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교과서 사태는 폭력과 이성의 싸움···학자와 대중 함께 싸워야”
[인터뷰] 한상권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 네트워크’ 상임대표(덕성여대 교수)
[민중의소리] 한상권(덕성여대 교수) | 최지현 기자 | 최종업데이트 2015-11-09 13:24:40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여론의 ‘반대’ 흐름이 굳어지고 있다. 10월 중순 행정예고 때만 해도 비슷하던 찬반이 ‘반대 우위’를 넘어서 ‘과반 반대’로 굳어지고 있다. 정부는 그 과정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홍보와 반대 여론에 대한 공세를 가해왔지만 여론의 흐름을 막아서진 못했다. 여기서 역사학자들의 역할이 작지 않았다. 연구실 안에서 나와 ‘국정교과서 집필거부’ 선언 공개 행동에 나선 것은 그 만큼 역사학자들이 이 사안을 엄중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반증했다.
원로역사학자인 덕성여대 한상권 교수(사학과)는 이번 싸움을 ‘폭력’과 ‘이성’, ‘국가주의’와 ‘민주주의’의 싸움으로 봤다. 그러면서 민주주의의 주인인 국민을 무시한 정권의 ‘해고’ 운동을 벌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현재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 네트워크’ 상임대표를 맡고 있는 한 교수는 6일 서울 종로구 운니동 연구실에서 가진 <민중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열변을 토해냈다.
- 정부가 반대 여론 속에서도 국정교과서를 밀어붙였다. 어떻게 보셨나.
“정부가 행정예고 고시를 해서 20일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말 그대로 취지를 보면 ‘예고’였고, 정책에 대한 검증 기간이었다. 그런데 여론이 어땠나. 결과적으로 현재 반대와 찬성이 2대 1 정도가 됐다. 지난달 16일 여론조사 했을 때엔 찬반이 똑같았는데 마지막 즈음에 여론이 확 바뀐 것이다. 그러면 절차적 민주주의 취지에 맞게 정책을 철회하는 게 맞다. 백성이 주인인 기본정신이 민주주의 아니냐. 주권재민이다. 이렇게 국민을 무시하면서까지 이 일을 하는 것은 심부름꾼인 정부가 주인의 말을 안 듣는 것이다. 그러면 해고시켜야 한다. 해고운동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이번 사태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이 싸움은 이전에 있었던 싸움과는 몇 가지 양상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 본질은 학문과 권력의 싸움이라는 것이다. 국가가 주인이라는 ‘국가주의’와 백성이 주인이라는 ‘민주주의’의 싸움이다. 거기에 학자가 결합한 것이다. 학자는 이성과 논리의 힘이 있다. 반대로 저쪽은 권력과 폭력을 갖고 있다. 즉, 학문과 권력의 싸움이다.”
한 교수는 국정교과서 사태가 역사학자들이 해방 이후 쌓아왔던 ‘학문적 성과’의 총결집체를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동안 박근혜 정부를 휘청이게 만들었던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과 세월호 참사 때만 해도 학자들은 ‘동참’해 힘을 실어주는 정도였다면, 이번 국정교과서 사태의 경우 학자들에게 ‘동참’이 아닌 ’내 문제’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 그동안 쌓아왔던 ‘학문적 성과’란 무엇을 말하는가.
“(학문적 성과가 없던) 그 전까지는 식민주의를 정당화하고 합리화한 식민주의사관이 있었다. 이걸 한 번 극복한 계기가 4.19였다. 민주화가 돼야 학문도 발전한다. 그러다가 5.16으로 무너지면서 군사독재정권이 87년까지 온 것 아닌가. 그것이 6월항쟁을 계기로 다시 극복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민주정부 10년이 있었다. 그때 학문적 성과 외에 해방 공간 속에서 국가가 저지른 각종 폭력, 의문사를 지하에서 밖으로 드러냈다. 국가가 정의롭지 못했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렇게 많이 폭로됐으니 (권력을 가졌던 자들은) 얼마나 무서웠겠나.”
