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가 밝힌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또 다른 진실
‘끝까지 판다’에게 축복을!
[민중의소리] 이완배 기자 | 발행 : 2018-03-25 08:45:59 | 수정 : 2018-03-25 08:45:59
지난주를 가장 뜨겁게 달군 뉴스 중 하나는 SBS 탐사보도팀이 며칠 동안 쏟아 부은 제일모직(에버랜드)의 용인 땅값 관련 보도였다. 이 보도는 여러 면에서 매우 놀라웠는데 첫째, 하루 평균 일곱 꼭지에 해당하는 방대한 양이 뉴스가 우선 충격적이었다.
둘째, 한국 주류 언론에게 성역과도 같았던 삼성 관련 보도를 연이어 터뜨리는 SBS의 끈질김도 놀라웠다. 셋째,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찜찜하게 생각했던 바로 그 대목을 정확하게 짚어낸 통찰력 또한 놀라웠다. SBS의 보도로 우리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짓이었는지에 대한 마지막 퍼즐을 맞출 수 있었다.
그래서 “3세 승계의 실체가 없었다”며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을 풀어준 2심 재판부의 엉터리 판결은 대법원에서 반드시 뒤집어져야 한다. SBS의 보도를 바탕으로 합병을 전후해 폭등했던 용인 땅값이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를 되짚어 보자.
SBS의 보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만 먼저 짚어보자.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왜 추진됐는지와 합병이라는 것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두 가지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하기 전까지 이재용은 사실상 삼성그룹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었다. 물론 오만 편법이 다 동원된 결과였다. 하지만 그렇게 하고도 이재용에게 남은 과제가 있었다. 이재용이 삼성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를 지배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를 제대로 지배하기 위해서는 주식을 사야 하는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삼성전자 주식 1%만 사려고 해도 3조 원이 든다. 이재용의 재산이 고작(!) 9조 원이나 전 재산을 탈탈 털어도 그가 살 수 있는 삼성전자 지분은 3%밖에 안 된다. 이재용의 삼성전자 지분은 0.65%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주변을 돌아보니 삼성물산이라는 회사가 나타났다. 이 회사가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삼성전자 지분을 4.6%나 들고 있었다. 이재용 입장에서 저 4.6%가 얼마나 탐이 났겠나? 이 지분 가치만 13조 원이 넘는다. 이때 등장한 아이디어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합병하는 것이었다.
제일모직은 당시 명실상부한 이재용의 회사(이재용 지분이 24%)였다. 삼성물산을 제일모직과 합칠 수만 있다면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 4.6%는 제일모직으로 귀속된다. 제일모직의 주인이었던 이재용은 삼성전자 4.6%의 실질적인 지배자가 된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삼성전자 주식 4.6%를 이재용이 땡전 한 푼 안내고 삼키기’ 쯤 된다.
다음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 일반적인 합병의 절차다. 예를 들어 A라는 회사와 B라는 회사가 합병을 하려 한다. A는 500만 원짜리 기계를 갖고 있고 B는 500만 원 짜리 사무실을 갖고 있다. 이 상태에서 합병을 하면 합병 회사의 주인은 누구일까?
당연히 500만 원 씩 냈으니 A와 B가 50%의 지분을 나눠 갖는 공동 최대주주가 돼야 한다. 그런데 A가 대장이고 B가 부하라면 이들은 이런 장난을 친다. A가 B에게 말한다. “어이, 부하! 내가 합병회사의 실질적 주인이 되고 싶거든? 그러니까 내 500만 원짜리 기계를 900만 원으로 계산하고, 너의 500만 원짜리 사무실은 100만 원으로 계산하자.”
상식적으로라면 절대 이뤄질 수 없는 합병이지만 B가 A의 부하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B는 “주인님, 당연히 그러셔야죠”라며 자기가 낸 사무실의 가치를 100만 원으로 깎고, 주인이 낸 기계의 가치를 900만 원으로 올려준다. 그 결과 합병 이후 회사의 주인은 90%의 지분을 가진 A가 된다.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이 이와 같았다. 부하 격인 삼성물산은 합병을 하면서 “우리 회사가 얼마나 후졌는지 몰라요”라며 자기 회사 가치를 깎아내기 바빴다. 500만 원짜리 사무실을 스스로 100만 원짜리라고 우긴 것이다.
이는 이미 사법부의 판결로 드러난 것이다. 2016년 5월 서울고법은 “삼성물산이 주가를 조작한 의심이 든다”고 판결했다. 자기 회사 가치를 깎으려고 주가를 인위적으로 하락시켰다는 이야기다. 당시 재판부 판결이 이렇다.
