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에 이럴수가/노동과 삶

인천공항 비정규직은 아직 불안하다

인천공항 비정규직은 아직 불안하다
[비정규직 ZERO 시대를 위하여 ③] 좌담, 현장 직원들이 꿈꾸는 인천공항
[민중의소리] 옥기원 기자 | 발행 : 2017-06-11 14:08:28 | 수정 : 2017-06-11 14:08:28


인천공항은 우리나라 경제위기의 아픔을 담은 공간입니다. IMF 경제위기 직후인 2001년에 개항한 인천공항은 비용절감을 위해 외주화를 기본 고용형태로 삼고 출발했습니다. 그 결과 3년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지만, 전체 직원 중 비정규직이 80%가 넘는 기형적인 사업장이라는 불명예도 안았습니다. 이런 인천공항이 문재인 정부 출범과 동시에 대전환점을 맞았습니다. 1만명에 가까운 공항 직원 전원을 정규직화하겠다는 도전을 앞두고 있습니다. 인천공항 정규직화는 새 정부의 의지와 비정규직 노조의 투쟁, 비정규직 철폐를 바라는 시대적 요구가 모여 만들어낸 결과물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건강한 정규직화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습니다. 공항직원·승객을 비롯한 이 시대를 사는 모든 노동자를 웃게 할 건강한 정규직화는 어떤 모습일까요. 현장 직원과 노동전문가 등과 함께 인천공항의 현실을 조명하고, 바람직한 정규직화의 대안을 모색해 보려 합니다.

[① | 세계 1위 공항의 부끄러운 민낯]
[② | 인천공항 노동조합 10년]
[③ | 공항 비정규직의 꿈]
[④ | 비정규직-정규직화 시나리오]

정규직 전환 약속을 받은 인천공항 비정규직들은 아직도 불안하다. 줄곧 비정규직의 목소리에 귀를 막아온 공항공사가 하루아침에 정규직 전환을 발표한 것이 아직도 실감 나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현장에서는 처우가 나아지지 않는 ‘반쪽짜리 정규직 전환’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이들은 “기필코 인천공항에서 건강한 정규직화를 이뤄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인천공항의 정규직 전환 모델이 공공부문 등의 다른 분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책임감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천공항 현장 직원들이 바라는 건강한 정규직화는 무엇일까? 각 직무를 대표하는 현장 직원들을 만나 이들이 꿈꾸는 인천공항에 대해 들어봤다.

▲ 2일 비정규직이 꿈꾸는 인천공항이란 주제로 좌담회를 진행했다. 사진은 왼쪽 맨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박대성 보안검색지회장, 오순옥 환경지회장, 유창목 토목지회장, 서강혁 승강설비지회장. ⓒ민중의소리

지난 2일 인천 중구 영종도 인천공항지역지부 사무실에서 진행된 좌담회에는 박대성 보안검색지회장(지부장), 오순옥 환경지회장(수석부지부장), 서강혁 승강설비지회장(지부 조직실장), 유창목 토목지회장(지부 쟁위국장) 등 4명이 참석했다.


정규직 전환 발표 땐 ‘깜짝’
그래도 ‘불안’한 현장 직원들

기자 지난달 12일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공항에 방문했을 때 정규직 전환 발표가 나올 거라 예상했나?

서강혁 승강설비지회장 전날 오후에 정부관계자랑 간담회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저녁 늦게 대통령이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처음에는 위로방문 같은 거로 생각했다. 예전 국회의원들과 정부부처 관계자들이 와서 했던 형식적인 간담회 같은 거 말이다. 정규직 전환 발표가 나올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 했다.

박대성 보안검색지회장 문 대통령이 “좋은 소식이 있다”고 운을 띄었고, 정일영 인천공항공사사장이 정규직 전환을 발표했다. 폭탄을 얻어맞은 것 같았다. 10년 넘게 비정규직 노조와 대화도 하지 않던 공사가 정규직 전환을 발표하다니 믿기지 않았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일이 정권이 바뀌고 하루아침에 일어나니 뭔가 허무한 감정까지 들었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달 12일 인천공항공사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간담회를 마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기자 정규직 전환 발표 후 현장 직원들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을 것 같다.