한 교수는 그 배경에서 2005년 ‘뉴라이트’가 나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뉴라이트는 2008년 대안교과서를 만들었고,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가 이 교과서를 극찬했다. 그러나 이 교과서는 학계에서 인정 받지 못해 세상 밖에선 모습을 감췄다. 한 교수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자 2013년 교학사 교과서를 만들었다. 밖에서 몸을 풀고 링 위로 올라온 것이다. 자기들은 채택률을 높이려고 엄청난 공을 들였지만, 결과는 0.1%로 끝났다. 그런데 이번엔 국정교과서로 단칼에 0.1%를 100%로 만들려고 한다. 이는 결국 하향평준화를 만든다. 저쪽은 항상 ‘평등’을 말하면 ‘하향평준’ 논리를 들이대는데, 자기들 논리에도 맞지 않다. 꼴지에 맞추라는 것이다.”
국정교과서 사태는 우리나라 정통성 논쟁과도 맞닿아 있다. 박근혜 정부가 밀어붙이는 국정교과서는 친일을 미화하고 독재를 옹호하는 내용이 담길 우려가 높아 벌써부터 파장이 일고 있다.
- 국정교과서에서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저들의 기본 프레임은 친일과 독재가 한국사회 발전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그 사람들은 친일을 새로운 문명 개척자라고 쓴다. 그렇게 따지면 독립운동가는 철모르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또 독립은 외세의 힘에 의해 됐다고 본다. 연합국 상징이 UN인데, 거기서 대한민국의 권위를 찾으려고 한다. 그런데 딜레마가 생긴다. ‘UN이 한국만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했다’고 하는데 이건 거짓말이다. 한반도에서 한국을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한 것은 맞지만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선거가 실시된 지역 내에서’ 유일한 합법 정부라는 것이다. 북한에선 선거가 실시되지 않았다. 그러면 북한에 대해서는 UN이 어떻게 평가하느냐고? 그건 모른다는 거다. 그런데 그런 전제를 빼놓고 북한을 불법 국가라고 말하면서 교과서에서 북한을 같이 다루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어디서 찾을 수 있나.
“대한민국 헌법에 있다. 3.1운동에 의해 생긴 나라다. 대한민국의 정통은 독립운동이다. 구체적인 게 임시정부고, 이것이 헌법 정신인데 (정부는) 이걸 싹둑 자른 거다. (저쪽에서 주장하는) 건국은 1948년 아닌가. 이전의 독립운동 30년은 빼자는 것이다. 그때 역사가 친일파들한테 부끄러운 것이다.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역사를 날조하고 왜곡하는 것이다. 역사에 큰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한 교수는 또 ‘친일파 청산’이 아닌 ‘독립운동가 청산’이라고 말했다. 친일파 청산은커녕 보호받고 치켜세워야 했던 독립운동가가 되레 청산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 아직도 친일파가 청산되지 않았다. 그래서 박근혜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친일파 후손 논란에 휩싸여있다. 친일을 청산하지 못한 역사가 현 시대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
“친일이 청산되지 않은 게 아니라, 친일파가 독립운동가를 청산했다. 47년 여운형의 암살 알지 않나. 독립된 나라에서 백주대낮에 독립운동가가 테러를 어떻게 당할 수 있는가. 친일파가 독립운동가를 청산한 것이다. 49년에도 백범 김구가 암살당하지 않나. 그땐 대한민국이 수립된 상황이었는데, 최고로 꼽히던 독립운동가가 암살당하지 않나. 또 반민특위도 와해됐다. 정작 친일파들은 대호화저택에서 살지 않았나. 친일파 후손이라고 해서 연좌제를 적용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연좌제가 적용되지 않으려면 반성을 해야 한다. 아버지가 잘못한 걸 딸이 잘못했다고 하면 된다. 그런데 이분(박근혜)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생각은 70년대 유신시대에 머물러있다.”
한 교수는 정부가 국정교과서 확정고시를 하면서 내세운 논리를 보며 어처구니가 없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황교안 국무총리의 대국민담화를 보고는 ‘교과서 간첩단 사건’을 적발한 듯 했다고 비판했다.
