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은 금융을 지배하고, 금융은 국민을 통제한다
빚을 통해 국민을 통제하는 재벌
[민중의소리] 이완배 기자 | 최종업데이트 2016-03-06 14:07:07
한국 재벌들이 돈을 쌓아두고 있다는 소식은 더는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그들은 투자하지 않고 금고에 현찰을 가득 쌓아놓는다. 지난달 21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한국 상장기업들이 금고에 쌓아둔 돈은 무려 590조 원에 이른다. 이는 2014년보다 70조 원이나 늘어난 수치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재벌의 현금은 단순한 사내 유보금이 아니다. 이 돈은 그야말로 현금이거나 현금에 가장 가까운 돈이다. 한국은행은 이 돈을 광의통화(M2)라고 부른다. 광의통화는 요구불예금, 수시입출식 저축성예금, 2년 미만 정기예적금, 머니마켓펀드(MMF), 수익증권 등 유동성이 매우 높은 돈 들이다. 마음만 먹으면 바로 현금화가 가능한 돈이 무려 590조 7,468억 원에 이른다는 게 한국은행의 발표다.
도대체 재벌들은 왜 이 돈을 투자에 사용하지 않는 것일까?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더 줄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상식적 질문은 한국 재벌들에게 씨도 먹히지 않는다. 하지만 임금 문제를 빼고 보더라도, 이들의 현금 탐욕은 여전히 이하기 어렵다. 시쳇말로 죽을 때 돈다발 싸 들고 갈 것도 아닐 텐데, 이들은 왜 이렇게 현금을 쌓아두는 것일까?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아서”, 혹은 “기업 사정이 어려우니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 현금을 쌓아둔다는 분석이 아예 틀린 것은 아니다. 분명히 그런 이유도 있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를 좀 더 다른 시각에서 보면, 새로운(하지만 무서운) 사실이 드러난다. 한국 재벌들은 이 막대한 현금을 통해 은행 등 금융권을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금융권은 가계 부채를 통해 국민을 통제한다. 결국, 저 막대한 재벌의 현금성 자산은 가계 부채라는 고리를 통해 국민을 통제하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바야흐로 금융이 국민을 지배하는 세상이다. 미국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버니 샌더스가 연일 월가를 향해 개혁의 메시지를 던지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한국은 사정이 좀 다르다. 금융이 국민을 지배하긴 하지만, 금융은 한국 국민의 생태계에서 최상위 포식자가 아니다. 금융 위에 재벌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빚을 진 사람은 알 것이다. 빚이 얼마나 자신의 삶을 규제하는지를 말이다. 아파트를 담보로 30년 장기 대출을 받은 사람은 그 30년 동안 결코 대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빚을 갚을 때까지는 어떻게든 회사에 붙어 있어야 해’라는 생각의 굴레가 민중들을 삶을 가둔다. 민중들은 남들이 나 대신 이 불공정한 현실에 저항해 주기를 바라지만, 자신은 빚을 갚을 때까지 체제 안에서 숨쉬기를 소망한다. 하지만 가계부채 1,200조 원의 시대에 나를 대신해 용기 있게 싸워줄 민중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들 또한 모두 부채의 덫에 걸려 있는 피포식자일 뿐이다.
금융권은 TV 광고의 내용과 달리 결코 “힘이 들 때 도와주는” 친절한 친구가 아니다. 그들은 국민이 정말로 돈이 필요할 때 대출을 해주지 않는다. 그들이 돈을 빌려줄 때에는 보증이나 신용, 담보가 있을 때뿐이다. 반면 국민이 정말로 돈이 필요할 때, 그러니까 보증이나 신용, 담보가 없는 절망적 상황에서 금융권은 결코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돈을 빌려주기는커녕 오히려 절망의 절벽 위에 서 있는 국민에게 돈을 갚으라며 절벽 밑으로 밀어 버린다. 금융은 국민이 힘들 때 도와주는 친절한 친구가 아니라, 국민이 절망에 빠졌을 때 그들의 숨통을 끊어놓는 악마일 뿐이다.
