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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가 ‘대단한’ 아베니까 이 정도도 대단하다?

상대가 ‘대단한’ 아베니까 이 정도도 대단하다?
[민중의소리] 최명규 기자 | 최종업데이트 2015-12-30 20:05:56


외교가에서 즐겨 쓰는 말이 있다. “협상에는 상대가 있다”는 말이다. 원하는 것을 100% 얻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말은 한국과 일본 정부의 12.28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정당화하거나 옹호하는 논리로도 사용되고 있다.

특히 이 말은 상대가 말도 안 먹히는 ‘대단한’ 아베(安倍) 정권이었기 때문에 이 정도 합의도 대단하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정부나 여당, 심지어 일부 진보 언론도 이러한 논리에 가세했다. 일단 아베 신조(安倍晋三)총리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보자.

과거 그는 위안부 문제에 ‘인신매매’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개인적으로 가슴 아프다”고 말해 비난을 샀다.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1993년 ‘고노(河野) 담화’에 대한 수정에도 나섰다.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을 용인하는 안보법안들을 밀어붙이는 등 강경한 우경화 노선도 주도하고 있다. 게다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인 새누리당 나경원 의원에 따르면 향후 ‘장기집권’ 가능성도 크다. 한국 정부는 이처럼 ‘대단한’ 일본 총리를 변화시켜 ‘사죄와 반성’이라는 표현을 얻어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묻는다. “(아베) 본인이 말했습니까.” 임성남 외교부 1차관은 답한다. “본인이 또 얘기할 겁니다.” 아베 총리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을 통해 ‘대독 사과’를 했지만 본인이 직접 사과를 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아베 총리 본인은 그럴 뜻이 없어 보인다. “사죄는 끝났다”고 한다. 박근혜에게도 전화로 말해 뒀다고 한다. 이를 임 차관은 알고 있었을까?

게다가 협상 당사자인 기시다 외무상은 “일본이 잃은 것은 (기금) 10억엔(약 100억원)”이라고 한다. 5천만 명의 국민이 200원씩만 모으면 마련할 수 있는 액수이다. 일본이 내준 것은 그뿐이라는 말이다. 그것마저 이미 “(국가)배상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위안부 문제는 1965년 한일협정으로 이미 법적으로 최종 해결됐다’는 기존 입장도 한 치의 변화가 없다고 한다.

대신 한국은 정부가 나서서 일본 측의 안녕과 위엄을 위해 ‘소녀상 이전’ 문제를 현실화시켰다. 또 스스로 입을 닫겠다고 선언까지 했다. 심지어 “최종적”, “불가역적”(돌이킬 수 없는)이라는 표현은 한국 정부가 먼저 제안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미국으로부터 “용단”으로 평가받았다고 자찬한다. 산케이(産經)신문 전 서울지국장 무죄, 한・일 청구권 협정 헌법소원 기각은 ‘대단한 성과’를 위해 일본에 준 선물이 됐다. 그렇게 해서 얻은 ‘대단한 성과’가 무엇인지는 박근혜만 알 뿐이다.

그 사이 박근혜 스스로 공언한 ‘위안부 해결 없이 한・일 정상회담은 없다’는 원칙, ‘피해자와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해결 방안’ 원칙은 소실된 지 오래다.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면서 아베 정권 못지않게 대단하다고 하는 박근혜 정권의 변신은 박근혜 스스로 잊은 듯하다. 건망증도 습관이다.

당초 ‘아베’처럼 말이 안 통하는 상대였다면 굳이 우리가 먼저 조급증을 부릴 이유는 없었다. 차라리 다음 정권으로 넘기는 것도 방법이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생각해 시급히 처리했다고 하지만, 정작 피해 할머니들은 “우리를 두 번 죽였다”고 울분을 토하고 있다.

최대한 양보해 한국 정부 주장대로 ‘대단한 아베와의 전투에서 일부 승리했다’고 치자. 그러나 스스로 입을 닫겠다고 한 이상 일본과의 끝나지 않은 ‘역사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 박근혜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11.2 청와대, 한·일 정상회담) ⓒ뉴시스



출처  [기자수첩] 상대가 ‘대단한’ 아베니까 이 정도도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