심에서 경찰의 공권력 남용과 집회 자유 축소를 우려해온 시민단체들은 성명을 내어 경찰의 결정을 강하게 비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와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등은 10일 낸 성명서에서 “남대문의 ‘아돌프 아이히만’(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의 실무 책임자)인 최성영 경비과장을 총경으로 승진시키면서 박근혜 정권이 ‘헌법과 법률을 근거로 공권력을 집행하지 않고 오직 정권의 말만 잘 들으면 승진시킨다’는 방침을 선언했다”고 비판했다.
일선 경찰서 경비과장의 승진에 대해 시민단체들이 공개적으로 성명까지 내어 비판한 것은 이례적이다. 최성영 경비과장이 비판받는 데에는 그의 지난 몇년간의 문제성 행적 때문이다. 비록 서울 도심 경비 책임자이긴 했으나 우리 사회가 합리적으로 찾아온 집회 관련 상식과 법률적 판단을 최 경비과장이 스스로 무너뜨려왔다는 비판을 받는다.
예를 들면 이런 경우다. 대한문 앞에서 몇명의 시민이 쌍용차 해고자 복직을 기원하는 촛불을 들고 서 있는다. 어떤 ‘사회적 안녕’을 해치지 않아도 미신고 집회라는 이유로 강제 해산시킨다. 남대문경찰서는 지난해 대한문 앞 집회 신고를 받아주지 않는 때가 많았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은 집회를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로 못박고 있지만 남대문경찰서에는 이 법률이 통하지 않는 때가 많다.
법원(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은 지난달 6일 ‘대한문 앞 집회를 금지한 것은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헌법이 보장한 집회의 자유란 누구나 어떤 장소에서 자신이 계획한 집회를 할 것인가를 원칙적으로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어야 비로소 보장된다’고 밝혔다. 최성영 경비과장은 현재까지 아무런 해명이 없다.
“경비과장이 해산명령 발합니다”
신고 인원보다 20명 더 있다고
철도노조 간부 자진출두 집회
경찰 투입해 해산시킨 최성영
이것은 그의 마지막 업무였다
남대문의 ‘아돌프 아이히만’
‘대한문 대통령’ 별명처럼
법원이 인정한 대한문 집회마저
무소불위 공권력 내세워 방해
그 공 인정받아 총경 승진했나
최성영 경비과장이 집회를 해산하거나 쌍용차 희생자 분향소 물품 등을 압수할 때 수시로 들고나온 법적 근거는 ‘즉시 강제 행정’ 조항이었다. 시민들이 ‘압수 근거가 뭐냐’고 항의하면, 최 경비과장이 입버릇처럼 내뱉은 설명이었다. 분향소의 촛불, 밥그릇, 영정사진, 방석, 천막 등을 압수할 때 모두 같은 설명을 했다.
이는 경찰관직무집행법 6조 1항에 따른 것인데, 이 법은 ‘범죄행위로 인하여 신체에 위해를 미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어 긴급을 요하는 경우 행위를 제지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분명 이 법은 매우 엄격한 조건에서만 경찰이 시민의 행위를 제지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지만, 최 경비과장은 이러한 사실을 시민들에게 설명한 적이 없다.
시민들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단순히 모여 있기만 하는 경우에는 집회 해산 명령을 발동하기 어렵다. 이럴 때 최 경비과장이 들고나오는 논리는 ‘보호조치’ 또는 ‘위험발생 방지조치’였다.
그는 경찰관직무집행법상 ‘보호·방지 조치’라고 설명하며, 의경들에게 시민들의 사지를 강제로 들어 다른 곳으로 옮기도록 명령해왔다. 얼핏 불법 강제연행처럼 비치지만 가까운 곳에 다시 놓아주기 때문에 꼭 그렇지도 않다.
경찰관직무집행법 4조(보호조치)는 ‘경찰은 수상한 거동 기타 주위의 사정을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응급의 구호를 요한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자를 발견한 때는 적당한 조치를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경찰관직무집행법 5조(위험발생 방지)는 ‘경찰관은 인명 또는 신체에 위해를 미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천재, 사변, 공작물의 손괴, 교통사고, 기타 위험한 사태가 있을 때 위해를 받을 우려가 있는 자를 필요한 한도 내에서 억류하거나 피난시키는 것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의 내용을 잘 살펴보면 해당 조항들은 ‘응급 구호가 필요한 사람들이나 위험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경찰이 도울 수 있다’는 취지이지, 모여 있는 사람들을 강제 해산시키기 위해 마련된 조항이 아니다.
