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음모 조작사건 다룬 영화 ‘지록위마’ 만드는 경순 감독
“모두가 입을 닫는 순간 피해자들이 당한 고통을 되돌아 봐야 한다”
[민중의소리] 권종술 기자 | 발행 : 2017-08-27 08:45:07 | 수정 : 2017-08-27 08:45:07
지금으로부터 4년 전인 2013년 8월 28일. 국정원은 이석기 의원을 포함한 통합진보당 주요 당직자 10명의 자택과 의원실 등 18곳을 전격 압수 수색을 하고 3명을 체포했다. 국가정보원이 내민 영장엔 낯선 죄목이 보였다. 바로 ‘내란음모’였다.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을 규탄하면서 전국에서 촛불이 타오르고 있던 그때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나 만날 수 있었던 ‘내란음모’가 부활하면서 모든 언론과 방송은 ‘내란음모’ 사건으로 도배됐다. 언론들은 사실 확인은 생략한 채 국정원이 불러주는 대로 이석기 의원과 관련자들을 ‘내란범’으로 몰아붙였다.
9월 2일 한국일보가 국정원이 작성한 강연 녹취록을 공개하면서 이들은 은밀하게 전쟁을 준비한 ‘호전광’처럼 묘사됐다. 하지만 한국일보가 공개한 녹취록은 이후 재판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준비하자”를 “전쟁을 준비하자”로 조작하는 등 수백 곳 넘게 오류가 있었음이 밝혀졌다. 하지만 당시 언론들은 한국일보가 공개한 내용을 아무런 검증 없이 받아썼고, 여론을 몰아갔다.
9월 4일 국회 본회의가 열리고, 찬성 258, 반대 14로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은 가결됐다. 민주당은 물론 한때 같은 당에 있었던 정의당마저 침묵하며 동조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아직 재판은 시작도 하지 않았지만, 사건은 일주일 만에 언론과 방송 그리고, 정치권을 비롯한 많은 이들의 침묵과 동조 속에 ‘내란음모’라는 낙인이 찍혀버리고 말았다.
궁지에 몰리던 국정원과 박근혜 정권이 ‘내란음모’를 조작하며 어떻게 일순간에 부활할 수 있었던 것일까? 함께 진보 운동을 했던 이들을 포함해 많은 이들은 침묵한 것일까? 사회적인 낙인과 함께 피해자들과 피해자 가족들이 당한 고통은 또 얼마나 컸을까? 과연 무엇이 문제였고, 왜 어떻게 그렇게 된 것일까? 이런 질문들을 가지고 내란음모 조작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이가 있다. 비로 경순 감독이다. 그는 오랜 준비 기간을 거쳐 지난 7월부터 내란음모 조작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지록위마’를 만들고 있다. 경순 감독을 만나 이번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와 이번 영화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들어봤다.
“영화 ‘레드 마리아 2’ 작업을 마치고 다음 영화를 기획하면서 자료 조사를 하고 있었다. 사실 내란음모 조작 사건과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은 늘 걸리는 부분이었다. 내란음모 사건 발표에 이어 끝내 통합진보당이 해산되는 걸 보면서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세상은 너무나 조용했다. 이상했다. 2014년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 당시 일본에서 촬영하고 있었다. 몇 개월 뒤 촬영에서 돌아오고 나서도 계속 망치로 머리 맞은 느낌이었다. 마음에 계속 남아 있다가 다른 영화를 준비하면서 내란음모 조작 사건을 다룬 책 ‘이카로스의 감옥’을 봤다. 그런데 저자 이름을 보니 내가 아는 ‘문영심 언니’였다.”
