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다스 거짓말’에 10년간 맞장구쳐온 검찰
진실 은폐한 MB, 눈 감은 검찰
2007년 경선때 도곡동 땅 논란
검찰 ‘MB 것’ 파악하고도
“제3자 것으로 보인다”고만 발표
MB캠프 “정치공작” 격한 반발
미래권력에 고개 숙인 검찰
다스·BBK 등 모두 무혐의 처리
2008년 특검 재수사도 면죄부
10년 걸려 ‘다스는 MB것’ 드러나
[한겨레] 김태규 기자 | 등록 : 2018-03-23 21:16 | 수정 : 2018-03-23 21:29
“그 땅이 제 것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돈이 나한테 한 푼도 안 왔습니다.”
2007년 7월 19일 서울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검증청문회에서 이명박 후보는 이렇게 주장했다. 다스와 도곡동 땅은 자신의 재산이 아니라고 그는 누누이 말했고 2007년 대선 직전 검찰은 그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이명박이 구속된 2018년 3월, 검찰은 “다스는 MB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검찰이 ‘이명박의 거짓’을 벗겨냈다고 주장하겠지만, 그의 부패한 단면을 발견하고도 눈감아버려 그의 거짓말을 키워온 것도 검찰이다.
2007년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에는 이명박과 박근혜라는 유력 대선주자 두 명이 있었다. 대선후보를 결정해야 하는 경선이 다가올수록 두 사람은 서로 치부를 들춰내며 격하게 부딪쳤다. 상호 검증 의혹은 수사로 이어졌고 도덕적으로 결함투성이였던 이 후보에게 검찰 수사는 ‘위험 요소’였다.
경선을 일주일 앞둔 그해 8월 13일, 검찰은 “이 후보의 큰형 이상은 씨가 갖고 있던 도곡동 땅의 지분은 이씨가 아닌 제3자의 것으로 보인다”는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이명박 은닉재산의 ‘핵’인 이 땅은 1985년 이상은·김재정 씨 명의로 매입됐고 1995년 포스코개발에 매입가의 17배인 263억 원에 팔렸다. 2개월 뒤 매입대금의 일부가 이상은·김재정 씨 명의 회사인 다스로 유입되고 2000년에는 다스가 비비케이(BBK)에 190억 원이라는 거액을 투자한다. 도곡동→다스→비비케이로 연결되는 자금 흐름이 형성된 것이다.
다스나 도곡동 땅 어느 쪽에서든 진짜 주인의 흔적이 드러나면 “내게는 한 푼도 안 왔다”는 이 후보 주장이 신빙성을 잃는 상황이었다. 당시 “도곡동 땅이 제3자의 것으로 보인다”는 발표에 대해 대검 관계자는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을 앞둔 시점에서 그 땅이 이 후보 것이라고 검찰이 발표할 수 있었겠냐. 일종의 (후보로서의) 예우를 해준 거다. 그 정도 얘기를 했으면 언론에서 알아서 판단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도곡동 땅은 MB 것’이라는 얘기였다.
검찰로부터 불의의 일격을 당한 이명박 캠프는 “경선에 개입하려는 정치공작의 의도가 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며 격하게 반발했다. 검찰의 ‘중간수사 발표’가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을 불과 일주일 앞둔 시점에 갑자기 감행됐기 때문이다. 당시 검찰 최고위급 간부는 “(검찰의 중간수사 발표는) 어렵고 복잡한 BBK 건 파지 말고 쉽고 간단한 도곡동 땅에 집중하라는 힌트였는데 여당에서 그걸 못 알아먹더라”고 했다. 검찰의 갑작스러운 ‘중간수사 발표’는 흠집투성이인 이명박 후보를 타격해 당대 권력인 여권에 성의를 표시하고, 동시에 야권에도 ‘티케이(TK) 보수 적자’인 박근혜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전략적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대세 이명박’은 2007년 8월 20일 경선에서 승리했다. 여당의 지지율이 바닥인 상태라 한나라당 후보가 된 그는 대통령 당선의 8부 능선을 넘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2007년 11월 16일 이명박 후보의 동업자였던 김경준 씨가 미국에서 송환돼 BBK 주가조작 수사에 속도가 붙었지만, 대통령이 거의 다 된 이 후보에게는 거칠 것이 없었다. 검찰은 17대 대선을 2주일 앞둔 2007년 12월 5일, 이 후보의 BBK 주가조작 연루, 다스와 도곡동 땅 차명소유 의혹을 모조리 무혐의 처분했다.