경찰관직무집행법 제1조는 ‘경찰관의 직권은 그 직무수행에 필요한 최소한도 내에서 행사되어야 하며 이를 남용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최성영 경비과장이 보여온 근무방식은 경찰관직무집행법 1조 위반 가능성이 짙다.
이렇게 공권력 남용 논란이 수년간 계속되자 시민들은 최성영 경비과장에게 ‘대한문 대통령’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서울 도심에서 공권력이 법률을 무시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한다는 비판적 함의가 담겨 있다.
보다 못한 시민들은 경비 작전을 펴던 최성영 경비과장을 현행범으로 체포하려 시도한 적도 있다. 지난해 7월 25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대한문 앞에서 ‘집회의 자유를 찾기 위한 시민 캠페인’이라는 이름의 집회를 열려다가 최성영 과장의 제지를 받았다. 합법적 신고를 한 집회였지만 최 과장은 ‘집회 참가자 일부가 신고된 집회장소 밖으로 현수막이 삐져나와 불법집회’라는 논리를 폈다.
민변 권영국 변호사 등은 최 과장이 집회를 방해한 현행범이라며 시민들과 함께 이날 최성영 경비과장을 체포했다. 최 과장도 ‘당당하게 검찰 조사 받겠다’고 대답해 시민들이 최 과장의 팔을 붙잡고 20m가량 숭례문 쪽으로 데려가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오랫동안 대한문 앞 상황을 지켜봐 온 권영국 변호사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최성영 과장에게 아무리 집회 관리 방침에 대한 대법원 판례를 설명해주어도 변화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경찰의 공무집행은 법률과 판례에 따라야 하는데 최 과장은 그것을 신경쓰지 않는다. ‘억울하면 고소하라’는 말뿐이다. 그를 만나면 경찰조직에 절망감을 느끼게 된다”고 비판했다.
집시법 3조와 22조는 ‘누구든지 평화적인 집회를 방해하거나 질서를 문란하게 하여서는 안된다. 경찰관이 이를 위반하는 경우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민변과 장하나 국회의원 등은 최 경비과장을 5차례 직권남용, 집시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소했지만 검찰은 한 건도 기소하지 않은 상태다. 재판정에서 최 경비과장의 공무 방식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릴 기회를 시민들은 제대로 가져보지 못했다.
최성영 경비과장은 이외에도 2008년 6월 서울 도심 촛불집회 현장에서 벌어졌던 ‘서울대 이나래 학생 군홧발 폭행 사건’(2008년 6월 1일 새벽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에 참석했던 여대생이 전투경찰에게 머리채를 붙잡혀 내동댕이쳐진 뒤 군홧발에 여러 차례 밟힌 사건. 2010년 4월 법원은 피해자에게 배상 판결을 함) 당시 해당 전경 부대를 지휘한 책임자였다.
최 경비과장은 사건이 벌어지기 하루 전날 오후 시위 진압에 나서는 경찰기동대에게 “노약자·여성·장애인을 때리는 모습이 (언론사) 카메라에 찍히면 우리가 당한다. 그런 모습이 찍히지 않도록 하고, 그런 모습 찍히면 고참들이 커버를 하라”고 명령하기도 했다. 당시 군홧발 폭행 사건과 최 경비 과장의 발언은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지만, 그는 이에 대한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았다.
최 경비과장의 업무 방식에 관해선 경찰 내부에서도 일부 비판적 시선이 있다. 서울 한 경찰서의 경비과장은 “최성영 경비과장의 현장 지휘는 법치주의 왜곡이라고 볼 수 있다. 서울 도심 치안을 잘 관리했다는 평가는 내부에서 받을 수 있겠으나, 소송을 당해 법원으로 사건이 넘어가면 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 도심의 경찰서 경비과장에 임명되면 누구라 하더라도 최성영 경비과장처럼 하게 될 것이란 시선도 있다. 한 경비과장은 “서울 도심에서 집회가 제한되길 바라는 게 정부의 방침이고 많은 국민들이 그것을 지지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법치주의를 무시하고 경찰이 집회를 막는 것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최 경비과장은 올해 총경 승진 심사를 걱정할 때가 많았다. 경찰 조직에서는 ‘계급 정년’이라는 관행이 있다. 경정 승진 이후 6~8년 안에 총경에 승진하지 못하면 사실상 퇴직을 선택해야 한다. 최 경비과장은 지난해 경정 근무 8년째여서 올해 승진하지 못하면 퇴직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었다. 승진에서 누락될 위기에 처하느니 사회적으로 논란은 될지라도 도심 집회를 강하게 통제하는 것이 최 경비과장에게는 퇴로의 여지가 없는 선택지였을 것이라는 게 경찰 안팎의 시선이다.