경순 감독은 문영심 작가의 이름을 보자마자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두 사람은 경순 감독의 영화 ‘레드 마리아 2’ 상영회에 문 작가가 함께하면서 알게 된 사이였다. “다짜고짜 ‘언니 너무 고맙다. 이런 책을 써줘서 너무 고맙다’고 했다. 그 책을 보면서 내가 그동안 이 사건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구나 하고 깨닫게 됐다. 결코,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경순 감독은 지난해 11월부터 문영심 작가가 진행한 ‘이카로스의 감옥’ 북 콘서트에 함께 따라다니며 내란음모 조작사건 피해자들도 만났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영화를 해야겠다는 마음은 더욱 커졌다고 한다. 지난 6월까지 이번 사건 재판자료를 비롯한 관련 자료를 검토하고, 탄핵 촛불 집회에서 무죄 석방 서명을 받는 피해자 가족을 비롯한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촬영을 준비하고, 지난 7월부터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됐다.
영화는 어떤 내용을 다루게 될까? 내란음모 조작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던 2013년 8월 28일부터 국회에서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이 통과되던 9월 4일까지 그 일주일이 이야기의 중심이다.
“압수 수색 과정은 코미디였다. 압수 수색을 13군데를 같은 시간에 동시에 진행했다. 마치 버라이어티 쇼를 생중계하듯 했다. 당일 구속된 이들은 언론과 방송을 동원해 카메라로 낙인을 찍었다. 하지만 압수 수색에선 별것이 나오지 않았다. 증거가 될 만한 건 없었다. 뭔가 압수한 것처럼 쇼가 펼쳐지면서 TV로 낙인이 찍혔다. 구체적으로 무엇 때문에 이유와 설명은 없다.”
국정원이 여론재판을 시작했고, 언론과 방송은 마치 배심원이라도 된 것처럼 여론재판을 주도했다.
“과거 독재 정권에선 인혁당 사건 등을 폭력을 앞세워 조작하고, 이를 통해 공포정치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언론이 그런 폭력을 대신해준다. 군대를 동원해 총칼로 한 것이 아니라 그 역할을 언론이 했다. 그렇게 권력의 공포정치에 함께한 언론과 방송은 지금도 침묵하고 있다. 박근혜 탄핵 촛불 광장에서 경쟁하듯 나온 보도의 0.1% 정도만이라도 노력했다면 그런 보도는 안 나왔을 것이다. 이석기 의원을 애국가를 안 부르는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서 고립시킨 뒤 내란사건으로 확산시켰다. 내란 선동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 강연해달라고 해서 초청을 받아서 강연한 것뿐인데 앞에 서 있었다고 9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언론에 의해 갈기갈기 찢기고, 신상이 털렸다. 불과 1주일 만에 그렇게 됐다. 사건이 알려지고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가결되던 순간에 이 사건은 끝났다. 재판은 시작도 안 했지만 판결은 이미 끝난 거다.”
내란사건의 조작과 이를 통한 여론재판엔 또 다른 요소가 숨어있다.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제목이 상징하듯 그 과정엔 침묵과 동조가 있었다. 국정원이 내란음모 조작 사건을 터트리며 사슴(鹿)을 말(馬)이라고 주장하자 함께 싸웠던 진보진영조차도 사슴이 말이라는 주장을 알면서도 침묵하거나 외면하고 피해버렸다. 바로 이 부분이 이 영화의 중심 주제이기도 하다.
“이번 영화는 내란음모 조작 사건의 피해자와 그 가족뿐만이 아니라 그 사건에 침묵하고, 불편해했던 이들까지도 다룬다. 진보진영 내에서도 내란음모 조작 사건에 함께 저항하지 못하고 침묵했던 지점까지 담아 이 사건이 직접적인 피해자들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릴 생각이다. 이번 사건엔 복잡한 맥락이 있다. 같이 연대했고, 시대의 아픔을 공유한 진보진영의 사람들이 왜 당시 그런 태도를 보인 것인지 속을 들여다봐야 한다. 우리 사이에 있던 그런 문제와 환경을 국가와 국정원이 이용했다. 기획한 거다. 왜 우리는 당시에 사슴이 말이라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사슴이야’라고 말할 수 없었던 것인지 질문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우리 모두의 명예가 회복된다.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 자체가 수치다. 그런 부끄러운 일에서 한발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을 담을 것이다.”
