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우려 깊이 유념"... 국정원 '저자세'에 속지말자
[게릴라칼럼] 사이버 망명과 국정원 보도자료의 행간
[오마이뉴스] 글: 하성태, 편집: 손지은 | 16.03.06 14:17 | 최종 업데이트 16.03.06 14:17
이른바 '망명' 열풍이다. '헬조선'을 탈출하려고 하는 이민이나 망명 행렬이 아니다. 국내 메신저 카카오톡을 버리고 해외에 서버를 둔 해외 메신저 텔레그램으로 갈아타는 2차 '사이버 망명'이 대세다. 지난 2014년 카카오톡 감찰 논란 직후 벌어진 1차 텔레그램 망명에 이은 2차 망명인 셈이다.
텔레그램 사용자들 중 "00님이 텔레그램에 가입하셨습니다"라는 알림을 수차례 받았다는 증언이 계속 이어진다. 텔레그램 앱은 스마트폰 주소록에 등록된 번호가 신규 가입할 경우 자동으로 가입 여부를 알림으로 알려주고 있다. 기자든 일반인이든, 텔레그램 사용자라면 누구나 이 알림을 받을 수 있다. 테러방지법 수정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2일 밤 직후 벌어지고 있는 씁쓸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헬조선'을 '사찰공화국'과 '빅브라더 시대'로 진입시킬 것으로 예상되는 테러방지법에 대한 저항이 이뤄지는 중이다. 웃기고도 슬픈 일은 법안을 통과시킨 장본인들인 새누리당 구성원들도 해외에 서버를 둔 해외 메신저인 텔레그램을 찾고 있다는 점이다.
<프레시안>이 4일 보도한 "테러방지법 통과 후... '그들'도 텔레그램 깔다" 기사 중 일부를 보자. 여당 보좌관, 의원실 직원, 청와대 현직 행정관 등 직종, 직위 구분 없이 너나할 것 없다고 보면 맞다.
JTBC 역시 4일 "'정보기관의 감시'에 대한 우려에 일반 시민들은 물론 검찰과 경찰, 심지어 우려할 필요가 없다던 새누리당 소속 정치인들 중에서도 텔레그램을 설치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라고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여권 관계자의 말을 빌려 "소위 진박·친박으로 꼽히는 보좌관들이나 실무자 상당수가 테러방지법이 통과된 날 텔레그램에 가입해 놀랐다"고 보도하며 "코미디 같은 일"이란 촌철살인도 잊지 않았다.
테러방지법을 기어코 통과시킨 여당 관계자들까지 국정원의 통신감청과 개인정보 수집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해외 메신저를 사용하고자 하는 이 블랙코미디 같은 상황은 누구를 탓해야 할까. 이러한 국민적인 분위기를 감지한 듯, 국정원은 지난 4일 해명 보도자료를 내놨다. 지난해 7월, 국정원의 이탈리아 '해킹팀' 도·감청 프로그램 구입 논란 이후 처음이다. 국정원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8일 동안 계속된 필리버스터 정국 내내 비난이란 비난은 다 뒤집어쓰고, 그야말로 탈탈 털렸던 국정원. 그간 침묵으로 일관했던 국정원이 내놓은 해명은 사실 새로울 것이 없었다. A4 반장을 조금 넘는 분량의 자료는 야당 의원들이 제기한 독소 조항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기보다 여당 의원들이나 보수언론이 방어해줬던 1차원적인 논리를 몇몇 문장으로 재가공한 것뿐이었다. 이에 대한 반박은 필리버스터는 물론 시민사회단체와 매체들의 의해 수없이 제기해 왔다. 그래서 더욱, 빤한 내용보다 눈에 띄는 것은 국정원이 저자세였다.
지난해 7월, 국정원이 이탈리아 해킹프로그램 구입 논란과 관련해 내놓은 보도자료 중 일부다. '국민의 국정원'이란 표현도 가관이지만, 국정원의 정보역량이 크게 훼손됐다, 언론의 보도를 자제하라는 목소리에 힘이 들어 가있다. '아니면 말고'라는 표현을 보라. 하지만 이번 테러방지법 관련 논평은 어떠한가.
필리버스터에 나온 비판과 주장들이 '기우'였다며 납작 엎드린 국정원. '깊이 유념'과 '철저히 엄수', '소명 완수' 등 사용한 어휘도 사뭇 다르지 않은가. 하루 전인 3일 국정원은 급기야 '테러방지법 바로알기'란 이름의 대국민용 홍보 자료까지 내놨다.
