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가 사라진 예산안
2016년도 예산안의 다섯가지 포인트
[민중의소리] 이상민 전문기자 | 최종업데이트 2015-10-25 17:32:21
‘예산국회’라는 별명을 가진 정기국회가 이번 주부터 예산시즌으로 접어들었다. 예산국회에서는 정부가 작성한 국가의 살림 계획(정부 예산안)을 확정하게 된다. 387조 원에 달하는 나라살림이 제대로 편성되었는지 꼼꼼히 따져보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커다란 책장을 다 채우고도 남을 정도의 수만 페이지의 공개된 예산 자료도 넘쳐난다. 그런데 이러한 자료의 홍수에서 중요한 포인트를 찾아내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이번 2016년 정부예산안의 핵심쟁점 5가지를 추려보자.
2016년 예산안엔 뚜렷한 쟁점이 없다.
물론 요즘 국정교과서 문제로 예비비 내역이 시끄럽기는 하다. 하지만 이건 국정교과서 문제에서 튄 불똥이니 별도로 논의 하는게 더 좋겠다.
2016년 예산안에 쟁점이 없는 것은 예산안에 특별한 국정철학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 예전에는 있었느냐? 이명박 정부 때는 4대강예산, 박근혜 정부도 올해(2015년)까지는 창조경제 예산이라는 국정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여기에 동의하는지와는 별개로 예산안에 뭔가 ‘방향’이 있긴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 이후 올해까지는 별도의 항목으로 존재했던 ‘창조경제예산 항목’이 2016년 예산안에는 없다. 스핑크스 수수께끼’보다 정체를 알아내기 어렵다는 창조경제는 신비주의만 남기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어쩌면 4대강과 창조경제에 질려서 아무 방향을 담지 않은 2016년 예산안이 더 낫다고 볼 수도 있다. 그냥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낭비성 예산이나 좀 깎고, 국가부채나 줄이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가정살림의 기본은 씀씀이를 줄이고 저축하는 게 아닌가. 마찬가지로 국가부채도 심각하고, 경기도 좋지 않은데 괜히 4대강 같은 낭비성 사업을 하지 않고 ‘제발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일각의 바램을 실천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국가예산은 가정살림살이와 정반대다.
가정은 수입에 맞춰 지출규모를 정한다. 100만원을 벌면 100만원 이내로 써야 하고 500만원을 벌면 씀씀이를 좀 더 키울 수 있다. 하지만 국가예산은 거꾸로다. 국가가 필요한 예산이 1조원이면 1조원의 세입예산을 확보해야 하고, 국가가 필요한 예산이 10조원이면 더 많은 세입예산을 확보해야 한다. 가정은 필요한 만큼 수입을 올릴 수 없지만 국가는 필요한 사업이 있으면 세입예산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세입예산도 세법으로 정해진 한도가 있다. 그러나 만일 어떤 사업(이를테면 어린이집 지원사업)에 추가 지출이 필요하다고 국민 대다수가 동의한다면 세법을 고쳐 세입예산을 늘릴 수 있다. 국민이 증세에 반대하는 건 증세를 통해 얻어진 세수가 낭비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적절한 곳에 사용될 세금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가정은 경기가 안 좋으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하지만 국가는 경기가 안 좋으면 오히려 돈을 풀어야 한다. 국가의 재정사업은 경기조절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불경기에는 돈을 풀고, 호경기에는 긴축을 해서 과열을 방지하는 것이 국가 재정운영의 기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산이 보여주는 정책방향이 ‘미아’가 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정부는 2016년 예산안의 제목은 ‘청년희망, 경제혁신, 민생안정’이라며 새로운 국가운영의 방향성을 제시했다고 주장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청년희망이라는 말은 ‘노동개혁’의 명분으로만 존재한다. 경제혁신, 민생안정이라는 말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모든 해에 적용될 수 있는 ‘공자님 말씀’일 뿐이다.
