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가 병역면제율 73%, 그 뒷얘기를 아세요?
일반인은 6.4%…재벌가 평균도 33% ‘불과’한데
2세에서 3, 4세로 이어지는 ‘예외없는’ 면제
그러나 형제끼리도 암투…면제사유는 ‘종합선물세트’
[한겨레] 김의겸 기자 | 등록 : 2015.02.23 12:08 | 수정 : 2015.02.23 17:38
설 연휴 첫날인 18일 조간신문에는 한솔그룹의 3세인 조아무개(24)씨가 병역 비리를 저지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는 기사가 실렸다. 조씨는 한솔그룹 창업주인 이인희 고문의 손자이자 조동만 전 한솔아이글로브 회장의 아들이니 범삼성 가문의 일원이다.
몇 년 전 <한국방송>(KBS)이 재벌가 남자들의 병역 문제를 보도한 적이 있는데 삼성 가문이 가장 눈에 띄었다. 일반인들의 병역 면제율은 6.4%인 데 반해 재벌가의 면제율은 33%로 5배쯤 높았다. 그런데 삼성가는 그 비율이 73%로 재벌가의 평균치보다 한참 높았다. 재계 순위뿐만 아니라 병역 면제율에서도 삼성은 단연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기소된 조씨까지 반영하면 그 수치는 더 상향조정될 것이다.
삼성가의 병역 면제 역사는 설립자 이병철 회장의 세 아들 이맹희, 창희, 건희 3형제에서부터 비롯된다. 이들의 병역 면제 사유나 경위는 추측만 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이 보도된 적은 없다. 하지만 이미 절판된 옛날 책들 속에서 그 진실이 가늘게 숨을 쉬고 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경우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병역 면제 사유로 ‘정신질환’이 많이 나온다. 지금은 종편에서 맹활약 중인 강용석 변호사가 과거 의원 시절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정신질환으로 군대를 면제받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출처가 어디인지는 오리무중이다. 아니 정신질환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진실은 엉뚱하게도 ‘전 동아그룹 최원석 회장의 비설록’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 <그래도 사랑하기 때문에>에 숨어 있다.
이 책에는 김교련 전 동아콘크리트 사장 인터뷰가 실려 있다. 김 전 사장은 “제가 보안사 대공처장으로 있던 1971년 청와대 특명을 받고 고위층 자제, 재벌들 자제들에 대한 병무 부정 사건을 취급했습니다. 그런데 철저하게 조사를 하라고 특명이 내려온 이유가 삼성 설립자 이(병철) 회장님의 아들이 군대 갈 나이로 보이는데 낮에 골프 치다가 하필이면 대통령한테 직방으로 걸렸단 말이죠. 그래 가지고 빼도 박도 못해서 잡혀 왔어요. 그러니까 그 양반이 지금의 이건희 회장인데, 창업주 아들이 골프 치는 걸 보니 다른 특권층 자제들도 마찬가지 아니겠느냐, 철저히 조사해보라는 대통령 특명이 떨어진 겁니다. 그래서 정보부, 보안사, 경찰, 국방부 다 동원돼서 조사를 하니까 50여명이나 무더기로 걸리는 겁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이때 걸린 사람들은 모두 군대로 끌려가 4주간 훈련을 받는 것으로 병역을 마친다. 그런데 “이 회장은 박 대통령한테 직방으로 걸렸기 때문에 40일간 30사단에서 훈련받도록 조치해서 종결”했다는 게 김 전 사장의 증언이다. 이건희 회장을 직접 조사하고 그 처분을 박정희 대통령한테 직접 결재까지 받았다고 하니 믿지 않을 도리가 없다.
남들 3년씩 하는 고생을 40일로 때웠으니 엄청난 특혜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이 그때 이미 30살이 넘었고, 결혼도 해서 아들 재용이 3살로 한창 재롱을 부릴 때다. 하필이면 대통령 눈에 띄어 늦은 나이에 생고생을 한 셈이니 본인으로서는 무척이나 억울했을 것이다.
그런데 얘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번 더 반전을 겪는다. 이건희 회장은 2012년 4월 맏형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과 유산 싸움을 벌이던 도중에 기자들에게 옛날이야기 하나를 툭 던진다. “그 양반(이맹희 전 회장)은 30년 전에 나를 군대에 고소하고, 아버지를 형무소에 넣겠다고 박정희 대통령한테 고발했던 사람”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는 전날 이맹희 전 회장이 “(이건희 회장의) 한 푼도 안 주겠다는 탐욕이 소송을 초래했다”는 발언에 화가 나서 한 말이겠지만 그가 자신의 병역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버지를 형무소에 넣겠다고 고발’한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나를 군대에 고소’한 건 처음 나오는 얘기였다.