오순옥 환경지회장 현장 직원들은 기뻐하면서도 불안해하는 것 같다. 매년 해고를 걱정하다가 갑자기 정규직 전환 소식을 들으니 실감 나지 않는 게 당연하다. 정규직 전환이 돼도 처우가 전혀 달라지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공사는 지금까지 비정규직 임금을 줄이는 방법으로 이윤을 내왔다. 공사에 대한 불신이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직원들은 노조에 대한 기대가 큰 것 같다. 현장 목소리를 잘 전달해 주길 바라는 것이다. 요즘은 여기저기서 오는 민원(?)전화를 받느라 정신이 없다.

유창목 토목지회장 현장 분위기가 정말 좋아졌다. 아직 약속뿐이지만, 직원들이 공항에서 중요한 존재가 됐다는 주인의식 같은 게 생겼다고 말한다. 그 전에는 쉽게 대체 될 수 부속품에 불과했다면 말이다. 하지만 인터넷상에 ‘개나 소나 정규직 된다’는 비난 글도 많이 올라와 직원들이 상처를 받고 있다. 인천공항을 세계 1등으로 만든 건 우리 비정규직들이다. 우리의 요구는 기존 정규직과 같은 임금을 달라는 게 아니다. 정규직·비정규직 같은 계급 구분 없이 모두 같은 공항 가족으로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 2일 ‘비정규직이 꿈꾸는 인천공항’ 좌담회에 서강혁 승강설비지회장(왼쪽)과 박대성 보안검색지회장(오른쪽)이 참석했다. ⓒ민중의소리


직원들이 꿈꾸는 인천공항
“가족에게 당당한 일터 됐으면”

기자 정규직 전환까지 우여곡절이 많을 것 같다. 현장에서 우려되는 점이 있나?

오순옥 환경지회장 환경미화같이 저평가받는 일부 직무들이 정규직 전환 대상에 포함되지 않을 거라는 걱정이 있다. 공항공사가 현장 목소리를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근로조건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앞에서는 정부 눈치를 보며 정규직화를 말하면서 뒤에서는 형식적인 전환을 통해 노동자를 이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서강혁 승강설비지회장 공항공사는 올해 말까지 정규직 전환을 완료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너무 빠르게 추진되는 것 같아 걱정이다. 같은 직무로만 구성된 다산콜센터의 경우도 정규직화까지 3년이 넘게 걸렸다. 인천공항은 이보다 직무가 다양하고 이해관계도 훨씬 복잡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노사 간 대화를 통해 천천히 정규직 전환을 추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마찰을 최소화할 수 있게 정부가 중재자 역할을 잘 해줬으면 좋겠다. 이는 단순히 공항공사와 공항비정규직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 공공부문 비정규직 전체의 미래가 달린 중요한 사안이다.

▲ 2일 ‘비정규직이 꿈꾸는 인천공항’ 좌담회에서 오순옥 환경지회장(왼쪽)과 유창목 토목지회장(오른쪽)이 발언을 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기자 현장 직원들이 꿈꾸는 인천공항은 어떤 모습일까?

유창목 토목지회장 우리 아이들이 당당하게 ‘아빠가 인천공항에서 일한다’고 말할 수 있는 일터가 됐으면 좋겠다. 언제 잘릴 줄 모르는 상황에서 처우까지 형편없어서 주변에 인천공항에서 일한다고 잘 말하지 못했다. 내가 열심히 일하면 아이들 학원도 보내고, 주말에 외식도 할 수 있다는 여유를 느껴보고 싶다. 이런 일이 남일인 줄만 알았는데 나에게도 조금 희망이 보이는 것 같다. 어떻게 결론이 날지는 아직 잘 모르지만 이런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박대성 보안검색지회장 일하는 직원 모두가 존중받고,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일터가 됐으면 좋겠다. 너무 당연하지만 정말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인천공항의 결과가 다른 분야에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면 부담이 큰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다. 노조가 유리한 쪽으로만 떼를 쓸 생각도 없다. 노사 간 대화를 통해 건강한 정규직 합의를 이뤘다는 모델을 만들고 싶다. 비정규직 문제는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이들의 문제이다. 관심을 가지고 끝까지 지켜봐 달라.

▲ 지날달 26일 인천공항공사에서 공사 관계자들과 노조가 감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뉴시스


출처  인천공항 비정규직은 아직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