“저쪽 논리가 너무 빈약하다. 북한 지령을 받아 국정교과서를 반대한다고 하고, ‘비국민’ 소리(편집자주 :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은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면 ‘국민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해 논란이 됐다)까지 하더니, 그게 안 먹히니까 ‘민생’ 쪽으로 아젠다를 바꾸고 있다. (색깔론이) 먹혀들어갔다면 계속해서 그렇게 주장했을 텐데 안 먹히는 걸 알고 바꾼 것 아니냐. 학자들이 논리를 가지고 싸우는데 저쪽에서 논리로는 당해낼 수 없을 것이다. 그러자 (국정교과서 논쟁 때문에 ) 민생을 챙기지 못하고 있다는 식으로 국민의 기억 속에서 국정교과서를 지우려고 하고 있다. 우리는 저쪽 약점을 가지고 계속해서 공격해나가야 한다. 저쪽 프레임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 정부가 국정교과서를 발표하면서 들었던 주된 근거가 우리나라는 북한과 분단된 특수한 상황이기 때문에 국정교과서가 아닌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또 박근혜도 “우리나라에 대한 강한 자긍심과 역사에 대한 뚜렷한 가치관”이 없으면 “통일이 돼도 결국 사상적으로 지배를 받게 되는 그런 기막힌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70년대 유신교과서를 만들 때와 똑같은 논리다. 북한과의 체제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적 민주주의란 말이 그때 나온 것 아닌가. 그땐 북한과 남한이 서로 체제 경쟁 수준이 비슷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 논리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2015년 지금은 체제 경쟁이 끝났다. 북한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지만 거의 없다. 그런데 40년 전 논리를 가지고 지금 적용하는 것은 맞지 않다. 또 그 사회가 특수하다면 더 보편적으로 가야지, 특수하기 때문에 더 특수적으로 간다면 더 이상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글로벌 스탠다드를 지향하고 있지 않나.”
한 교수는 국정교과서 집필 거부를 한 역사학자 중 한 명이다. 전국 수십여 대학교에서는 역사계열 학자들이 이처럼 집필 거부 선언에 나서면서 여론에 영향을 미쳤다. 그런 가운데 정부는 국정교과서 확정고시를 발표하면서 집필진을 단 두 명만 공개해 ‘밀실 집필’이라는 비난을 자초했다. 그중 한명인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는 성추행 논란 등에 휘말리며 ‘불명예스럽게’ 사퇴했다. 바로 인터뷰를 진행하던 동안 벌어진 일이었다.
- 중도, 진보 학자들이 집필 거부를 선언했다. 현재 정부가 구성한 집필진은 거의 공개되지 않았다. 이래서 균형있는 역사교과서 집필이 가능할 것으로 보시나.
“균형된 집필진 구성은 힘들 것 같다. 정부는 최고 품질의 교과서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최고의 학자들이 합류해야 한다. (대표 집필진 중 한명인) 신형식 선생님(이화여대 명예교수)은 팔순이다. 보통 65세에서 많게는 70세까지 한다면, 그는 10년 이상 학계로부터 떨어져있었다. 그걸 검증할 필요가 있다. 보통 검증할 때는 최근 5년 동안 어떤 연구를 했는지를 본다. 만약 집필진이 그 분야에서 5년 동안 업적을 내지 못했다면 그 사람은 이미 끝난 사람이다. 과거 아무리 훌륭했다고 하더라도 학문이 빠른 속도로 발달하고 있는 만큼, 과거와 현재 시대를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하는데, 학문 활동이 정지돼있다면 어려울 수밖에 없다.”
2018년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는 한 교수는 학계에 발을 딛은 지 30년이 넘는 원로학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학교 안과 밖 현장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현재 한 교수가 상임대표를 맡고 있는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 네트워크’는 역사정의실천연대 산하에 있는 기구다. 지난 교학사 교과서 문제가 불거질 때 만들었던 ‘친일·독재미화 뉴라이트한국사교과서 검정무효화 국민네트워크’가 이름을 바꿔 지금은 국정교과서에 맞서 싸우고 있다.
- 연구활동 하시느라 바쁘실 텐데, 시민사회운동에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스스로도 학자인지 활동가인지 구분이 안 될 때가 많다. (웃음) ‘아스팔트 보수’라는 말이 있는데 ‘아스팔트 교수’라는 말을 듣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나중에 국정교과서 문제가 터졌을 때 역사학계는 뭐했냐고 누군가 물어봤을 때 연구에 바빠 정신 없었다고 하면 역사학자로서 면책이 되겠나. 역사는 남이 아닌 자신의 문제다. 자기 문제도 해결 못하는데 논문이 무슨 소용이겠나. 또 역사의 경우 순수학문이다보니 문제가 생기면 나설 수 있는 단체가 별로 없다. 그런 점에서 단체가 필요하고, 학자가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지난달 31일 국내 역사학계 최대 행사인 전국역사학대회가 열렸다. 화두는 역시 국정교과서였다. 참가한 교수들이 국정교과서 집필 불참을 촉구하자 보수단체 회원들이 난입해 한때 소란이 벌어졌다. 교수들도 이런 건 처음 봤을 것 같다.
