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평양 남북정상회담’ 폄훼도 적당히 해야 한다
[고발뉴스닷컴] 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 | 승인 : 2018.09.21 08:21:12 | 수정 : 2018.09.21 08:29:14
<백두산 깜짝 일정이라더니… 등산복에 ‘한라산 물’도 챙겨>
오늘자(21일) 조선일보 6면에 실린 기사 제목입니다. 제목에서 조선일보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 지가 단적으로 드러납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백두산 등반 일정이 돌발 일정이 아닌 미리 준비된 일정일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내용입니다.
기사를 읽어보면 사전 조율을 통해 미리 정해진 일정일 가능성이 높은데 마치 ‘깜짝 이벤트’인 것처럼 국민을 속인 것 아니냐는 뉘앙스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선일보 역시 확실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인지 단정은 하지 못한 채 “미리 준비된 일정이라는 관측이 나왔다”는 식의 보도를 합니다.
조선일보 해당 기사를 보면 곳곳에 ‘의심의 흔적’이 보입니다. 조선일보 기사를 간단히 소개합니다.
“20일 공개된 백두산 등반 사진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리설주 부부는 검은색 겨울용 롱코트를 입었고, 김정숙 여사는 하얀 등산 점퍼에 목도리까지 두른 모습이었다. 백두산에 오를 것을 대비해 남쪽에서 출발할 때부터 코트와 점퍼를 챙겨간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김정숙 여사는 이날 물이 반쯤 담긴 500mL 생수병을 손에 들고 백두산에 왔다. 김정숙 여사는 ‘한라산 물을 갖고 왔다’며 ‘천지에 가서 반은 붓고 반은 백두산 물을 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국책 연구소 관계자는 ‘이미 백두산에 가려고 서울에서부터 한라산 물을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밤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연설할 때 보니 양복 차림이었다. 평양 날씨는 겨울 점퍼를 입을 날씨는 아니기 때문에 백두산 방문을 염두에 두고 사전에 준비한 것 같다”는 고위급 탈북민 A씨의 발언을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서 그치는 게 아닙니다. 오늘자(21일) 사설에선 “청와대는 마지막 날 일정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백두산에 올라가 이벤트를 벌일 한라산 물까지 준비해 놓고 있었다”며 다시 한 번 의혹을 제기합니다.
재밌는 것은 조선일보의 의혹제기(?)에 동아일보를 비롯한 다른 언론이 어제와 오늘 지면을 통해 확인을 해주고 있다는 겁니다. 조선일보가 보지 못한 걸, 다른 언론은 쉽게 봤던 걸까요?
제가 보기엔 아닌 것 같습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생각해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오늘자(21일) 동아일보를 한번 볼까요?
“청와대가 백두산 방문을 희망하면서도 자신있게 밝히지 못했던 건 이번 남북 정상회담의 주최는 북측인 데다 평양에서 멀리 떨어진 백두산까지의 이동수단·경호·의전 준비 등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문 대통령 내외의 겨울옷과 제주 한라산에서 생산된 생수 ‘삼다수’를 준비하는 등 나름의 준비를 해갔던 청와대도 19일 전격적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백두산 방문 제안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조선일보는 “백두산에 오를 것을 대비해 남쪽에서 출발할 때부터 코트와 점퍼를 챙겨간 것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도 동아일보가 ‘답’을 해줍니다.
“백두산 방문이 결정되자 정부도 부랴부랴 준비에 착수했다. 19일 통일부는 급하게 아웃도어 브랜드 K2의 등산재킷과 경량 패딩을 각각 250벌 구입해 우리 수송기 편으로 평양에 보냈다. K2를 선택한 것은 과거 개성공단 입주 기업이었다는 점이 고려됐다. 별다른 준비를 하지 못했던 방북단은 이날 삼지연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 평양 순안공항에서 이 옷들을 지급받았다.”
