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부서’ 법원행정처, 어쩌다 사법부 흔드는 ‘괴물’ 됐나
[한겨레] 김양진 기자 | 등록 : 2018-02-17 15:16 | 수정 : 2018-02-17 17:16
“치밀한 대응 방안을 사전에 마련하는 것을 통해 소수 핵심 그룹의 조직적 활동이 다수 일반 판사들의 호응을 얻는 것을 차단하고, 핵심 그룹을 고립시킬 필요가 있다.”
지난달 22일 대법원 추가조사위원회가 공개한 ‘양승태 대법원’ 법원행정처에서 작성된 문건에 등장하는 문구다. 2016년 1월 양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에 비판적인 성향의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일부 판사들이 모임을 갖고 ‘사법행정체계를 수평적, 민주적 운영방식으로 바꾸자’는 등의 내용을 논의하자, 법원행정처가 마련한 대응 방안이다.
재판을 본업으로 하는 사법부지만 부수적으로 예산이나 회계, 인사 같은 행정사무 기능이 필요해 만들어진 지원부서가 법원행정처다. 하지만 실상은 3000명가량 법관 중 30여 명의 엄선된 엘리트들의 집합소로서, 대법관이 행정처의 수장을 맡는 일선 법원 위 상급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번 추가조사위 조사결과를 보면 은밀하게 법관들의 성향을 뒷조사하고 청와대의 요구를 받아 재판부 동향까지 파악하는 등 ‘빅 브러더(조직을 통제하려는 관리 권력)’의 어두운 면모까지 드러났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해 취임 직후부터 법원행정처를 포함한 대대적 사법행정 개혁을 예고했고, 최근 연이은 인사를 통해 개혁의 밑 작업을 시작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세월 법원 조직에 뿌리 깊이 자리 잡은 행정처 중심의 사법행정 운영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바뀔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어느 순간 ‘괴물’이 되어버린 법원행정처가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췄는지 짚어본다. 사법개혁의 핵심은 법관의 독립이고, 법관의 독립을 위해서는 행정처 개혁이 선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는 법원행정처가 이렇게 기형적인 모습을 갖추게 된 데에는 먼저 권한 집중 문제가 거론된다. 우리나라 사법부에서는 판사부터 각급 법원장, 대법관까지 모든 법관에 대한 인사권을 대법원장 단 한 사람이 법원행정처를 통해 행사한다. 2~4년에 한 번 시행되는 법관 전보는 물론 해외 연수나 타기관 파견 등도 대법원장이 결정한다. ‘전보’ 형식이라곤 하지만 사실상 ‘승진’으로 인식되는 고등법원 부장판사(차관급 예우) 인사 역시 대법원장이 결정한다.
대한민국 헌법(103조)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관들 간에는 누가 누구를 지시하는 위계가 없다는 의미다. 하지만 처음 판사로 임용되면 누구나 합의부 배석판사, 단독 판사, 지방법원 부장판사, 고법 부장판사, 법원장으로 이어지는 ‘계급 구조’를 밟아야 한다. 동기들에 비해 ‘승진’이 빠르거나 느릴 수 있다보니 법원장이나 대법원장 등 인사권자의 의중을 신경쓸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상당수 법관들이 “잦은 전보인사가 각급 법원의 자율성을 저해하고 사법관료화를 심화한다”고 입을 모은다. 인사권을 행사하는 법원행정처의 ‘끗발’이 센 이유다. 미국·독일·프랑스 등 대다수 선진국이 법관 전보를 극도로 제한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심지어 ‘최고 법관’인 대법관에 대한 제청권까지 대법원장 한 사람이 행사하고 있다. 대법관 후보추천위원회를 거치긴 하지만 위원회 자체가 대법원장 영향력 아래 있다. 위원 10명 중 6명을 대법원장이 위촉하기 때문이다. 서울지역 한 부장판사는 “합의부 배석판사와 부장판사보다 대법관과 대법원장의 관계가 오히려 더 종속적이다. 부장이 배석을 뽑지 않지만, 대법원장은 대법관을 직접 뽑아 이런 일이 생기는 것 같다”면서 “헌법재판소처럼 국회 등 외부기관에서 재판관을 선출하도록 해야 대법원장과 대법관이 동등한 입장에서 재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법원장 1인에게 집중된 사법부의 권한에 대한 최소한의 민주적 통제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3월 열린 ‘국제적 비교를 통한 법관인사제도의 모색’ 학술대회에서 김영훈 당시 서울고등법원 판사(현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는 “현재 대법원장은 사법부 전체를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는 법률상·사실상 권한을 가지고 있으나 이에 대한 민주적 통제장치가 거의 없다”며 “대법원장에게 권한이 집중됨으로써 법관들이 관료화된다”고 지적했다.