4개월 전 도곡동 땅이 ‘이명박 소유’라고 사실상 밝혀놓고 이번엔 도곡동 땅과 한 묶음인 다스에 대해 검찰은 수사발표문에서 “이 후보의 소유라는 ‘뚜렷한’ 증거가 없다”고 눙쳤다. 8월 수사 결과와 모순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주임검사였던 최재경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은 “상당한 의심을 가지고 열심히 수사했다. 의심스럽지 않다는 게 아니고 증거가 안 나온다”고 답했다. “뚜렷한 증거가 없다”는 수사발표에서 ‘뚜렷한’의 의미가 뭐냐고 묻자 김홍일 3차장검사는 “그러면 ‘증거가 없다’로 수정하겠다. 통상적인 수식어”라고 답했다. 검찰의 ‘현명한’ 판단에 이명박 후보는 “늦었지만, 진실이 밝혀져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며 기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도곡동 땅과 다스의 실제 소유자를 밝혀내지 못했고 △이 후보와 이상은 씨를 직접 조사하지도 않는 등 수사가 미진한 상태에서 서둘러 종결했다는 내용을 담은 장문의 의견서를 내고 전면적인 재수사를 촉구했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로 ‘깨끗한 후보’가 된 이명박은 48.7%를 득표하며 대한민국 17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2008년 초 특검이 구성돼 다시 한번 수사를 벌였지만 이번엔 검찰이 ‘제3자의 것’이라고 판단했던 도곡동 땅마저 “이상은 씨 것이 맞다”고 결론 내렸다. 특검 수사를 거치면서 의혹이 해소되기는커녕 되레 ‘이명박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식으로 수사 결과가 개악된 셈이었다.
검찰과 특검 수사에 대비해 이명박 후보와 측근들은 거짓을 꽁꽁 감추려 바삐 움직였다. 이 후보와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이상은·김재정 씨, 김성우 전 다스 사장 등이 여러 차례 대책회의를 열었다. 측근들은 검사 역할을 한 변호사들의 추궁에 “다스는 이명박 것이 아니다”라고 진술하는 리허설을 마친 뒤에야 검찰과 특검에 출석했다. 경북 경주에 있는 다스 직원들은 관련 서류를 태우거나 폐기했다.
이명박의 거짓말만으로 진실 은폐가 완성된 건 아니다. 당시 검찰은 “수사를 할 만큼 했다”고 주장했지만 2007년 8월 경선에서 승리해 사실상 대통령이나 다름없는 이명박 후보 앞에서 멈칫거렸다.
민변이 지적한 대로 이 후보는 물론 이상은 씨도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이유로 직접 조사하지 않았고 1990년대 초반부터 10여 년 동안 350억 원대 비자금 창고였던 다스 압수수색을 건너뛰었다.
검찰이 권력의 향방을 민감하게 읽고 ‘미래 권력’ 이명박에게 고개를 숙인 셈이다. 2018년의 검찰은 “이명박의 범죄가 (대통령 선거에서) 역사를 바꿨다”고 힐난하고 있지만 10년 전 왜곡된 역사를 쓴 건 검찰 자신이었다.