“2015년의 민낯이다. 이성적으로 풀 수 있는 능력이 없으니까 폭력적으로 문제에 접근하고 있는 것 아니냐. 청소년들이 국정교과서 반대 거리행동을 할 때 갑자기 나타난 50대 남성이 발길질을 한 것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이번 국정교과서 문제는 폭력과 이성의 싸움이라고 말한 것이다.”
- 역사학자로서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또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 네트워크의 계획은 무엇인가?
“이론과 학자가 대중과 결합할 수 있도록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 막연하게 알아서는 (국정교과서 반대가 더 높은) 여론이 또 뒤집힐 수 있다. 결집을 단단하게 해서 투표장에 가고 국민들이 정권을 심판할 수 있도록 싸움을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 학자들에 대한 각 지역의 요구가 있다. 학자들은 연구실에서 벗어나 길거리 강연 같은 것들을 하면서 시민들과 직접 만나야 한다. 이건 학문의 자유를 지키는 싸움이기도 하기 때문에, ‘내 일’이라고 생각하고 모두 나서야 한다. 또 시민단체가 하는 범국민대회도 이어질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청소년들의 행동이다. 국정교과서 반대 여론이 높아지는 여러 이유 중에 하나는 중고등학생들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대는 종편방송도 보지 않는다. 부모를 설득할 논리를 가지고 있다. 교육주체로서 목소리를 더 크게 낼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그래서 집회 때에도 항상 맨 앞 줄에는 청소년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출처 “국정교과서 사태는 폭력과 이성의 싸움···학자와 대중 함께 싸워야”
[인터뷰] 한상권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 네트워크’ 상임대표(덕성여대 교수)
[민중의소리] 한상권(덕성여대 교수) | 최지현 기자 | 최종업데이트 2015-11-09 13:24:40
한상권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 네트워크 상임대표(덕성여대 사학과 교수)가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차미리사연구소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양지웅 기자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여론의 ‘반대’ 흐름이 굳어지고 있다. 10월 중순 행정예고 때만 해도 비슷하던 찬반이 ‘반대 우위’를 넘어서 ‘과반 반대’로 굳어지고 있다. 정부는 그 과정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홍보와 반대 여론에 대한 공세를 가해왔지만 여론의 흐름을 막아서진 못했다. 여기서 역사학자들의 역할이 작지 않았다. 연구실 안에서 나와 ‘국정교과서 집필거부’ 선언 공개 행동에 나선 것은 그 만큼 역사학자들이 이 사안을 엄중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반증했다.
원로역사학자인 덕성여대 한상권 교수(사학과)는 이번 싸움을 ‘폭력’과 ‘이성’, ‘국가주의’와 ‘민주주의’의 싸움으로 봤다. 그러면서 민주주의의 주인인 국민을 무시한 정권의 ‘해고’ 운동을 벌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현재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 네트워크’ 상임대표를 맡고 있는 한 교수는 6일 서울 종로구 운니동 연구실에서 가진 <민중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열변을 토해냈다.
“폭력과 이성, 국가주의와 민주주의 싸움
국민 말 안 듣는 정부 해고해야”
국민 말 안 듣는 정부 해고해야”
- 정부가 반대 여론 속에서도 국정교과서를 밀어붙였다. 어떻게 보셨나.
“정부가 행정예고 고시를 해서 20일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말 그대로 취지를 보면 ‘예고’였고, 정책에 대한 검증 기간이었다. 그런데 여론이 어땠나. 결과적으로 현재 반대와 찬성이 2대 1 정도가 됐다. 지난달 16일 여론조사 했을 때엔 찬반이 똑같았는데 마지막 즈음에 여론이 확 바뀐 것이다. 그러면 절차적 민주주의 취지에 맞게 정책을 철회하는 게 맞다. 백성이 주인인 기본정신이 민주주의 아니냐. 주권재민이다. 이렇게 국민을 무시하면서까지 이 일을 하는 것은 심부름꾼인 정부가 주인의 말을 안 듣는 것이다. 그러면 해고시켜야 한다. 해고운동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이번 사태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이 싸움은 이전에 있었던 싸움과는 몇 가지 양상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 본질은 학문과 권력의 싸움이라는 것이다. 국가가 주인이라는 ‘국가주의’와 백성이 주인이라는 ‘민주주의’의 싸움이다. 거기에 학자가 결합한 것이다. 학자는 이성과 논리의 힘이 있다. 반대로 저쪽은 권력과 폭력을 갖고 있다. 즉, 학문과 권력의 싸움이다.”