애초 법원행정처라는 행정조직에 재판을 하는 법관이 참여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행정조직은 성격상 상급자의 지시를 제대로 파악하고 이행·관철하는 것이 주요한 덕목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는 양심에 따라 독립된 판단을 해야 하는 법관에게는 멀리해야 할 ‘악덕’일 수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해 대법원장으로 지명된 직후 “저는 31년 5개월 동안 법정에서 당사자들과 호흡하며 재판만 해온 사람”이라고 말한 것을 두고 ‘관료화된 법관들’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양승태 대법원’의 상고법원 설치 추진 과정에서도 드러났듯이, 사법부 소속의 법원행정처 법관들이 입법부나 행정부와 긴밀하게 접촉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재판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는 “검사들보다 판사들이 접대와 로비를 훨씬 잘한다”는 평가마저 존재한다. 이번 추가조사위 조사결과만 봐도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정치개입 사건에 대한 청와대의 의중을 파악하고 이에 대한 대응 방안을 거침없이 검토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한 판사는 “법무부나 비대해진 검찰 권력에 맞서 사법부 독립을 지키려고 법원행정처의 힘을 키워온 측면이 있는데, 결국 똑같이 돼 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법원행정처는 법원 내 엘리트 판사들의 승진 코스처럼 여겨졌다. 대법관인 법원행정처장은 대법원장에 이어 사법부 ‘넘버2’로 불린다. 처장 아래 법원행정처 차장은 고등법원장급으로 대법관 ‘0순위’로 꼽히고, 행정처 심의관이나 국장은 기수 상위권으로 고등법원 부장 승진을 예약해 놓은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실제로 역대 법원행정처 차장 중 열의 여덟 정도가 대법관이나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 영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승진을 위해 법원행정처 근무를 선호하게 되고, 일단 법원행정처에 발을 들이면 인사권자인 대법원장의 눈에 들도록 애쓰면서 승진하는 구조가 굳어졌다는 분석이다.
법원행정처 1대 한성수 차장부터 현직인 김창보 차장까지 34명의 진로를 분석해 보면, 대법관이나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 ‘승진’한 경우는 27명(대법관 23명)으로 나타났다. 또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차장 출신 대법원장이 3명이고, 행정부로 적을 바꿔 국무총리까지 지낸 차장도 2명(김석수·김황식)이다.
우리나라와 제도가 비슷한 일본만 해도 법원행정처장에 해당하는 사무총장을 최고재판소 재판관(우리나라의 대법관)이 아닌 법원장급 법관이 맡고 있다. 이런 점 등을 고려해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에는 법원조직법 개정을 통해 사법행정조직과 재판조직을 분리하기 위해 법원행정처장에 장관급 정무직 공무원(17대 장윤기)을 임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2년 만에 국회 요구로 “법원행정처장이 대법관 회의에서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해야 한다”며 다시 대법관이 법원행정처장을 맡도록 했다. 당시 국회를 상대로 한 법원의 집요한 설득이 있었고, 개별 국회의원들은 법원에 한없이 ‘약했다’.
1·2공화국 때만 해도 법원행정처장을 법원장급이 맡았다. 또 대법관은 대법원장·대법관·각 고등법원장으로 구성된 법관회의에서 제청했다. 판사도 당시엔 대법원장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했다. 현재와 비교해보면 오히려 권한이 분산돼 있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법원행정처 역사는 군사독재가 시작되면서 상당 기간 오욕으로 얼룩져 있다.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이 사법부를 통제하기 시작하면서 법관회의 관련 조항은 아예 삭제됐다. 법원행정처 처장에는 현역 육군대령(4대 전우영)이 임명되는 대혼란을 겪기도 한다. 심지어 법원 복도에 테이프를 붙여 판사들을 좌측으로 통행하도록 하고, 대법원장에게 지시를 내려 ‘혁명정신’에 맞는 재판을 할 것을 강요했다. 당시 전우영 처장은 원스타(준장)로 진급한 뒤 7년간 처장직을 지켰다. 박정희 정권은 이후 법원행정처장 직위를 장관급으로 높였고, 사법부 통제를 강화했다.
