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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내타결’도,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도 모두 박근혜 작품

연내타결’도,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도 모두 박근혜 작품
정부 “대통령 지침 따라 최선”…“최종적·불가역적” 표현도 먼저 제안
[민중의소리] 최명규 기자 | 최종업데이트 2016-01-01 10:48:12


▲ 박근혜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2015.11.02 청와대, 한·일 정상회담) ⓒ뉴시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조차 납득하지 못한 '굴욕 협상'은 박근혜 정부 스스로가 주도해 만든 작품이었다. 청와대와 정부는 '연내 타결'이라는 목표 하에 철저히 자신들의 의도가 관철된 판이라고 말한다. '위안부 종결 선언'인 "최종적 및 불가역적 해결" 표현도 한국 정부가 먼저 제안했다. 외부의 압박보다는 본인들의 '의지'에 따라 이번 협상을 진행한 것이다. 일각에서 지적되는 '외교 실책'이 아닌 셈이다.


"대통령 지침에 따라 나름 최선을 다한 것"

한·일 외교장관 회담 합의가 발표된 지난해 12월 28일 저녁 박근혜는 대국민메시지를 통해 "시간적 시급성과 현실적 여건 하에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이뤄낸 결과"라고 자평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도 같은달 31일 새누리당 의원총회 보고를 통해 "이번 타결안은 현실적 제약 속에서 우리 측 입장을 최대한 반영시킨 최선의 결과"라고 말했다.

'말도 안 통하는' 극우 성향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라는 '현실적 제약'이 있는 조건에서 한국 정부의 입장을 관철시켜 아베 총리의 '사죄와 반성'이라는 최선의 성과를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윤 장관은 "박근혜께서 취임 초부터 역점을 두시고 한일간 집중적이고 다각적인 노력을 통해, 또한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공조를 통해 최종 타결을 도출한 것"이라고 평가하며 박근혜의 '노력'을 강조했다. 임성남 외교부 1차관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만난 자리에서 '시급성'을 내세우며 "대통령 지침에 따라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밝혔다.


'위안부 해결 없이 정상회담 없다'더니 스스로 원칙 뒤집어
일본에 '산케이 무죄' 등 선물 주며 협상 국면 마련
'소녀상 이전'도 현실화, "최종적·불가역적" 표현도 먼저 제안

이번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박근혜 정부가 한 '노력'을 보자. 정부는 한·일 수교 50주년인 2015년을 맞아 '위안부 문제 해결이 한·일 정상회담의 전제'라는 원칙을 뒤집었다. 박근혜는 아베 총리와 양국에서 열린 한·일 수교 50주년 행사에도 교차 참석하며 수순을 밟았다. 그 결과 지난해 11월 2일 박근혜와 아베 총리는 서울에서 첫 정상회담을 했고, '조속한 해결을 위한 회담 가속화' 합의를 도출했다.

정상회담에 앞서 박근혜는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연내 타결"이라는 의지를 천명했다. 당시 아베 총리는 회담이 끝난 뒤에도 다소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지난달 17일 박근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산케이(産經)신문 전 서울지국장에 대한 한국 법원의 무죄 선고가 있었고, 한국 검찰의 항소 포기가 이어졌다. 이는 한국 정부가 일본 측에 준 '선물'이 됐고 곧 협상 국면으로 들어섰다.

아베 총리는 판결에 대해 "한·일 관계에 전향적인 영향"을 언급했다. 뒤이어 아베 총리의 '외교 책사'로 꼽히는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국가안보국장이 움직였다. 지난달 22~23일 서울을 방문한 야치 국장은 주일 한국대사를 지낸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때마침 한국의 헌법재판소에서는 지난달 23일 한·일 청구권 협정에 대한 헌법소원을 기각하는 결정을 내렸다. 또 하나의 '선물'이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아베 총리는 다음날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상에게 전격 방한 지시를 내린다. 이 사실은 일본 언론을 통해 즉시 알려졌고, '한국 정부가 위안부 소녀상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는 등 일본 측의 언론 플레이가 이어졌다. 이때만 해도 한국 정부는 일본 측에 강한 불만을 내비치는 듯했다.

그러나 한·일 회담 직후 한국 정부는 '소녀상 이전' 문제를 스스로 현실화시켰다. 일본 언론 보도 내용이 '사실'이 된 셈이다. 윤병세 장관은 기시다 외무상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소녀상"을 직접 거론,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고 말했다. 일본 측에 강력히 항의했다던 외교부가 스스로 '양치기 소년'이 되는 것을 감수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일본이 그동안 요구해 온 '더 이상 문제제기 하지 않는다는 약속'도 윤 장관의 입을 통해 나왔다. 심지어 이러한 의미를 내포한 "최종적", "불가역적"(되돌릴 수 없는)이라는 표현은 한국 정부가 먼저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 측 인사들의 '망언'과 같은 일이 재발돼선 안 된다는 이유에서였다고 한다.

▲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2015년 12월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 일본군 위안부 한일장관 회담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참석하고 있다. ⓒ정의철 기자



모든 것은 박근혜의 '의지'에 따라 이뤄졌다

이처럼 박근혜 정부는 이번 협상 판을 스스로 만들어 왔다. 물론 대중국 전략 차원에서 견고한 '한·미·일 삼각동맹'을 구상하는 미국의 압박도 배경에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박근혜의 "연내 타결"이라는 '의지'가 없었다면 이번 합의는 불가능했다. 이 사실은 박근혜 정부 스스로 시인하고 있는 대목이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들이 수용할 수 있고, 우리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해결 방안"이라던 박근혜의 원칙은 철저히 무시됐다. 협상 과정에서 피해 할머니들에게 의견도 묻지 않았다. 피해 할머니들은 "우리에게 한 마디도 없었다"고 울분을 토로했다. 이처럼 원칙이 뒤집혔는데도 박근혜의 사과는 없다. 본인 입장에서는 '실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합의에는 피해자들의 핵심 요구 중 하나인 아베 총리의 '직접 사과'도 반영되지 않았다. 아베 총리는 자국 외무상의 입과 박근혜와 전화 통화를 빌어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전달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자신들이 대신 사과를 받았으니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아베 총리는 합의 직후 "사죄는 끝났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역시 "최종적 및 불가역적 해결"로 이미 동의하고 있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우리를 두 번 죽였다"며 '굴욕적' 합의에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는 김성우 홍보수석이 발표한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사실상의 협박을 하고 나섰다. '협상 무효'를 주장하면 위안부 문제에서 손을 떼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청와대는 피해자들에게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만든 "최선을 다한 결과"를 "대승적인 차원에서 이해해 달라"고 요구했다. 청와대가 발표한 만큼 박근혜의 '뜻'이다.

▲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2015년 12월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연남동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쉼터를 찾은 임성남 외교부 제1차관에게 항의하고 있다. ⓒ정의철 기자



출처  ‘연내타결’도,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도 모두 박근혜 정부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