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구속 기각된 날, 한국은 '부패 국가'로 낙인
[게릴라칼럼] 한국 보수 언론의 삼성 보도 유감... 정의와 국익은 충돌하지 않는다
[오마이뉴스] 글: 강인규, 편집: 손지은 | 17.01.27 15:27 | 최종 업데이트 17.01.27 15:27
지난 12월 러시아에 갔다. 뉴욕을 출발해, 모스크바를 거쳐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여러 도시를 경유하는 여행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번 여행은 좀 특별했다. 세 곳의 국제공항을 거치는 동안 어김없이 '삼성'과 마주쳤기 때문이다.
뉴욕 공항에서 수속을 할 때에는 '삼성 갤럭시 노트7을 기내에 반입할 수 없다'는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고, 모스크바 공항에서는 '기내 충전 금지' 안내 방송이 귀에 들어왔다. 목적지로 가는 마지막 비행기에 올랐을 때는 승무원이 충전을 금하는 것은 물론, 가능하면 사용도 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놀랄 일은 아니었다. 내가 근무하는 미국 대학에서도 삼성은 인기 있는 농담거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이 '삼성' 로고가 찍힌 전화기를 들고 있으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해주는 것이다.
어디 학교 뿐인가. 삼성의 '폭발 게이트'는 미국 대중문화의 일부로 부상했다. 문제의 전화기가 유명 토크쇼 <레이트쇼>에 출연한 것이다. 진행자 스티븐 콜베르는 "지금 이 방송을 갤럭시 노트 7으로 보는 시청자에게 드리는 특별 메시지가 있다"고 말한 뒤 이렇게 소리쳤다.
그날 미국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CPSC)는 해당 제품의 공식 리콜을 발표했다. 위원회는 "심각한 화재와 화상의 위험"을 이유로 들었고, 콜베르는 이 사실을 풍자한 것이다.
한 번으로 끝났다면 좋았겠지만, 삼성은 한 달도 안 돼 같은 쇼에 다시 출연해야 했다. 삼성이 '배터리 문제였다'면서 전지만 교환한 제품을 다시 내놓았고, 이제 이 전화기들이 터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콜베르는 "맙소사, 내 사타구니에 불이 붙었네"라는 농담으로 조롱의 수위를 한층 높였다. 이제까지 삼성은 미국에서 무수히 많은 전화기를 팔았고, 꽤 좋은 평가를 받았다.
삼성으로서는 억울할지 모르겠다. 단 한 번의 실수로 이제까지 쌓아 온 평판과 수익을 하루아침에 날려 버렸다고 생각할 터이기 때문이다. 정말 그럴까? 내 대답은 '천만의 말씀'이다.
나는 삼성에서 어처구니 없는 사고가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다고 믿는다. '기-정-언'으로 이어지는 부패의 사슬이 변함없이 공고하기 때문이다.
최근 삼성의 뇌물과 횡령 혐의를 조사하던 특검이 이재용 삼성 부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이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보수언론은 한 목소리로 환호했고, 새누리당은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고 점잖게 운을 뗀 뒤, "이번 사건의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 정치권에 있다"며 스스로 죄를 뒤집어 썼다.
흥미롭게도, 시민 대다수의 시각은 이들과 사뭇 달랐다. 구속영장 기각 후 <미디어오늘>이 에스티아이에 의뢰한 여론조사를 결과를 보면, 시민들 가운데 무려 64.1%가 '삼성의 눈치를 본 편파적인 결정'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법원이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한 것"이라는 응답은 고작 29.9%였다.
더 나아가 시민들 60.2%가 "특검이 영장을 재청구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반드시 구속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했다. '동의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사람들은 32.8%에 지나지 않았다. 시민들과 (이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존재하는) 언론-정부의 시각이 이처럼 판이하게 다른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언론과 정부가 보기에,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한국사회에 팽배한 '반기업 정서' 때문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청구되었을 때, 언론에서는 난리가 났다.
<중앙일보>는 사설을 통해 "정치권과 광장을 휩쓰는 반대기업 정서"에 휘몰린 게 아닌지 의심된다며 목소리를 높였고, <조선일보>는 "처음부터 '뇌물 공여'라는 결론을 정해놓고 그에 맞춰 수사를 밀어붙여 왔다는 느낌을 준다"고 주장했다.