그래서 부채가 만연한 국가의 국민은 매우 온순하다. 부채 자체에 지배를 받는다. 신자유주의 체제가 확립된 이후 세계 각국의 정부들이 다퉈 가계부채를 증대시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들은 빚을 지닌 사람들이 체제 순응적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다. 민중들은 그 시스템 안에서 일개미같이 끊임없이 일한 뒤, 번 돈의 대부분을 은행장한테 갖다 바친다.
그런데 한국은 ‘빚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있다. 금융권은 부채를 통해 국민을 지배하는데, 그 금융권을 사실상 지배하는 곳이 재벌이기 때문이다. 재벌의 금융권 지배는 주식 지분을 소유하는 방식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금산분리의 원칙 탓에 재벌이 은행을 소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재벌은 금융권을 지배한다. 지배의 가장 중요한 무기가 바로 600조 원에 육박하는 현금이다.
원래 금융의 본령은, 돈이 남는 가계 분야의 잉여 자금을 끌어들여 돈이 부족한 기업에 대출해 주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런 금융의 본령은 이미 오래전부터 왜곡됐다. 은행은 되레 돈이 남아도는 기업으로부터 자금을 유치해, 그 돈을 국민에게 빌려줘 이자 장사를 한다. 1980년대 까지만 해도 은행들은 자기들의 예·적금 상품을 홍보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요즘 은행 중 예·적금 상품 홍보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이들에게 돈은 충분하다. 모두 재벌들이 깔고 앉은 현금 덕이다.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때 6.73%의 막대한 비중을 가졌던 한국 자산운용사들은 모두 삼성그룹의 손을 들어줬다. 미국 같았으면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다. 월가의 금융자본들은 당연히 금융자본의 편을 든다. 하지만 한국의 금융자본은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증권사들도 마찬가지다. 합병 당시 의견을 개진한 연구소는 모두 22곳이었는데, 이 중 무려 21개 회사가 합병에 긍정적인 분석을 내놓았다. 딱 한 곳 반대 의견을 내놓은 증권사는 한화투자증권이었다. 당시 한화투자증권의 대표이사는 현재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한 ‘증권가의 이단아’ 주진형 사장이었다. 주진형 사장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보고서를 낸 뒤 삼성생명으로부터 압력을 받은 바 있냐”는 김기식 의원의 질문에 “압력이라면 압력이라고 할 수 있는 얘기를 들었다”고 답한 바 있다.
김기식 의원의 질문에 등장한 삼성생명도 재벌의 금융 지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회사다. 은행이나 증권사, 자산운용사 등은 어디에선가 돈을 받아와야 영업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삼성생명이 굴릴 수 있는 돈, 즉 이 회사의 총자산이 무려 244조 원이다. 삼성생명이 확보한 퇴직연금 규모도 어마어마하다. 물론 그 돈의 주인은 보험에 가입한 국민이지만, 그 돈을 어느 금융회사에 배분하느냐의 권한은 삼성생명이 갖는다. 금융권이 재벌의 눈치를 안 볼 수 없는 이유가 이것이다.