30년 전이면 이병철 창업주가 외화 밀반출에 제일모직과 제일제당 탈세를 일삼았다며 박정희 대통령에게 투서했던 이른바 ‘모반’ 사건으로 삼성가뿐 아니라 세상이 떠들썩하던 때다. 당시 투서의 주인공으로 둘째 아들 이창희 전 새한미디어 회장이 지목됐고 이 때문에 이창희 전 회장은 미국으로 쫓겨나기까지 했다.
이와 관련해 이맹희 전 회장은 1993년에 발간한 자서전 <묻어둔 이야기>를 통해 “모반 사건은 동생 창희가 투서한 일인데, 투서에 나도 같이 개입했다고 아버지가 오해한 듯하다. 하지만 나는 절대 개입하지 않았다고 맹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은 그 모반 사건의 중심에 큰형 이맹희 전 회장이 자리잡고 있으며 자신까지도 군대에 고소해 고생을 시킨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낮에 골프를 치다가 재수없이 박정희 대통령한테 걸린 게 아니고, 형들이 아버지와 자신을 제거하기 위해 아버지는 비리 문제, 자신은 병역 문제를 걸어 청와대에 투서하고 군대에 고발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김교련 전 동아콘크리트 사장의 증언과 이건희 회장의 관점 가운데 무엇이 진실인지는 알기 어렵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보면 이건희 회장의 말이 맞을 가능성이 더 높다. 이건희 회장이 아무리 철없는 재벌가 도련님 시절이라 하더라도 나는 새도 떨어뜨릴 위세의 박정희 대통령 앞에서 얼쩡거리며 골프를 친다는 게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당시 이건희 회장의 병역 문제는 은밀하게 투서가 들어간 것이기 때문에 청와대에서 김교련 당시 보안사 대공처장에게 그 출처를 숨기고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목격한 것으로 둘러댄 게 아닌가 싶다.
셋째만 군대를 안 간 게 아니고 장남이나 차남도 군대 안 가기는 매한가지였다. 자서전 <묻어둔 이야기>의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이력…밀항’ 편에서 이맹희 전 회장은 일본으로의 밀항과 병역 기피를 고백하고 있다. 때는 6·25가 시작된 1950년이다. 이맹희 전 회장은 “부산에 내려온 후 나는 일본으로 밀항하기로 결심했다. 나중에 경북중학교 동기생이면서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군인의 길을 걷고 있었던 친구들에게는 ‘너네들이 그렇게 나라를 훌륭히 지키리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나는 일본으로 가서 조국의 미래를 위해서 열심히 공부를 했다’고 우스갯소리로 넘겼지만, 그 당시 밀항했다는 일이야 부끄러운 일 아닌가? 그 점에 대해서는 지금도 죄스럽게 느끼고 있다. 당시 내 나이 20살, 당연히 군대에 입대해야 할 나이였다”고 말한다. 여기서 군인의 길을 걷고 있던 친구들이란 전두환·노태우·정호용·김복동 등 80년 신군부의 쟁쟁한 주역들이다.
둘째 창희를 언급하는 대목에서도 병역 문제를 추론할 수 있다. 이창희 전 회장은 33년생이다. “내가 동경 농대에 들어간 다음해인 52년 창희가 일본으로 유학을 왔는데”라는 대목이나 일본 유학 생활을 오래 하며 “동경의 데이고쿠(제국)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는 얘기 등으로 미뤄 이창희 전 회장도 ‘장기 유학’이라는 명분으로 병역을 면제받은 게 아닌가 싶다.
이런 병역 기피는 이병철 창업주의 손자 세대인 3세들로 이어진다. 손자 가운데 재계를 대표하는 인물은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인데 모두 병역 면제라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면제 사유는 각기 다르다. 이재현 회장은 유전병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고, 이재용 부회장은 허리 디스크, 정용진 부회장은 과체중으로 군 면제를 받았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은 장애물 부문 승마 국가대표 선수를 지냈으며, 현재 골프 실력이 핸디캡 6으로 아마추어로는 눈부신 기량을 뽐내고 있다고 한다. 드라이버샷 거리는 평균 250야드가 나가는 장타자란다. 허리를 많이 쓰는 골프가 맞는지 염려스러울 정도다. 이재용 부회장의 동갑내기 사촌인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의 경우 대학 입학 때 정 부회장이 직접 작성한 학생카드에는 키 178㎝, 체중 79㎏이라고 기록돼 있다고 한다. 하지만 신체검사 당시 정 부회장의 몸무게는 104㎏으로, 당시 면제 기준인 103㎏을 불과 1㎏ 초과해 아슬아슬하게 ‘면제’ 판정을 받았다.