최성영 경비과장은 자신을 겨냥한 비판적 시선들을 잘 알고 있다. 인터넷 검색도 열심히 한다. 13일 남대문경찰서 경비과장실에서 기자와 만난 그는 “권은희 송파서 수사과장과 나를 비교하며 누리꾼이 또 비판 글을 남겼다”며 속상해했다. 그는 억울해했다. 기자가 “도심 집회를 너무 심하게 통제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곧바로 ‘통제라는 말을 쓰지 말라’고 반박했다. 그는 “집회를 통제하는 게 아니라 보호하는 것이 내 업무다. 불법 집회에 한해서만 경찰이 개입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최 경비과장은 경찰로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을 국민에게 설명하고 싶어했다. <한겨레>와의 인터뷰도 지난해부터 협의해왔다. 그는 총경 승진 이후를 인터뷰 시점으로 요구했다. 최 경비과장은 13일 <한겨레>와 인터뷰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그러나 인터뷰 약속 날짜인 17일이 되자 ‘많은 중압감으로 너무 힘들다’고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보낸 뒤 기자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최 경비과장은 20일 총경 연수를 떠났다.
장하나 민주당 의원은 “최 경비과장은 법치주의를 무시해왔기 때문에 승진이 아니라 내부 징계 대상이다. 이런 사람이 오히려 승진한 것은 박근혜 정부 경찰 조직에 총체적인 문제가 있음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출처 : 집회 방해자 ‘대한문 대통령’은 어떻게 승진했나?
[토요판] 뉴스분석 왜? / ‘대한문 대통령’ 최성영의 승진
[한겨레] 허재현 기자 | 등록 : 2014.01.24 20:09 | 수정 : 2014.01.25 12:26
▲ 지난해 12월17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정동빌딩에 위치한 민주노총 사무실에 들어가려던 서울 남대문경찰서 최성영 경비과장이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 떠밀려 쫓겨나고 있다. 이날은 철도노조 집행부에 대한 강제구인 소식이 전해진 날이었다. 류우종 기자 |
▶ ‘대한문 대통령’이란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최성영 남대문경찰서 경비과장을 두고 시민들이 붙인 별명입니다. 서울 대한문 앞에서 열리는 집회는 늘 이분이 맡아 관리를 해왔지요. 이번 경찰 인사 때 총경으로 승진했는데, 이를 두고 뒷말이 많습니다. 왜 시민들은 이분의 승진을 못마땅해하는 것일까요. <한겨레>가 논란이 되고 있는 최성영 경비과장의 행적을 짚어보았습니다.
지난 14일 오전 11시 서울 정동 민주노총 건물 입구. 제복을 갖춰입은 의경 부대가 건물 출입구를 둘러쌌다. 파업을 벌였던 철도노조 간부들이 경찰서로 자진 출두한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현장 지휘는 최성영 남대문경찰서 경비과장이 맡고 있었다. 긴장감이 감돌았다.
주봉희 민주노총 부위원장이 건물 앞에서 최 과장과 어색한 인사를 나눴다. “당신, 우리 때문에 이번에 진급한 거니까 밑의 애들(의경)한테 좀 잘해요.” 최 과장은 씩 웃을 뿐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지난달 22일 최성영 경비과장은 압수수색 영장 없이 민주노총 건물에 경찰력을 투입해 철도노조 간부 체포를 시도해 논란이 일었다.
잠시 뒤 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과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건물 앞으로 나왔다. 건물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의경들이 김명환 위원장 쪽으로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이크를 든 한 남성이 다급하게 외쳤다. “경찰에 경고합니다. 여기는 합법적으로 집회 신고한 장소입니다. 경찰은 빠져주십시오.”
총경 승진 반발한 시민단체들의 비판 성명
최성영 경비과장이 혼잣말을 했다. “가만있어봐. 여기 집회 신고 때 몇명 참석한다고 했지?” 인근에 대기하고 있던 경찰버스로 달려갔다. 이어 그의 목소리가 버스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여러분은 신고한 30명의 인원보다 더 많이 모여 있습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위반하여, 남대문 경찰서장의 명을 받아 경비과장이 1차 해산명령을 발합니다.”
