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폐기될 국정교과서, 박근혜·최순실과 퇴진해야
[민중의소리] 이준식 근현대사기념관 관장 | 발행 : 2016-11-27 18:09:52 | 수정 : 2016-11-27 18:09:52
2013년 박근혜정권이 출범한 직후부터 ‘아버지는 군사쿠데타, 딸은 역사쿠데타’라는 말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친일군인 출신인 박정희가 군사쿠데타를 통해 헌법과 민주주의를 파괴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박근혜는 대통령이 된 뒤 4년 내내 아버지의 명예회복이라는 아집에 사로잡혀 친일과 독재를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근·현대사를 변조하려고 했다.
그러나 박근혜에 의한 박정희를 위한 역사쿠데타의 정점인 국정교과서 문제는 큰 변곡점을 맞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몰락의 위기에 처한 박근혜가 끝내 대통령 자리를 고집하면서 국정교과서도 포기하지 않으려고 하자 박근혜정권을 끝장내고 국정교과서를 퇴출시키려는 시민사회의 저항도 더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28일로 예정된 국정교과서 웹전시본 공개를 예정대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일단 공개만 되면 국정교과서가 박근혜정권이 작년 ‘일본군위안부’ 협상에서 쓴 표현대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기정사실이 될 것이라고 여기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는 착각이다. 설사 박근혜와 교육부의 희망대로 국정교과서가 나오더라도 2017년에 학교에서 실제로 쓰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오히려 채택률 0%대를 기록했던 교학사 교과서에 이어 제2의 교학사 교과서가 될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2018년에 쓰일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박근혜 교과서인 국정교과서는 박근혜와 같이 사라질 운명에 처할 것이 분명하다. 1년 한정판이라는 이야기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박근혜정권 출범 이후 박근혜의 회고록이나 자서전이 여럿 출판되었지만 지금은 헌책방에서도 취급하기를 꺼리는 불량서적이 된 것과 똑같은 길을 국정교과서도 밟게 될 것이다.
국정교과서의 비극적 운명을 예고하는 징후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예건대 이 칼럼을 쓰기 시작한 11월 24일 하루만 해도 세 가지 중요한 소식이 들려왔다.
첫째, 서울행정법원이 교육부에게 국정교과서 편찬기준을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판결의 핵심은 교육부의 국정교과서 집필과정이 불법적이라는 데 있다. 교육부는 집필진도 편찬기준도 공개하지 않은 채 1년 동안 ‘깜깜이’ 집필을 해왔다. 교과서 집필은 국가기밀이 아니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복면집필’과 비밀주의를 고수했는데 여기에 대해 사법부가 불법이라고 제동을 건 것이다. 11월 24일 판결을 통해 국정교과서가 내용을 떠나 최소한의 절차적 정당성마저 갖추지 않은 채 진행되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둘째, 최근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여론이 60%에 이르러 찬성 여론 20%를 압도했다. 1년 전에 교육부가 국정화 방침을 처음 발표했을 때만 해도 찬반여론이 팽팽했다. 그런데 곧 여론이 반전되었다. 박근혜정권이 국정화를 밀어붙이면서 내세운 명분은 단순했다. 기존의 검정교과서가 ‘종북좌편향’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종북좌편향’ 교과서를 검정에서 통과시킨 게 박근혜정권의 국사편찬위원회와 교육부였고 검정통과를 확정하기 직전에 청와대에서 불법적인 ‘검수’까지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정화 논리는 ‘사상누각’이 되었다.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가 좌편향되었기 때문에 정권이 정한 ‘하나의 역사’를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 이면에 친일파이자 독재자인 박정희의 역사를 세탁하려는 사악한 의도가 숨어 있다는 것을 국민들이 간파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박근혜정권의 국정교과서 강행이 반헌법적이고 반민주적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반대여론이 찬성여론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올 초만 해도 그 비율은 대체로 2 대 1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 간극이 더 벌어져 3 대 1이다. 여기에는 국정교과서가 단지 박근혜 교과서에 그치지 않고 박근혜·최순실 교과서일 가능성이 크다는 의구심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최순실의 최측근인 차은택의 외삼촌이 국정화 강행 당시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게다가 박근혜가 헌정 사상 최초의 ‘피의자 대통령’이 된 상황이니 박근혜 교과서에 대한 반대 여론은 거스를 수 없을 만큼 확고해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가 모임을 갖고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추진중단 및 폐기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여기에는 이른바 민주·진보교육감뿐만 아니라 보수로 분류되는 교육감도 참여했다.