<조선> 스스로도 '느낌' 소회가 별 설득력이 없다고 여겼는지, 문학적 상상력까지 동원해 특검팀의 심리 기저에 도사린 음모를 캐내기 시작했다. 이 역할은 김진명 작가가 맡았다.
이 소설가는 왜 "특검에서는 단호히 영장을 청구했을까?"라고 묻고 나서 "나는 여기에는 국민의 분노라는 거대한 배경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스스로 답한다. 그런 뒤 음모론의 대가답게 그 가정을 토대로 다음과 같이 '소설'을 쓴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특검의 구속영장 청구는 '(이미 죽은) 정권을 확인사살하기 위한' 음모이며, 무죄가 나올 가능성이 있는데도 삼성을 재판정에 세우는 것은 "국익이 너무 억울한" 일이 된다. <동아일보>는 아예 "삼성 같은 글로벌 기업의 경영 공백이 가져올 파장도 고려해 기소하더라도 불구속 기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자체 판결'을 내놓았다.
삼성을 비롯한 한국 재벌이 깊은 불신의 나락에 빠져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점을 눈치 챈 한국 언론은 2000년 초부터 '반기업 정서가 심각하다'며 위기감을 고조시켜 왔다. 삼성의 위기도 '반기업 정서'와 이에 편승한 정치권의 '반시장적 규제'때문이라는 게 그들의 일관된 주장이었다.
정말 그럴까? 한국인들은 비이성적인 '대기업 혐오'에 빠져서 국익을 팽개치고 있고, 특검은 이런 대중의 정서를 등에 업고 '삼성 죽이기'에 나선 것일까?
우선 그들이 말하는 '반기업 정서'의 실체부터 살펴보자. <중앙일보>는 금세기 초부터 기업 선호조사를 해 왔다. 2003년 조사에서 '대기업을 좋아한다'는 비율이 42.1%로 나왔고, <중앙>을 비롯한 보수언론은 이를 토대로 '대기업에 대한 맹목적 반감'을 기정 사실화 했다.
같은 조사에서 2006년에 '대기업을 좋아한다'는 비율은 57.3%로 올랐고, 2013년에는 61%로 뛰었다. 이 수치는 2014년에 65%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흥미롭게도 이 기간에 한국 언론은 '대기업 혐오 정서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고 비판하며,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평등주의'와 '좌파적 반시장주의'를 맹폭격했다.
'65퍼센트가 기업에 애정을 보이는 반기업 정서'가 말해주는 것은, 삼성 등의 재벌이 한국에서 과분한 애정을 받아왔다는 점이다. 삼성의 세계 휴대폰 점유율이 20%대인데 반해, 국내 점유율은 50-60%인 사실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한국 소비자들이 특별 대접을 받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기능이 빠져 있거나 성능이 떨어지는 부품이 든 제품으로 차별 당하기 일쑤였다.
어리석게도, 한국언론은 '대기업을 좋아한다'는 65%와 '이재용을 구속하라'는 64% 시민들이 겹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삼성을 좋아하고, 잘 되기를 바라기에 철저한 수사를 요구하는 것이다.
불행히도, 삼성에 대한 불신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제 세계 여러나라가 삼성뿐 아니라 한국 재계 전체를 믿지 못하게 되었다. 그 원인은 언론이 주장하듯, 삼성의 기소나 이재용에 대한 구속 영장 청구때문이 아니다.
특검이 이재용 영장을 청구했을 때, 미국의 유명 경제 잡지 <포브스>는 삼성이 '오명을 쌓아 온 불투명한 경영'을 지적했다. 법원이 이 요청을 기각하자 <워싱턴포스트>는 "뇌물과 부패가 한국 기업활동의 특징이 된 지 오래"라고 보도했다. 법원의 결정이 삼성을 '덜 부패한 기업'으로 인식시키는 게 아니라, 한국 전체를 부패한 곳으로 인식시키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그 결과, 삼성이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폭발 게이트'의 악몽도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삼성은 최근 몇 달 간의 조사를 마치고 폭발 사고의 원인이 배터리였다고 최종 발표했다. 이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은 "왜 삼성의 배터리 대책은 왜 C등급인가"라는 기사를 냈다.