집회 신고 인원보다 20여명 더 모였다고 집회를 금지시키는 것은 남대문경찰서뿐이다. 김명환 위원장과 모여 있던 50여명의 노조원들 표정이 일그러졌다. 철도노조 간부들은 인사말을 끝낸 뒤 10여m를 걸어 경찰차에 자진해서 올라탈 예정이었다. 최 경비과장은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11시 25분께 그는 다급한 목소리로 “52, 54(의경 중대) 들어가”라고 지시했다. 의경들이 노조원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나고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마이크를 든 한 남성이 “경찰들의 불법적인 집회 장소 난입으로 오늘 계획한 모든 일정을 취소합니다”라고 외쳤다. 철도노조는 경찰 자진출두를 일시적으로 연기했고 김 위원장 등은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최성영 경비과장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철도노조 간부 11명은 오후 5시께 건물 밖으로 나와 밖에서 대기중이던 경찰 승합차 5대에 나눠 타고 경찰서로 갔다.
이날은 최 경비과장이 남대문경찰서에서 마지막으로 현장 지휘를 하는 날이었다. 지난 몇년간 서울 도심의 중요 경비업무를 맡으며 숱한 논란을 일으켰던 경비과장의 마지막 업무였지만 이를 알아차린 사람은 많지 않았다.
최성영(50·경정) 경비과장은 10일 경찰청 인사 때 총경 승진 대상으로 발표됐다. 이제 그는 일선 경찰서의 서장이 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남대문서 경비과장 업무도 지난주로 마무리됐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를 졸업한 그는 1992년 경찰 임용시험에 합격한 뒤 일선 경찰서에서 두루 근무해왔다. 2006년 경정으로 승진해 강원지방경찰청 동해경찰서 생활안전과장을 지내다가 2008~2010년 서울지방경찰청 1기동단 부단장을 맡았다. 2008년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촛불집회가 벌어졌을 때 전경부대를 직접 지휘했다. 2010년 2월 1일 서울지방경찰청 중부경찰서 경비과장으로 부임한 뒤 2011년 1월 14일부터 최근까지 남대문경찰서 경비과장으로 일해왔다.
최성영 경비과장의 총경 승진 소식이 알려지자 그간 서울 도심에서 경찰의 공권력 남용과 집회 자유 축소를 우려해온 시민단체들은 성명을 내어 경찰의 결정을 강하게 비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와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등은 10일 낸 성명서에서 “남대문의 ‘아돌프 아이히만’(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의 실무 책임자)인 최성영 경비과장을 총경으로 승진시키면서 박근혜 정권이 ‘헌법과 법률을 근거로 공권력을 집행하지 않고 오직 정권의 말만 잘 들으면 승진시킨다’는 방침을 선언했다”고 비판했다.
일선 경찰서 경비과장의 승진에 대해 시민단체들이 공개적으로 성명까지 내어 비판한 것은 이례적이다. 최성영 경비과장이 비판받는 데에는 그의 지난 몇년간의 문제성 행적 때문이다. 비록 서울 도심 경비 책임자이긴 했으나 우리 사회가 합리적으로 찾아온 집회 관련 상식과 법률적 판단을 최 경비과장이 스스로 무너뜨려왔다는 비판을 받는다.
예를 들면 이런 경우다. 대한문 앞에서 몇명의 시민이 쌍용차 해고자 복직을 기원하는 촛불을 들고 서 있는다. 어떤 ‘사회적 안녕’을 해치지 않아도 미신고 집회라는 이유로 강제 해산시킨다. 남대문경찰서는 지난해 대한문 앞 집회 신고를 받아주지 않는 때가 많았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은 집회를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로 못박고 있지만 남대문경찰서에는 이 법률이 통하지 않는 때가 많다.
법원(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은 지난달 6일 ‘대한문 앞 집회를 금지한 것은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헌법이 보장한 집회의 자유란 누구나 어떤 장소에서 자신이 계획한 집회를 할 것인가를 원칙적으로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어야 비로소 보장된다’고 밝혔다. 최성영 경비과장은 현재까지 아무런 해명이 없다.