“제일모직 주가가 높게, 삼성물산 주가가 낮게 형성돼야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지배 주주 일가에게 이익이 되는 상황에서 삼성물산이 건설 수주에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나서는 등 주가를 의도적으로 낮췄다고 의심하는 데 합리적 이유가 있다.”
자기 회사 가치를 깎으려고 삼성물산(당시 삼성물산은 건설과 무역 두 분야로 이뤄진 회사였다)이 건설 수주도 일부로 안 했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이렇게 삼성물산이 자기의 가치를 깎고 깎은 덕에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비율은 3대 1로 결정이 됐다.
제일모직의 가치가 삼성물산의 세 배였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합병을 하니 제일모직 지분 24%를 가졌던 이재용은 합병 이후에도 18%의 주식을 보유한 최대 주주로 남을 수 있었다.
나중에 밝혀진 일이지만 두 회사가 보유한 재산 규모만 따졌을 때 적정한 합병 비율은 제일모직 3대 삼성물산 1이 아니고, 심지어 제일모직 1대 삼성물산 1도 아니고, 거꾸로 제일모직 1대 삼성물산 3이었다. 삼성물산 보유 재산이 오히려 제일모직보다 세 배나 많았다는 이야기다.
만약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거꾸로 1대 3으로 합병했다면 이재용이 보유한 합병 회사의 지분은 6%로 떨어졌을 것이다. 이러면 절대 최대주주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삼성물산의 헌신적인 ‘자기 몸값 깎기’ 덕에 이재용은 여전히 합병 이후에도 18%의 지분율로 최대주주 노릇을 할 수 있었고 삼성전자 지분 4.6%도 완전히 자기 지배 아래 둘 수 있었다.
이까지는 SBS 보도 이전에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SBS는 여기서 새로운 사실을 추가했다. 이 보도의 출발은 의심으로부터 시작된다. 만약 A와 B의 합병 때 B의 가치를 떨어뜨리고(500만 원짜리 사무실을 100만 원으로 깎고) A의 가치를 올리는 것(500만 원짜리 기계를 900만 원으로 포장하고)이 과제였다면, 이재용은 삼성물산의 가치를 깎는 것 외에 제일모직의 가치를 높이려는 시도도 충분히 했을 것이라는 게 의심의 요체였다.
취재 결과 제일모직의 가치를 뻥튀기하려 했던 과정이 밝혀졌다. 제일모직은 에버랜드를 포함한 회사다. 에버랜드는 용인에 땅을 많이 갖고 있었다. 그런데 에버랜드의 용인 땅값이 합병 직전에 급등한 것이다.
2014년까지 에버랜드의 공시지가는 ㎡당 8만 원 정도였다. 하지만 합병 직전 공시지가는 최대 ㎡당 40만 원까지 급등했다. 공시지가란 국가가 정한 땅값으로 세금을 걷을 때 기준이 된다. 이는 당연히 매우 엄정하게 관리가 돼야 하기 때문에 1년 만에 다섯 배가 오르는 일은 절대 없다.
그런데도 공시지가가 한꺼번에 다섯 배나 올랐다. 제일모직은 일약 땅 부자가 됐다. 공시지가가 오르자 이를 주가에 반영하기 위해 바람잡이들이 등장했다. 증권사들은 앞 다퉈 보고서를 내고 “용인 에버랜드 땅의 부동산 가치를 재평가해야 한다. 토지 용도가 변경된다면 이곳의 가치는 최대 3조 2000억 원이다”라고 바람을 잡았다.
심지어 제일모직 주식을 갖고 있지도 않던 국민연금조차 “제일모직의 땅값 가치는 3조 원이 넘는다”며 바람잡이에 동참했다. 당시 유일하게 합병에 반대했던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금융기관들에게는 삼성그룹이 최대 고객입니다. 삼성 의견에 따라줘야 되는 상황에서, 에버랜드 자산 가치를 부풀려야겠습니까? 줄여야겠습니까?”라고 SBS 보도팀에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결국 이번 보도는 지금까지 알려졌던 삼성물산 가치를 찌그러뜨리는 과정을 넘어, 이재용과 삼성이 제일모직 가치를 뻥튀기했다는 것을 밝혀낸 것이다. 이재용에게 삼성전자 주식 4.6%를 공짜로 넘겨주고자 했던 프로젝트는 멀쩡한 건설회사 하나 바보 만들고, 그저 그런 놀이동산을 부동산 부자로 탈바꿈하는 이중 사기극 아래 완성됐다.