군인 출신 다음으로는 검사 출신들(5대 김병화, 6대 서일교)이 법원행정처장으로 장기집권했다. 이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섰고 법원행정처장은 장관급을 넘어 대법관급으로 또 한번 격상됐다. 현직 대법관 중 1명이 법원행정처장을 겸임하는 제도는 이때 탄생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1980∼90년대 법원행정처장은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권을 지내면서 대법원장(7대 김용철, 12대 최종영)이나 대법원장 직무대리(8대 이정우, 9대 최재호), 법무부 장관(8대 이정우, 10대 안우만) 등으로 중용되는 등 그 위세가 하늘을 찔렀다.
추가조사위의 조사로 원세훈 전 국정원장 재판을 둘러싼 ‘재판부 사찰’과 ‘청와대 뒷거래’ 의혹이 불거진 뒤 법관들 사이에선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다”는 무거운 한숨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 24일 김 대법원장은 법원 가족들에게 보내는 입장문에서 “어떤 변명으로도 정당화되기 어려운 이번 일은 우리 사법부 구성원 모두의 자부심을 무너뜨리고 있다”며 “참담한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고등법원 부장 승진제도를 폐지하는 등 사법부 개혁에 시동을 걸고 있는 그는 취임사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대법원장의 권한 행사는 한 사람의 고뇌에 찬 결단이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과 사법부 구성원의 의사가 반영되는 투명하고 민주적인 절차와 방식에 의하여야 합니다. 대법원장이 사법부의 정점에 홀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늘 구성원들과 어울려 함께 소통하는 모습에서부터 사법부의 새로운 변화는 시작될 것입니다”
김 대법원장의 사법부 개혁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지켜볼 일이다.
출처 ‘지원부서’ 법원행정처, 어쩌다 사법부 흔드는 ‘괴물’ 됐나
[한겨레] 김양진 기자 | 등록 : 2018-02-17 15:16 | 수정 : 2018-02-17 17:16
“치밀한 대응 방안을 사전에 마련하는 것을 통해 소수 핵심 그룹의 조직적 활동이 다수 일반 판사들의 호응을 얻는 것을 차단하고, 핵심 그룹을 고립시킬 필요가 있다.”
지난달 22일 대법원 추가조사위원회가 공개한 ‘양승태 대법원’ 법원행정처에서 작성된 문건에 등장하는 문구다. 2016년 1월 양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에 비판적인 성향의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일부 판사들이 모임을 갖고 ‘사법행정체계를 수평적, 민주적 운영방식으로 바꾸자’는 등의 내용을 논의하자, 법원행정처가 마련한 대응 방안이다.
재판을 본업으로 하는 사법부지만 부수적으로 예산이나 회계, 인사 같은 행정사무 기능이 필요해 만들어진 지원부서가 법원행정처다. 하지만 실상은 3000명가량 법관 중 30여 명의 엄선된 엘리트들의 집합소로서, 대법관이 행정처의 수장을 맡는 일선 법원 위 상급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번 추가조사위 조사결과를 보면 은밀하게 법관들의 성향을 뒷조사하고 청와대의 요구를 받아 재판부 동향까지 파악하는 등 ‘빅 브러더(조직을 통제하려는 관리 권력)’의 어두운 면모까지 드러났다.
▲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해 9월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퇴임식을 마치고 직원들에게 인사하며 차에 오르고 있다. 그는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추가조사를 끝내 거부했지만, 후임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뒤 이뤄진 추가조사에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 재판에 대한 동향 문건과 법관 사찰 정황 문건 등이 일부 드러나면서 검찰에 고발당하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그는 현재 스페인 여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소영 기자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해 취임 직후부터 법원행정처를 포함한 대대적 사법행정 개혁을 예고했고, 최근 연이은 인사를 통해 개혁의 밑 작업을 시작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세월 법원 조직에 뿌리 깊이 자리 잡은 행정처 중심의 사법행정 운영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바뀔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어느 순간 ‘괴물’이 되어버린 법원행정처가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췄는지 짚어본다. 사법개혁의 핵심은 법관의 독립이고, 법관의 독립을 위해서는 행정처 개혁이 선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판사 임명은 물론 대법관 제청권까지 대법원장 1인에 집중
법조계에서는 법원행정처가 이렇게 기형적인 모습을 갖추게 된 데에는 먼저 권한 집중 문제가 거론된다. 우리나라 사법부에서는 판사부터 각급 법원장, 대법관까지 모든 법관에 대한 인사권을 대법원장 단 한 사람이 법원행정처를 통해 행사한다. 2~4년에 한 번 시행되는 법관 전보는 물론 해외 연수나 타기관 파견 등도 대법원장이 결정한다. ‘전보’ 형식이라곤 하지만 사실상 ‘승진’으로 인식되는 고등법원 부장판사(차관급 예우) 인사 역시 대법원장이 결정한다.