비밀스러운데다가 고자세로 일관하던 국정원이 갑자기 겁을 먹기로도 한 건가. 아니 그보다는 필리버스터로 환기된 테러방지법의 독소조항과 국정원의 권한 강화에 대한 국민여론에 잠시 저자세를 보여주며 숨고르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반대 51%대 찬성 39%.
한국 갤럽이 지난 2일과 3일 양일간 전국 성인남녀 101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다. '일반인까지 사찰 우려 있어 반대한다'는 의견이 '테러방지에 필요하므로 찬성'이라는 응답보다 12%p 높았다. '필리버스터 효과'로 풀이할 만한 결과다. 지난해 11월 리얼미터가 조사한 테러방지법 찬반 여론조사에서 찬성이 64.5%, 반대가 22%였던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그에 앞선 25일, MBN이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 2월 25일 하루 54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테러방지법이 '국민 안전을 위해 현재 원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의견은 42.0%, '인권침해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테러방지법 반대' 의견이 25.3%, '국정원의 권한을 줄이는 내용 등을 담은 수정안 통과' 의견이 23.6%였다. '반대와 수정'을 합하면 48.9%.
지난해 11월과 필리버스터 초기, 그리고 필리버스터 중단 이후 찬반 결과에 유의미한 변화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국정원이 실제로 여론조사 등 국민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했을 크지 않다. '찬반이 분분하다'로 무시해 버리면 그만이지 않은가.
하지만 분명 국정원의 저자세는 필리버스터로 인한 테러방지법의 독소조항에 대한 국민적인 환기와 이에 고조된 국정원 비판에 대해 어느 정도 부담감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을 것 같다. 복기해 보라. 박근혜 정부 산하 국정원이 어떤 조직인가.
정권 초기 '댓글 사건'으로 출발해 테러방지법까지 3년 내내 언론 톱기사를 장식하는 자랑스런 조직이 아니던가. 지난해 7월, 이탈리아 해킹팀 논란 당시 "어떤 정보기관도 이런 보도자료를 통해 해명하지 않습니다"라며 뻣뻣함과 정당함을 천명했던 우리의 자랑스러운 정보 기관이지 않은가.
그러거나 말거나, 국정원 등 수사기관의 통신감청·개인정보 수집에 대한 정황들이 끊이지 않고 포착되는 중이다. 지난 4일,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본인이 SK텔레콤에서 확인한 '통신자료 제공사실 확인서'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지난해 12월 9일, 국정원의 요청에 따라 SK텔레콤이 통신자료를 제공한 것이다. 테러방지법이 논란의 한 가운데 있던 시기에도 여전히 국민들 감시하고, 휴대폰 감청하는 '정보 활동'을 게을리 하지 않은 것이다.
그간에 국민들에게 질타를 받아 온 '국정원의 흑역사'를 재론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현재 국정원의 저자세와 숨고르기가 '눈 가리고 아웅'식의 일시적인 제스처라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그래서 더더욱 필리버스터 중단 후 이틀 동안 돌아가는 상황과 여론을 파악했을 국정원의 저의가 불쾌하기 짝이 없다.
모르긴 몰라도, 청와대와 여당은 물론 국정원까지도 "어차피 이길 4.13 총선까지만 버티면 끝이다"라며 안도하고 있지 않을까. 수많은 국민들을 정보, 보안 전문가로 만들고 있는 이 '국정원강화법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막이 오른 셈이다.
그리고, 이런 불쾌감과 불안감을 비웃기라도 하듯 국정원은 같은 날 홈페이지에 '2016 국가정보원 특정직 채용 계획'을 버젓이 게재했다. 아무리 정기 인사라 하더라도, 실무자가 같은 날 업무를 처리했더라도 하필 해명 보도자료를 배포한 당일 채용 계획을 공표할 필요가 있었을까. "우리 국정원은 별일 없이 산다"라며 의기양양해 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이버 망명'만이, 트위터 탈퇴만이 답인건가. 그도 아니면, "총선 승리 후 테러방지법 수정 안을 제일 먼저 제출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같은 일부 야당 의원들의 패기를 믿어야 하나.
"국정원 全(전)직원은 테러방지법 제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국정원의 책무가 더 한층 무거워졌음을 자각하고 있습니다"라는 국정원과 그런 정보 조직을 비호했던 박근혜 정권. 테러방지법 시대를 맞은 국민들과 국정원과의 사투 시즌2가 막이 올랐다. 부디, 이번 싸움의 결과는 허망하지 않기를.