이 사실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도대체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련의 과정이 아무 이유 없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이재용을 풀어준 서울고법 정형식 판사의 논리에 따르면 두 회사의 합병은 이재용의 3세 승계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란다.
그런데 첫째, 두 회사의 합병이 이재용의 3세 승계와 아무 상관이 없으면 도대체 건설회사와 놀이동산을 왜 합쳤단 말인가? 정형식 판사는 물론, 삼성과 이재용도 이에 대해 한 번도 논리적인 설명을 내놓은 적이 없다.
둘째, 그게 이재용의 3세 승계와 아무 상관이 없으면 왜 제일모직의 부동산 가치는 합병 직전 다섯 배로 부풀려지고, 삼성물산은 일부러 수주를 회피하면서까지 실적을 박살냈단 말인가?
두 눈을 뜨고 똑바로 뜨고 보면, 아니 두 눈을 거슴츠레하게만 떠도 진실이 보인다. 놀이동산과 건설 회사를 합병하는데 이런 비상식적인 절차가 거듭됐다면 그건 이재용의 3세 승계를 위한 과정이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2심 재판부의 비상식적인 판결을 뒤집을 또 하나의 중요한 팩트가 SBS 탐사보도팀에 의해 밝혀졌다. 대법원은 이처럼 속속 드러나는 진실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 “3세 승계의 실체가 없었다”는 고법의 헛소리는 대법원에서 반드시 뒤집어져야 한다.
SBS의 탐사보도를 이끈 팀 이름이 ‘끝까지 판다’라고 한다. ‘끝까지 추적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인데, 팀 구성원 중 한명이 판다처럼 생겨서 붙은 별명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아무려면 어떤가? 진실을 추적해 밝혀내고 이를 방대한 양의 리포트로 풀어낸 SBS 탐사보도팀에 경의를 보낸다. 판다에게 축복을!
출처 ‘판다’에게 축복을! SBS가 밝힌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또 다른 진실
‘끝까지 판다’에게 축복을!
[민중의소리] 이완배 기자 | 발행 : 2018-03-25 08:45:59 | 수정 : 2018-03-25 08:45:59
지난주를 가장 뜨겁게 달군 뉴스 중 하나는 SBS 탐사보도팀이 며칠 동안 쏟아 부은 제일모직(에버랜드)의 용인 땅값 관련 보도였다. 이 보도는 여러 면에서 매우 놀라웠는데 첫째, 하루 평균 일곱 꼭지에 해당하는 방대한 양이 뉴스가 우선 충격적이었다.
둘째, 한국 주류 언론에게 성역과도 같았던 삼성 관련 보도를 연이어 터뜨리는 SBS의 끈질김도 놀라웠다. 셋째,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찜찜하게 생각했던 바로 그 대목을 정확하게 짚어낸 통찰력 또한 놀라웠다. SBS의 보도로 우리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짓이었는지에 대한 마지막 퍼즐을 맞출 수 있었다.
그래서 “3세 승계의 실체가 없었다”며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을 풀어준 2심 재판부의 엉터리 판결은 대법원에서 반드시 뒤집어져야 한다. SBS의 보도를 바탕으로 합병을 전후해 폭등했던 용인 땅값이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를 되짚어 보자.
합병, 어떻게 해야 이재용에게 가장 유리했나?
SBS의 보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만 먼저 짚어보자.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왜 추진됐는지와 합병이라는 것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두 가지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하기 전까지 이재용은 사실상 삼성그룹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었다. 물론 오만 편법이 다 동원된 결과였다. 하지만 그렇게 하고도 이재용에게 남은 과제가 있었다. 이재용이 삼성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를 지배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를 제대로 지배하기 위해서는 주식을 사야 하는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삼성전자 주식 1%만 사려고 해도 3조 원이 든다. 이재용의 재산이 고작(!) 9조 원이나 전 재산을 탈탈 털어도 그가 살 수 있는 삼성전자 지분은 3%밖에 안 된다. 이재용의 삼성전자 지분은 0.65%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주변을 돌아보니 삼성물산이라는 회사가 나타났다. 이 회사가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삼성전자 지분을 4.6%나 들고 있었다. 이재용 입장에서 저 4.6%가 얼마나 탐이 났겠나? 이 지분 가치만 13조 원이 넘는다. 이때 등장한 아이디어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합병하는 것이었다.