모임에 참석하지 않은 대구 교육감과 경북 교육감을 제외한 모든 교육감이 국정교과서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하는 한편 “어떠한 협조도 거부할 것이며, 강행에 따른 반교육적 폐해를 막기 위하여 모든 방안을 강구하여 대처”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얼마 전에는 보수적인 교원단체로 알려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대의원대회에서 국정교과서에 반대할 것을 결의하기도 했다. 교총이 1년 전만 해도 국정교과서에 찬성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색깔론을 내세워 국정화를 밀어붙인 박근혜정권의 의도는 사실상 실패로 끝났음을 알 수 있다.
교육부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전대미문의 국정혼란 상황에서도 국정교과서를 강행하면서 내세우는 논리는 궁색하기 짝이 없다. 최근 교육부장관은 “지금 교과서가 발간되지 않으면 다음 학기부터 역사교육을 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집필자도 편찬기준도 공개하지 않은 채 비밀작업을 해놓고는 이제는 시간이 없으니 국정교과서를 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는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국정화는 대통령 한 사람 때문에 의해 추진된 정책이 아니라 교육 정상화를 위해 추진된 정책이기 때문에 박근혜의 퇴진과는 무관하다는 억지까지 부린다. 그런데 바로 1년 전에 국정화 고시를 앞두고 전임 교육부장관이 국정제보다는 검정제가 바람직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박근혜의 의지가 워낙 강하니 1년만이라도 국정교과서를 쓸 수밖에 없다고 실토한 적이 있다.
실제로 검정제에서 국정제로의 전환은 2014년 2월 박근혜 지시에 의해 추진되기 시작했다. 다만 국정제 자체가 헌법과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인데다가 워낙 시대에 뒤떨어지고 국제적인 기준에도 맞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교육부도 쉽게 결정을 하지 못하고 2년 가까이 시간을 끈 것이다. 그러자 박근혜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교육부를 압박했다.
작년 11월 국무회의에서 “자기 나라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는 인간이 되고,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무당 같은 발언을 통해 국정화 강행을 지시한 것이 단적인 보기이다. 그러니 초등학교 학생들도 국정화의 배후에 박근혜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국정교과서가 아니라 박씨 일가의 가족교과서라는 이야기도 이미 널리 퍼졌다. 그런데도 박근혜와 무관한 국정교과서라고 강변한다면 지나가는 개가 웃을 것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이 있다. 지금의 교육부에게 꼭 어울리는 말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정권의 온갖 잘못된 정책에 제동이 걸린 이때야말로 교육부가 국정교과서에서 그나마 명예롭게 물러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교육부로서는 다행스럽게도 퇴로도 마련되어 있다. 작년에 확정된 2015 교육과정에 따른 새 교과서는 원래 2018년부터 쓰일 예정이었다. 실제로 교육부장관이 그렇게 고시를 했다. 그런데 박근혜의 눈치를 살핀 교육부가 꼼수를 부렸다. 박정희 출생 100년이 되는 해이자 박근혜의 사실상 마지막 임기가 되는 해인 2017년에 박정희를 위한 국정교과서가 나와 중·고등학교에 보급될 수 있도록 역사교과서만 2017년부터 쓰는 것으로 수정고시를 한 것이다.
한번 수정고시를 했는데 다시 수정고시를 못할 이유가 없다. 교육부장관이 2018년부터 새 교과서를 쓴다고 두 번째 수정고시를 하면 자연스럽게 국정교과서 작업은 중단될 것이다. 그러면 일단 문제는 해결된다. 이제 시간을 벌었으니 지금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각계 전문가들과 진지한 논의를 거친 다음에 바람직한 교과서 발행제도를 확정하면 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국정교과서 주장은 자연히 폐기될 것이다.
국정교과서가 강행되면 교육현장은 일대혼란에 빠질 것이 분명하다.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대다수의 교사와 학부모는 이미 불복종운동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학생들이 박근혜 교과서를 받아들일 리도 없다.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는 2013년 교학사 교과서 사태나 2014년 초등 6-1 실험본 사회 교과서, 2015년 5-2 보급본 사회 교과서와 2016년 6-1 보급본 사회 교과서 사태 때와 마찬가지로 국정교과서에 얼마나 많은 오류와 편향 서술이 있는지를 낱낱이 분석할 것이다.
광주의 모든 중학교는 2017년에 새로 입학하는 학생들에게 국정교과서로 역사를 가르치지 않기 위해 2018년도로 교과편성을 미루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다른 시도로 확산될 것이다. 국정교과서를 강요하는 식물정권에 대한 범국민적 저항은 교육부의 존립 자체를 위협할 가능성마저 있다. 그러니 교육부로서는 그나마 양식이 남아 있다면 국정교과서를 거두어들이는 것이 마땅하다.