결국 2016년 예산안의 쟁점이 없다는 사실은 이 정부가 이제 방향을 잡지 못해 헤매고 있거나, 혹은 리더십이 취약해져서 집중력을 잃었거나, 정책방향을 집행할 실탄(돈?)이 없다는 걸 말해준다.
2016년 예산안은 왜 쟁점이 없는 싱거운 예산이 되었을까? 예산의 절대량이 ‘사실상’ 감소했기 때문이다. 전체 예산의 절대량이 줄어들다보니 대규모 지출이 동반되는 새로운 사업은 아예 꺼내기도 힘들어졌다. 자연스레 방향도 제시할 수 없게 되었다.
정부는 2016년 예산안이 2015년 예산보다 3% 증대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정확한 주장이 아니다. 정부는 2016년 예산안이 2015년의 375조원보다 3% 증가한 387조원이라고 한다. 하지만 올해는 추경예산이 있었다. 작년말에 국회를 통과한 본예산은 375조원이었지만, 여름에 한차례 예산규모를 고쳐서 385조원이 됐다. 결국 올해 실제로 지출된 예산 규모는 ‘추경예산(추가로 고쳐진 예산)’인 385조원이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단지 2조원만 늘었다. 증가율로는 0.5%일 뿐이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정부는 올해 경상성장률(실질성장률 + 물가상승률) 4.2%로 예상하고 있는데, 경제규모가 그 만큼 커졌는데 예산액이 0.5% 늘어난다면(이건 물가상승률보다도 낮다) 이는 어느 면으로봐도 줄어든 예산이라고 봐야 한다.
정부의 ‘꼼수’ 혹은 ‘속임수’는 계속된다. 정부는 2016년 예산안을 제출하면서 지출은 본예산 기준으로, 세입은 추경예산 기준으로 발표했다. 그래서 세입예산 금액은 3.4%(7.4조원) 늘어났다고 설명한다. 올해 추경예산 때, 예산지출 금액은 늘리고 세입예산 금액은 줄여서 경정(고쳐서 정함)했다. 결국, 정부는 지출이 늘어났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지출은 본예산 기준으로 비교하고 수입도 늘어났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세입은 추경예산 기준으로 비교하는 꼼수를 부린 것이다.
이제 본격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왜 축소예산안을 편성했을까?
경기가 좋지 않을 때는 확대재정을 펴는 것은 필요하다는 건 상식이다. 더구나 내년에는 선거도 있다. 박근혜 정부라고 돈을 왕창 풀어 국민들에게 인기를 얻고 싶지 않은 게 아니다.
의외로 답은 간단하다. 정말 돈이 없기 때문이다. ‘증세는 없다’고 여러차례 공약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중 거의 유일하게 지키는 공약인 ‘증세는 없다’는 말을 지키려면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적자국채(빚)를 더욱 확대하던지, 세출을 구조조정해서 알뜰하게 쓰던지, 그것도 아니면 아예 축소예산안을 편성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적자국채를 확대하고 축소예산안을 편성하는 것으로 ‘증세는 없다’는 약속을 지켰다. 대신 세출구조조정을 통해 복지재원을 마련하겠다는 약속은 어겼다.
박근혜 정부는 ‘증세 없는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해 세출구조조정을 말끝마다 강조했다. 쓸데없는 씀씀이를 줄여서 이를 복지 재원으로 쓰겠다는 것이다. 그 약속은 이번에도 지켜지지 않았다.
우선 2016년 복지예산은 줄었다. ‘실질적으로 감소’했다는 것이 아니라 절대액수가 무려 2.2%나(1.4조원) 줄었다는 것이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2016년 보건복지예산 총액은 106조원으로 2015년의 104조원보다 다소 늘었다. 그러나 새정치연합의 안민석 의원은 ‘절대액이 줄었다’고 주장한다. 똑같은 숫자를 놓고 왜 이런 상반된 주장이 나올까?
비밀은 공적연금 지출액의 자연증가분에 있다.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 등 공적연금은 제도 시행 기간이 늘어남에 따라 정부 재정에서 나가는 돈이 늘어난다. 이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이 자연증가분을 빼면 내년도 보건복지예산은 올해 보다 감소했다.