사슴을 사슴이라고 말하지 못한 채 침묵하고 말이라는 주장에 동조한 대가는 엄청났다. 국정원 등 국가기관에 의한 대선 조작 사건으로 흔들리던 박근혜 정권은 내란음모 조작 사건으로 다시 살아났다.
“내란음모 조작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국정원 댓글 사건이 논란이 되고 있었다. 과거처럼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으로 정국을 돌리기 힘들다는 판단으로 내란음모 사건을 조작하고 프레임을 만든 거다. 너무 허무하고 허탈한 건 당시 많은 이들이 촛불 집회를 하며 싸우고 있었는데 그 자리에 수많은 국회의원이 함께하고 있었는데, 국정원의 공격에 그렇게 허무하게 물러날 수 있는지, 일순간에 발을 뺄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됐다. 피해자 가족 중에선 당시 압수수색을 당하기 전에 국정원 대선 개입 규탄 촛불 집회에 참석했다 오신 분도 계셨다. 당시는 세상이 바뀌려나 보다 기대가 모아졌다. 지난 탄핵 촛불보다는 작았지만, 당시 광화문을 밝힌 촛불은 큰 힘이었다. 촛불과 함께 만났던 희망이 갑자기, 불과 몇 시간 만에 내란범 가족이라는 손가락질과 함께 사라지고 만 것이다.”
집요한 공세와 여론이 이어지면서 사건의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으면서 외면한 자신들을 합리화하려는 태도까지 나타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빌미론’이다. 정권에게 탄압을 받을 수 있는 빌미를 줬기에 벌어진 일이란 것이다. 경순 감독은 “빌미를 주었다는 논리는 적반하장이다. 그런 빌미 논리가 진실인 것처럼 먹히는 이 사회가 전체적으로 병든 것 아닌가 생각됐다. 어쩌면 진보운동 하는 분들이 진보적으로 나가지 못하는 문제는 아닐까? 무엇이 진보일까? 좀 더 나은 사회의 모습이 무얼까? 생각해본다”고 말했다.
쉽게 침묵하게 하고, 그렇게 쉽게 낙인을 찍을 수 있었던 배경엔 다른 생각을 인정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풍토도 한몫했다.
“지금도 표현의 자유가 위협받고, 생각이 다르다고 매장당하고, 공격받는 일들이 넘쳐난다. 이런 사회에 묻고 싶다. 이 영화의 질문은 ‘지금 당신의 생각이 정말 당신의 생각이 맞느냐’라는 거다. 영화 ‘지록위마’를 제목으로 정하면서 생각한 건 이거다. 사회적 분위기와 강요, 여러 이유로 다양한 생각과 의견을 용납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를 향한 질문이기도 하다.”
경순 감독은 끊임없이 우리 사회를 향해 질문을 던져왔다. 연령, 성별, 빈부의 차이와 정치적인 입장을 불문하고 일거에 국민을 통합해 온 ‘애국심’과 민족을 향해 질문을 던진 영화 ‘애국자 게임’, 우리 사회의 허울 좋은 ‘가족’과 ‘가족주의’의 속내를 파헤치는 ‘쇼킹 페밀리’ 등 만만찮은 질문들이었다. 그리고 이번 영화도 그 연장선에 있다.
“그동안 국가주의 자본주의 가족주의 등 이데올로기 속에 묻힌 폭력성이 제 영화의 주제였다. 의도하지 않게 소수자 중에서도 소수자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의 이야기가 많았다. 보편적 이데올로기에서 불편해하는 주제들을 주로 다뤄왔다. 그 때문에 이런 영화를 찍을 때 많은 이들이 만류하기도 했고, 늘 외로운 작업이었다. 많은 이들이 왜 이런 논쟁적인 영화만 만드냐고 묻는다. 그럴 때면 항변하듯이 ‘난 싸우는 것 안 좋아해. 너희들이 이야기를 안 해서 내가 하는 거야’라고 한다. 이번 영화는 예전에 만든 영화에 비해선 관련된 이들이 많고 관심을 가진 이들도 있어 힘이 된다. 사실은 생각보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연루되고, 그 많은 이들이 피해자라는 걸 모르고 있었다는 게 더욱 놀라운 일이었다.”