이 기사는 삼성의 발표 내용부터 회의를 표했다. 최초의 배터리도 문제가 있었고, 교환한 배터리도 문제가 있었다는 주장인데, 제조업체도 다른 두 종류가 동시에 문제가 생기는 '놀라운 우연'이 어떻게 가능하냐는 것이다. 기사는 이것이 "유성이 같은 집에 두 번 떨어지는 격"이라고 조롱했다.
<뉴욕타임스>는 문제를 은폐하게 만드는 삼성의 위계적 조직문화뿐 아니라, '편들기'로 일관하는 한국 정부의 태도도 지적했다. 그리고는 그예로 한국산업기술시험연구원(KTL)이 불과 몇 시간만에 폭발 원인을 제품 결함이 아닌 "외부충격"으로 발표해 사태를 키운 사실을 상기시킨다. <뉴욕타임스>는 이렇게 반문한다.
생각해 보라. 이재용 개인이 삼성에 대한 지배력을 키우는 게 어떻게 '국익'인가? 폭발한 삼성 전화기를 고발하는 시민을 언론이 '악덕 소비자'로 모는 게 어떻게 기업의 이익을 지키는 일인가? 정부기관이 단 몇 시간만에 삼성이 원하는 '조사결과'를 발표하는 것이 그 기업과 국가에 어떤 이익을 가져다 주었는가?
(참고로, 한국 언론이 만들어낸 '블랙컨슈머'라는 말은 쓰지 말아야 한다. 이 말은 '불량 소비자'가 아니라 '흑인 소비자'라는 뜻으로, 인종주의자로 오해받게 만드는 위험한 엉터리 영어다.)
정부, 법조계, 언론은 기업의 범죄를 감싸며 '국익'을 말한다. 하지만 이들을 묶는 가장 큰 힘은 돈이다. 뇌물이 아니어도, 삼성은 은퇴한 공직자와 법조계 인사에게 막대한 연봉과 권력을 안기는 든든한 '고용주'이며, 언론사에 막대한 수익을 안기는 '광고주'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보았듯, '정의'와 '경제'는 충돌하지 않는다. 정의 없이 성장하는 경제는 없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은 '김영란법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난리를 쳤지만, 뇌물과 부패가 판치는 나라의 경제가 제대로 굴러가는 것을 보았는가?
앞의 <월스트리트저널>은 삼성의 내부사정을 잘 아는 해외 분석가의 견해를 소개하며, 이재용이 구속되더라도 삼성은 별 문제 없이 돌아갈 것으로 전망했다. 그가 구체적이고 세부적 전략을 제시하는 경영인이 아니라, '큰 그림'을 보여주는 경영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제 이재용 부회장에게 '특별 메시지'를 전하는 것으로 글을 마치려 한다. 돈때문에 잘못된 충고를 하는 정부와 언론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도망치시라. 그리고 당당하게 죄값을 치르시라.
그래도 삼성은 무사할 것이다. 아니, 그래야 무사할 것이다.
출처 이재용 구속 기각된 날, 한국은 '부패 국가'로 낙인
[게릴라칼럼] 한국 보수 언론의 삼성 보도 유감... 정의와 국익은 충돌하지 않는다
[오마이뉴스] 글: 강인규, 편집: 손지은 | 17.01.27 15:27 | 최종 업데이트 17.01.27 15:27
지난 12월 러시아에 갔다. 뉴욕을 출발해, 모스크바를 거쳐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여러 도시를 경유하는 여행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번 여행은 좀 특별했다. 세 곳의 국제공항을 거치는 동안 어김없이 '삼성'과 마주쳤기 때문이다.
뉴욕 공항에서 수속을 할 때에는 '삼성 갤럭시 노트7을 기내에 반입할 수 없다'는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고, 모스크바 공항에서는 '기내 충전 금지' 안내 방송이 귀에 들어왔다. 목적지로 가는 마지막 비행기에 올랐을 때는 승무원이 충전을 금하는 것은 물론, 가능하면 사용도 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놀랄 일은 아니었다. 내가 근무하는 미국 대학에서도 삼성은 인기 있는 농담거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이 '삼성' 로고가 찍힌 전화기를 들고 있으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해주는 것이다.
"…안 터지기를 바라."
어디 학교 뿐인가. 삼성의 '폭발 게이트'는 미국 대중문화의 일부로 부상했다. 문제의 전화기가 유명 토크쇼 <레이트쇼>에 출연한 것이다. 진행자 스티븐 콜베르는 "지금 이 방송을 갤럭시 노트 7으로 보는 시청자에게 드리는 특별 메시지가 있다"고 말한 뒤 이렇게 소리쳤다.