물론 두 정상의 백두산행이 사전에 전혀 논의하지 않은 깜짝 이벤트일 가능성은 없습니다. 그건 정상회담에 대한 ‘기본지식’이 전혀 없는 얘기이기 때문입니다. 정상의 동선까지 미리 꼼꼼하게 체크해서 그 매뉴얼에 따라 이동하는 게 보통인데 백두산행을 사전에 논의하지 않았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사전에 어느 정도 논의가 됐더라도 당일 기상 상황, 정상회담 결과와 분위기에 따라 양 정상의 백두산 등반은 현실화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더구나 김정은 위원장이 실제로 동반할 것인가 여부는 더더욱 불확실했을 겁니다. 특히 북한 최고 존엄의 백두산 등반은 경호문제를 비롯해 이동수단과 의전 준비 등이 만만치 않습니다. 변수가 너무 많았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경향신문이 보도(21일자 2면)한 것처럼 “‘9월 평양공동선언’의 무난한 도출에 이어 날씨가 도와준 덕분에 백두산 등정이 가능해졌고, 회담의 화룡점정”이 됐습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고위급 탈북민 A’씨를 등장시켜 난데없이(?) 의혹을 제기하더니 “이미 백두산에 가려고 서울에서부터 한라산 물을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는 국책 연구소 관계자 발언까지 인용합니다. 조선일보가 등장시킨 해당 국책 연구소 관계자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세밀한 내용’까지 알 정도로 정보망이 엄청난 사람인가 봅니다.
사실 ‘한라산 물’이라고 하니 백록담 물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제주도 한라산에 취수원이 있는 제주 ‘삼다수’(생수)를 말하는 겁니다. 조선일보는 마치 ‘한라산 물’이라고 해서 백록담에 있는 물을 사전에 준비해서 간 것처럼 해석될 수 있는 보도를 했지만 정확히 말하면 ‘삼다수 생수’입니다.
어제(20일) 중앙일보와 SBS를 비롯한 다른 언론이 보도한 내용을 잠깐 소개합니다.
“청와대에 따르면 김 여사는 천지 물을 담아 합수할 생각으로 생수병에 제주도 한라산 물을 채워서 가져왔다. 그러나 김 여사가 ‘한라산 물’ 이라고 표현한 물은 백록담 물은 아니다. 김 여사가 천지물로 채운 것은 제주도 한라산에 취수원이 있는 제주 ‘삼다수(생수)’인 것으로 전해졌다.” (중앙일보 9월 20일)
“산책하던 문 대통령과 김 여사는 기념으로 제주도 한라산이 취수원인 ‘삼다수’ 물병에 천지 물을 담았습니다.” (SBS 9월 20일)
서울신문은 <백두산 천지까지 간 한라산 ‘삼다수’ 그 홍보효과의 가치는?>이라는 사진기사에서 “제주도 한라산에 취수원이 있는 생수 ‘삼다수’가 뜻밖의 홍보효과를 누리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사실 해당 기사 뿐만 아니라 오늘자(21일) 조선일보 지면을 보면 ‘2018 평양 남북정상회담’ 성과를 폄훼하려는 흔적이 곳곳에 보입니다. 제목만 간단히 추려볼까요?
<국방부 “靑비서관, 추석 밥상서 NLL 팔아먹었다고 할까봐 그런 듯”>(조선일보 3면)
<곧 물러날 국방장관, 김정은 오면 한라산 헬기장 짓겠다니…> (조선일보 3면)
<靑비서관이 군사협상 조율… “안보실에서 오더가 내려갔다”> (조선일보 4면)
<文대통령 ‘15만 군중 연설’중 일부 내용 논란> (조선일보 6면)
<美 의원들 “김정은 말만 번지르르… 시간끌기에 전념”> (조선일보 6면)
<백두산 깜짝 일정이라더니… 등산복에 ‘한라산 물’도 챙겨> (조선일보 6면)
<“추석 밥상에서 NLL 팔아먹었다는 얘기 나오면 안 되니…”> (조선일보 사설)
<남북 정상회담 주변의 이상한 풍경들> (조선일보 사설)
신승근 한겨레 논설위원은 오늘자(21일) 칼럼 <달라진 평양, 공허한 자유한국당>에서 “모두 변하는데 자유한국당만 고립된 섬처럼 11년 전 인식에 머물고 있는 듯하다 … 반대를 위한 반대, 딴죽걸기로 한반도 평화를 담보할 수는 없다. 수구정당의 이미지만 선명해질 뿐”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신 위원의 칼럼에서 자유한국당을 조선일보로 바꾸어도 무리가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물론 제목 역시 <달라진 평양, 공허한 조선일보>로 바꾸는 게 적절하겠지요.
출처 ‘삼다수 물’까지 시비 거는 조선일보의 생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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