이런 우리 사회를 향한 질문과 함께 피해자들과 피해자 가족들의 목소리가 더해지면서 이 영화는 우리 모두를 위한 질문이 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질문은 이번 사건이 과거의 문제가 아닌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현실임을 보여준다.
“피해자 가족들이 양심수 석방을 외치면서 청와대까지 행진하고 노력을 했지만, 보도조차 안 됐다. 당시에 말도 안 되는 국정원의 주장을 받아쓴 언론은 지금은 아무런 일 없었다는 듯 침묵하고 있다. 그렇게 침묵하는 이들의 이야기도 듣고 싶다. 왜 입을 닫고 있냐고 묻고 어떤 것이 문제인가 듣고 싶다. 그런 이야기도 영화에 담고 싶다. 모두가 입을 닫는 순간 내란사건 피해자들이 말도 안 되는 고통을 당했다는 사실을 되돌아봐야 한다. 전 국민으로부터 사상검증을 당하고, 10만 당원들이 피해를 보고, 피해자들의 가족 친척 이웃이 당해야 했던 고통이 우리에게 얼마나 부끄러운 모습인지 같이 봐야 한다.”
영화 ‘지록위마’가 리영희재단의 우수다큐멘터리 지원 대상으로 뽑히면서 1천만 원의 지원을 받았고, 전체 제작비는 약 3억 원가량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에 촬영과 함께 제작비 마련에도 힘들 쏟고 있다. 경순 감독은 “아직은 초반 작업 중이다. 원래 작품을 만들려면 한 2~3년 정도 걸린다. 이번엔 길게 끌지 말자는 생각이 있다. 되도록 1년 안에 끝내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바쁘다. 올해 안에 촬영을 끝내고, 내년 여름까지는 완성하자는 목표다. 그러다 보니 스케줄이 빠듯하다”고 말했다.
경순 감독은 끝으로 이 영화가 우리 사회 전체를 향한 질문이 될 것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많은 분이 기다리고, 반가워해 주는데 그분들이 원하던 영화가 아니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불편해하지 않을 거란 믿음은 있다. 이 영화가 한 방향으로만 ‘우리의 피해를 알아 달라. 억울하다’는 이야기만 하면 오히려 의미가 축소된다고 본다. 내란음모 조작 사건은 사건의 피해 당사자와 그 가족, 전 통합진보당 당원들만의 문제가 아닌 대한민국 전체의 문제다. 그런 차원에서 많은 이들이 함께 고민하는 영화가 됐으면 한다.”
출처 [인터뷰] 내란음모 조작사건 다룬 영화 ‘지록위마’ 만드는 경순 감독
“모두가 입을 닫는 순간 피해자들이 당한 고통을 되돌아 봐야 한다”
[민중의소리] 권종술 기자 | 발행 : 2017-08-27 08:45:07 | 수정 : 2017-08-27 08:45:07
▲ 영화 ‘지록위마’를 제작 중인 경순 감독이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양지웅 기자
지금으로부터 4년 전인 2013년 8월 28일. 국정원은 이석기 의원을 포함한 통합진보당 주요 당직자 10명의 자택과 의원실 등 18곳을 전격 압수 수색을 하고 3명을 체포했다. 국가정보원이 내민 영장엔 낯선 죄목이 보였다. 바로 ‘내란음모’였다.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을 규탄하면서 전국에서 촛불이 타오르고 있던 그때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나 만날 수 있었던 ‘내란음모’가 부활하면서 모든 언론과 방송은 ‘내란음모’ 사건으로 도배됐다. 언론들은 사실 확인은 생략한 채 국정원이 불러주는 대로 이석기 의원과 관련자들을 ‘내란범’으로 몰아붙였다.