한 교수는 국정교과서 사태가 역사학자들이 해방 이후 쌓아왔던 ‘학문적 성과’의 총결집체를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동안 박근혜 정부를 휘청이게 만들었던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과 세월호 참사 때만 해도 학자들은 ‘동참’해 힘을 실어주는 정도였다면, 이번 국정교과서 사태의 경우 학자들에게 ‘동참’이 아닌 ’내 문제’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 그동안 쌓아왔던 ‘학문적 성과’란 무엇을 말하는가.
“(학문적 성과가 없던) 그 전까지는 식민주의를 정당화하고 합리화한 식민주의사관이 있었다. 이걸 한 번 극복한 계기가 4.19였다. 민주화가 돼야 학문도 발전한다. 그러다가 5.16으로 무너지면서 군사독재정권이 87년까지 온 것 아닌가. 그것이 6월항쟁을 계기로 다시 극복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민주정부 10년이 있었다. 그때 학문적 성과 외에 해방 공간 속에서 국가가 저지른 각종 폭력, 의문사를 지하에서 밖으로 드러냈다. 국가가 정의롭지 못했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렇게 많이 폭로됐으니 (권력을 가졌던 자들은) 얼마나 무서웠겠나.”
한 교수는 그 배경에서 2005년 ‘뉴라이트’가 나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뉴라이트는 2008년 대안교과서를 만들었고,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가 이 교과서를 극찬했다. 그러나 이 교과서는 학계에서 인정 받지 못해 세상 밖에선 모습을 감췄다. 한 교수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자 2013년 교학사 교과서를 만들었다. 밖에서 몸을 풀고 링 위로 올라온 것이다. 자기들은 채택률을 높이려고 엄청난 공을 들였지만, 결과는 0.1%로 끝났다. 그런데 이번엔 국정교과서로 단칼에 0.1%를 100%로 만들려고 한다. 이는 결국 하향평준화를 만든다. 저쪽은 항상 ‘평등’을 말하면 ‘하향평준’ 논리를 들이대는데, 자기들 논리에도 맞지 않다. 꼴지에 맞추라는 것이다.”
한상권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 네트워크 상임대표(덕성여대 사학과 교수)가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차미리사연구소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양지웅 기자
“친일파가 독립운동가를 청산한 현실,
대한민국의 정통은 독립운동인데 이걸 지우려고 한다”
대한민국의 정통은 독립운동인데 이걸 지우려고 한다”
국정교과서 사태는 우리나라 정통성 논쟁과도 맞닿아 있다. 박근혜 정부가 밀어붙이는 국정교과서는 친일을 미화하고 독재를 옹호하는 내용이 담길 우려가 높아 벌써부터 파장이 일고 있다.
- 국정교과서에서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저들의 기본 프레임은 친일과 독재가 한국사회 발전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그 사람들은 친일을 새로운 문명 개척자라고 쓴다. 그렇게 따지면 독립운동가는 철모르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또 독립은 외세의 힘에 의해 됐다고 본다. 연합국 상징이 UN인데, 거기서 대한민국의 권위를 찾으려고 한다. 그런데 딜레마가 생긴다. ‘UN이 한국만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했다’고 하는데 이건 거짓말이다. 한반도에서 한국을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한 것은 맞지만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선거가 실시된 지역 내에서’ 유일한 합법 정부라는 것이다. 북한에선 선거가 실시되지 않았다. 그러면 북한에 대해서는 UN이 어떻게 평가하느냐고? 그건 모른다는 거다. 그런데 그런 전제를 빼놓고 북한을 불법 국가라고 말하면서 교과서에서 북한을 같이 다루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어디서 찾을 수 있나.
