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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현장 적정임금제 도입 시급하다

건설현장 적정임금제 도입 시급하다
[민중의소리] 김영욱 (‘30일에 끝내는 자본론 특강’ 저자, 경기비정규직지원센터 교육실장) | 발행 : 2017-11-14 08:43:44 | 수정 : 2017-11-14 08:43:44


며칠 전, 건설노동자 교육을 다녀왔다. 노동법을 교육하면서 건설노동현장에 만연한 포괄임금제를 뒤져봤다. 포괄임금제란 연장, 심야, 휴일근로 등 제 수당을 별도로 계산하지 않고 주급 또는 월급 전체로 묶어서 지급하는 방식이다. 그러다보니 때때로 연장근로를 해도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건설노동의 특성상 앞공정과 뒷공정이 잘 맞아야 하고 공사기간, 계절적 영향에 따라 연장근로를 시도 때도 없이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건설노동자의 임금이다. 내가 2007년 내선전기공으로 일할 때에 비해 지금의 명목임금은 불과 3~4만원 밖에 오르지 않았다. 물가는 가만히 있었는가? 계속 오르는 부동산, 교육비, 자동차 기름값에 통신비까지 사실상 건설노동자의 임금은 깎인 것이나 마찬가지다.

교육 후 건설노동자에게 “임금이 왜 이렇게 제자리냐”고 물어보니 이구동성으로 불법이주노동자 때문이라고 한다. 이들을 값싸게 고용할 수 있으니 어느 건설사가 한국 노동자의 임금을 높이 책정하겠냐고, 거의 분개 수준이다.

10월말에 TV프로그램에서 구로동 인력시장을 취재한 바 있다. 대부분 중국동포를 위시한 이주노동자들이 가득 채우고 있다. 프로그램에서는 외국노동자 수급과 불법체류에 대한 단속강화를 통해 한국 건설일용노동자를 보호하자는 취지로 보도했다.

일면 불법체류 노동자에 대한 단속이 필요하겠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건설노동자에 대한 적정한 임금지급이 병행돼야 한다.


포괄임금제 부수고 적정임금제 도입을

그 사례를 미국의 프리베일링 웨이지(Prevailing wage) 제도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제도가 미국 건설현장에 도입된 것은 1931년이다. 1929년 미국의 대공황이 터지면서 이에 대한 해법으로 유효수요 창출 정책이 도입됐고, 그 일환으로 사회인프라 구축을 위한 건설, 토목산업에 국가재정이 투입했다. 뉴욕주의 퇴역군인병원을 짓는데 인건비가 싼 남부지방 앨라배마주의 건설사가 수주를 하게 됐다. 뉴욕주의 입장에선 보다 싸게 병원을 짓게 되었지만 뉴욕주의 건설노동자의 고용은 줄어드니 당연히 뉴욕주의 목수들이 들고 일어나게 되었다. 미국 의회에서 데이비스와 베이컨 두 의원이 나서서 1931년 ‘데이비스 –베이컨법’이라는 적정임금법을 만들게 되었다.

미국의 각 주마다 인건비의 기준이 다르지만 뉴욕주가 시간당 40달러를 공시하면 뉴욕에 와서 일하는 앨라배마 노동자도 똑같이 시간당 40달러를 받게 된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뉴욕의 건설사들이 다른 지역의 노동자를 쓸 이유가 없어지게 된다. 이를 한국 현실에 적용해보자. 이주노동자든 한국 노동자든 시간당 똑같은 임금을 받게 되면 상대적 저임금의 불법체류 외국노동자를 채용할 이유가 없으며 정당한 취업비자로 일하는 이주노동자의 처우도 개선된다는 말이 된다.

▲ 전국건설노동조합 토목건축 조합원들이 6월 20일 오후 서올 세종로 공원에서 상경투쟁을 하고 있다. ⓒ양지웅 기자


품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건설사의 횡포

그런데 건설사들은 공사가 최저낙찰제로 진행되니 저임금을 유지할 수밖에 없고 이렇게 하지 않으면 공사를 따낼 수 없다고 볼 멘 소리를 한다. 한 마디로 제도가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건설현장의 저임금은 최저낙찰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건설사가 공사원가에 들어간 품셈대로 주지 않기 때문이다.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