9월 2일 한국일보가 국정원이 작성한 강연 녹취록을 공개하면서 이들은 은밀하게 전쟁을 준비한 ‘호전광’처럼 묘사됐다. 하지만 한국일보가 공개한 녹취록은 이후 재판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준비하자”를 “전쟁을 준비하자”로 조작하는 등 수백 곳 넘게 오류가 있었음이 밝혀졌다. 하지만 당시 언론들은 한국일보가 공개한 내용을 아무런 검증 없이 받아썼고, 여론을 몰아갔다.
9월 4일 국회 본회의가 열리고, 찬성 258, 반대 14로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은 가결됐다. 민주당은 물론 한때 같은 당에 있었던 정의당마저 침묵하며 동조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아직 재판은 시작도 하지 않았지만, 사건은 일주일 만에 언론과 방송 그리고, 정치권을 비롯한 많은 이들의 침묵과 동조 속에 ‘내란음모’라는 낙인이 찍혀버리고 말았다.
궁지에 몰리던 국정원과 박근혜 정권이 ‘내란음모’를 조작하며 어떻게 일순간에 부활할 수 있었던 것일까? 함께 진보 운동을 했던 이들을 포함해 많은 이들은 침묵한 것일까? 사회적인 낙인과 함께 피해자들과 피해자 가족들이 당한 고통은 또 얼마나 컸을까? 과연 무엇이 문제였고, 왜 어떻게 그렇게 된 것일까? 이런 질문들을 가지고 내란음모 조작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이가 있다. 비로 경순 감독이다. 그는 오랜 준비 기간을 거쳐 지난 7월부터 내란음모 조작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지록위마’를 만들고 있다. 경순 감독을 만나 이번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와 이번 영화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들어봤다.
“책 ‘이카로스의 감옥’을 보면서
내가 그동안 이 사건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구나하고 깨닫게 됐다.
결코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동안 이 사건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구나하고 깨닫게 됐다.
결코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영화 ‘레드 마리아 2’ 작업을 마치고 다음 영화를 기획하면서 자료 조사를 하고 있었다. 사실 내란음모 조작 사건과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은 늘 걸리는 부분이었다. 내란음모 사건 발표에 이어 끝내 통합진보당이 해산되는 걸 보면서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세상은 너무나 조용했다. 이상했다. 2014년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 당시 일본에서 촬영하고 있었다. 몇 개월 뒤 촬영에서 돌아오고 나서도 계속 망치로 머리 맞은 느낌이었다. 마음에 계속 남아 있다가 다른 영화를 준비하면서 내란음모 조작 사건을 다룬 책 ‘이카로스의 감옥’을 봤다. 그런데 저자 이름을 보니 내가 아는 ‘문영심 언니’였다.”
경순 감독은 문영심 작가의 이름을 보자마자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두 사람은 경순 감독의 영화 ‘레드 마리아 2’ 상영회에 문 작가가 함께하면서 알게 된 사이였다. “다짜고짜 ‘언니 너무 고맙다. 이런 책을 써줘서 너무 고맙다’고 했다. 그 책을 보면서 내가 그동안 이 사건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구나 하고 깨닫게 됐다. 결코,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지난 2013년 8월 29일 오전 최고위원회의 종료 후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간 가운데 국정원 직원들이 신체영장 집행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2014년 9월 4일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직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정원 직원들에 의해 강제 구인돼 수원지법으로 이송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경순 감독은 지난해 11월부터 문영심 작가가 진행한 ‘이카로스의 감옥’ 북 콘서트에 함께 따라다니며 내란음모 조작사건 피해자들도 만났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영화를 해야겠다는 마음은 더욱 커졌다고 한다. 지난 6월까지 이번 사건 재판자료를 비롯한 관련 자료를 검토하고, 탄핵 촛불 집회에서 무죄 석방 서명을 받는 피해자 가족을 비롯한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촬영을 준비하고, 지난 7월부터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됐다.
“압수 수색에선 별게 나오지 않았다.
증거가 될 만한 건 없었다.
뭔가 압수한 것처럼 쇼가 펼쳐지면서
TV로 낙인이 찍혔다”
증거가 될 만한 건 없었다.