재벌들이 깔고 앉은 600조 원에 가까운 현금. 과연 그들은 저 돈을 적극적인 투자에 사용할 것인가? 그 가능성은 매우 낮을 것이다. 경기가 좋아진다는 확신이 들어도 그들은 일정액 이상의 유보금을 늘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그 돈이 바로 금융권을 통제하는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국민은 빚을 통해 금융권에 지배당하고, 금융권은 돈을 통해 재벌에 지배당한다. 이 시스템을 재벌이 깰 이유가 없다. 재벌 개혁을 더는 뒤로 미룰 수 없는 또 다른 이유가 바로 그들이 빚을 통해 국민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출처 재벌은 금융을 지배하고, 금융은 국민을 통제한다
빚을 통해 국민을 통제하는 재벌
[민중의소리] 이완배 기자 | 최종업데이트 2016-03-06 14:07:07
한국 재벌들이 돈을 쌓아두고 있다는 소식은 더는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그들은 투자하지 않고 금고에 현찰을 가득 쌓아놓는다. 지난달 21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한국 상장기업들이 금고에 쌓아둔 돈은 무려 590조 원에 이른다. 이는 2014년보다 70조 원이나 늘어난 수치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재벌의 현금은 단순한 사내 유보금이 아니다. 이 돈은 그야말로 현금이거나 현금에 가장 가까운 돈이다. 한국은행은 이 돈을 광의통화(M2)라고 부른다. 광의통화는 요구불예금, 수시입출식 저축성예금, 2년 미만 정기예적금, 머니마켓펀드(MMF), 수익증권 등 유동성이 매우 높은 돈 들이다. 마음만 먹으면 바로 현금화가 가능한 돈이 무려 590조 7,468억 원에 이른다는 게 한국은행의 발표다.
도대체 재벌들은 왜 이 돈을 투자에 사용하지 않는 것일까?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더 줄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상식적 질문은 한국 재벌들에게 씨도 먹히지 않는다. 하지만 임금 문제를 빼고 보더라도, 이들의 현금 탐욕은 여전히 이하기 어렵다. 시쳇말로 죽을 때 돈다발 싸 들고 갈 것도 아닐 텐데, 이들은 왜 이렇게 현금을 쌓아두는 것일까?
빚은 민중을 체제 순응적으로 만든다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아서”, 혹은 “기업 사정이 어려우니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 현금을 쌓아둔다는 분석이 아예 틀린 것은 아니다. 분명히 그런 이유도 있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를 좀 더 다른 시각에서 보면, 새로운(하지만 무서운) 사실이 드러난다. 한국 재벌들은 이 막대한 현금을 통해 은행 등 금융권을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금융권은 가계 부채를 통해 국민을 통제한다. 결국, 저 막대한 재벌의 현금성 자산은 가계 부채라는 고리를 통해 국민을 통제하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바야흐로 금융이 국민을 지배하는 세상이다. 미국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버니 샌더스가 연일 월가를 향해 개혁의 메시지를 던지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한국은 사정이 좀 다르다. 금융이 국민을 지배하긴 하지만, 금융은 한국 국민의 생태계에서 최상위 포식자가 아니다. 금융 위에 재벌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 ⓒ뉴시스
빚을 진 사람은 알 것이다. 빚이 얼마나 자신의 삶을 규제하는지를 말이다. 아파트를 담보로 30년 장기 대출을 받은 사람은 그 30년 동안 결코 대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빚을 갚을 때까지는 어떻게든 회사에 붙어 있어야 해’라는 생각의 굴레가 민중들을 삶을 가둔다. 민중들은 남들이 나 대신 이 불공정한 현실에 저항해 주기를 바라지만, 자신은 빚을 갚을 때까지 체제 안에서 숨쉬기를 소망한다. 하지만 가계부채 1,200조 원의 시대에 나를 대신해 용기 있게 싸워줄 민중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들 또한 모두 부채의 덫에 걸려 있는 피포식자일 뿐이다.
금융권은 TV 광고의 내용과 달리 결코 “힘이 들 때 도와주는” 친절한 친구가 아니다. 그들은 국민이 정말로 돈이 필요할 때 대출을 해주지 않는다. 그들이 돈을 빌려줄 때에는 보증이나 신용, 담보가 있을 때뿐이다. 반면 국민이 정말로 돈이 필요할 때, 그러니까 보증이나 신용, 담보가 없는 절망적 상황에서 금융권은 결코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돈을 빌려주기는커녕 오히려 절망의 절벽 위에 서 있는 국민에게 돈을 갚으라며 절벽 밑으로 밀어 버린다. 금융은 국민이 힘들 때 도와주는 친절한 친구가 아니라, 국민이 절망에 빠졌을 때 그들의 숨통을 끊어놓는 악마일 뿐이다.