“경비과장이 해산명령 발합니다”
신고 인원보다 20명 더 있다고
철도노조 간부 자진출두 집회
경찰 투입해 해산시킨 최성영
이것은 그의 마지막 업무였다
남대문의 ‘아돌프 아이히만’
‘대한문 대통령’ 별명처럼
법원이 인정한 대한문 집회마저
무소불위 공권력 내세워 방해
그 공 인정받아 총경 승진했나
시민들이 그를 현행범으로 체포 시도한 적도
최성영 경비과장이 집회를 해산하거나 쌍용차 희생자 분향소 물품 등을 압수할 때 수시로 들고나온 법적 근거는 ‘즉시 강제 행정’ 조항이었다. 시민들이 ‘압수 근거가 뭐냐’고 항의하면, 최 경비과장이 입버릇처럼 내뱉은 설명이었다. 분향소의 촛불, 밥그릇, 영정사진, 방석, 천막 등을 압수할 때 모두 같은 설명을 했다.
이는 경찰관직무집행법 6조 1항에 따른 것인데, 이 법은 ‘범죄행위로 인하여 신체에 위해를 미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어 긴급을 요하는 경우 행위를 제지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분명 이 법은 매우 엄격한 조건에서만 경찰이 시민의 행위를 제지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지만, 최 경비과장은 이러한 사실을 시민들에게 설명한 적이 없다.
시민들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단순히 모여 있기만 하는 경우에는 집회 해산 명령을 발동하기 어렵다. 이럴 때 최 경비과장이 들고나오는 논리는 ‘보호조치’ 또는 ‘위험발생 방지조치’였다.
그는 경찰관직무집행법상 ‘보호·방지 조치’라고 설명하며, 의경들에게 시민들의 사지를 강제로 들어 다른 곳으로 옮기도록 명령해왔다. 얼핏 불법 강제연행처럼 비치지만 가까운 곳에 다시 놓아주기 때문에 꼭 그렇지도 않다.
경찰관직무집행법 4조(보호조치)는 ‘경찰은 수상한 거동 기타 주위의 사정을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응급의 구호를 요한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자를 발견한 때는 적당한 조치를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경찰관직무집행법 5조(위험발생 방지)는 ‘경찰관은 인명 또는 신체에 위해를 미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천재, 사변, 공작물의 손괴, 교통사고, 기타 위험한 사태가 있을 때 위해를 받을 우려가 있는 자를 필요한 한도 내에서 억류하거나 피난시키는 것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의 내용을 잘 살펴보면 해당 조항들은 ‘응급 구호가 필요한 사람들이나 위험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경찰이 도울 수 있다’는 취지이지, 모여 있는 사람들을 강제 해산시키기 위해 마련된 조항이 아니다.
▲ 최성영 서울 남대문경찰서 경비과장이 지난 6일 서울광장에서 구호를 외치던 쌍용차 해고노동자 이창근씨의 입을 틀어막고 얼굴을 밀쳤다. |
경찰관직무집행법 제1조는 ‘경찰관의 직권은 그 직무수행에 필요한 최소한도 내에서 행사되어야 하며 이를 남용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최성영 경비과장이 보여온 근무방식은 경찰관직무집행법 1조 위반 가능성이 짙다.
이렇게 공권력 남용 논란이 수년간 계속되자 시민들은 최성영 경비과장에게 ‘대한문 대통령’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서울 도심에서 공권력이 법률을 무시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한다는 비판적 함의가 담겨 있다.
보다 못한 시민들은 경비 작전을 펴던 최성영 경비과장을 현행범으로 체포하려 시도한 적도 있다. 지난해 7월 25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대한문 앞에서 ‘집회의 자유를 찾기 위한 시민 캠페인’이라는 이름의 집회를 열려다가 최성영 과장의 제지를 받았다. 합법적 신고를 한 집회였지만 최 과장은 ‘집회 참가자 일부가 신고된 집회장소 밖으로 현수막이 삐져나와 불법집회’라는 논리를 폈다.
민변 권영국 변호사 등은 최 과장이 집회를 방해한 현행범이라며 시민들과 함께 이날 최성영 경비과장을 체포했다. 최 과장도 ‘당당하게 검찰 조사 받겠다’고 대답해 시민들이 최 과장의 팔을 붙잡고 20m가량 숭례문 쪽으로 데려가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오랫동안 대한문 앞 상황을 지켜봐 온 권영국 변호사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최성영 과장에게 아무리 집회 관리 방침에 대한 대법원 판례를 설명해주어도 변화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경찰의 공무집행은 법률과 판례에 따라야 하는데 최 과장은 그것을 신경쓰지 않는다. ‘억울하면 고소하라’는 말뿐이다. 그를 만나면 경찰조직에 절망감을 느끼게 된다”고 비판했다.