▲ SBS 보도 화면 켭쳐 ⓒSBS 보도 화면 켭쳐
제일모직은 당시 명실상부한 이재용의 회사(이재용 지분이 24%)였다. 삼성물산을 제일모직과 합칠 수만 있다면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 4.6%는 제일모직으로 귀속된다. 제일모직의 주인이었던 이재용은 삼성전자 4.6%의 실질적인 지배자가 된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삼성전자 주식 4.6%를 이재용이 땡전 한 푼 안내고 삼키기’ 쯤 된다.
다음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 일반적인 합병의 절차다. 예를 들어 A라는 회사와 B라는 회사가 합병을 하려 한다. A는 500만 원짜리 기계를 갖고 있고 B는 500만 원 짜리 사무실을 갖고 있다. 이 상태에서 합병을 하면 합병 회사의 주인은 누구일까?
당연히 500만 원 씩 냈으니 A와 B가 50%의 지분을 나눠 갖는 공동 최대주주가 돼야 한다. 그런데 A가 대장이고 B가 부하라면 이들은 이런 장난을 친다. A가 B에게 말한다. “어이, 부하! 내가 합병회사의 실질적 주인이 되고 싶거든? 그러니까 내 500만 원짜리 기계를 900만 원으로 계산하고, 너의 500만 원짜리 사무실은 100만 원으로 계산하자.”
상식적으로라면 절대 이뤄질 수 없는 합병이지만 B가 A의 부하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B는 “주인님, 당연히 그러셔야죠”라며 자기가 낸 사무실의 가치를 100만 원으로 깎고, 주인이 낸 기계의 가치를 900만 원으로 올려준다. 그 결과 합병 이후 회사의 주인은 90%의 지분을 가진 A가 된다.
엉터리 합병으로 대박 이익을 본 이재용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이 이와 같았다. 부하 격인 삼성물산은 합병을 하면서 “우리 회사가 얼마나 후졌는지 몰라요”라며 자기 회사 가치를 깎아내기 바빴다. 500만 원짜리 사무실을 스스로 100만 원짜리라고 우긴 것이다.
이는 이미 사법부의 판결로 드러난 것이다. 2016년 5월 서울고법은 “삼성물산이 주가를 조작한 의심이 든다”고 판결했다. 자기 회사 가치를 깎으려고 주가를 인위적으로 하락시켰다는 이야기다. 당시 재판부 판결이 이렇다.
“제일모직 주가가 높게, 삼성물산 주가가 낮게 형성돼야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지배 주주 일가에게 이익이 되는 상황에서 삼성물산이 건설 수주에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나서는 등 주가를 의도적으로 낮췄다고 의심하는 데 합리적 이유가 있다.”
자기 회사 가치를 깎으려고 삼성물산(당시 삼성물산은 건설과 무역 두 분야로 이뤄진 회사였다)이 건설 수주도 일부로 안 했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이렇게 삼성물산이 자기의 가치를 깎고 깎은 덕에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비율은 3대 1로 결정이 됐다.
▲ 경찰이 삼성물산 건설부문 본사를 압수수색하는 모습 ⓒ뉴시스
제일모직의 가치가 삼성물산의 세 배였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합병을 하니 제일모직 지분 24%를 가졌던 이재용은 합병 이후에도 18%의 주식을 보유한 최대 주주로 남을 수 있었다.
나중에 밝혀진 일이지만 두 회사가 보유한 재산 규모만 따졌을 때 적정한 합병 비율은 제일모직 3대 삼성물산 1이 아니고, 심지어 제일모직 1대 삼성물산 1도 아니고, 거꾸로 제일모직 1대 삼성물산 3이었다. 삼성물산 보유 재산이 오히려 제일모직보다 세 배나 많았다는 이야기다.
만약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거꾸로 1대 3으로 합병했다면 이재용이 보유한 합병 회사의 지분은 6%로 떨어졌을 것이다. 이러면 절대 최대주주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삼성물산의 헌신적인 ‘자기 몸값 깎기’ 덕에 이재용은 여전히 합병 이후에도 18%의 지분율로 최대주주 노릇을 할 수 있었고 삼성전자 지분 4.6%도 완전히 자기 지배 아래 둘 수 있었다.
SBS 보도의 핵심은 3세 승계가 존재했다는 것
이까지는 SBS 보도 이전에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SBS는 여기서 새로운 사실을 추가했다. 이 보도의 출발은 의심으로부터 시작된다. 만약 A와 B의 합병 때 B의 가치를 떨어뜨리고(500만 원짜리 사무실을 100만 원으로 깎고) A의 가치를 올리는 것(500만 원짜리 기계를 900만 원으로 포장하고)이 과제였다면, 이재용은 삼성물산의 가치를 깎는 것 외에 제일모직의 가치를 높이려는 시도도 충분히 했을 것이라는 게 의심의 요체였다.