박근혜 정부가 애지중지한다는 복지예산이 실질적으로는 줄어든 이유는 정부가 여러번 약속한 ‘세출 구조조정’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번에도 유사 중복사업을 통폐합해서 재정을 개혁했다고 자랑하고 있다.
안민석 의원실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는 약 950개의 사업을 400개의 사업으로 통폐합했다. 사업의 갯수가 크게 줄어들었으니 정부의 말이 맞는걸까? 문제는 통폐합 전 예산은 21.2조원인데 통폐합 후 예산은 21.1조원이라는 데 있다. 쓸 돈이 줄지 않았다는 것이다. 형식적으로 사업명만 통합하고 실질적으로 예산은 삭감 없이 그대로 편성했다는 뜻이다. 이렇게 ‘눈 가리고 아웅’한 것이 2016년 예산안에서 정부가 가장 부각시킨 ‘자랑거리’다.
예산총액이 물가상승률에도 못미치는 0.5%가 늘었고, 세출구조조정에도 실패했다면 거의 모든 분야의 예산이 동결되거나 오히려 삭감되었을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우리나라 예산은 경직성 경비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대부분 인건비인 경직성 경비는 자연적으로 증가하기 마련이다. 0.5%밖에 안되는 예산 총액의 증대분은 경직성 경비 증가를 충당하기에도 빠듯하다. 또 전에 없던 신규 사업들도 2016년 예산안에 포함되니 기존에 있던 사업성 경비는 상당수 삭감됐다. 어쩌다 늘어난 경우에도 10% 수준의 증가에 그친다.
그러나 이럴때도 비약적으로 늘어난 예산이 몇 가지 있다.
첫째로 새마을운동지원 사업. 무려 153% 폭증했다. 작년(2014년)에는 4.6억원 정도였는데 올해에는 57억원으로 십수배 늘었다. 내년에는 143억원이다. 올해 기준으로 153% 증가했다.
둘째로 보훈처의 ‘나라사랑 정신 계승발전’예산. 올해 26억원에서 내년 100억원으로 네배 가까이 늘어났다. 보훈처의 예산에서 독립운동 관련 예산은 2015년 379억원에서 2016년 329억원으로 줄어들었다. 대신 국회와 감사원에서 정치적 중립성 논란을 빚은 나라사랑 정신 계승발전 예산은 폭증했다. 이 돈은 ‘나라사랑 강사단’을 구성하여 유치원, 초중고, 대학까지 나라사랑 교육을 시키고, ‘나라사랑 다큐멘타리’ 제작, ‘나라사랑 뮤지컬’ 제작에 쓰인다. 이렇게 만들어진 다큐멘터리와 뮤지컬은 각급 학교에서 순회 공연된다. 물론 여기에도 이 예산이 쓰인다.
이외에도 폭증한 예산을 들여다보면 경찰청의 노후 채증장비 교체 사업이 4억원에서 23억원으로 5배나 늘어났다. 비슷한 ‘코드’의 신규사업으로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사회복지교육사업이 있다. ‘합리적 복지’ 교육을 하겠다는 것인데, 어떤 내용일지는 독자들이 짐작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앞서 2016년 예산은 큰 쟁점이 없다고 설명한 바 있다. 큰 쟁점이 없다는 이야기는 큰 변화가 없다는 의미다. 다른 각도에서 말하자면 기존의 ‘적폐’를 그대로 답습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재벌에 지원되는 예산은 살아남았다.
우선 재벌대기업에 지출되는 R&D 세액공제 예산이 약 2조원이다. 이름도 어려운 임시투자세액공제와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까지 합치면 재벌대기업에만 약 3.5조원이 지원된다. 지금도 사내유보금을 쌓아놓는 재벌대기업에 추가로 돈을 지원한들 고용이나 투자가 늘어날 리는 만무하다. 실제 세액공제를 받기 위해 추가 고용을 하는 기업을 현실에선 찾기 어렵다. 세액공제를 받는 것보다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것이 더 싸게 먹히기 때문이다.