출처 MB ‘다스 거짓말’에 10년간 맞장구쳐온 검찰
진실 은폐한 MB, 눈 감은 검찰
2007년 경선때 도곡동 땅 논란
검찰 ‘MB 것’ 파악하고도
“제3자 것으로 보인다”고만 발표
MB캠프 “정치공작” 격한 반발
미래권력에 고개 숙인 검찰
다스·BBK 등 모두 무혐의 처리
2008년 특검 재수사도 면죄부
10년 걸려 ‘다스는 MB것’ 드러나
[한겨레] 김태규 기자 | 등록 : 2018-03-23 21:16 | 수정 : 2018-03-23 21:29
“그 땅이 제 것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돈이 나한테 한 푼도 안 왔습니다.”
2007년 7월 19일 서울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검증청문회에서 이명박 후보는 이렇게 주장했다. 다스와 도곡동 땅은 자신의 재산이 아니라고 그는 누누이 말했고 2007년 대선 직전 검찰은 그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이명박이 구속된 2018년 3월, 검찰은 “다스는 MB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검찰이 ‘이명박의 거짓’을 벗겨냈다고 주장하겠지만, 그의 부패한 단면을 발견하고도 눈감아버려 그의 거짓말을 키워온 것도 검찰이다.
“도곡동 땅은 제3자의 것” 일격
2007년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에는 이명박과 박근혜라는 유력 대선주자 두 명이 있었다. 대선후보를 결정해야 하는 경선이 다가올수록 두 사람은 서로 치부를 들춰내며 격하게 부딪쳤다. 상호 검증 의혹은 수사로 이어졌고 도덕적으로 결함투성이였던 이 후보에게 검찰 수사는 ‘위험 요소’였다.
경선을 일주일 앞둔 그해 8월 13일, 검찰은 “이 후보의 큰형 이상은 씨가 갖고 있던 도곡동 땅의 지분은 이씨가 아닌 제3자의 것으로 보인다”는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이명박 은닉재산의 ‘핵’인 이 땅은 1985년 이상은·김재정 씨 명의로 매입됐고 1995년 포스코개발에 매입가의 17배인 263억 원에 팔렸다. 2개월 뒤 매입대금의 일부가 이상은·김재정 씨 명의 회사인 다스로 유입되고 2000년에는 다스가 비비케이(BBK)에 190억 원이라는 거액을 투자한다. 도곡동→다스→비비케이로 연결되는 자금 흐름이 형성된 것이다.
다스나 도곡동 땅 어느 쪽에서든 진짜 주인의 흔적이 드러나면 “내게는 한 푼도 안 왔다”는 이 후보 주장이 신빙성을 잃는 상황이었다. 당시 “도곡동 땅이 제3자의 것으로 보인다”는 발표에 대해 대검 관계자는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을 앞둔 시점에서 그 땅이 이 후보 것이라고 검찰이 발표할 수 있었겠냐. 일종의 (후보로서의) 예우를 해준 거다. 그 정도 얘기를 했으면 언론에서 알아서 판단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도곡동 땅은 MB 것’이라는 얘기였다.
검찰로부터 불의의 일격을 당한 이명박 캠프는 “경선에 개입하려는 정치공작의 의도가 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며 격하게 반발했다. 검찰의 ‘중간수사 발표’가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을 불과 일주일 앞둔 시점에 갑자기 감행됐기 때문이다. 당시 검찰 최고위급 간부는 “(검찰의 중간수사 발표는) 어렵고 복잡한 BBK 건 파지 말고 쉽고 간단한 도곡동 땅에 집중하라는 힌트였는데 여당에서 그걸 못 알아먹더라”고 했다. 검찰의 갑작스러운 ‘중간수사 발표’는 흠집투성이인 이명박 후보를 타격해 당대 권력인 여권에 성의를 표시하고, 동시에 야권에도 ‘티케이(TK) 보수 적자’인 박근혜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전략적 성격이 강했다.