출처 "국민 우려 깊이 유념"... 국정원 '저자세'에 속지말자
[게릴라칼럼] 사이버 망명과 국정원 보도자료의 행간
[오마이뉴스] 글: 하성태, 편집: 손지은 | 16.03.06 14:17 | 최종 업데이트 16.03.06 14:17
▲ 국정원이 배포한 '테러방지법 바로알기' 자료. ⓒ 국정원
이른바 '망명' 열풍이다. '헬조선'을 탈출하려고 하는 이민이나 망명 행렬이 아니다. 국내 메신저 카카오톡을 버리고 해외에 서버를 둔 해외 메신저 텔레그램으로 갈아타는 2차 '사이버 망명'이 대세다. 지난 2014년 카카오톡 감찰 논란 직후 벌어진 1차 텔레그램 망명에 이은 2차 망명인 셈이다.
텔레그램 사용자들 중 "00님이 텔레그램에 가입하셨습니다"라는 알림을 수차례 받았다는 증언이 계속 이어진다. 텔레그램 앱은 스마트폰 주소록에 등록된 번호가 신규 가입할 경우 자동으로 가입 여부를 알림으로 알려주고 있다. 기자든 일반인이든, 텔레그램 사용자라면 누구나 이 알림을 받을 수 있다. 테러방지법 수정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2일 밤 직후 벌어지고 있는 씁쓸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헬조선'을 '사찰공화국'과 '빅브라더 시대'로 진입시킬 것으로 예상되는 테러방지법에 대한 저항이 이뤄지는 중이다. 웃기고도 슬픈 일은 법안을 통과시킨 장본인들인 새누리당 구성원들도 해외에 서버를 둔 해외 메신저인 텔레그램을 찾고 있다는 점이다.
새누리당도 애호하는 텔레그램?
<프레시안>이 4일 보도한 "테러방지법 통과 후... '그들'도 텔레그램 깔다" 기사 중 일부를 보자. 여당 보좌관, 의원실 직원, 청와대 현직 행정관 등 직종, 직위 구분 없이 너나할 것 없다고 보면 맞다.
"새누리당 내에서 '친박 핵심' 의원이 누구냐고 하면 항상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ㄱ 의원의 보좌관 ㄴ 씨가 3일 '텔레그램'을 설치했다. 강경 보수 성향으로 유명하고, 이번 테러 방지법 입법 과정에서도 꽤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ㄷ 의원실 직원 ㄹ씨도 4일 이 대열에 합류했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 있는 현직 행정관 ㅁ씨와, 지난해 사표를 쓰고 청와대를 나간 전직 행정관 ㅂ씨도 우연찮게 테러 방지법 통과 바로 다음 날인 3일 오후 이 애플리케이션을 깔았다."
JTBC 역시 4일 "'정보기관의 감시'에 대한 우려에 일반 시민들은 물론 검찰과 경찰, 심지어 우려할 필요가 없다던 새누리당 소속 정치인들 중에서도 텔레그램을 설치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라고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여권 관계자의 말을 빌려 "소위 진박·친박으로 꼽히는 보좌관들이나 실무자 상당수가 테러방지법이 통과된 날 텔레그램에 가입해 놀랐다"고 보도하며 "코미디 같은 일"이란 촌철살인도 잊지 않았다.
테러방지법을 기어코 통과시킨 여당 관계자들까지 국정원의 통신감청과 개인정보 수집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해외 메신저를 사용하고자 하는 이 블랙코미디 같은 상황은 누구를 탓해야 할까. 이러한 국민적인 분위기를 감지한 듯, 국정원은 지난 4일 해명 보도자료를 내놨다. 지난해 7월, 국정원의 이탈리아 '해킹팀' 도·감청 프로그램 구입 논란 이후 처음이다. 국정원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저자세 엿보이는 보도자료로 해명 나선 국정원
"국가정보원은 국회의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 제정을 심각한 테러 위험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번 법 제정으로 우리나라도 북한과 국제테러단체 등의 새로운 테러위협 환경에 맞서는 '국가 대테러 업무체계'를 구축할 수 있게 되었고, 국제사회와의 정보공유, 유관부처간 협력을 통해 효과적인 테러정보 수집전파와 범정부적인 대처가 가능하게 됐습니다.