뭔가 압수한 것처럼 쇼가 펼쳐지면서
TV로 낙인이 찍혔다”
영화는 어떤 내용을 다루게 될까? 내란음모 조작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던 2013년 8월 28일부터 국회에서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이 통과되던 9월 4일까지 그 일주일이 이야기의 중심이다.
“압수 수색 과정은 코미디였다. 압수 수색을 13군데를 같은 시간에 동시에 진행했다. 마치 버라이어티 쇼를 생중계하듯 했다. 당일 구속된 이들은 언론과 방송을 동원해 카메라로 낙인을 찍었다. 하지만 압수 수색에선 별것이 나오지 않았다. 증거가 될 만한 건 없었다. 뭔가 압수한 것처럼 쇼가 펼쳐지면서 TV로 낙인이 찍혔다. 구체적으로 무엇 때문에 이유와 설명은 없다.”
국정원이 여론재판을 시작했고, 언론과 방송은 마치 배심원이라도 된 것처럼 여론재판을 주도했다.
“과거 독재 정권에선 인혁당 사건 등을 폭력을 앞세워 조작하고, 이를 통해 공포정치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언론이 그런 폭력을 대신해준다. 군대를 동원해 총칼로 한 것이 아니라 그 역할을 언론이 했다. 그렇게 권력의 공포정치에 함께한 언론과 방송은 지금도 침묵하고 있다. 박근혜 탄핵 촛불 광장에서 경쟁하듯 나온 보도의 0.1% 정도만이라도 노력했다면 그런 보도는 안 나왔을 것이다. 이석기 의원을 애국가를 안 부르는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서 고립시킨 뒤 내란사건으로 확산시켰다. 내란 선동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 강연해달라고 해서 초청을 받아서 강연한 것뿐인데 앞에 서 있었다고 9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언론에 의해 갈기갈기 찢기고, 신상이 털렸다. 불과 1주일 만에 그렇게 됐다. 사건이 알려지고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가결되던 순간에 이 사건은 끝났다. 재판은 시작도 안 했지만 판결은 이미 끝난 거다.”
“왜 우리는 당시에 사슴이 말이라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사슴이야’라고
말할 수 없었던 것인지 질문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우리 모두의 명예가 회복된다.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 자체가 수치다”
주장하는데 ‘그것은 사슴이야’라고
말할 수 없었던 것인지 질문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우리 모두의 명예가 회복된다.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 자체가 수치다”
내란사건의 조작과 이를 통한 여론재판엔 또 다른 요소가 숨어있다.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제목이 상징하듯 그 과정엔 침묵과 동조가 있었다. 국정원이 내란음모 조작 사건을 터트리며 사슴(鹿)을 말(馬)이라고 주장하자 함께 싸웠던 진보진영조차도 사슴이 말이라는 주장을 알면서도 침묵하거나 외면하고 피해버렸다. 바로 이 부분이 이 영화의 중심 주제이기도 하다.
“이번 영화는 내란음모 조작 사건의 피해자와 그 가족뿐만이 아니라 그 사건에 침묵하고, 불편해했던 이들까지도 다룬다. 진보진영 내에서도 내란음모 조작 사건에 함께 저항하지 못하고 침묵했던 지점까지 담아 이 사건이 직접적인 피해자들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릴 생각이다. 이번 사건엔 복잡한 맥락이 있다. 같이 연대했고, 시대의 아픔을 공유한 진보진영의 사람들이 왜 당시 그런 태도를 보인 것인지 속을 들여다봐야 한다. 우리 사이에 있던 그런 문제와 환경을 국가와 국정원이 이용했다. 기획한 거다. 왜 우리는 당시에 사슴이 말이라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사슴이야’라고 말할 수 없었던 것인지 질문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우리 모두의 명예가 회복된다.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 자체가 수치다. 그런 부끄러운 일에서 한발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을 담을 것이다.”
▲ 영화 ‘지록위마’를 제작 중인 경순 감독이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양지웅 기자
사슴을 사슴이라고 말하지 못한 채 침묵하고 말이라는 주장에 동조한 대가는 엄청났다. 국정원 등 국가기관에 의한 대선 조작 사건으로 흔들리던 박근혜 정권은 내란음모 조작 사건으로 다시 살아났다.