의료영리화 사업의 일환인 원격의료 제도화 기반구축 사업예산도 올해 3.5억원에서 2016년 12억원으로 증가했다. 해외환자 유치 지원예산도 올해 56억원에서 내년 86억원으로 증가했다. 모두 의료사업을 하고 있는 재벌대기업에 지원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실패했다고 평가받는 해외 에너지 자원 개발 사업도 소폭 삭감된 채로 계속된다. 석유공사의 유전개발 사업에 500억원을 출자하는 것이 그렇다. 올해에 비해서 70억원만 줄었다. 4대강 후속사업인 국가하천 정비사업도 올해 4338억원에서 내년 4250억원으로 소폭 삭감했지만 지속된다. 특히, 부실비리 방산사업의 핵심인 KF-16 성능개량 사업은 내년에도 200억원의 집행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예산이 거의 늘어나지 않았으니 재정적자 규모라도 좀 개선되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016년도에도 국가채무는 50조원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2016년 예산은 새로운 국정운영의 방향성을 제시하지도 못하고, 기존의 적폐는 그대로 유지된 채, 재정적자 규모만 늘어나는 결과를 낳을 것이 확실하다.
물론 2016년 예산안은 말 그대로 정부가 내놓은 ‘안건’에 불과하다. 국회의 예산심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확정된다. ‘이론적’으로는 국회심의 과정에서 많은 부분이 달라질 수 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충실한 국회 심의가 이루어지길 희망한다.
출처 ‘창조경제’가 사라진 예산안 - 2016년도 예산안의 다섯가지 포인트
2016년도 예산안의 다섯가지 포인트
[민중의소리] 이상민 전문기자 | 최종업데이트 2015-10-25 17:32:21
‘예산국회’라는 별명을 가진 정기국회가 이번 주부터 예산시즌으로 접어들었다. 예산국회에서는 정부가 작성한 국가의 살림 계획(정부 예산안)을 확정하게 된다. 387조 원에 달하는 나라살림이 제대로 편성되었는지 꼼꼼히 따져보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커다란 책장을 다 채우고도 남을 정도의 수만 페이지의 공개된 예산 자료도 넘쳐난다. 그런데 이러한 자료의 홍수에서 중요한 포인트를 찾아내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이번 2016년 정부예산안의 핵심쟁점 5가지를 추려보자.
정부 2016년 예산안 발표 ⓒ뉴시스
“이번 예산안엔 창조경제가 없다”
2016년 예산안엔 뚜렷한 쟁점이 없다.
물론 요즘 국정교과서 문제로 예비비 내역이 시끄럽기는 하다. 하지만 이건 국정교과서 문제에서 튄 불똥이니 별도로 논의 하는게 더 좋겠다.
2016년 예산안에 쟁점이 없는 것은 예산안에 특별한 국정철학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 예전에는 있었느냐? 이명박 정부 때는 4대강예산, 박근혜 정부도 올해(2015년)까지는 창조경제 예산이라는 국정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여기에 동의하는지와는 별개로 예산안에 뭔가 ‘방향’이 있긴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 이후 올해까지는 별도의 항목으로 존재했던 ‘창조경제예산 항목’이 2016년 예산안에는 없다. 스핑크스 수수께끼’보다 정체를 알아내기 어렵다는 창조경제는 신비주의만 남기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어쩌면 4대강과 창조경제에 질려서 아무 방향을 담지 않은 2016년 예산안이 더 낫다고 볼 수도 있다. 그냥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낭비성 예산이나 좀 깎고, 국가부채나 줄이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가정살림의 기본은 씀씀이를 줄이고 저축하는 게 아닌가. 마찬가지로 국가부채도 심각하고, 경기도 좋지 않은데 괜히 4대강 같은 낭비성 사업을 하지 않고 ‘제발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일각의 바램을 실천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국가와 가정의 살림살이는 반대다
그러나 국가예산은 가정살림살이와 정반대다.