"살고 싶으면 얼른 도망치세요!"
그날 미국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CPSC)는 해당 제품의 공식 리콜을 발표했다. 위원회는 "심각한 화재와 화상의 위험"을 이유로 들었고, 콜베르는 이 사실을 풍자한 것이다.
한 번으로 끝났다면 좋았겠지만, 삼성은 한 달도 안 돼 같은 쇼에 다시 출연해야 했다. 삼성이 '배터리 문제였다'면서 전지만 교환한 제품을 다시 내놓았고, 이제 이 전화기들이 터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콜베르는 "맙소사, 내 사타구니에 불이 붙었네"라는 농담으로 조롱의 수위를 한층 높였다. 이제까지 삼성은 미국에서 무수히 많은 전화기를 팔았고, 꽤 좋은 평가를 받았다.
삼성으로서는 억울할지 모르겠다. 단 한 번의 실수로 이제까지 쌓아 온 평판과 수익을 하루아침에 날려 버렸다고 생각할 터이기 때문이다. 정말 그럴까? 내 대답은 '천만의 말씀'이다.
삼성의 '폭발 게이트'는 결코 '실수'가 아니다. 이것은 체계적인 비호와 은폐의 결과이며, 기업-정부-언론의 이해관계가 얽혀 만들어낸 부패의 합리적 산물이다.
나는 삼성에서 어처구니 없는 사고가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다고 믿는다. '기-정-언'으로 이어지는 부패의 사슬이 변함없이 공고하기 때문이다.
'반기업 정서' 음모 소설 쓰는 언론
▲ 촛불시민, 삼성 이재용 구속 촉구 '박근혜 즉각퇴진 및 조기탄핵 제13차 범국민행동의 날'인 지난 21일 오후 광화문광장에 모였던 시민들이 종각 부근 옛 삼성타워앞에서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구속영장 기각에 항의하며 구속촉구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권우성
최근 삼성의 뇌물과 횡령 혐의를 조사하던 특검이 이재용 삼성 부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이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보수언론은 한 목소리로 환호했고, 새누리당은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고 점잖게 운을 뗀 뒤, "이번 사건의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 정치권에 있다"며 스스로 죄를 뒤집어 썼다.
흥미롭게도, 시민 대다수의 시각은 이들과 사뭇 달랐다. 구속영장 기각 후 <미디어오늘>이 에스티아이에 의뢰한 여론조사를 결과를 보면, 시민들 가운데 무려 64.1%가 '삼성의 눈치를 본 편파적인 결정'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법원이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한 것"이라는 응답은 고작 29.9%였다.
더 나아가 시민들 60.2%가 "특검이 영장을 재청구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반드시 구속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했다. '동의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사람들은 32.8%에 지나지 않았다. 시민들과 (이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존재하는) 언론-정부의 시각이 이처럼 판이하게 다른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언론과 정부가 보기에,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한국사회에 팽배한 '반기업 정서' 때문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청구되었을 때, 언론에서는 난리가 났다.
<중앙일보>는 사설을 통해 "정치권과 광장을 휩쓰는 반대기업 정서"에 휘몰린 게 아닌지 의심된다며 목소리를 높였고, <조선일보>는 "처음부터 '뇌물 공여'라는 결론을 정해놓고 그에 맞춰 수사를 밀어붙여 왔다는 느낌을 준다"고 주장했다.
<조선> 스스로도 '느낌' 소회가 별 설득력이 없다고 여겼는지, 문학적 상상력까지 동원해 특검팀의 심리 기저에 도사린 음모를 캐내기 시작했다. 이 역할은 김진명 작가가 맡았다.
이 소설가는 왜 "특검에서는 단호히 영장을 청구했을까?"라고 묻고 나서 "나는 여기에는 국민의 분노라는 거대한 배경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스스로 답한다. 그런 뒤 음모론의 대가답게 그 가정을 토대로 다음과 같이 '소설'을 쓴다.
"이재용을 이미 주워담지 못할 정권을 확인 사살할 목적으로 일단 구속부터 하는 것이 옳은지, 해외의 경쟁자들에게 잔뜩 빼앗긴 다음 무죄가 나온다면 대한민국의 국익이 너무 억울하지 않겠는지."
