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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국가 개조? 당신만 바뀌면 됩니다

국가 개조? 당신만 바뀌면 됩니다
적폐의 꼭대기에서 그 덕을 본 사람이 당신입니다
왜 국민을 바꾸려합니까, 왜 국민을 괴롭힙니까?

[한겨레] 곽병찬 대기자 | 등록 : 2014.06.09 15:39 | 수정 : 2014.06.09 16:40


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61

6·4지방선거 이후 쏟아져 나온 충고는 이렇게 압축됩니다. ‘남의 말을 들어라.’, ‘혼자 다 안다고 생각하지 말라.’, ‘혼자 다 하려고 하지 말라.’ 요컨대 당신부터 바뀌라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세월호 참사’ 초기 ‘대통령은 열심히 잘 하는데, 공무원들이 문제’라고 딸랑대던 언론들마저, 이제와 그렇게 말하고 있을까요.

그러나 이들이 여전히 하지 못하는 말도 있습니다. 당신의 ‘무지’에 관한 것입니다. 전문 지식은 물론 상식에도 무지하고, 세상 물정에도 무지하고, 인간관계에도 무지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에도 감정에도 무지합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자신의 무지에 대해서조차 무지하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무지하면서도 이 세상 모든 일을 다 꿰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뛰어나게 밝은 것도 있습니다. ‘권력형 인간의 생리’입니다. 오로지 생식만 하는 여왕벌 옆에 본능적으로 꼬이는 수벌과 같은 인간들의 생리 말입니다. 지금까지 당신은 이 땅의 사람들을 그런 수벌이거나 아니면 오로지 순종하고 일만 하는 일벌로 간주해왔습니다. 문제가 생기는 건 그렇지 않은 부류들 때문이라고 보고, 그런 사람들을 수벌형 혹은 일벌형으로 바꾸려 했습니다. 그것이 당신이 말하는 국가 개조의 정체일 겁니다.

▲ 박근혜가 4일 오전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를 위해 서울 종로구 청운동 서울농아학교 청운.효자동 제1투표소를 찾아 투표하고 있다. 2014.6.4. <청와대 사진기자단>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새 홍보수석에 윤두현씨를 임명한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윤 신임 수석은 오랜 언론인 생활을 통해 균형감 있는 사고를 발휘해온 분.” “정부가 추진하는 국가 개조 작업에 대한 정부의 정책을 설명하고 국민의 이해와 협조를 구하는 소통의 적임자로 판단했다.” 균형감? 그는 후배 기자들이 취재한 비비케이(BBK) 조작 편지를 보도하지 못하도록 했던 장본인입니다. 그러고 보니 당신과 당신의 수벌들이 아우성치는 국가 개조의 정체가 좀 더 선명해졌습니다.

지방선거 이후 청와대발 ‘국가개조론’이 벌써 세 번째입니다. 민 대변인은 선거 결과가 나오자 이렇게 브리핑했습니다. “국민의 뜻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국가 개조에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두 번째는 당신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이튿날 현충일 추념사에서 “우리 사회의 비정상적 적폐를 바로잡아서 안전한 나라,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 받아쓰기 전용 홍보수석 인사도 국가 개조 소통용이라고 했습니다. 똥이나 된장이나 국가 개조로 통하지 않는 게 없습니다.

당신의 가장 기괴한 모습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것이 말과 실제가 상반된다는 사실입니다. 예컨대 오른손이라면서 왼손을 내밀고, 준법을 말하면서 불법을 저지른다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말하고는 정상을 비정상으로 돌리고, 경제 민주화를 말하고는 경제 독점을 강화하고, 불공정 관행 철폐를 말하면서 공정 관행마저 깨버리고, 복지를 말하면서 사회 안전망을 파괴했죠.

당신의 국가 개조에 꼭 따르는 말이 있습니다. 적폐입니다. 비겁하고 무책임한 말이지요. 솔직히 말해, 그 말이 사실이라면 당신은 대통령이 되고 1년 3개월이 지나서야 적폐란 걸 알았습니다. ‘침몰 사건’을 ‘참사’로 만들어버린 저 거대한 무능을 저에게서 확인하고서야 적폐를 깨달았습니다. 얼마나 무지했으면 그랬겠습니다. 사고가 참사로 된 것은 이 정부의 무능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을 적폐 탓으로 돌렸으니, 이 얼마나 비겁한 일입니까.