가정은 수입에 맞춰 지출규모를 정한다. 100만원을 벌면 100만원 이내로 써야 하고 500만원을 벌면 씀씀이를 좀 더 키울 수 있다. 하지만 국가예산은 거꾸로다. 국가가 필요한 예산이 1조원이면 1조원의 세입예산을 확보해야 하고, 국가가 필요한 예산이 10조원이면 더 많은 세입예산을 확보해야 한다. 가정은 필요한 만큼 수입을 올릴 수 없지만 국가는 필요한 사업이 있으면 세입예산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세입예산도 세법으로 정해진 한도가 있다. 그러나 만일 어떤 사업(이를테면 어린이집 지원사업)에 추가 지출이 필요하다고 국민 대다수가 동의한다면 세법을 고쳐 세입예산을 늘릴 수 있다. 국민이 증세에 반대하는 건 증세를 통해 얻어진 세수가 낭비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적절한 곳에 사용될 세금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가정은 경기가 안 좋으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하지만 국가는 경기가 안 좋으면 오히려 돈을 풀어야 한다. 국가의 재정사업은 경기조절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불경기에는 돈을 풀고, 호경기에는 긴축을 해서 과열을 방지하는 것이 국가 재정운영의 기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산이 보여주는 정책방향이 ‘미아’가 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정부는 2016년 예산안의 제목은 ‘청년희망, 경제혁신, 민생안정’이라며 새로운 국가운영의 방향성을 제시했다고 주장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청년희망이라는 말은 ‘노동개혁’의 명분으로만 존재한다. 경제혁신, 민생안정이라는 말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모든 해에 적용될 수 있는 ‘공자님 말씀’일 뿐이다.
결국 2016년 예산안의 쟁점이 없다는 사실은 이 정부가 이제 방향을 잡지 못해 헤매고 있거나, 혹은 리더십이 취약해져서 집중력을 잃었거나, 정책방향을 집행할 실탄(돈?)이 없다는 걸 말해준다.
“물가상승도 못따라가는 예산증가율”
2016년 예산안은 왜 쟁점이 없는 싱거운 예산이 되었을까? 예산의 절대량이 ‘사실상’ 감소했기 때문이다. 전체 예산의 절대량이 줄어들다보니 대규모 지출이 동반되는 새로운 사업은 아예 꺼내기도 힘들어졌다. 자연스레 방향도 제시할 수 없게 되었다.
정부는 2016년 예산안이 2015년 예산보다 3% 증대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정확한 주장이 아니다. 정부는 2016년 예산안이 2015년의 375조원보다 3% 증가한 387조원이라고 한다. 하지만 올해는 추경예산이 있었다. 작년말에 국회를 통과한 본예산은 375조원이었지만, 여름에 한차례 예산규모를 고쳐서 385조원이 됐다. 결국 올해 실제로 지출된 예산 규모는 ‘추경예산(추가로 고쳐진 예산)’인 385조원이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단지 2조원만 늘었다. 증가율로는 0.5%일 뿐이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정부는 올해 경상성장률(실질성장률 + 물가상승률) 4.2%로 예상하고 있는데, 경제규모가 그 만큼 커졌는데 예산액이 0.5% 늘어난다면(이건 물가상승률보다도 낮다) 이는 어느 면으로봐도 줄어든 예산이라고 봐야 한다.
정부의 ‘꼼수’는 또 있다
정부의 ‘꼼수’ 혹은 ‘속임수’는 계속된다. 정부는 2016년 예산안을 제출하면서 지출은 본예산 기준으로, 세입은 추경예산 기준으로 발표했다. 그래서 세입예산 금액은 3.4%(7.4조원) 늘어났다고 설명한다. 올해 추경예산 때, 예산지출 금액은 늘리고 세입예산 금액은 줄여서 경정(고쳐서 정함)했다. 결국, 정부는 지출이 늘어났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지출은 본예산 기준으로 비교하고 수입도 늘어났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세입은 추경예산 기준으로 비교하는 꼼수를 부린 것이다.
이제 본격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왜 축소예산안을 편성했을까?