국정원 全(전)직원은 테러방지법 제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국정원의 책무가 더 한층 무거워졌음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번 법안 심의 과정에서 국정원의 '통신감청·개인정보 수집 권한' 등의 남용 우려가 있었던 점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통신정보 수집은 법원 허가 등 엄격한 법적 절차를 거치도록 되어 있고, 금융정보도 부장판사가 포함된 금융정보분석원 협의체의 결정이 있어야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
정보수집·추적 대상도 'UN이 지정한 테러단체 조직원이거나 테러단체 선전, 테러자금 모금·기부 기타 예비·음모·선전·선동을 하였거나 하였다고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있는 자'로 엄격히 제한돼 있습니다. 때문에 '무차별 개인정보 수집'이나 '민간인 사찰'은 불가능하며 일반 국민들은 사생활 침해를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국정원 全(전)직원은 테러방지법 제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국정원의 책무가 더 한층 무거워졌음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번 법안 심의 과정에서 국정원의 '통신감청·개인정보 수집 권한' 등의 남용 우려가 있었던 점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통신정보 수집은 법원 허가 등 엄격한 법적 절차를 거치도록 되어 있고, 금융정보도 부장판사가 포함된 금융정보분석원 협의체의 결정이 있어야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
정보수집·추적 대상도 'UN이 지정한 테러단체 조직원이거나 테러단체 선전, 테러자금 모금·기부 기타 예비·음모·선전·선동을 하였거나 하였다고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있는 자'로 엄격히 제한돼 있습니다. 때문에 '무차별 개인정보 수집'이나 '민간인 사찰'은 불가능하며 일반 국민들은 사생활 침해를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8일 동안 계속된 필리버스터 정국 내내 비난이란 비난은 다 뒤집어쓰고, 그야말로 탈탈 털렸던 국정원. 그간 침묵으로 일관했던 국정원이 내놓은 해명은 사실 새로울 것이 없었다. A4 반장을 조금 넘는 분량의 자료는 야당 의원들이 제기한 독소 조항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기보다 여당 의원들이나 보수언론이 방어해줬던 1차원적인 논리를 몇몇 문장으로 재가공한 것뿐이었다. 이에 대한 반박은 필리버스터는 물론 시민사회단체와 매체들의 의해 수없이 제기해 왔다. 그래서 더욱, 빤한 내용보다 눈에 띄는 것은 국정원이 저자세였다.
"국정원은 '국민의 국정원'입니다. 여당의 국정원도, 야당의 국정원도 아닙니다. 국정원이 왜 무엇 때문에 우리 국민을 사찰하겠습니까? 국정원의 정보위원회 증언은 국민 앞에 그리고 역사 앞에 한 증언입니다. 거짓말을 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토록 보호하고자 했던 국정원의 정보역량은 이미 크게 훼손됐습니다. 이런 현실을 국정원은 안타깝게 생각하고 크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언론도 '아니면 말고'식의 무책임한 의혹제기 보다는 면밀한 사실관계 취재에 근거한 책임 있는 보도를 당부 드립니다."
그토록 보호하고자 했던 국정원의 정보역량은 이미 크게 훼손됐습니다. 이런 현실을 국정원은 안타깝게 생각하고 크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언론도 '아니면 말고'식의 무책임한 의혹제기 보다는 면밀한 사실관계 취재에 근거한 책임 있는 보도를 당부 드립니다."
지난해 7월, 국정원이 이탈리아 해킹프로그램 구입 논란과 관련해 내놓은 보도자료 중 일부다. '국민의 국정원'이란 표현도 가관이지만, 국정원의 정보역량이 크게 훼손됐다, 언론의 보도를 자제하라는 목소리에 힘이 들어 가있다. '아니면 말고'라는 표현을 보라. 하지만 이번 테러방지법 관련 논평은 어떠한가.
"국정원은 그간 제기된 국민들의 우려를 깊이 유념하고 법 시행과정에서 입법 취지에 맞추어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제반 규정과 절차를 철저히 엄수할 것을 다짐합니다. 국정원은 앞으로 오직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소명 완수에 최선을 다해 입법과정에서 나온 우려가 杞憂(기우)에 불과했음을 국민들께 보여드리겠습니다."
필리버스터에 나온 비판과 주장들이 '기우'였다며 납작 엎드린 국정원. '깊이 유념'과 '철저히 엄수', '소명 완수' 등 사용한 어휘도 사뭇 다르지 않은가. 하루 전인 3일 국정원은 급기야 '테러방지법 바로알기'란 이름의 대국민용 홍보 자료까지 내놨다.
비밀스러운데다가 고자세로 일관하던 국정원이 갑자기 겁을 먹기로도 한 건가. 아니 그보다는 필리버스터로 환기된 테러방지법의 독소조항과 국정원의 권한 강화에 대한 국민여론에 잠시 저자세를 보여주며 숨고르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국정원 강화법 시대, 어떻게 버텨야 하나
▲ 박근혜와 이병호 국조원장. ⓒ 연합뉴스
반대 51%대 찬성 39%.
