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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수술대에 오른 건강보험료

수술대에 오른 건강보험료
저소득층 보험료 줄이고 고소득 무임승차 퇴출
[경향신문] 남지원 기자 | 입력 : 2017.01.23 11:07:00 | 수정 : 2017.01.23 11:17:59



2014년 2월, 서울 송파구 석촌동 반지하 단칸방에 살던 60세 어머니와 두 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메모와 함께 현금 70만 원이 든 봉투를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으로 남긴 뒤였다. 건강이 나빠 일을 하지 못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태였음에도 이들은 매달 건강보험료를 4만8000원 냈다. 반면 수백억대 자산을 가진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서울시장이 되기 전인 2000년대 초반 자신 소유의 빌딩에 소규모 건물관리회사를 만들고 자신을 대표이사로 등재해 월 2만 원 안팎의 건강보험료만 냈다.

‘송파 세 모녀’가 고액의 건강보험료를 냈던 것은 건강보험 지역가입자 중 소득이 500만 원 밑인 가입자에게 적용되는 ‘평가소득’ 때문이다. 소득이 투명한 직장가입자와 달리, 소득이 파악되지 않는 지역가입자에 대해 건강보험은 성과 연령, 재산, 자동차로 평가소득을 추정해 보험료를 매긴다. 송파 세 모녀의 평가소득에 매겨진 보험료는 3만6000원이었다. 반면 이 전 대통령은 위장 회사를 차려 직장가입자가 됐고, 소액의 임금에만 보험료가 부과돼 고액 보험료를 회피했다.

저소득 가입자의 ‘보험료 폭탄’을 줄이고 고소득 무임승차자를 막는 국민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편안을 보건복지부가 23일 내놨다.

직장가입자·지역가입자·피부양자로 구분된 현행 부과체계를 3년 주기, 3단계(1단계 2018년, 2단계 2021년, 3단계 2024년)로 개선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성과 연령을 기준으로 매기던 평가소득을 폐지하고 소득에 대한 보험료 비중을 올리며, 임금 외에 고소득을 올리는 직장가입자 및 수입이 많은 피부양자에게 보험료를 부과해 무임승차자를 막는 것을 골자로 한다.

앞서 야 3당이 제출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안도 국회에 제출된 상태다. 앞으로 조율 과정에서 어떤 안이 채택되든 지역가입자 부담이 크게 줄고 고소득자 보험료가 올라가는 방향으로 부과체계가 바뀔 것으로 보인다.


평가소득 폐지.. 지역가입자 10세대 중 8세대 보험료 준다

정부 개편안에 따르면 소득이 일정 기준 이하인 지역가입자에게는 정액 최저보험료가 부과된다. 1~2단계에서는 연소득 100만 원 이하 세대에 1만3100원, 3단계에서는 연소득 336만 원 이하 세대에 1만7120원을 부과한다. 현재 최저보험료보다 낮은 보험료를 내고 있다면 3단계까지는 인상분을 내지 않아도 된다.

최저보험료 적용 대상이 아니어도 연소득 500만 원 이하 가입자에게 적용되는 평가소득은 폐지된다. 재산과 자동차에 대한 보험료 부과도 서서히 줄인다.

1단계에서는 과표기준 1,200만 원(시가 2,400만 원) 이하 주택, 4,000만 원 이하 전·월세 보증금에 대해서는 보험료를 부과하지 않는다. 3단계로 가면 과표기준 5,000만 원(시가 1억 원) 이하 주택, 1억6700만 원 이하 전·월세 보증금에 보험료를 부과하지 않는다.

자동차는 장기적으로 4,000만 원 이상 고가 차에 대해서만 보험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소득 보험료는 당분간 100등급으로 나뉜 소득등급표에 따라 내고 개편 마무리 단계에서는 직장가입자와 똑같이 소득 총액에 보험료율 6.12%를 곱해 산출한다.