경기가 좋지 않을 때는 확대재정을 펴는 것은 필요하다는 건 상식이다. 더구나 내년에는 선거도 있다. 박근혜 정부라고 돈을 왕창 풀어 국민들에게 인기를 얻고 싶지 않은 게 아니다.
의외로 답은 간단하다. 정말 돈이 없기 때문이다. ‘증세는 없다’고 여러차례 공약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중 거의 유일하게 지키는 공약인 ‘증세는 없다’는 말을 지키려면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적자국채(빚)를 더욱 확대하던지, 세출을 구조조정해서 알뜰하게 쓰던지, 그것도 아니면 아예 축소예산안을 편성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적자국채를 확대하고 축소예산안을 편성하는 것으로 ‘증세는 없다’는 약속을 지켰다. 대신 세출구조조정을 통해 복지재원을 마련하겠다는 약속은 어겼다.
“복지예산은 줄었다”
박근혜 정부는 ‘증세 없는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해 세출구조조정을 말끝마다 강조했다. 쓸데없는 씀씀이를 줄여서 이를 복지 재원으로 쓰겠다는 것이다. 그 약속은 이번에도 지켜지지 않았다.
우선 2016년 복지예산은 줄었다. ‘실질적으로 감소’했다는 것이 아니라 절대액수가 무려 2.2%나(1.4조원) 줄었다는 것이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2016년 보건복지예산 총액은 106조원으로 2015년의 104조원보다 다소 늘었다. 그러나 새정치연합의 안민석 의원은 ‘절대액이 줄었다’고 주장한다. 똑같은 숫자를 놓고 왜 이런 상반된 주장이 나올까?
비밀은 공적연금 지출액의 자연증가분에 있다.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 등 공적연금은 제도 시행 기간이 늘어남에 따라 정부 재정에서 나가는 돈이 늘어난다. 이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이 자연증가분을 빼면 내년도 보건복지예산은 올해 보다 감소했다.
최근 5년간 보건복지예산 중 공적연금 제외분 ⓒ기타
‘눈 가리고 아웅’한 세출구조조정
박근혜 정부가 애지중지한다는 복지예산이 실질적으로는 줄어든 이유는 정부가 여러번 약속한 ‘세출 구조조정’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번에도 유사 중복사업을 통폐합해서 재정을 개혁했다고 자랑하고 있다.
안민석 의원실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는 약 950개의 사업을 400개의 사업으로 통폐합했다. 사업의 갯수가 크게 줄어들었으니 정부의 말이 맞는걸까? 문제는 통폐합 전 예산은 21.2조원인데 통폐합 후 예산은 21.1조원이라는 데 있다. 쓸 돈이 줄지 않았다는 것이다. 형식적으로 사업명만 통합하고 실질적으로 예산은 삭감 없이 그대로 편성했다는 뜻이다. 이렇게 ‘눈 가리고 아웅’한 것이 2016년 예산안에서 정부가 가장 부각시킨 ‘자랑거리’다.
유사 중복 재정사업 통폐합 현황 ⓒ기타
“이 와중에도 코드 예산은 늘었다”
예산총액이 물가상승률에도 못미치는 0.5%가 늘었고, 세출구조조정에도 실패했다면 거의 모든 분야의 예산이 동결되거나 오히려 삭감되었을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우리나라 예산은 경직성 경비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대부분 인건비인 경직성 경비는 자연적으로 증가하기 마련이다. 0.5%밖에 안되는 예산 총액의 증대분은 경직성 경비 증가를 충당하기에도 빠듯하다. 또 전에 없던 신규 사업들도 2016년 예산안에 포함되니 기존에 있던 사업성 경비는 상당수 삭감됐다. 어쩌다 늘어난 경우에도 10% 수준의 증가에 그친다.
그러나 이럴때도 비약적으로 늘어난 예산이 몇 가지 있다.
첫째로 새마을운동지원 사업. 무려 153% 폭증했다. 작년(2014년)에는 4.6억원 정도였는데 올해에는 57억원으로 십수배 늘었다. 내년에는 143억원이다. 올해 기준으로 153% 증가했다.