대한민국 헌법(103조)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관들 간에는 누가 누구를 지시하는 위계가 없다는 의미다. 하지만 처음 판사로 임용되면 누구나 합의부 배석판사, 단독 판사, 지방법원 부장판사, 고법 부장판사, 법원장으로 이어지는 ‘계급 구조’를 밟아야 한다. 동기들에 비해 ‘승진’이 빠르거나 느릴 수 있다보니 법원장이나 대법원장 등 인사권자의 의중을 신경쓸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상당수 법관들이 “잦은 전보인사가 각급 법원의 자율성을 저해하고 사법관료화를 심화한다”고 입을 모은다. 인사권을 행사하는 법원행정처의 ‘끗발’이 센 이유다. 미국·독일·프랑스 등 대다수 선진국이 법관 전보를 극도로 제한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심지어 ‘최고 법관’인 대법관에 대한 제청권까지 대법원장 한 사람이 행사하고 있다. 대법관 후보추천위원회를 거치긴 하지만 위원회 자체가 대법원장 영향력 아래 있다. 위원 10명 중 6명을 대법원장이 위촉하기 때문이다. 서울지역 한 부장판사는 “합의부 배석판사와 부장판사보다 대법관과 대법원장의 관계가 오히려 더 종속적이다. 부장이 배석을 뽑지 않지만, 대법원장은 대법관을 직접 뽑아 이런 일이 생기는 것 같다”면서 “헌법재판소처럼 국회 등 외부기관에서 재판관을 선출하도록 해야 대법원장과 대법관이 동등한 입장에서 재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법원장에게 권한 집중돼 법관들 관료화”
대법원장 1인에게 집중된 사법부의 권한에 대한 최소한의 민주적 통제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3월 열린 ‘국제적 비교를 통한 법관인사제도의 모색’ 학술대회에서 김영훈 당시 서울고등법원 판사(현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는 “현재 대법원장은 사법부 전체를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는 법률상·사실상 권한을 가지고 있으나 이에 대한 민주적 통제장치가 거의 없다”며 “대법원장에게 권한이 집중됨으로써 법관들이 관료화된다”고 지적했다.
애초 법원행정처라는 행정조직에 재판을 하는 법관이 참여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행정조직은 성격상 상급자의 지시를 제대로 파악하고 이행·관철하는 것이 주요한 덕목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는 양심에 따라 독립된 판단을 해야 하는 법관에게는 멀리해야 할 ‘악덕’일 수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해 대법원장으로 지명된 직후 “저는 31년 5개월 동안 법정에서 당사자들과 호흡하며 재판만 해온 사람”이라고 말한 것을 두고 ‘관료화된 법관들’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 지난해 8월 대법원장으로 지명된 김명수 대법원장이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을 만나러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 도착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 대법원장은 당시 강원 춘천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에 와 지하철로 이동했다. 김정효 기자
‘양승태 대법원’의 상고법원 설치 추진 과정에서도 드러났듯이, 사법부 소속의 법원행정처 법관들이 입법부나 행정부와 긴밀하게 접촉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재판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는 “검사들보다 판사들이 접대와 로비를 훨씬 잘한다”는 평가마저 존재한다. 이번 추가조사위 조사결과만 봐도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정치개입 사건에 대한 청와대의 의중을 파악하고 이에 대한 대응 방안을 거침없이 검토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한 판사는 “법무부나 비대해진 검찰 권력에 맞서 사법부 독립을 지키려고 법원행정처의 힘을 키워온 측면이 있는데, 결국 똑같이 돼 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고 말했다.
“법원행정처장은 사법부 넘버2, 차장은 대법관 0순위”
사정이 이렇다보니 법원행정처는 법원 내 엘리트 판사들의 승진 코스처럼 여겨졌다. 대법관인 법원행정처장은 대법원장에 이어 사법부 ‘넘버2’로 불린다. 처장 아래 법원행정처 차장은 고등법원장급으로 대법관 ‘0순위’로 꼽히고, 행정처 심의관이나 국장은 기수 상위권으로 고등법원 부장 승진을 예약해 놓은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실제로 역대 법원행정처 차장 중 열의 여덟 정도가 대법관이나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 영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승진을 위해 법원행정처 근무를 선호하게 되고, 일단 법원행정처에 발을 들이면 인사권자인 대법원장의 눈에 들도록 애쓰면서 승진하는 구조가 굳어졌다는 분석이다.
