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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IMF 금 모으기를 다시 하자는 분들께

IMF 금 모으기를 다시 하자는 분들께
[민중의소리] 고희철 편집부장 | 최종업데이트 2015-09-25 22:35:33


▲ IMF 금 모으기 운동 ⓒ자료사진

같은 기억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기억된다. 아직도 무려 새누리당 최고위원을 하고 계시는 이인제 의원의 최근 발언을 들으며 거듭 깨닫는다. “97년 IMF 외환위기 때 국민들이 금모으기 운동을 했다. 금으로 위기를 극복하지는 못 했지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긍정적 에너지를 만들었다” 이 발언은 최근 박근혜가 하사하신 또 하나의 선물인 ‘청년희망펀드’를 설명하며 나왔다. “청년희망펀드로 모은 돈이 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할 수 있다’는 긍정 에너지를 모으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박근혜도 당선 전, “IMF 위기를 보고 정치에 입문하게 됐다”고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다. 미루어 짐작하건데 청년희망펀드와 금 모으기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듯하다.

IMF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경제위기 극복? 박세리의 맨발 투혼? 그럼 당시 금을 모은 국민들에게 돌아온 것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모을 금이 없어 ‘국난극복’에는 동참하지 못했으나 그 즈음 아버지 사업이 부도가 나 17년여 전의 사회 풍경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이름도 생소한 정리해고가 상륙했다. 정리해고로 많은 남여 가장들이 거리로 내몰렸다. 그 중 집 밖에서도, 집 안에서도 갈 곳이 없던 아버지들은 산으로 몰렸다. 김밥 한 줄, 소주 한 팩 또는 막걸리 한 통이면 하루를 때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한강에도 가장들이 몰렸지만 이 분들은 일단 낚싯대가 있는 분들이었다.) 때 아닌 등산 열풍에 한국 아웃도어시장이 활짝 펴는 나비효과가 일어났다.

고용이 유일한 복지였던 나라였다. ‘사장이 자르면 할 수 없지, 잘리면 다른 회사 알아봐야지’라고 생각하며 일했다. 그러나 이런 인식은 대규모 해고 앞에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공포로 바뀌었다. 실제 숱한 부모와 자식이 세상을 등졌다. 아니 사회로부터 배제됐다.

그래서 금을 모았다. 나라가 망하면 백성이 죽는다는 본능적 움직임이었다. 의병이 어디 애국심만으로 일어나나,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한가지다 싶으니 일어나는 것이다. 금을 모아 얼마나 될 것이며, 많이 모아 팔수록 국제 금시세가 낮아진다는 등의 초보적인 생각은 할 겨를이 없었다. 평화의 댐 모금 이후 최대의 국민모금이 벌여졌다. 당시 보도를 보면, 2개월여 진행된 금 모으기에 349만명이 참가해 1509만 가구로 계산하면 23%가 동참했다고 한다.

문제는 곧 드러났다. 공자께서는 “가난은 근심하지 않지만 균등(均等)하지 못한 것은 근심한다”고 말씀하셨다.

금 모으기 할 때는 재벌부터 서민까지 모두 하나인 줄 알았는데 끝나고 보니 누구는 고혈을 짜내고, 누구는 금항아리 옥쟁반에 술과 안주를 포식하고 있었다.

배가 풍랑을 만났으니 지금 일부가 희생해 내리면 풍랑이 그친 뒤 배에 태워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정리해고가 밀려들어왔고, 배를 수리하는 비용에 보태라고 금을 모았다. 그러나 대한민국호는 재벌과 새로 승선한 외국자본만 태운 채 태평양을 건너갔는지 꽁무니도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가난한 자들만 풍랑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다시 금을 모으자고? 청년희망펀드에 돈을 내라고? 긍정적 에너지를 모아 경제를 살리자고? 풍랑에 버려진 지 20년이 다 돼 간다. 모을 금도, 희망도 에너지도 없다. 더 이상 “털어서 나오면 십원에 한 대”라는 식으로 국민을 협박하지 말라.

이제 금도, 희망도, 에너지도 모두 가져간 ‘배 위의 자들’이 내놓아야 한다. 그것이 개혁이고, 정치혁명이고, 선진화다. 실제로 요즘 선진국들이 다 이런다고 하지 않나.

한 줄 결론. 금 모으기 다시 하자고, 똘똘 뭉쳐 경제위기를 극복하자고 말하는 당신. 당신의 것을 내놓으면 된다.


출처  [데스크칼럼] IMF 금 모으기를 다시 하자는 분들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