취재 결과 제일모직의 가치를 뻥튀기하려 했던 과정이 밝혀졌다. 제일모직은 에버랜드를 포함한 회사다. 에버랜드는 용인에 땅을 많이 갖고 있었다. 그런데 에버랜드의 용인 땅값이 합병 직전에 급등한 것이다.
2014년까지 에버랜드의 공시지가는 ㎡당 8만 원 정도였다. 하지만 합병 직전 공시지가는 최대 ㎡당 40만 원까지 급등했다. 공시지가란 국가가 정한 땅값으로 세금을 걷을 때 기준이 된다. 이는 당연히 매우 엄정하게 관리가 돼야 하기 때문에 1년 만에 다섯 배가 오르는 일은 절대 없다.
그런데도 공시지가가 한꺼번에 다섯 배나 올랐다. 제일모직은 일약 땅 부자가 됐다. 공시지가가 오르자 이를 주가에 반영하기 위해 바람잡이들이 등장했다. 증권사들은 앞 다퉈 보고서를 내고 “용인 에버랜드 땅의 부동산 가치를 재평가해야 한다. 토지 용도가 변경된다면 이곳의 가치는 최대 3조 2000억 원이다”라고 바람을 잡았다.
▲ SBS 보도 화면 켭쳐 ⓒSBS 보도 화면 켭쳐
심지어 제일모직 주식을 갖고 있지도 않던 국민연금조차 “제일모직의 땅값 가치는 3조 원이 넘는다”며 바람잡이에 동참했다. 당시 유일하게 합병에 반대했던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금융기관들에게는 삼성그룹이 최대 고객입니다. 삼성 의견에 따라줘야 되는 상황에서, 에버랜드 자산 가치를 부풀려야겠습니까? 줄여야겠습니까?”라고 SBS 보도팀에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결국 이번 보도는 지금까지 알려졌던 삼성물산 가치를 찌그러뜨리는 과정을 넘어, 이재용과 삼성이 제일모직 가치를 뻥튀기했다는 것을 밝혀낸 것이다. 이재용에게 삼성전자 주식 4.6%를 공짜로 넘겨주고자 했던 프로젝트는 멀쩡한 건설회사 하나 바보 만들고, 그저 그런 놀이동산을 부동산 부자로 탈바꿈하는 이중 사기극 아래 완성됐다.
이 사실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도대체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련의 과정이 아무 이유 없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이재용을 풀어준 서울고법 정형식 판사의 논리에 따르면 두 회사의 합병은 이재용의 3세 승계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란다.
그런데 첫째, 두 회사의 합병이 이재용의 3세 승계와 아무 상관이 없으면 도대체 건설회사와 놀이동산을 왜 합쳤단 말인가? 정형식 판사는 물론, 삼성과 이재용도 이에 대해 한 번도 논리적인 설명을 내놓은 적이 없다.
둘째, 그게 이재용의 3세 승계와 아무 상관이 없으면 왜 제일모직의 부동산 가치는 합병 직전 다섯 배로 부풀려지고, 삼성물산은 일부러 수주를 회피하면서까지 실적을 박살냈단 말인가?
두 눈을 뜨고 똑바로 뜨고 보면, 아니 두 눈을 거슴츠레하게만 떠도 진실이 보인다. 놀이동산과 건설 회사를 합병하는데 이런 비상식적인 절차가 거듭됐다면 그건 이재용의 3세 승계를 위한 과정이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2심 재판부의 비상식적인 판결을 뒤집을 또 하나의 중요한 팩트가 SBS 탐사보도팀에 의해 밝혀졌다. 대법원은 이처럼 속속 드러나는 진실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 “3세 승계의 실체가 없었다”는 고법의 헛소리는 대법원에서 반드시 뒤집어져야 한다.
SBS의 탐사보도를 이끈 팀 이름이 ‘끝까지 판다’라고 한다. ‘끝까지 추적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인데, 팀 구성원 중 한명이 판다처럼 생겨서 붙은 별명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아무려면 어떤가? 진실을 추적해 밝혀내고 이를 방대한 양의 리포트로 풀어낸 SBS 탐사보도팀에 경의를 보낸다. 판다에게 축복을!
출처 ‘판다’에게 축복을! SBS가 밝힌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또 다른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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