법원행정처 1대 한성수 차장부터 현직인 김창보 차장까지 34명의 진로를 분석해 보면, 대법관이나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 ‘승진’한 경우는 27명(대법관 23명)으로 나타났다. 또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차장 출신 대법원장이 3명이고, 행정부로 적을 바꿔 국무총리까지 지낸 차장도 2명(김석수·김황식)이다.
우리나라와 제도가 비슷한 일본만 해도 법원행정처장에 해당하는 사무총장을 최고재판소 재판관(우리나라의 대법관)이 아닌 법원장급 법관이 맡고 있다. 이런 점 등을 고려해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에는 법원조직법 개정을 통해 사법행정조직과 재판조직을 분리하기 위해 법원행정처장에 장관급 정무직 공무원(17대 장윤기)을 임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2년 만에 국회 요구로 “법원행정처장이 대법관 회의에서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해야 한다”며 다시 대법관이 법원행정처장을 맡도록 했다. 당시 국회를 상대로 한 법원의 집요한 설득이 있었고, 개별 국회의원들은 법원에 한없이 ‘약했다’.
박정희 정권 때는 현역 육군 대령이 법원행정처장 맡기도
1·2공화국 때만 해도 법원행정처장을 법원장급이 맡았다. 또 대법관은 대법원장·대법관·각 고등법원장으로 구성된 법관회의에서 제청했다. 판사도 당시엔 대법원장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했다. 현재와 비교해보면 오히려 권한이 분산돼 있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법원행정처 역사는 군사독재가 시작되면서 상당 기간 오욕으로 얼룩져 있다.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이 사법부를 통제하기 시작하면서 법관회의 관련 조항은 아예 삭제됐다. 법원행정처 처장에는 현역 육군대령(4대 전우영)이 임명되는 대혼란을 겪기도 한다. 심지어 법원 복도에 테이프를 붙여 판사들을 좌측으로 통행하도록 하고, 대법원장에게 지시를 내려 ‘혁명정신’에 맞는 재판을 할 것을 강요했다. 당시 전우영 처장은 원스타(준장)로 진급한 뒤 7년간 처장직을 지켰다. 박정희 정권은 이후 법원행정처장 직위를 장관급으로 높였고, 사법부 통제를 강화했다.
군인 출신 다음으로는 검사 출신들(5대 김병화, 6대 서일교)이 법원행정처장으로 장기집권했다. 이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섰고 법원행정처장은 장관급을 넘어 대법관급으로 또 한번 격상됐다. 현직 대법관 중 1명이 법원행정처장을 겸임하는 제도는 이때 탄생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1980∼90년대 법원행정처장은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권을 지내면서 대법원장(7대 김용철, 12대 최종영)이나 대법원장 직무대리(8대 이정우, 9대 최재호), 법무부 장관(8대 이정우, 10대 안우만) 등으로 중용되는 등 그 위세가 하늘을 찔렀다.
추가조사위의 조사로 원세훈 전 국정원장 재판을 둘러싼 ‘재판부 사찰’과 ‘청와대 뒷거래’ 의혹이 불거진 뒤 법관들 사이에선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다”는 무거운 한숨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 24일 김 대법원장은 법원 가족들에게 보내는 입장문에서 “어떤 변명으로도 정당화되기 어려운 이번 일은 우리 사법부 구성원 모두의 자부심을 무너뜨리고 있다”며 “참담한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고등법원 부장 승진제도를 폐지하는 등 사법부 개혁에 시동을 걸고 있는 그는 취임사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대법원장의 권한 행사는 한 사람의 고뇌에 찬 결단이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과 사법부 구성원의 의사가 반영되는 투명하고 민주적인 절차와 방식에 의하여야 합니다. 대법원장이 사법부의 정점에 홀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늘 구성원들과 어울려 함께 소통하는 모습에서부터 사법부의 새로운 변화는 시작될 것입니다”
김 대법원장의 사법부 개혁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지켜볼 일이다.
▲ 법원행정처에서 작성한 ‘원○○ 전 국정원장 판결 선고 관련 각계 동향’ 문건
출처 ‘지원부서’ 법원행정처, 어쩌다 사법부 흔드는 ‘괴물’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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