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노동자 94%가 ‘골병’…“튀김하는 날은 가스실 같다”
학교급식 조리 중 유해가스 심각
수백명분 음식·식판 다루며 골병
전국 7만여명 대부분 중년 여성
“공정임금 실현” 내달 3일 총파업
[한겨레] 정환봉 김민제 기자 | 등록 : 2019-06-25 17:59 | 수정 : 2019-06-25 21:44
한민영(가명)씨는 지난해 4월 숨졌다. 한씨는 2007년부터 10년 동안 경기도 ㄱ중학교 급식실에서 조리실무사로 일했다. 2017년 4월 전보 인사가 났고, 다른 학교로 옮기기 위해 보건증을 발급받다가 청천벽력같은 통보를 듣게 됐다. 폐암 3기라고 했다. 1년 동안 투병했지만, 이미 깊이 진행된 병은 한씨의 삶을 더 허락해주지 않았다.
한씨와 같은 급식실에서 일했던 강수지(가명)씨는 2017년 5월 16일 급식실에서 일하다 갑자기 쓰러졌다. 뇌출혈이라고 했다. 올해 환갑을 맞은 강씨는 그때 일로 몸의 절반이 마비됐다.
ㄱ중학교 급식실에서는 사실 한씨의 폐암과 강씨의 뇌출혈 전에 이미 신호가 있었다. 2016년 이 급식실에서 일하던 노동자 2명이 어지럼증과 구토 증상 등으로 병원 신세를 졌다. 이렇게, 모두 5명이 일한 중학교 급식실에서 4명이 세상을 떠나거나 병원 치료를 받았다.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쓰러지고 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학비노조)이 지난 4일부터 9일까지 급식 노동자 3056명을 상대로 한 ‘학교 급식실 산업안전실태 조사 결과’(급식실 실태조사)를 보면, 최근 1년 동안 1주일 이상 근골격계 통증이 지속된 경험이 있냐는 질문에 94%가 ‘그렇다’고 답했다.
설문조사의 자문을 맡은 김규연 녹색병원 직업환경의학과 전공의는 “근골격계 질환을 많이 겪는다고 알려진 농업인을 상대로 한 2006년 연구를 보면, 같은 질문에 80.5%가 ‘일주일 이상 통증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변했다. 노동 강도가 높은 선박 제조업종 노동자의 경우도 이 수치가 70~80% 정도”라고 말했다.
전국의 학교 급식실 노동자는 7만1219명(2018년 2월 기준)이다. 대부분 40~50대 중년 여성들이다. 이들은 전국 1만1800개 학교 급식실에서 매일 574만명의 학생들을 위한 점심을 만든다. 이들이 만든 돼지 두루치기나 오이생채, 오징어볶음 그리고 따뜻한 밥과 국은 피곤한 눈을 비비며 매일 새벽 도시락을 싸야 했던 ‘엄마’들의 짐을 덜어줬다. 하지만 그 짐은 고스란히 또 다른 ‘엄마’들이 지고 있다.
이들은 교무보조, 돌봄전담사 등 다른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공정임금제 실현과 교육공무직 법제화 등을 요구하며 다음달 3~5일 총파업에 들어간다.
ㄱ중학교 급식실에서 쓰러진 노동자들의 가족과 학비노조는 연이은 비극의 원인으로 환기용 ‘후드’를 지목하고 있다. 수백명이 먹을 분량의 재료를 튀기고 굽고 볶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해물질과 제대로 빠져나가지 않는 가스 때문에 폐 등 호흡기 질환과 뇌 질환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 ㄱ중학교 조리실무사들은 2016년부터 후드의 흡입력이 약해졌다며 학교에 수리를 요청했다. 하지만 학교는 한씨가 폐암 진단을 받을 무렵에야 모터가 낡아 흡입력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강씨가 쓰러진 지 6일이 지난 뒤에야 환기 시설을 고쳤다.
현재 한씨의 산업재해 여부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고, 강씨의 경우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업재해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행정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진실은 여전히 다툼의 영역에 있지만, 하나는 명확하다. 환기 문제로 정신을 잃은 경험이 있는 급식실 노동자들이 비단 ㄱ중학교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경기도 ㄴ중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는 민선영(가명)씨가 그랬다. 지난 3월 민씨가 전 당번을 맡은 날이었다. 800명이 먹을 전을 부치려면 뜨거운 불판 앞에 2시간 30분은 꼬박 서 있어야 한다. 전을 모두 부치기 전, 어지럼증과 메스꺼움이 동시에 닥쳐왔다. 결국 쓰러지다시피 조퇴를 했다. “평소에도 전을 부치는 불판 앞에 있으면 눈이 따갑고 했어요. 그런데 그날은 정말 딱 연탄가스를 마셨을 때 나는 느낌이었어요.” 민씨는 그 일이 후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급식실이 반지하에 있어요. 후드가 5개 정도가 있는데, 환기되는 통로가 구불구불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가스가 제대로 빠져나가지 않는 것 같아요. 가스가 샌다는 느낌도 받았고…. 보통 튀김 같은 걸 하는 날이면 숨쉬기가 어려워요. 몸 안에 있는 산소가 빠져나가는 느낌. 그게 2~3일은 가요. ‘뇌에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닐까’하는 걱정이 계속 들어요.” 폐암도 남의 일이 아니다.