“일례로 2009년 완공된 서울~춘천 간 고속도로라고 있거든요. 물로 국토부와 한국도로공사가 발주한 공사인데, 이때 일부 구간에 대해 하청업체와 원청건설사, 또 땅 주인 간의 공사비 시비가 붙었고, 결국 소송으로 이어져 대법원 판결로 공사비 원가가 공개된 적이 있습니다. 이때 원청건설사가 정부에서 품셈에 근거해 노무비 명목으로 받아간 돈이 10억 140만 원 정도 됐는데, 하청 건설사를 통해 실제 지급된 노무비는 3억 4천만 원, 1/3 정도였습니다. 나머지 6억 6천만 원은 남았는데 정부에 반납했을까요? 비자금이 이렇게 만들어지는 겁니다.” (홍사훈 저, 우리의 월급은 정의로운가‘ 중)

한 마디로 건설사가 노동자에 지급하지 않거나, 보다 싼 비용으로 이주노동자를 고용함으로써 수익을 남겨 비자금을 조성해 블랙머니가 되는 것이다.

4대강 공사에서 건설사에 준 공사비가 무려 8조 6천억이었다. 이 금액 중 화물노동자나 토목, 건축 노동자의 인건비가 제대로 지급되었을까? 참고로 4대강 공사에서 건설사들은 낙찰금 4조4천억 원을 담합했는데 당시 현대건설, 대림건설, GS건설 등 12개 업체에 부과된 과징금은 1천453억 원에 불과했다. 건설업체에 과징금이 주어졌지만, 인건비를 떼먹은 사실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적정임금 보장에서는 원가 인건비 품셈대로 임금을 책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건비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건설사를 통제해 이 품셈대로 제대로 지급했는지 관리, 감독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러나 건설사들은 적정임금에 반대하고 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자신들이 회계장부를 정부 등 발주처에 보고해야 하니 결사반대하는 것이다. 적정임금제의 도입이 2011년과 2016년에 국회 토론회를 거치면서도 흐지부지된 것은 건설사의 완강한 거부와 국회의원, 정부 등에 대한 로비 때문이다. 건설사 왈, “우리 혼자 잘 살자는 것이 아니지 않냐?”

▲ 2015년 2월 16일 오전 서울 광화문 이순신동상 앞에서 열린 '설날 고향 못가는 체불 건설노동자 합동 차례 올리기 및 기자회견'에서 이용대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 위원장이 건설노동자들과 차례를 지내고 있다 ⓒ김철수 기자


발주가 직접 감사하는 임금지급, 위반 건설사 처벌조항 강화해야

현재 국회에는 더불어민주당 송옥주 의원 등 25명이 발의한 ‘건설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계류돼 있다. 법률안의 제안 취지에서는 “플랜트, 타워크레인 노동자의 산재사망사고의 빈발 등을 지적하며, “2000년 당시 전국적으로 3만 5천여 개였던 건설면허업체가 2013년 6만여 개로 늘어나고, 이 중 상당수가 실제 시공에 참여함 없이 다단계 하도급 계약의 중간단계에 개입해 이익을 수수하는 방식으로 영업하고 있음으로 해서, 실제 공사에 투입되어야 할 재원이 축소되어 결론적으로 산업 전반의 환경을 ‘저임금-고위험-부실시공’으로 만들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건설업에 한하여 해당 직종에 대해 지급되어야 할 임금액을 결정하고 이를 위해 직접시공비율을 늘리거나 재하도급을 자제하도록 하는 Prevailing Wage(적정임금제도)가 제시되고 있음. 나아가 미국의 경우, 적정임금제도 도입 이후 적정공사비 및 충분한 숙련인력의 확보 등이 가능해져 재해건수는 50%, 사망사고는 15%가 감소했다는 연구보고가 있음”이라고 밝히고 있다.

벌칙조항은 “제7조의3제3항을 위반하여 적정임금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지 아니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제시돼 있다. 그러나 건설사의 가장 무거운 패널티는 정부나 공공기관의 입찰을 최소 3년이상 제한해야 한다. 이 항목을 포함시켜야 한다.

적정임금제도는 건설산업분야 뿐만 아니라 1965년에 미국의 공공기관 용역업체 일자리 전체에 도입된 것처럼 공공기관 발주, 용역사업 전체에 이를 확신시켜 나가야 한다.

당시 이 법 도입을 위한 미 의회에서의 설명을 들어보자.

“의원님들 누구나 임금착취가 보편화되길 바라지 앟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비스 산업에서 임금을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것도 민간이라면 몰라도 정부 계약과 관련된 공공 산업장에서 이런 노동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어떤 변명의 여지도 없습니다.”
-찰스 도나휴, 1965년 당시 미 노동부 법무담당관 연설문 중


출처  [김영욱의 노동경제] 건설현장 적정임금제(Prevailing wage) 도입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