씨제이 이재현 회장의 경우는 외아들인 선호(25)씨도 병역 면제 처분을 받고 아버지 회사에 신입사원으로 들어가 근무 중이다. 면제 사유는 아버지와 같은 유전병을 앓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을 비롯한 재벌가 남자들의 병역 면제는 어디쯤에서 그칠까. 재벌가의 2~3세들은 디스크나 과체중 등의 신체적 사유가 주요한 면제 이유였지만, 요즘 재벌가 3~4세들은 외국 국적 취득으로 인한 병역 면제가 점차 늘어가는 추세라고 한다.
케이비에스 탐사보도팀이 국내 10대 재벌 가문 출신 628명을 조사해보니 미국 출생자는 119명으로 나왔다고 한다. 특히 미성년자 121명 가운데는 38명(31%)이 미국에서 출생한 것으로 분석됐다. 미국 국적 보유율은 10%에 이른다. 높은 미국 국적 보유율은 병역 면제로 이어졌다. 한국 국적을 포기한 재벌가 남성 35명 가운데 23명(65%)이 병역을 면제받았다.
이런 점에 비춰 봤을 때 재벌 가문의 병역 면제는 그 형태만 달리할 뿐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래서인지 30여년 전 특권층 자제 50여명을 무더기로 전방에 보내 훈련을 시킨 건 나름 공정한 처사로 보이기까지 한다.
출처 삼성가 병역면제율 73%, 그 뒷얘기를 아세요?
일반인은 6.4%…재벌가 평균도 33% ‘불과’한데
2세에서 3, 4세로 이어지는 ‘예외없는’ 면제
그러나 형제끼리도 암투…면제사유는 ‘종합선물세트’
[한겨레] 김의겸 기자 | 등록 : 2015.02.23 12:08 | 수정 : 2015.02.23 17:38
▲ 1997년 9월 1일 오전 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원들이 신한국당사 앞에서 정치권과 재벌 자녀들의 병역면제를 규탄하면서 군에서 발생한 의문사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장철규 기자
설 연휴 첫날인 18일 조간신문에는 한솔그룹의 3세인 조아무개(24)씨가 병역 비리를 저지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는 기사가 실렸다. 조씨는 한솔그룹 창업주인 이인희 고문의 손자이자 조동만 전 한솔아이글로브 회장의 아들이니 범삼성 가문의 일원이다.
몇 년 전 <한국방송>(KBS)이 재벌가 남자들의 병역 문제를 보도한 적이 있는데 삼성 가문이 가장 눈에 띄었다. 일반인들의 병역 면제율은 6.4%인 데 반해 재벌가의 면제율은 33%로 5배쯤 높았다. 그런데 삼성가는 그 비율이 73%로 재벌가의 평균치보다 한참 높았다. 재계 순위뿐만 아니라 병역 면제율에서도 삼성은 단연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기소된 조씨까지 반영하면 그 수치는 더 상향조정될 것이다.
삼성가의 병역 면제 역사는 설립자 이병철 회장의 세 아들 이맹희, 창희, 건희 3형제에서부터 비롯된다. 이들의 병역 면제 사유나 경위는 추측만 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이 보도된 적은 없다. 하지만 이미 절판된 옛날 책들 속에서 그 진실이 가늘게 숨을 쉬고 있다.
2세
맹희·창희 형제, 일본 밀항-유학으로 피해가
막내 건희는 박정희 특명으로 40일 훈련…
“큰형이 날 군대에 고소” 오랜 의심과 앙심
맹희·창희 형제, 일본 밀항-유학으로 피해가
막내 건희는 박정희 특명으로 40일 훈련…
“큰형이 날 군대에 고소” 오랜 의심과 앙심
▲ 삼성가 2세인 이맹희-창희-건희 3형제(왼쪽부터).
이건희 삼성 회장의 경우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병역 면제 사유로 ‘정신질환’이 많이 나온다. 지금은 종편에서 맹활약 중인 강용석 변호사가 과거 의원 시절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정신질환으로 군대를 면제받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출처가 어디인지는 오리무중이다. 아니 정신질환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진실은 엉뚱하게도 ‘전 동아그룹 최원석 회장의 비설록’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 <그래도 사랑하기 때문에>에 숨어 있다.