그의 분석에 따르면, 특검의 구속영장 청구는 '(이미 죽은) 정권을 확인사살하기 위한' 음모이며, 무죄가 나올 가능성이 있는데도 삼성을 재판정에 세우는 것은 "국익이 너무 억울한" 일이 된다. <동아일보>는 아예 "삼성 같은 글로벌 기업의 경영 공백이 가져올 파장도 고려해 기소하더라도 불구속 기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자체 판결'을 내놓았다.
반기업 정서? 오히려 과분한 사랑 받았다
삼성을 비롯한 한국 재벌이 깊은 불신의 나락에 빠져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점을 눈치 챈 한국 언론은 2000년 초부터 '반기업 정서가 심각하다'며 위기감을 고조시켜 왔다. 삼성의 위기도 '반기업 정서'와 이에 편승한 정치권의 '반시장적 규제'때문이라는 게 그들의 일관된 주장이었다.
정말 그럴까? 한국인들은 비이성적인 '대기업 혐오'에 빠져서 국익을 팽개치고 있고, 특검은 이런 대중의 정서를 등에 업고 '삼성 죽이기'에 나선 것일까?
우선 그들이 말하는 '반기업 정서'의 실체부터 살펴보자. <중앙일보>는 금세기 초부터 기업 선호조사를 해 왔다. 2003년 조사에서 '대기업을 좋아한다'는 비율이 42.1%로 나왔고, <중앙>을 비롯한 보수언론은 이를 토대로 '대기업에 대한 맹목적 반감'을 기정 사실화 했다.
같은 조사에서 2006년에 '대기업을 좋아한다'는 비율은 57.3%로 올랐고, 2013년에는 61%로 뛰었다. 이 수치는 2014년에 65%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흥미롭게도 이 기간에 한국 언론은 '대기업 혐오 정서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고 비판하며,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평등주의'와 '좌파적 반시장주의'를 맹폭격했다.
'65퍼센트가 기업에 애정을 보이는 반기업 정서'가 말해주는 것은, 삼성 등의 재벌이 한국에서 과분한 애정을 받아왔다는 점이다. 삼성의 세계 휴대폰 점유율이 20%대인데 반해, 국내 점유율은 50-60%인 사실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한국 소비자들이 특별 대접을 받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기능이 빠져 있거나 성능이 떨어지는 부품이 든 제품으로 차별 당하기 일쑤였다.
어리석게도, 한국언론은 '대기업을 좋아한다'는 65%와 '이재용을 구속하라'는 64% 시민들이 겹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삼성을 좋아하고, 잘 되기를 바라기에 철저한 수사를 요구하는 것이다.
도둑질한 혐의를 받는 자식에게 사실을 철저히 캐묻고 합당한 처벌하는 요구하는 것이 좋은 가족인가, 옆집과의 '경쟁력'을 생각해서 덮고 은폐하는 것이 '가족의 이익'에 부합하는가? 게다가 한두 번도 아닌 상습범이라면?
삼성 위기의 주범은 정부와 언론
▲ 구속영장실질심사 마친 삼성 이재용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8일 오후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뇌물공여, 횡령, 국회증언감정등에관한법률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은 뒤 대기장소인 서울구치소로 가기 위해 법원을 나오고 있다. ⓒ 권우성
불행히도, 삼성에 대한 불신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제 세계 여러나라가 삼성뿐 아니라 한국 재계 전체를 믿지 못하게 되었다. 그 원인은 언론이 주장하듯, 삼성의 기소나 이재용에 대한 구속 영장 청구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외국에서는 기업의 존폐가 위태롭게 될 중범죄에 대해서도 법원이 '불구속, 불기소, 무죄, 집행유예를 내려왔기 때문이고, 시민과 소비자의 이익을 심각히 훼손하는 기업 행위를 언론이 은폐하고 감싸왔기 때문이다.