국정교과서 작업을 중단하는 것만이 교육현장의 혼란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리고 2017년에는 기존의 검정교과서를 쓰면 된다. 혹시라도 기존의 검정교과서가 종북좌편향이었다고 비난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면 2013년 검정에 관여한 전문가들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하면 된다.
헌법 1조에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1항), 대한민국의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2항)”라고 적혀 있다. 대한민국의 주권자는 국민이다. 대통령은 법에 정해진 기간 동안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교육부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았지만 대통령의 공복이 아니라 국민의 공복이다. 국민에게 이기는 공복은 있을 수가 없다.
다시 강조한다. 국민의 뜻에 반하는 국정교과서의 운명은 불을 보듯이 뻔하다. 설사 나오더라도 곧 폐기처분될 것이다. 그러니 국정교과서와 함께 역사의 오점으로 남지 않으려면 교육부장관은 결단해야 한다.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현행 제도상으로는 교과서 발행제도를 정하는 권한이 오로지 교육부장관에게 있다. 그 권한을 끝까지 잘못된 방향으로 행사하는 것은 교육부장관의 몫이다. 그러나 거기에 대한 책임도 온전히 교육부장관의 몫이다.
출처 [이준식 칼럼] 어차피 폐기될 국정교과서, 박근혜·최순실과 퇴진해야
[민중의소리] 이준식 근현대사기념관 관장 | 발행 : 2016-11-27 18:09:52 | 수정 : 2016-11-27 18:09:52
박근혜에 의한 박정희를 위한 역사쿠데타
2013년 박근혜정권이 출범한 직후부터 ‘아버지는 군사쿠데타, 딸은 역사쿠데타’라는 말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친일군인 출신인 박정희가 군사쿠데타를 통해 헌법과 민주주의를 파괴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박근혜는 대통령이 된 뒤 4년 내내 아버지의 명예회복이라는 아집에 사로잡혀 친일과 독재를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근·현대사를 변조하려고 했다.
박정희가 군사쿠데타 직후 교원노조에 ‘용공’혐의를 씌워 탄압했듯이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몰아가더니 2012년 대통령선거 당시 TV토론에서 통합진보당 대통령후보 이정희가 박정희를 ‘다카키 마사오’로 부른 데 앙심을 품었는지 ‘내란음모사건’을 앞세워 통합진보당을 해산시켰는가 하면 단돈 10억 엔에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피어린 눈물을 극우 성향의 일본 아베정권에 팔아넘겼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역사쿠데타의 정점은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인 교학사 고등학교 교과서를 준(準)국정교과서로 만들려는 시도가 실패로 끝나자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를 아예 국정으로 내겠다고 밀어붙인 것이다.
▲ 지난 4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씨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사과하고 검찰 조사 수용 입장을 밝히는 대국민 담화 발표 생중계를 지켜보고 있다. ⓒ김철수 기자
그러나 박근혜에 의한 박정희를 위한 역사쿠데타의 정점인 국정교과서 문제는 큰 변곡점을 맞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몰락의 위기에 처한 박근혜가 끝내 대통령 자리를 고집하면서 국정교과서도 포기하지 않으려고 하자 박근혜정권을 끝장내고 국정교과서를 퇴출시키려는 시민사회의 저항도 더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28일로 예정된 국정교과서 웹전시본 공개를 예정대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일단 공개만 되면 국정교과서가 박근혜정권이 작년 ‘일본군위안부’ 협상에서 쓴 표현대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기정사실이 될 것이라고 여기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는 착각이다. 설사 박근혜와 교육부의 희망대로 국정교과서가 나오더라도 2017년에 학교에서 실제로 쓰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오히려 채택률 0%대를 기록했던 교학사 교과서에 이어 제2의 교학사 교과서가 될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2018년에 쓰일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박근혜 교과서인 국정교과서는 박근혜와 같이 사라질 운명에 처할 것이 분명하다. 1년 한정판이라는 이야기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박근혜정권 출범 이후 박근혜의 회고록이나 자서전이 여럿 출판되었지만 지금은 헌책방에서도 취급하기를 꺼리는 불량서적이 된 것과 똑같은 길을 국정교과서도 밟게 될 것이다.
국정교과서의 예견되는 비극적 운명
국정교과서의 비극적 운명을 예고하는 징후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예건대 이 칼럼을 쓰기 시작한 11월 24일 하루만 해도 세 가지 중요한 소식이 들려왔다.