“내란음모 조작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국정원 댓글 사건이 논란이 되고 있었다. 과거처럼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으로 정국을 돌리기 힘들다는 판단으로 내란음모 사건을 조작하고 프레임을 만든 거다. 너무 허무하고 허탈한 건 당시 많은 이들이 촛불 집회를 하며 싸우고 있었는데 그 자리에 수많은 국회의원이 함께하고 있었는데, 국정원의 공격에 그렇게 허무하게 물러날 수 있는지, 일순간에 발을 뺄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됐다. 피해자 가족 중에선 당시 압수수색을 당하기 전에 국정원 대선 개입 규탄 촛불 집회에 참석했다 오신 분도 계셨다. 당시는 세상이 바뀌려나 보다 기대가 모아졌다. 지난 탄핵 촛불보다는 작았지만, 당시 광화문을 밝힌 촛불은 큰 힘이었다. 촛불과 함께 만났던 희망이 갑자기, 불과 몇 시간 만에 내란범 가족이라는 손가락질과 함께 사라지고 만 것이다.”
집요한 공세와 여론이 이어지면서 사건의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으면서 외면한 자신들을 합리화하려는 태도까지 나타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빌미론’이다. 정권에게 탄압을 받을 수 있는 빌미를 줬기에 벌어진 일이란 것이다. 경순 감독은 “빌미를 주었다는 논리는 적반하장이다. 그런 빌미 논리가 진실인 것처럼 먹히는 이 사회가 전체적으로 병든 것 아닌가 생각됐다. 어쩌면 진보운동 하는 분들이 진보적으로 나가지 못하는 문제는 아닐까? 무엇이 진보일까? 좀 더 나은 사회의 모습이 무얼까? 생각해본다”고 말했다.
“지금도 표현의 자유가 위협받고
생각이 다르다고 매장 당하고,
공격받는 일들이 넘쳐난다.
이런 사회에 묻고 싶다.
이 영화의 질문은 ‘지금 당신의 생각이
정말 당신의 생각이 맞느냐’라는 거다”
생각이 다르다고 매장 당하고,
공격받는 일들이 넘쳐난다.
이런 사회에 묻고 싶다.
이 영화의 질문은 ‘지금 당신의 생각이
정말 당신의 생각이 맞느냐’라는 거다”
쉽게 침묵하게 하고, 그렇게 쉽게 낙인을 찍을 수 있었던 배경엔 다른 생각을 인정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풍토도 한몫했다.
“지금도 표현의 자유가 위협받고, 생각이 다르다고 매장당하고, 공격받는 일들이 넘쳐난다. 이런 사회에 묻고 싶다. 이 영화의 질문은 ‘지금 당신의 생각이 정말 당신의 생각이 맞느냐’라는 거다. 영화 ‘지록위마’를 제목으로 정하면서 생각한 건 이거다. 사회적 분위기와 강요, 여러 이유로 다양한 생각과 의견을 용납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를 향한 질문이기도 하다.”
경순 감독은 끊임없이 우리 사회를 향해 질문을 던져왔다. 연령, 성별, 빈부의 차이와 정치적인 입장을 불문하고 일거에 국민을 통합해 온 ‘애국심’과 민족을 향해 질문을 던진 영화 ‘애국자 게임’, 우리 사회의 허울 좋은 ‘가족’과 ‘가족주의’의 속내를 파헤치는 ‘쇼킹 페밀리’ 등 만만찮은 질문들이었다. 그리고 이번 영화도 그 연장선에 있다.