특검이 이재용 영장을 청구했을 때, 미국의 유명 경제 잡지 <포브스>는 삼성이 '오명을 쌓아 온 불투명한 경영'을 지적했다. 법원이 이 요청을 기각하자 <워싱턴포스트>는 "뇌물과 부패가 한국 기업활동의 특징이 된 지 오래"라고 보도했다. 법원의 결정이 삼성을 '덜 부패한 기업'으로 인식시키는 게 아니라, 한국 전체를 부패한 곳으로 인식시키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그 결과, 삼성이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폭발 게이트'의 악몽도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삼성은 최근 몇 달 간의 조사를 마치고 폭발 사고의 원인이 배터리였다고 최종 발표했다. 이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은 "왜 삼성의 배터리 대책은 왜 C등급인가"라는 기사를 냈다.
이 기사는 삼성의 발표 내용부터 회의를 표했다. 최초의 배터리도 문제가 있었고, 교환한 배터리도 문제가 있었다는 주장인데, 제조업체도 다른 두 종류가 동시에 문제가 생기는 '놀라운 우연'이 어떻게 가능하냐는 것이다. 기사는 이것이 "유성이 같은 집에 두 번 떨어지는 격"이라고 조롱했다.
<뉴욕타임스>는 문제를 은폐하게 만드는 삼성의 위계적 조직문화뿐 아니라, '편들기'로 일관하는 한국 정부의 태도도 지적했다. 그리고는 그예로 한국산업기술시험연구원(KTL)이 불과 몇 시간만에 폭발 원인을 제품 결함이 아닌 "외부충격"으로 발표해 사태를 키운 사실을 상기시킨다. <뉴욕타임스>는 이렇게 반문한다.
"정부가 규제를 더 엄격히 강화하면 삼성에게 오히려 유익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라. 이재용 개인이 삼성에 대한 지배력을 키우는 게 어떻게 '국익'인가? 폭발한 삼성 전화기를 고발하는 시민을 언론이 '악덕 소비자'로 모는 게 어떻게 기업의 이익을 지키는 일인가? 정부기관이 단 몇 시간만에 삼성이 원하는 '조사결과'를 발표하는 것이 그 기업과 국가에 어떤 이익을 가져다 주었는가?
(참고로, 한국 언론이 만들어낸 '블랙컨슈머'라는 말은 쓰지 말아야 한다. 이 말은 '불량 소비자'가 아니라 '흑인 소비자'라는 뜻으로, 인종주의자로 오해받게 만드는 위험한 엉터리 영어다.)
정의가 경제이고, 정의가 국익이다
▲ 430억 원대 뇌물공여와 횡령·위증 등 혐의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종이백을 들고 지난 19일 오전 의왕시 서울구치소 밖으로 걸어나오고 있다. ⓒ 연합뉴스
정부, 법조계, 언론은 기업의 범죄를 감싸며 '국익'을 말한다. 하지만 이들을 묶는 가장 큰 힘은 돈이다. 뇌물이 아니어도, 삼성은 은퇴한 공직자와 법조계 인사에게 막대한 연봉과 권력을 안기는 든든한 '고용주'이며, 언론사에 막대한 수익을 안기는 '광고주'이기 때문이다.
결국 삼성에게 혜택을 받는 대가로 '해사행위'를 하는 셈인데, 이들이 쓰는 전략은 재벌 총수 개인의 이익을 '국익'와 동일시하면서 '정의'를 '경제'의 반대편에 놓는 것이다. 아쉽게도, 특검팀까지도 이 프레임에 말려들었다. 영장을 청구하며 "경제보다 정의"를 말한 것이다.
앞에서 보았듯, '정의'와 '경제'는 충돌하지 않는다. 정의 없이 성장하는 경제는 없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은 '김영란법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난리를 쳤지만, 뇌물과 부패가 판치는 나라의 경제가 제대로 굴러가는 것을 보았는가?
앞의 <월스트리트저널>은 삼성의 내부사정을 잘 아는 해외 분석가의 견해를 소개하며, 이재용이 구속되더라도 삼성은 별 문제 없이 돌아갈 것으로 전망했다. 그가 구체적이고 세부적 전략을 제시하는 경영인이 아니라, '큰 그림'을 보여주는 경영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제 이재용 부회장에게 '특별 메시지'를 전하는 것으로 글을 마치려 한다. 돈때문에 잘못된 충고를 하는 정부와 언론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도망치시라. 그리고 당당하게 죄값을 치르시라.
그래도 삼성은 무사할 것이다. 아니, 그래야 무사할 것이다.
출처 이재용 구속 기각된 날, 한국은 '부패 국가'로 낙인
'세상에 이럴수가 > 정치·사회·경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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