이 책에는 김교련 전 동아콘크리트 사장 인터뷰가 실려 있다. 김 전 사장은 “제가 보안사 대공처장으로 있던 1971년 청와대 특명을 받고 고위층 자제, 재벌들 자제들에 대한 병무 부정 사건을 취급했습니다. 그런데 철저하게 조사를 하라고 특명이 내려온 이유가 삼성 설립자 이(병철) 회장님의 아들이 군대 갈 나이로 보이는데 낮에 골프 치다가 하필이면 대통령한테 직방으로 걸렸단 말이죠. 그래 가지고 빼도 박도 못해서 잡혀 왔어요. 그러니까 그 양반이 지금의 이건희 회장인데, 창업주 아들이 골프 치는 걸 보니 다른 특권층 자제들도 마찬가지 아니겠느냐, 철저히 조사해보라는 대통령 특명이 떨어진 겁니다. 그래서 정보부, 보안사, 경찰, 국방부 다 동원돼서 조사를 하니까 50여명이나 무더기로 걸리는 겁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이때 걸린 사람들은 모두 군대로 끌려가 4주간 훈련을 받는 것으로 병역을 마친다. 그런데 “이 회장은 박 대통령한테 직방으로 걸렸기 때문에 40일간 30사단에서 훈련받도록 조치해서 종결”했다는 게 김 전 사장의 증언이다. 이건희 회장을 직접 조사하고 그 처분을 박정희 대통령한테 직접 결재까지 받았다고 하니 믿지 않을 도리가 없다.
남들 3년씩 하는 고생을 40일로 때웠으니 엄청난 특혜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이 그때 이미 30살이 넘었고, 결혼도 해서 아들 재용이 3살로 한창 재롱을 부릴 때다. 하필이면 대통령 눈에 띄어 늦은 나이에 생고생을 한 셈이니 본인으로서는 무척이나 억울했을 것이다.
그런데 얘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번 더 반전을 겪는다. 이건희 회장은 2012년 4월 맏형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과 유산 싸움을 벌이던 도중에 기자들에게 옛날이야기 하나를 툭 던진다. “그 양반(이맹희 전 회장)은 30년 전에 나를 군대에 고소하고, 아버지를 형무소에 넣겠다고 박정희 대통령한테 고발했던 사람”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는 전날 이맹희 전 회장이 “(이건희 회장의) 한 푼도 안 주겠다는 탐욕이 소송을 초래했다”는 발언에 화가 나서 한 말이겠지만 그가 자신의 병역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버지를 형무소에 넣겠다고 고발’한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나를 군대에 고소’한 건 처음 나오는 얘기였다.
30년 전이면 이병철 창업주가 외화 밀반출에 제일모직과 제일제당 탈세를 일삼았다며 박정희 대통령에게 투서했던 이른바 ‘모반’ 사건으로 삼성가뿐 아니라 세상이 떠들썩하던 때다. 당시 투서의 주인공으로 둘째 아들 이창희 전 새한미디어 회장이 지목됐고 이 때문에 이창희 전 회장은 미국으로 쫓겨나기까지 했다.
이와 관련해 이맹희 전 회장은 1993년에 발간한 자서전 <묻어둔 이야기>를 통해 “모반 사건은 동생 창희가 투서한 일인데, 투서에 나도 같이 개입했다고 아버지가 오해한 듯하다. 하지만 나는 절대 개입하지 않았다고 맹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은 그 모반 사건의 중심에 큰형 이맹희 전 회장이 자리잡고 있으며 자신까지도 군대에 고소해 고생을 시킨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낮에 골프를 치다가 재수없이 박정희 대통령한테 걸린 게 아니고, 형들이 아버지와 자신을 제거하기 위해 아버지는 비리 문제, 자신은 병역 문제를 걸어 청와대에 투서하고 군대에 고발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김교련 전 동아콘크리트 사장의 증언과 이건희 회장의 관점 가운데 무엇이 진실인지는 알기 어렵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보면 이건희 회장의 말이 맞을 가능성이 더 높다. 이건희 회장이 아무리 철없는 재벌가 도련님 시절이라 하더라도 나는 새도 떨어뜨릴 위세의 박정희 대통령 앞에서 얼쩡거리며 골프를 친다는 게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당시 이건희 회장의 병역 문제는 은밀하게 투서가 들어간 것이기 때문에 청와대에서 김교련 당시 보안사 대공처장에게 그 출처를 숨기고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목격한 것으로 둘러댄 게 아닌가 싶다.