“그동안 국가주의 자본주의 가족주의 등 이데올로기 속에 묻힌 폭력성이 제 영화의 주제였다. 의도하지 않게 소수자 중에서도 소수자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의 이야기가 많았다. 보편적 이데올로기에서 불편해하는 주제들을 주로 다뤄왔다. 그 때문에 이런 영화를 찍을 때 많은 이들이 만류하기도 했고, 늘 외로운 작업이었다. 많은 이들이 왜 이런 논쟁적인 영화만 만드냐고 묻는다. 그럴 때면 항변하듯이 ‘난 싸우는 것 안 좋아해. 너희들이 이야기를 안 해서 내가 하는 거야’라고 한다. 이번 영화는 예전에 만든 영화에 비해선 관련된 이들이 많고 관심을 가진 이들도 있어 힘이 된다. 사실은 생각보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연루되고, 그 많은 이들이 피해자라는 걸 모르고 있었다는 게 더욱 놀라운 일이었다.”
“내란음모 조작 사건은
사건의 피해 당사자와 그 가족,
전 통합진보당 당원들만의 문제가 아닌
대한민국 전체의 문제다.
많은 이들이 함께 고민하는 영화가 됐으면 한다”
사건의 피해 당사자와 그 가족,
전 통합진보당 당원들만의 문제가 아닌
대한민국 전체의 문제다.
많은 이들이 함께 고민하는 영화가 됐으면 한다”
이런 우리 사회를 향한 질문과 함께 피해자들과 피해자 가족들의 목소리가 더해지면서 이 영화는 우리 모두를 위한 질문이 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질문은 이번 사건이 과거의 문제가 아닌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현실임을 보여준다.
“피해자 가족들이 양심수 석방을 외치면서 청와대까지 행진하고 노력을 했지만, 보도조차 안 됐다. 당시에 말도 안 되는 국정원의 주장을 받아쓴 언론은 지금은 아무런 일 없었다는 듯 침묵하고 있다. 그렇게 침묵하는 이들의 이야기도 듣고 싶다. 왜 입을 닫고 있냐고 묻고 어떤 것이 문제인가 듣고 싶다. 그런 이야기도 영화에 담고 싶다. 모두가 입을 닫는 순간 내란사건 피해자들이 말도 안 되는 고통을 당했다는 사실을 되돌아봐야 한다. 전 국민으로부터 사상검증을 당하고, 10만 당원들이 피해를 보고, 피해자들의 가족 친척 이웃이 당해야 했던 고통이 우리에게 얼마나 부끄러운 모습인지 같이 봐야 한다.”
▲ 영화 ‘지록위마’를 제작 중인 경순 감독이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양지웅 기자
영화 ‘지록위마’가 리영희재단의 우수다큐멘터리 지원 대상으로 뽑히면서 1천만 원의 지원을 받았고, 전체 제작비는 약 3억 원가량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에 촬영과 함께 제작비 마련에도 힘들 쏟고 있다. 경순 감독은 “아직은 초반 작업 중이다. 원래 작품을 만들려면 한 2~3년 정도 걸린다. 이번엔 길게 끌지 말자는 생각이 있다. 되도록 1년 안에 끝내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바쁘다. 올해 안에 촬영을 끝내고, 내년 여름까지는 완성하자는 목표다. 그러다 보니 스케줄이 빠듯하다”고 말했다.
경순 감독은 끝으로 이 영화가 우리 사회 전체를 향한 질문이 될 것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많은 분이 기다리고, 반가워해 주는데 그분들이 원하던 영화가 아니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불편해하지 않을 거란 믿음은 있다. 이 영화가 한 방향으로만 ‘우리의 피해를 알아 달라. 억울하다’는 이야기만 하면 오히려 의미가 축소된다고 본다. 내란음모 조작 사건은 사건의 피해 당사자와 그 가족, 전 통합진보당 당원들만의 문제가 아닌 대한민국 전체의 문제다. 그런 차원에서 많은 이들이 함께 고민하는 영화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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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지록위마’는 통합진보당 해산의 결정적 이유가 됐던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을 통해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를 질문해보고자 하는 영화입니다.
후원계좌 : 국민은행 543001-01-448701 지록위마 제작위원회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Jirogwima/
영화 ‘지록위마’는 통합진보당 해산의 결정적 이유가 됐던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을 통해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를 질문해보고자 하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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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인터뷰] 내란음모 조작사건 다룬 영화 ‘지록위마’ 만드는 경순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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