이렇게 되면 1단계 기준 지역가입자 583만 세대(77%)의 보험료가 평균 월 2만 원 인하된다. 반면 34만 세대(4%)의 보험료는 평균 5만 원 오르고 140만 세대(19%)는 현재 수준의 보험료를 낸다.


고액 이자소득·연금수급자 ‘피부양자 무임승차’ 막는다

소득이 있는데도 직장가입자인 자녀 등의 피부양자로 등재돼 보험료를 한 푼도 안 낸 채 건강보험 혜택을 받았던 연금소득자, 임대업자 등이 지역가입자로 전환돼 보험료를 내게 된다. 지금까지는 금융소득과 공적연금, 근로 및 기타소득이 각각 연간 4,000만 원 아래이고 과표기준 재산이 9억 원(시가 18억 원) 이하인 경우 피부양자로 등재될 수 있었지만, 기준이 훨씬 까다로워진다.

1단계 개편에서는 합산소득이 3,400만 원을 넘으면 피부양자 자격을 잃고 2단계에서는 2,700만 원, 3단계에서는 2,000만 원만 넘으면 피부양자 자격을 잃어 보험료를 내야 한다. 다만 연금소득자의 경우 연금소득의 30%(1단계)~50%(3단계)에만 보험료를 부과해 부담을 줄여준다.

재산은 1단계에서 과표기준 5억4000만 원(시가 9억 원, 1가구 1주택 종합부동산세 기준)을 넘으면 피부양자 자격을 잃는다. 2단계 이후에는 과표기준 3억6000만 원(시가 6억 원, 1가구 2주택 이상 종합부동산세 기준)만 넘어도 피부양자 자격을 잃게 된다. 하지만 소득이 연 1,000만 원 밑이면 재산이 많아도 피부양자 자격이 유지된다.


월급 이외 이자, 임대소득 등 보수 외 소득이 많은 직장인은 보험료를 더 낸다. 지금은 보수 외 소득이 7,200만 원을 넘지 않으면 월급에 대한 보험료만 냈지만, 개편 후에는 3,400만 원(1단계), 2,700만 원(2단계), 2,000만 원(3단계)을 넘을 경우 보험료를 매긴다.

정부 안이 3단계까지 실현되면 피부양자 47만 세대(4%)가 지역가입자로 전환돼 보험료를 더 내게 된다. 직장가입자 중에서는 26만 세대(1.6%)가 보험료를 더 내게 된다.


“정부안 지나치게 온건” 비판도.. 야당안 함께 논의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도 지난해 각각 건강보험 개편안을 내놨다. 당마다 세부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직장 및 지역 가입자의 구분을 없애고, 파악할 수 있는 소득에 모두 건보료를 물리자는 게 기본 골자다.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구분을 유지하고 재산에도 보험료를 물리자는 정부 안과는 차이가 있다. 정부 안은 소득파악의 어려움, 연금소득자 등 신규 부담자의 형편 고려 등의 이유로 건강보험을 소득으로 일원화해야 한다는 기존 시민사회 주장에는 이르지 못했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늦었지만, 복지부가 이제라도 부과체계 개편안을 내놓은 것은 다행”이라면서도 “소득 중심의 건강보험 보험료 완전 개편을 100이라 하면 겨우 50 정도까지만 개편하겠다는 내용이라 너무 온건하다”는 논평을 냈다.

경실련도 “3단계로 구분해 6년 후에 시행하겠다는 실행방안은 저소득 지역가입자의 고통보다는 고소득자의 보험료 부담을 지나치게 고려한 대책으로 실망스럽다”고 평가했다.

복지부는 일단 정부 안을 오는 5월까지 국회에 제출할 방침이다. 국회는 정부 안과 야 3당이 제출한 개편안을 함께 논의해 최종 개편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출처  수술대 오른 건보료... 저소득층 보험료 줄이고 고소득 무임승차 퇴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