셋째만 군대를 안 간 게 아니고 장남이나 차남도 군대 안 가기는 매한가지였다. 자서전 <묻어둔 이야기>의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이력…밀항’ 편에서 이맹희 전 회장은 일본으로의 밀항과 병역 기피를 고백하고 있다. 때는 6·25가 시작된 1950년이다. 이맹희 전 회장은 “부산에 내려온 후 나는 일본으로 밀항하기로 결심했다. 나중에 경북중학교 동기생이면서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군인의 길을 걷고 있었던 친구들에게는 ‘너네들이 그렇게 나라를 훌륭히 지키리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나는 일본으로 가서 조국의 미래를 위해서 열심히 공부를 했다’고 우스갯소리로 넘겼지만, 그 당시 밀항했다는 일이야 부끄러운 일 아닌가? 그 점에 대해서는 지금도 죄스럽게 느끼고 있다. 당시 내 나이 20살, 당연히 군대에 입대해야 할 나이였다”고 말한다. 여기서 군인의 길을 걷고 있던 친구들이란 전두환·노태우·정호용·김복동 등 80년 신군부의 쟁쟁한 주역들이다.
둘째 창희를 언급하는 대목에서도 병역 문제를 추론할 수 있다. 이창희 전 회장은 33년생이다. “내가 동경 농대에 들어간 다음해인 52년 창희가 일본으로 유학을 왔는데”라는 대목이나 일본 유학 생활을 오래 하며 “동경의 데이고쿠(제국)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는 얘기 등으로 미뤄 이창희 전 회장도 ‘장기 유학’이라는 명분으로 병역을 면제받은 게 아닌가 싶다.
3세
재현, 유전병 면제…아들도 같은 사유로 면제
재용, 디스크 면제…승마 국대 출신에 골프 고수면서
정용진, 과체중 면제…대입 학생카드엔 ‘79kg’
재현, 유전병 면제…아들도 같은 사유로 면제
재용, 디스크 면제…승마 국대 출신에 골프 고수면서
정용진, 과체중 면제…대입 학생카드엔 ‘79kg’
▲ 삼성가 3세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왼쪽부터).
이런 병역 기피는 이병철 창업주의 손자 세대인 3세들로 이어진다. 손자 가운데 재계를 대표하는 인물은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인데 모두 병역 면제라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면제 사유는 각기 다르다. 이재현 회장은 유전병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고, 이재용 부회장은 허리 디스크, 정용진 부회장은 과체중으로 군 면제를 받았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은 장애물 부문 승마 국가대표 선수를 지냈으며, 현재 골프 실력이 핸디캡 6으로 아마추어로는 눈부신 기량을 뽐내고 있다고 한다. 드라이버샷 거리는 평균 250야드가 나가는 장타자란다. 허리를 많이 쓰는 골프가 맞는지 염려스러울 정도다. 이재용 부회장의 동갑내기 사촌인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의 경우 대학 입학 때 정 부회장이 직접 작성한 학생카드에는 키 178㎝, 체중 79㎏이라고 기록돼 있다고 한다. 하지만 신체검사 당시 정 부회장의 몸무게는 104㎏으로, 당시 면제 기준인 103㎏을 불과 1㎏ 초과해 아슬아슬하게 ‘면제’ 판정을 받았다.
씨제이 이재현 회장의 경우는 외아들인 선호(25)씨도 병역 면제 처분을 받고 아버지 회사에 신입사원으로 들어가 근무 중이다. 면제 사유는 아버지와 같은 유전병을 앓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을 비롯한 재벌가 남자들의 병역 면제는 어디쯤에서 그칠까. 재벌가의 2~3세들은 디스크나 과체중 등의 신체적 사유가 주요한 면제 이유였지만, 요즘 재벌가 3~4세들은 외국 국적 취득으로 인한 병역 면제가 점차 늘어가는 추세라고 한다.
케이비에스 탐사보도팀이 국내 10대 재벌 가문 출신 628명을 조사해보니 미국 출생자는 119명으로 나왔다고 한다. 특히 미성년자 121명 가운데는 38명(31%)이 미국에서 출생한 것으로 분석됐다. 미국 국적 보유율은 10%에 이른다. 높은 미국 국적 보유율은 병역 면제로 이어졌다. 한국 국적을 포기한 재벌가 남성 35명 가운데 23명(65%)이 병역을 면제받았다.
이런 점에 비춰 봤을 때 재벌 가문의 병역 면제는 그 형태만 달리할 뿐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래서인지 30여년 전 특권층 자제 50여명을 무더기로 전방에 보내 훈련을 시킨 건 나름 공정한 처사로 보이기까지 한다.
출처 삼성가 병역면제율 73%, 그 뒷얘기를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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