집시법 3조와 22조는 ‘누구든지 평화적인 집회를 방해하거나 질서를 문란하게 하여서는 안된다. 경찰관이 이를 위반하는 경우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민변과 장하나 국회의원 등은 최 경비과장을 5차례 직권남용, 집시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소했지만 검찰은 한 건도 기소하지 않은 상태다. 재판정에서 최 경비과장의 공무 방식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릴 기회를 시민들은 제대로 가져보지 못했다.
권은희와 비교한 비판 글이 속상하다고?
최성영 경비과장은 이외에도 2008년 6월 서울 도심 촛불집회 현장에서 벌어졌던 ‘서울대 이나래 학생 군홧발 폭행 사건’(2008년 6월 1일 새벽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에 참석했던 여대생이 전투경찰에게 머리채를 붙잡혀 내동댕이쳐진 뒤 군홧발에 여러 차례 밟힌 사건. 2010년 4월 법원은 피해자에게 배상 판결을 함) 당시 해당 전경 부대를 지휘한 책임자였다.
최 경비과장은 사건이 벌어지기 하루 전날 오후 시위 진압에 나서는 경찰기동대에게 “노약자·여성·장애인을 때리는 모습이 (언론사) 카메라에 찍히면 우리가 당한다. 그런 모습이 찍히지 않도록 하고, 그런 모습 찍히면 고참들이 커버를 하라”고 명령하기도 했다. 당시 군홧발 폭행 사건과 최 경비 과장의 발언은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지만, 그는 이에 대한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았다.
최 경비과장의 업무 방식에 관해선 경찰 내부에서도 일부 비판적 시선이 있다. 서울 한 경찰서의 경비과장은 “최성영 경비과장의 현장 지휘는 법치주의 왜곡이라고 볼 수 있다. 서울 도심 치안을 잘 관리했다는 평가는 내부에서 받을 수 있겠으나, 소송을 당해 법원으로 사건이 넘어가면 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 도심의 경찰서 경비과장에 임명되면 누구라 하더라도 최성영 경비과장처럼 하게 될 것이란 시선도 있다. 한 경비과장은 “서울 도심에서 집회가 제한되길 바라는 게 정부의 방침이고 많은 국민들이 그것을 지지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법치주의를 무시하고 경찰이 집회를 막는 것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최 경비과장은 올해 총경 승진 심사를 걱정할 때가 많았다. 경찰 조직에서는 ‘계급 정년’이라는 관행이 있다. 경정 승진 이후 6~8년 안에 총경에 승진하지 못하면 사실상 퇴직을 선택해야 한다. 최 경비과장은 지난해 경정 근무 8년째여서 올해 승진하지 못하면 퇴직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었다. 승진에서 누락될 위기에 처하느니 사회적으로 논란은 될지라도 도심 집회를 강하게 통제하는 것이 최 경비과장에게는 퇴로의 여지가 없는 선택지였을 것이라는 게 경찰 안팎의 시선이다.
최성영 경비과장은 자신을 겨냥한 비판적 시선들을 잘 알고 있다. 인터넷 검색도 열심히 한다. 13일 남대문경찰서 경비과장실에서 기자와 만난 그는 “권은희 송파서 수사과장과 나를 비교하며 누리꾼이 또 비판 글을 남겼다”며 속상해했다. 그는 억울해했다. 기자가 “도심 집회를 너무 심하게 통제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곧바로 ‘통제라는 말을 쓰지 말라’고 반박했다. 그는 “집회를 통제하는 게 아니라 보호하는 것이 내 업무다. 불법 집회에 한해서만 경찰이 개입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최 경비과장은 경찰로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을 국민에게 설명하고 싶어했다. <한겨레>와의 인터뷰도 지난해부터 협의해왔다. 그는 총경 승진 이후를 인터뷰 시점으로 요구했다. 최 경비과장은 13일 <한겨레>와 인터뷰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그러나 인터뷰 약속 날짜인 17일이 되자 ‘많은 중압감으로 너무 힘들다’고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보낸 뒤 기자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최 경비과장은 20일 총경 연수를 떠났다.
장하나 민주당 의원은 “최 경비과장은 법치주의를 무시해왔기 때문에 승진이 아니라 내부 징계 대상이다. 이런 사람이 오히려 승진한 것은 박근혜 정부 경찰 조직에 총체적인 문제가 있음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출처 : 집회 방해자 ‘대한문 대통령’은 어떻게 승진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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