둘째로 보훈처의 ‘나라사랑 정신 계승발전’예산. 올해 26억원에서 내년 100억원으로 네배 가까이 늘어났다. 보훈처의 예산에서 독립운동 관련 예산은 2015년 379억원에서 2016년 329억원으로 줄어들었다. 대신 국회와 감사원에서 정치적 중립성 논란을 빚은 나라사랑 정신 계승발전 예산은 폭증했다. 이 돈은 ‘나라사랑 강사단’을 구성하여 유치원, 초중고, 대학까지 나라사랑 교육을 시키고, ‘나라사랑 다큐멘타리’ 제작, ‘나라사랑 뮤지컬’ 제작에 쓰인다. 이렇게 만들어진 다큐멘터리와 뮤지컬은 각급 학교에서 순회 공연된다. 물론 여기에도 이 예산이 쓰인다.
이외에도 폭증한 예산을 들여다보면 경찰청의 노후 채증장비 교체 사업이 4억원에서 23억원으로 5배나 늘어났다. 비슷한 ‘코드’의 신규사업으로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사회복지교육사업이 있다. ‘합리적 복지’ 교육을 하겠다는 것인데, 어떤 내용일지는 독자들이 짐작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새정치민주연합 최민희 의원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실에서 열린 국회사무처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국회예산정책처장을 상대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과 관련해 예비비를 사용한 것의 적법성을 질의하고 있다. ⓒ정의철 기자
“재벌 특혜 예산은 살아남았다”
앞서 2016년 예산은 큰 쟁점이 없다고 설명한 바 있다. 큰 쟁점이 없다는 이야기는 큰 변화가 없다는 의미다. 다른 각도에서 말하자면 기존의 ‘적폐’를 그대로 답습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재벌에 지원되는 예산은 살아남았다.
우선 재벌대기업에 지출되는 R&D 세액공제 예산이 약 2조원이다. 이름도 어려운 임시투자세액공제와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까지 합치면 재벌대기업에만 약 3.5조원이 지원된다. 지금도 사내유보금을 쌓아놓는 재벌대기업에 추가로 돈을 지원한들 고용이나 투자가 늘어날 리는 만무하다. 실제 세액공제를 받기 위해 추가 고용을 하는 기업을 현실에선 찾기 어렵다. 세액공제를 받는 것보다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것이 더 싸게 먹히기 때문이다.
의료영리화 사업의 일환인 원격의료 제도화 기반구축 사업예산도 올해 3.5억원에서 2016년 12억원으로 증가했다. 해외환자 유치 지원예산도 올해 56억원에서 내년 86억원으로 증가했다. 모두 의료사업을 하고 있는 재벌대기업에 지원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실패했다고 평가받는 해외 에너지 자원 개발 사업도 소폭 삭감된 채로 계속된다. 석유공사의 유전개발 사업에 500억원을 출자하는 것이 그렇다. 올해에 비해서 70억원만 줄었다. 4대강 후속사업인 국가하천 정비사업도 올해 4338억원에서 내년 4250억원으로 소폭 삭감했지만 지속된다. 특히, 부실비리 방산사업의 핵심인 KF-16 성능개량 사업은 내년에도 200억원의 집행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남은 것은 국회의 몫
예산이 거의 늘어나지 않았으니 재정적자 규모라도 좀 개선되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016년도에도 국가채무는 50조원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2016년 예산은 새로운 국정운영의 방향성을 제시하지도 못하고, 기존의 적폐는 그대로 유지된 채, 재정적자 규모만 늘어나는 결과를 낳을 것이 확실하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오른쪽)와 안민석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야당 간사가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서 대화하고 있다. ⓒ정의철 기자
물론 2016년 예산안은 말 그대로 정부가 내놓은 ‘안건’에 불과하다. 국회의 예산심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확정된다. ‘이론적’으로는 국회심의 과정에서 많은 부분이 달라질 수 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충실한 국회 심의가 이루어지길 희망한다.
출처 ‘창조경제’가 사라진 예산안 - 2016년도 예산안의 다섯가지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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