그래서 부채가 만연한 국가의 국민은 매우 온순하다. 부채 자체에 지배를 받는다. 신자유주의 체제가 확립된 이후 세계 각국의 정부들이 다퉈 가계부채를 증대시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들은 빚을 지닌 사람들이 체제 순응적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다. 민중들은 그 시스템 안에서 일개미같이 끊임없이 일한 뒤, 번 돈의 대부분을 은행장한테 갖다 바친다.
재벌이 현금을 쌓아둔 보다 근본적 이유
그런데 한국은 ‘빚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있다. 금융권은 부채를 통해 국민을 지배하는데, 그 금융권을 사실상 지배하는 곳이 재벌이기 때문이다. 재벌의 금융권 지배는 주식 지분을 소유하는 방식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금산분리의 원칙 탓에 재벌이 은행을 소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재벌은 금융권을 지배한다. 지배의 가장 중요한 무기가 바로 600조 원에 육박하는 현금이다.
원래 금융의 본령은, 돈이 남는 가계 분야의 잉여 자금을 끌어들여 돈이 부족한 기업에 대출해 주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런 금융의 본령은 이미 오래전부터 왜곡됐다. 은행은 되레 돈이 남아도는 기업으로부터 자금을 유치해, 그 돈을 국민에게 빌려줘 이자 장사를 한다. 1980년대 까지만 해도 은행들은 자기들의 예·적금 상품을 홍보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요즘 은행 중 예·적금 상품 홍보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이들에게 돈은 충분하다. 모두 재벌들이 깔고 앉은 현금 덕이다.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때 6.73%의 막대한 비중을 가졌던 한국 자산운용사들은 모두 삼성그룹의 손을 들어줬다. 미국 같았으면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다. 월가의 금융자본들은 당연히 금융자본의 편을 든다. 하지만 한국의 금융자본은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법률 대리인인 최영익 넥서스 대표변호사가 제일모직과의 합병과 관련한 삼성물산 임시 주주총회 행사장에서 합병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다. ⓒ삼성물산 제공
증권사들도 마찬가지다. 합병 당시 의견을 개진한 연구소는 모두 22곳이었는데, 이 중 무려 21개 회사가 합병에 긍정적인 분석을 내놓았다. 딱 한 곳 반대 의견을 내놓은 증권사는 한화투자증권이었다. 당시 한화투자증권의 대표이사는 현재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한 ‘증권가의 이단아’ 주진형 사장이었다. 주진형 사장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보고서를 낸 뒤 삼성생명으로부터 압력을 받은 바 있냐”는 김기식 의원의 질문에 “압력이라면 압력이라고 할 수 있는 얘기를 들었다”고 답한 바 있다.
김기식 의원의 질문에 등장한 삼성생명도 재벌의 금융 지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회사다. 은행이나 증권사, 자산운용사 등은 어디에선가 돈을 받아와야 영업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삼성생명이 굴릴 수 있는 돈, 즉 이 회사의 총자산이 무려 244조 원이다. 삼성생명이 확보한 퇴직연금 규모도 어마어마하다. 물론 그 돈의 주인은 보험에 가입한 국민이지만, 그 돈을 어느 금융회사에 배분하느냐의 권한은 삼성생명이 갖는다. 금융권이 재벌의 눈치를 안 볼 수 없는 이유가 이것이다.
재벌들이 깔고 앉은 600조 원에 가까운 현금. 과연 그들은 저 돈을 적극적인 투자에 사용할 것인가? 그 가능성은 매우 낮을 것이다. 경기가 좋아진다는 확신이 들어도 그들은 일정액 이상의 유보금을 늘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그 돈이 바로 금융권을 통제하는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국민은 빚을 통해 금융권에 지배당하고, 금융권은 돈을 통해 재벌에 지배당한다. 이 시스템을 재벌이 깰 이유가 없다. 재벌 개혁을 더는 뒤로 미룰 수 없는 또 다른 이유가 바로 그들이 빚을 통해 국민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출처 재벌은 금융을 지배하고, 금융은 국민을 통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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