“다스가 이명박 것이라는 증거 없다”로 표변
그러나 ‘대세 이명박’은 2007년 8월 20일 경선에서 승리했다. 여당의 지지율이 바닥인 상태라 한나라당 후보가 된 그는 대통령 당선의 8부 능선을 넘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2007년 11월 16일 이명박 후보의 동업자였던 김경준 씨가 미국에서 송환돼 BBK 주가조작 수사에 속도가 붙었지만, 대통령이 거의 다 된 이 후보에게는 거칠 것이 없었다. 검찰은 17대 대선을 2주일 앞둔 2007년 12월 5일, 이 후보의 BBK 주가조작 연루, 다스와 도곡동 땅 차명소유 의혹을 모조리 무혐의 처분했다.
4개월 전 도곡동 땅이 ‘이명박 소유’라고 사실상 밝혀놓고 이번엔 도곡동 땅과 한 묶음인 다스에 대해 검찰은 수사발표문에서 “이 후보의 소유라는 ‘뚜렷한’ 증거가 없다”고 눙쳤다. 8월 수사 결과와 모순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주임검사였던 최재경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은 “상당한 의심을 가지고 열심히 수사했다. 의심스럽지 않다는 게 아니고 증거가 안 나온다”고 답했다. “뚜렷한 증거가 없다”는 수사발표에서 ‘뚜렷한’의 의미가 뭐냐고 묻자 김홍일 3차장검사는 “그러면 ‘증거가 없다’로 수정하겠다. 통상적인 수식어”라고 답했다. 검찰의 ‘현명한’ 판단에 이명박 후보는 “늦었지만, 진실이 밝혀져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며 기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도곡동 땅과 다스의 실제 소유자를 밝혀내지 못했고 △이 후보와 이상은 씨를 직접 조사하지도 않는 등 수사가 미진한 상태에서 서둘러 종결했다는 내용을 담은 장문의 의견서를 내고 전면적인 재수사를 촉구했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로 ‘깨끗한 후보’가 된 이명박은 48.7%를 득표하며 대한민국 17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상은씨 것이 맞다” 쐐기
2008년 초 특검이 구성돼 다시 한번 수사를 벌였지만 이번엔 검찰이 ‘제3자의 것’이라고 판단했던 도곡동 땅마저 “이상은 씨 것이 맞다”고 결론 내렸다. 특검 수사를 거치면서 의혹이 해소되기는커녕 되레 ‘이명박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식으로 수사 결과가 개악된 셈이었다.
검찰과 특검 수사에 대비해 이명박 후보와 측근들은 거짓을 꽁꽁 감추려 바삐 움직였다. 이 후보와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이상은·김재정 씨, 김성우 전 다스 사장 등이 여러 차례 대책회의를 열었다. 측근들은 검사 역할을 한 변호사들의 추궁에 “다스는 이명박 것이 아니다”라고 진술하는 리허설을 마친 뒤에야 검찰과 특검에 출석했다. 경북 경주에 있는 다스 직원들은 관련 서류를 태우거나 폐기했다.
이명박의 거짓말만으로 진실 은폐가 완성된 건 아니다. 당시 검찰은 “수사를 할 만큼 했다”고 주장했지만 2007년 8월 경선에서 승리해 사실상 대통령이나 다름없는 이명박 후보 앞에서 멈칫거렸다.
민변이 지적한 대로 이 후보는 물론 이상은 씨도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이유로 직접 조사하지 않았고 1990년대 초반부터 10여 년 동안 350억 원대 비자금 창고였던 다스 압수수색을 건너뛰었다.
검찰이 권력의 향방을 민감하게 읽고 ‘미래 권력’ 이명박에게 고개를 숙인 셈이다. 2018년의 검찰은 “이명박의 범죄가 (대통령 선거에서) 역사를 바꿨다”고 힐난하고 있지만 10년 전 왜곡된 역사를 쓴 건 검찰 자신이었다.
출처 MB ‘다스 거짓말’에 10년간 맞장구쳐온 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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