“대한민국 헌법에 있다. 3.1운동에 의해 생긴 나라다. 대한민국의 정통은 독립운동이다. 구체적인 게 임시정부고, 이것이 헌법 정신인데 (정부는) 이걸 싹둑 자른 거다. (저쪽에서 주장하는) 건국은 1948년 아닌가. 이전의 독립운동 30년은 빼자는 것이다. 그때 역사가 친일파들한테 부끄러운 것이다.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역사를 날조하고 왜곡하는 것이다. 역사에 큰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한 교수는 또 ‘친일파 청산’이 아닌 ‘독립운동가 청산’이라고 말했다. 친일파 청산은커녕 보호받고 치켜세워야 했던 독립운동가가 되레 청산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 아직도 친일파가 청산되지 않았다. 그래서 박근혜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친일파 후손 논란에 휩싸여있다. 친일을 청산하지 못한 역사가 현 시대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
“친일이 청산되지 않은 게 아니라, 친일파가 독립운동가를 청산했다. 47년 여운형의 암살 알지 않나. 독립된 나라에서 백주대낮에 독립운동가가 테러를 어떻게 당할 수 있는가. 친일파가 독립운동가를 청산한 것이다. 49년에도 백범 김구가 암살당하지 않나. 그땐 대한민국이 수립된 상황이었는데, 최고로 꼽히던 독립운동가가 암살당하지 않나. 또 반민특위도 와해됐다. 정작 친일파들은 대호화저택에서 살지 않았나. 친일파 후손이라고 해서 연좌제를 적용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연좌제가 적용되지 않으려면 반성을 해야 한다. 아버지가 잘못한 걸 딸이 잘못했다고 하면 된다. 그런데 이분(박근혜)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생각은 70년대 유신시대에 머물러있다.”
“국정교과서 강행 논리가 너무 빈약
빨갱이 공세 안 먹히니까 민생 핑계”
빨갱이 공세 안 먹히니까 민생 핑계”
한 교수는 정부가 국정교과서 확정고시를 하면서 내세운 논리를 보며 어처구니가 없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황교안 국무총리의 대국민담화를 보고는 ‘교과서 간첩단 사건’을 적발한 듯 했다고 비판했다.
“저쪽 논리가 너무 빈약하다. 북한 지령을 받아 국정교과서를 반대한다고 하고, ‘비국민’ 소리(편집자주 :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은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면 ‘국민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해 논란이 됐다)까지 하더니, 그게 안 먹히니까 ‘민생’ 쪽으로 아젠다를 바꾸고 있다. (색깔론이) 먹혀들어갔다면 계속해서 그렇게 주장했을 텐데 안 먹히는 걸 알고 바꾼 것 아니냐. 학자들이 논리를 가지고 싸우는데 저쪽에서 논리로는 당해낼 수 없을 것이다. 그러자 (국정교과서 논쟁 때문에 ) 민생을 챙기지 못하고 있다는 식으로 국민의 기억 속에서 국정교과서를 지우려고 하고 있다. 우리는 저쪽 약점을 가지고 계속해서 공격해나가야 한다. 저쪽 프레임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 정부가 국정교과서를 발표하면서 들었던 주된 근거가 우리나라는 북한과 분단된 특수한 상황이기 때문에 국정교과서가 아닌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또 박근혜도 “우리나라에 대한 강한 자긍심과 역사에 대한 뚜렷한 가치관”이 없으면 “통일이 돼도 결국 사상적으로 지배를 받게 되는 그런 기막힌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70년대 유신교과서를 만들 때와 똑같은 논리다. 북한과의 체제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적 민주주의란 말이 그때 나온 것 아닌가. 그땐 북한과 남한이 서로 체제 경쟁 수준이 비슷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 논리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2015년 지금은 체제 경쟁이 끝났다. 북한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지만 거의 없다. 그런데 40년 전 논리를 가지고 지금 적용하는 것은 맞지 않다. 또 그 사회가 특수하다면 더 보편적으로 가야지, 특수하기 때문에 더 특수적으로 간다면 더 이상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글로벌 스탠다드를 지향하고 있지 않나.”
한상권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 네트워크 상임대표(덕성여대 사학과 교수)가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차미리사연구소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양지웅 기자
“이론의 힘을 가진 학자, 대중과 계속 거리에서 만나야”
한 교수는 국정교과서 집필 거부를 한 역사학자 중 한 명이다. 전국 수십여 대학교에서는 역사계열 학자들이 이처럼 집필 거부 선언에 나서면서 여론에 영향을 미쳤다. 그런 가운데 정부는 국정교과서 확정고시를 발표하면서 집필진을 단 두 명만 공개해 ‘밀실 집필’이라는 비난을 자초했다. 그중 한명인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는 성추행 논란 등에 휘말리며 ‘불명예스럽게’ 사퇴했다. 바로 인터뷰를 진행하던 동안 벌어진 일이었다.