한국 갤럽이 지난 2일과 3일 양일간 전국 성인남녀 101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다. '일반인까지 사찰 우려 있어 반대한다'는 의견이 '테러방지에 필요하므로 찬성'이라는 응답보다 12%p 높았다. '필리버스터 효과'로 풀이할 만한 결과다. 지난해 11월 리얼미터가 조사한 테러방지법 찬반 여론조사에서 찬성이 64.5%, 반대가 22%였던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그에 앞선 25일, MBN이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 2월 25일 하루 54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테러방지법이 '국민 안전을 위해 현재 원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의견은 42.0%, '인권침해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테러방지법 반대' 의견이 25.3%, '국정원의 권한을 줄이는 내용 등을 담은 수정안 통과' 의견이 23.6%였다. '반대와 수정'을 합하면 48.9%.
지난해 11월과 필리버스터 초기, 그리고 필리버스터 중단 이후 찬반 결과에 유의미한 변화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국정원이 실제로 여론조사 등 국민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했을 크지 않다. '찬반이 분분하다'로 무시해 버리면 그만이지 않은가.
하지만 분명 국정원의 저자세는 필리버스터로 인한 테러방지법의 독소조항에 대한 국민적인 환기와 이에 고조된 국정원 비판에 대해 어느 정도 부담감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을 것 같다. 복기해 보라. 박근혜 정부 산하 국정원이 어떤 조직인가.
정권 초기 '댓글 사건'으로 출발해 테러방지법까지 3년 내내 언론 톱기사를 장식하는 자랑스런 조직이 아니던가. 지난해 7월, 이탈리아 해킹팀 논란 당시 "어떤 정보기관도 이런 보도자료를 통해 해명하지 않습니다"라며 뻣뻣함과 정당함을 천명했던 우리의 자랑스러운 정보 기관이지 않은가.
그러거나 말거나, 국정원 등 수사기관의 통신감청·개인정보 수집에 대한 정황들이 끊이지 않고 포착되는 중이다. 지난 4일,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본인이 SK텔레콤에서 확인한 '통신자료 제공사실 확인서'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지난해 12월 9일, 국정원의 요청에 따라 SK텔레콤이 통신자료를 제공한 것이다. 테러방지법이 논란의 한 가운데 있던 시기에도 여전히 국민들 감시하고, 휴대폰 감청하는 '정보 활동'을 게을리 하지 않은 것이다.
그간에 국민들에게 질타를 받아 온 '국정원의 흑역사'를 재론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현재 국정원의 저자세와 숨고르기가 '눈 가리고 아웅'식의 일시적인 제스처라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그래서 더더욱 필리버스터 중단 후 이틀 동안 돌아가는 상황과 여론을 파악했을 국정원의 저의가 불쾌하기 짝이 없다.
모르긴 몰라도, 청와대와 여당은 물론 국정원까지도 "어차피 이길 4.13 총선까지만 버티면 끝이다"라며 안도하고 있지 않을까. 수많은 국민들을 정보, 보안 전문가로 만들고 있는 이 '국정원강화법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막이 오른 셈이다.
그리고, 이런 불쾌감과 불안감을 비웃기라도 하듯 국정원은 같은 날 홈페이지에 '2016 국가정보원 특정직 채용 계획'을 버젓이 게재했다. 아무리 정기 인사라 하더라도, 실무자가 같은 날 업무를 처리했더라도 하필 해명 보도자료를 배포한 당일 채용 계획을 공표할 필요가 있었을까. "우리 국정원은 별일 없이 산다"라며 의기양양해 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이버 망명'만이, 트위터 탈퇴만이 답인건가. 그도 아니면, "총선 승리 후 테러방지법 수정 안을 제일 먼저 제출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같은 일부 야당 의원들의 패기를 믿어야 하나.
"국정원 全(전)직원은 테러방지법 제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국정원의 책무가 더 한층 무거워졌음을 자각하고 있습니다"라는 국정원과 그런 정보 조직을 비호했던 박근혜 정권. 테러방지법 시대를 맞은 국민들과 국정원과의 사투 시즌2가 막이 올랐다. 부디, 이번 싸움의 결과는 허망하지 않기를.
출처 "국민 우려 깊이 유념"... 국정원 '저자세'에 속지말자
'세상에 이럴수가 > 정치·사회·경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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