첫째, 서울행정법원이 교육부에게 국정교과서 편찬기준을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판결의 핵심은 교육부의 국정교과서 집필과정이 불법적이라는 데 있다. 교육부는 집필진도 편찬기준도 공개하지 않은 채 1년 동안 ‘깜깜이’ 집필을 해왔다. 교과서 집필은 국가기밀이 아니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복면집필’과 비밀주의를 고수했는데 여기에 대해 사법부가 불법이라고 제동을 건 것이다. 11월 24일 판결을 통해 국정교과서가 내용을 떠나 최소한의 절차적 정당성마저 갖추지 않은 채 진행되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둘째, 최근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여론이 60%에 이르러 찬성 여론 20%를 압도했다. 1년 전에 교육부가 국정화 방침을 처음 발표했을 때만 해도 찬반여론이 팽팽했다. 그런데 곧 여론이 반전되었다. 박근혜정권이 국정화를 밀어붙이면서 내세운 명분은 단순했다. 기존의 검정교과서가 ‘종북좌편향’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종북좌편향’ 교과서를 검정에서 통과시킨 게 박근혜정권의 국사편찬위원회와 교육부였고 검정통과를 확정하기 직전에 청와대에서 불법적인 ‘검수’까지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정화 논리는 ‘사상누각’이 되었다.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가 좌편향되었기 때문에 정권이 정한 ‘하나의 역사’를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 이면에 친일파이자 독재자인 박정희의 역사를 세탁하려는 사악한 의도가 숨어 있다는 것을 국민들이 간파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박근혜정권의 국정교과서 강행이 반헌법적이고 반민주적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반대여론이 찬성여론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올 초만 해도 그 비율은 대체로 2 대 1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 간극이 더 벌어져 3 대 1이다. 여기에는 국정교과서가 단지 박근혜 교과서에 그치지 않고 박근혜·최순실 교과서일 가능성이 크다는 의구심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최순실의 최측근인 차은택의 외삼촌이 국정화 강행 당시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게다가 박근혜가 헌정 사상 최초의 ‘피의자 대통령’이 된 상황이니 박근혜 교과서에 대한 반대 여론은 거스를 수 없을 만큼 확고해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 비선실세 국정농단의 핵심인 최순실 씨(가운데 검은모자)가 31일 서울 서초동 서울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두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정의철 기자
마지막으로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가 모임을 갖고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추진중단 및 폐기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여기에는 이른바 민주·진보교육감뿐만 아니라 보수로 분류되는 교육감도 참여했다.
모임에 참석하지 않은 대구 교육감과 경북 교육감을 제외한 모든 교육감이 국정교과서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하는 한편 “어떠한 협조도 거부할 것이며, 강행에 따른 반교육적 폐해를 막기 위하여 모든 방안을 강구하여 대처”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얼마 전에는 보수적인 교원단체로 알려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대의원대회에서 국정교과서에 반대할 것을 결의하기도 했다. 교총이 1년 전만 해도 국정교과서에 찬성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색깔론을 내세워 국정화를 밀어붙인 박근혜정권의 의도는 사실상 실패로 끝났음을 알 수 있다.
국정교과서 강행과 교육부의 궤변
교육부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전대미문의 국정혼란 상황에서도 국정교과서를 강행하면서 내세우는 논리는 궁색하기 짝이 없다. 최근 교육부장관은 “지금 교과서가 발간되지 않으면 다음 학기부터 역사교육을 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집필자도 편찬기준도 공개하지 않은 채 비밀작업을 해놓고는 이제는 시간이 없으니 국정교과서를 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는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국정화는 대통령 한 사람 때문에 의해 추진된 정책이 아니라 교육 정상화를 위해 추진된 정책이기 때문에 박근혜의 퇴진과는 무관하다는 억지까지 부린다. 그런데 바로 1년 전에 국정화 고시를 앞두고 전임 교육부장관이 국정제보다는 검정제가 바람직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박근혜의 의지가 워낙 강하니 1년만이라도 국정교과서를 쓸 수밖에 없다고 실토한 적이 있다.
실제로 검정제에서 국정제로의 전환은 2014년 2월 박근혜 지시에 의해 추진되기 시작했다. 다만 국정제 자체가 헌법과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인데다가 워낙 시대에 뒤떨어지고 국제적인 기준에도 맞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교육부도 쉽게 결정을 하지 못하고 2년 가까이 시간을 끈 것이다. 그러자 박근혜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교육부를 압박했다.
작년 11월 국무회의에서 “자기 나라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는 인간이 되고,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무당 같은 발언을 통해 국정화 강행을 지시한 것이 단적인 보기이다. 그러니 초등학교 학생들도 국정화의 배후에 박근혜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국정교과서가 아니라 박씨 일가의 가족교과서라는 이야기도 이미 널리 퍼졌다. 그런데도 박근혜와 무관한 국정교과서라고 강변한다면 지나가는 개가 웃을 것이다.