게다가 참사는 무분별한 규제 완화에서 비롯됐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규제는 암 덩어리’라고 일갈하고, 없앨 수 없다면 다 내게 가져오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얼마나 분별력이 없었으면, 사고는 그 직후 터졌습니다. 그러고도 본인이 그런 적폐를 바로잡겠다고 하고 있으니, 그것은 무지와 비겁의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이에 대해 눈 밝은 누군가는 ‘당신 자신이 적폐’라고 돌직구를 날리고, 누군가 신중한 이는 ‘당신이 적폐의 일부’라고 말합니다. 내 생각은, 적폐의 꼭대기에서 적폐의 덕을 본 사람이 바로 당신이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대통령이 된 것도 그 적폐 위에서였습니다. 국정원, 국방부, 보훈처, 경찰의 공작이 없었다면 어떻게 당신이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승만, 박정희 때부터 계승돼온 정치공작의 적폐는 일등공신이었습니다. 대통령 취임 이후 정권을 유지하는 주요한 수단도 바로 그 적폐였습니다. 남북 정상회담 발언을 왜곡해 공개하는 공작이 없었다면 취임 후 1년을 어떻게 넘겼을지 상상하기 힘듭니다. 검찰총장의 사생활이나 뒤져 쫓아내는 따위의 정치 사찰의 적폐를 악용하지 않았다면, 나라는 이미 상당히 바로 세워졌을 겁니다.

하긴 그럴 만한 언덕이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박근혜의 눈물을 닦아주세요’라는 신파극 한 편으로, 과적이 아니라 적폐로 침몰하던 정부여당을 살렸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걱정이 앞설 겁니다. 비전이나 정책이 아니라 지질한 눈물로 선거를 치르는 나라가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당신의 치마말기를 부여잡고 있던 후보들이 뇌까리던 구호와 정책은 오로지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주세요’, ‘박근혜를 지켜주세요’ 뿐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이 미개한 신생 국가도 아니고, 당신은 세월호 탑승객도 아니며 더군다나 당신은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한 선장과 같은 입장인데, 당신의 눈물부터 닦아주고, 당신부터 구해달라고요?

당신이 꿈꾸는 세상이란 게 그런 세상입니까. 그게 당신이 개조하고 싶은 대한민국입니까. 대부분 생산 현장을 떠난 노장년층들의 상실감과 소외감 그리고 공연한 분노를 앞세워 추진하고 있는 국가 개조 말입니다. 눈물 몇 방울이면 영혼을 내놓고 주술에 걸리는 사람들, 당신의 말대로라면 그들 역시 오랜 ‘적폐’입니다.

드론이라고 있죠. 영어의 우리 말 뜻은 수벌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무인폭격기, 무인정찰기 등 원격조종 되는 비행기를 두고 드론이라고 합니다. 적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공격용 무기입니다. 아무런 감정도 없이, 선악 판단도 없이, 조종자의 지시에 따라 살상을 하니까요. 드론 같은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모두 그렇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페르몬의 정체를 아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그런 드론으로는 쇄신이건 개조건 국가를 바로 세울 수 없습니다. 나라를 세우고, 지키고, 이만큼 발전시키고, 품격을 갖추게 한 것은 생식 본능, 권력욕으로만 가득찬 수벌이 아니라, 깨어있고 사고하고 고뇌하고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아우성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당신은 여전히 드론을 선택해왔고, 당신 주위엔 그런 수벌형 인간들로 득시글대고, 당신은 국민을 수벌이나 아니면 일벌로 만드는 걸 국가 개조라고 생각하는데 말입니다. 당신이 국무총리로 염두에 둔 사람들이 손사래 치는 건 바로 그런 변함없는 ‘박근혜 스타일’ 때문일 겁니다.

당신은 일전 독일의 드레스덴에서 동독의 몰락을 떠올리며 대북 제안을 했습니다. 그러면 동독이 어떤 나라였는지 알고나 있었습니까? 시인 브레히트는 이렇게 묘사했었습니다.

“6월 17일 인민봉기가 일어난 뒤/ 작가동맹 서기장은 스탈린가에서/ 전단을 돌리도록 했다./ 그 전단에는 인민들이/ 어리석게도 정부의 신뢰를 잃었으니,/ 이것은 오직 2배의 노동을 통해서만/ 되찾을 수 있다고 씌어져 있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정부가 인민을 해산하고/ 다른 인민을 선출하는 것이/ 더욱 간단하지 않을까.”(‘해결 방법’)

왜 국민을 바꾸려 합니까. 왜 국민을 괴롭힙니까. 당신만 바뀌면 되는데.


출처 : 국가 개조? 당신만 바뀌면 됩니다




제발 부탁이니 ‘국가 개조’ 하지 마라
가짜보수·전과자·철새 등등…‘국가 개조’ 주체들의 정체
누가 누굴 개조하겠다는 건가…당신들이 개조의 ‘대상’

[한겨레] 성한용 선임기자 | 등록 : 2014.06.08 20:55 | 수정 : 2014.06.09 16:41


성한용 선임기자의 현장칼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4층에는 기자회견장이 있다. 8일 오후 단상에 김무성 의원의 사진을 넣어서 만든 배경 그림이 걸렸다.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하는 김무성 의원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그는 “과거와 결별하겠다”고 했다. “적폐 청산을 위해 대통령의 국가개조 작업에 적극 동참하겠다”고도 했다.