- 중도, 진보 학자들이 집필 거부를 선언했다. 현재 정부가 구성한 집필진은 거의 공개되지 않았다. 이래서 균형있는 역사교과서 집필이 가능할 것으로 보시나.
“균형된 집필진 구성은 힘들 것 같다. 정부는 최고 품질의 교과서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최고의 학자들이 합류해야 한다. (대표 집필진 중 한명인) 신형식 선생님(이화여대 명예교수)은 팔순이다. 보통 65세에서 많게는 70세까지 한다면, 그는 10년 이상 학계로부터 떨어져있었다. 그걸 검증할 필요가 있다. 보통 검증할 때는 최근 5년 동안 어떤 연구를 했는지를 본다. 만약 집필진이 그 분야에서 5년 동안 업적을 내지 못했다면 그 사람은 이미 끝난 사람이다. 과거 아무리 훌륭했다고 하더라도 학문이 빠른 속도로 발달하고 있는 만큼, 과거와 현재 시대를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하는데, 학문 활동이 정지돼있다면 어려울 수밖에 없다.”
2018년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는 한 교수는 학계에 발을 딛은 지 30년이 넘는 원로학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학교 안과 밖 현장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현재 한 교수가 상임대표를 맡고 있는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 네트워크’는 역사정의실천연대 산하에 있는 기구다. 지난 교학사 교과서 문제가 불거질 때 만들었던 ‘친일·독재미화 뉴라이트한국사교과서 검정무효화 국민네트워크’가 이름을 바꿔 지금은 국정교과서에 맞서 싸우고 있다.
- 연구활동 하시느라 바쁘실 텐데, 시민사회운동에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스스로도 학자인지 활동가인지 구분이 안 될 때가 많다. (웃음) ‘아스팔트 보수’라는 말이 있는데 ‘아스팔트 교수’라는 말을 듣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나중에 국정교과서 문제가 터졌을 때 역사학계는 뭐했냐고 누군가 물어봤을 때 연구에 바빠 정신 없었다고 하면 역사학자로서 면책이 되겠나. 역사는 남이 아닌 자신의 문제다. 자기 문제도 해결 못하는데 논문이 무슨 소용이겠나. 또 역사의 경우 순수학문이다보니 문제가 생기면 나설 수 있는 단체가 별로 없다. 그런 점에서 단체가 필요하고, 학자가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지난달 31일 국내 역사학계 최대 행사인 전국역사학대회가 열렸다. 화두는 역시 국정교과서였다. 참가한 교수들이 국정교과서 집필 불참을 촉구하자 보수단체 회원들이 난입해 한때 소란이 벌어졌다. 교수들도 이런 건 처음 봤을 것 같다.
“2015년의 민낯이다. 이성적으로 풀 수 있는 능력이 없으니까 폭력적으로 문제에 접근하고 있는 것 아니냐. 청소년들이 국정교과서 반대 거리행동을 할 때 갑자기 나타난 50대 남성이 발길질을 한 것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이번 국정교과서 문제는 폭력과 이성의 싸움이라고 말한 것이다.”
- 역사학자로서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또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 네트워크의 계획은 무엇인가?
“이론과 학자가 대중과 결합할 수 있도록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 막연하게 알아서는 (국정교과서 반대가 더 높은) 여론이 또 뒤집힐 수 있다. 결집을 단단하게 해서 투표장에 가고 국민들이 정권을 심판할 수 있도록 싸움을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 학자들에 대한 각 지역의 요구가 있다. 학자들은 연구실에서 벗어나 길거리 강연 같은 것들을 하면서 시민들과 직접 만나야 한다. 이건 학문의 자유를 지키는 싸움이기도 하기 때문에, ‘내 일’이라고 생각하고 모두 나서야 한다. 또 시민단체가 하는 범국민대회도 이어질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청소년들의 행동이다. 국정교과서 반대 여론이 높아지는 여러 이유 중에 하나는 중고등학생들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대는 종편방송도 보지 않는다. 부모를 설득할 논리를 가지고 있다. 교육주체로서 목소리를 더 크게 낼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그래서 집회 때에도 항상 맨 앞 줄에는 청소년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출처 “국정교과서 사태는 폭력과 이성의 싸움···학자와 대중 함께 싸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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