국정교과서 사태의 유일한 해결책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이 있다. 지금의 교육부에게 꼭 어울리는 말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정권의 온갖 잘못된 정책에 제동이 걸린 이때야말로 교육부가 국정교과서에서 그나마 명예롭게 물러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교육부로서는 다행스럽게도 퇴로도 마련되어 있다. 작년에 확정된 2015 교육과정에 따른 새 교과서는 원래 2018년부터 쓰일 예정이었다. 실제로 교육부장관이 그렇게 고시를 했다. 그런데 박근혜의 눈치를 살핀 교육부가 꼼수를 부렸다. 박정희 출생 100년이 되는 해이자 박근혜의 사실상 마지막 임기가 되는 해인 2017년에 박정희를 위한 국정교과서가 나와 중·고등학교에 보급될 수 있도록 역사교과서만 2017년부터 쓰는 것으로 수정고시를 한 것이다.
한번 수정고시를 했는데 다시 수정고시를 못할 이유가 없다. 교육부장관이 2018년부터 새 교과서를 쓴다고 두 번째 수정고시를 하면 자연스럽게 국정교과서 작업은 중단될 것이다. 그러면 일단 문제는 해결된다. 이제 시간을 벌었으니 지금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각계 전문가들과 진지한 논의를 거친 다음에 바람직한 교과서 발행제도를 확정하면 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국정교과서 주장은 자연히 폐기될 것이다.
▲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8일 오전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비선 실세 국정농단'의 장본인인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20)의 이화여대 체육특기자 입시 및 학사관리 특혜 의혹 등에 대한 특별사안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교육부는 이화여대에 정씨의 입학을 취소하도록 요구하기로 했다. ⓒ민중의소리
국정교과서가 강행되면 교육현장은 일대혼란에 빠질 것이 분명하다.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대다수의 교사와 학부모는 이미 불복종운동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학생들이 박근혜 교과서를 받아들일 리도 없다.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는 2013년 교학사 교과서 사태나 2014년 초등 6-1 실험본 사회 교과서, 2015년 5-2 보급본 사회 교과서와 2016년 6-1 보급본 사회 교과서 사태 때와 마찬가지로 국정교과서에 얼마나 많은 오류와 편향 서술이 있는지를 낱낱이 분석할 것이다.
광주의 모든 중학교는 2017년에 새로 입학하는 학생들에게 국정교과서로 역사를 가르치지 않기 위해 2018년도로 교과편성을 미루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다른 시도로 확산될 것이다. 국정교과서를 강요하는 식물정권에 대한 범국민적 저항은 교육부의 존립 자체를 위협할 가능성마저 있다. 그러니 교육부로서는 그나마 양식이 남아 있다면 국정교과서를 거두어들이는 것이 마땅하다.
국정교과서 작업을 중단하는 것만이 교육현장의 혼란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리고 2017년에는 기존의 검정교과서를 쓰면 된다. 혹시라도 기존의 검정교과서가 종북좌편향이었다고 비난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면 2013년 검정에 관여한 전문가들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하면 된다.
헌법 1조에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1항), 대한민국의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2항)”라고 적혀 있다. 대한민국의 주권자는 국민이다. 대통령은 법에 정해진 기간 동안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교육부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았지만 대통령의 공복이 아니라 국민의 공복이다. 국민에게 이기는 공복은 있을 수가 없다.
다시 강조한다. 국민의 뜻에 반하는 국정교과서의 운명은 불을 보듯이 뻔하다. 설사 나오더라도 곧 폐기처분될 것이다. 그러니 국정교과서와 함께 역사의 오점으로 남지 않으려면 교육부장관은 결단해야 한다.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현행 제도상으로는 교과서 발행제도를 정하는 권한이 오로지 교육부장관에게 있다. 그 권한을 끝까지 잘못된 방향으로 행사하는 것은 교육부장관의 몫이다. 그러나 거기에 대한 책임도 온전히 교육부장관의 몫이다.
역사는 국정화를 강행한 교육부장관을 비롯한 교육부의 관료들, 그리고 국정교과서에 관여한 어용학자 및 어용교사들을 박근혜정권이 저지른 역사쿠테타의 공범 아니 공동정범으로 기록할 것이다. 그러니 역사의 죄인으로 남지 않으려면 하루라도 빨리 현명한 선택을 하기를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출처 [이준식 칼럼] 어차피 폐기될 국정교과서, 박근혜·최순실과 퇴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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