김무성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북방한계선을 포기했다고 주장한 사람이다. 이른바 종북좌파의 집권은 안 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문재인 의원을 종북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생각이 부족하거나 선거에 눈이 멀어 국익을 외면하는 가짜 보수인 것 같다. 전남방직 창업주였던 그의 선친은 1970년 한국경영자총협회를 만들어 초대 회장을 13년 동안 지냈다. 김무성 의원 자신은 내무부 차관, 집권여당 원내대표와 비대위원장을 지냈다. 기득권 세력의 일원이라는 얘기다. 그가 청산하겠다는 적폐는 도대체 누가 만든 것일까?

10일 출정식을 하는 서청원 의원은 박근혜와 의리로 엮인 사이다. 그가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서 박근혜를 지지한 이유는 “박근혜 후보는 2004년 당을 위기에서 구했다. 어려울 때 조직을 지켜준 사람이니 그에 대해 의리를 갚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박근혜는 2011년 12월 서청원 의원의 청산회 송년모임에 “의리가 없으면 인간도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내 화답했다. 서청원 의원은 정치자금법을 두 차례 어긴 전과자다. 2002년 한나라당 차떼기 사건, 2008년 친박연대 대표 시절 비례대표 공천헌금 사건으로 두 차례 감옥생활을 했다.

이인제 의원도 10일 새누리당 혁신 방안을 발표한다. 그는 1988년 통일민주당에서 출발해 지금까지 수많은 정당을 넘나들었다. 새누리당은 그에게 열세번째 당적이다.

새누리당 대표는 당원들이 알아서 뽑으면 될 일이다. 문제는 이들이 모두 박근혜와 함께 국가개조를 하겠다고 달려들고 있다는 것이다. 정당 대표는 국회의 입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기득권 세력의 일원인 가짜 보수나, 대통령과 의리로 통하는 정치자금법 전과자, 최다 철새 기록 보유자가 국가개조를 한다고 생각하면 좀 끔찍하다.

새누리당 실세 당직자들도 국가개조에 적극적이다. 지방선거 다음날 아침 국회 대표실에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가 열렸다. 위원장인 이완구 원내대표의 표정은 자신만만했다. 그는 선거 결과를 “박근혜에게 다시 한번 국가 대개조라는 책무를 이루라는 기회를 주신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경찰 출신의 야심가형 정치인이다.

윤상현 사무총장도 당당했다. 그는 “새로운 대한민국, 정말로 안전하고 부패 없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혼연의, 최대한의 노력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위였고 지금은 재벌가의 사위다. 야심 하나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청와대 사람들은 국가개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여권 인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별다른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박근혜 혼자 보고받고 결정하고 지시할 뿐 나머지는 묵묵히 지시를 따르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김기춘 비서실장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신임 윤두현 홍보수석도 비슷한 스타일이다. 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1부속실장, 안봉근 2부속실장은 여전히 박근혜의 중요한 메시지 창구다. 이런 청와대가 국가개조를 할 수 있을까? 없다.

결국 국가개조를 추진한다면 박근혜가 해야 한다. 할 수 있을까? 못 한다. 개조는 “고쳐서 새로 만든다”는 뜻이다. 박근혜는 20대에 아버지에게 국정을 배웠다. 당시 국가의 크기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이 작았고 단순했다. 박정희 정권은 국민교육헌장과 유신헌법으로 국가개조, 국민개조를 시도했지만 그나마 성공하지 못했다. 2014년의 대한민국을 개조하려면 고도의 통찰력과 경륜을 갖춘 리더와 집단이 필요할 것이다. 박근혜 자신은 그런 통찰력과 경륜을 갖춘 것 같지 않다. 그런 사람들을 청와대나 행정부에 기용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못 한다.

박근혜에게 과연 국가개조 자격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세월호 참사는 근본적으로 사람보다 돈을 더 숭배하는 가치관의 소산이다. 박근혜의 정체성은 박정희의 ‘잘살아보세’, 이명박의 ‘국민성공시대’에 뿌리를 두고 있다. 박근혜가 국가개조를 외치는 것은 부실공사로 건물을 무너뜨린 건축주의 딸이 그 건물을 다시 짓겠다고 고집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현 집권세력은 쿠데타, 독재, 비리, 정경유착 등 온갖 불법을 저지른 사람들의 후예다. 개조의 주체가 아니라 개조의 대상이다.

그래서다. 제발 부탁이니 국가개조 하지 말라. 국가는 개조의 대상이 아니다. 그 누구도 국가를 개조할 수 있는 권한을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지 않았다. 개조해야 할 것은 탐욕과 무지로 가득 찬 기득권 세력의 머릿속이다. 권력을 장악한 사람들과 이른바 사회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이 국민을 두려워하고 법과 원칙만 지켰어도 세월호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 누가 누구를 개조하겠다는 것인가.


출처 : 제발 부탁이니 ‘국가 개조’ 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