수도권의 한 학교에서 일했던 급식 노동자는 “조리사들이 폐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자주 듣는다. 하지만 그게 급식실의 환경 때문인지 확인하는 게 어려우니 대부분 그냥 일을 그만두거나, 치료를 받으면서 일을 하더라”라고 말했다.
실제 대한폐암학회 연구위원회가 대학병원 환자 가운데 비흡연 여성 폐암 환자 478명과 폐암에 걸리지 않은 여성 환자 45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 지난해 발표한 결과를 보면, 민씨가 말한 대로 눈이 따가울 정도로 환기가 안 되는 곳에서 요리한 여성들의 폐암 발병률이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5.8배나 높았다. 같은 해 대한폐암학회가 펴낸 ‘한국인 비흡연 여성 폐암’ 책자에도 “(비흡연 여성 폐암 환자의 경우) 요리할 때 기름을 자주 사용한 경우가 많았다”고 적혀있다.
폐암이나 뇌출혈이 불확실한 두려움이라면 근골격계(근육 및 골격계) 질환은 확실한 고통이다. 수도권 ㄷ초등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는 정수연(가명·46)씨는 어깨 근육(회전근개)이 파열돼 지난해 9월 수술을 했다. 지난해 1월부터 어깨가 너무 아파 한의원과 정형외과를 다녔지만 증상이 나아지지 않았다. 정신없이 일할 때는 잊었다가 점심 배식을 마칠 때쯤 팔을 못 들 정도의 고통이 찾아와 다음날 출근 때까지 계속됐다. 12년째 급식실에서 일해 온 정씨였지만, 1인당 170명의 급식을 책임져야 하는 데다 각 교실에 급식을 배달까지 해야 하는 ㄷ초등학교에서 일은 유독 힘들었다.
정씨가 보내는 급식실의 하루는 이렇다. 당번일 때면 오전 7시에 출근해 식자재 검수 등을 한다. 영양사가 그날 급식 재료의 상태를 검수하면 10㎏ 남짓 무게의 양파와 무 등 채소 박스를 전처리실(야채·고기 등 재료를 다듬는 곳)로 옮긴다. 동료들이 출근하기 시작하는 오전 7시 40분부터는 높이 2.5m의 소독고에서 개당 0.5㎏ 무게의 식판 1500개가량을 카트로 옮긴다. 4㎏짜리 수저통과 반별 인원에 맞는 식판을 배식차에 넣으면, 일단 급식을 위한 사전 준비는 대충 마무리된다.
이후에는 고기 100㎏, 김치 40㎏ 등을 냉장고 아래에서 허리 숙여 꺼내 담아 조리실로 옮기고, 1.8ℓ 식용유 6~7개를 둘레 2.5m의 튀김솥에 넣은 뒤 본격적인 조리를 시작한다. 냉동상태의 재료를 손목과 어깨를 써서 다듬고 쌀은 70㎏가량을 10㎏씩 나눠 쌀 씻는 기계에 붓는다. 볶음요리는 1m가량의 조리삽으로 쉴 새 없이 저어 재료가 솥에 눌어붙지 않도록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급식을 배식차에 싣고 가 반별로 나눠준다. 온통 어깨, 팔목, 허리, 무릎 관절과 근육을 동원해야 하는 일이다. 배식이 마무리된 뒤 빈 식판을 들고 와 세척하고 급식실을 청소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MRI 촬영 결과, 정씨의 근육이 파열됐다고 했다. 여러 병원에 다녔지만 대답은 똑같았다. 결국 병가를 내고 수술을 받은 뒤 7개월을 쉬었다.
문제는 산재 신청 과정이다. 산재 승인을 위해서는 어깨를 많이 쓰는 일을 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정씨와 노조는 정씨가 조리실에서 근무하는 장면을 찍겠다며 학교에 협조를 요청했다. 하지만 학교는 ‘일하는 모습을 (연출하며) 촬영을 하다가 어깨가 더 안 좋아지면 학교의 책임이 아니다’라고 정씨에게 말했다고 한다. 정씨가 수술 9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산재 신청을 하지 못한 까닭이다. “최근에 바뀐 교장은 호의적이긴 하지만 그 전 교장은 ‘죽어도 산재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어요. 학교에서 싫어하는 게 너무 티가 나니까 눈치가 보여 산재를 신청할 수 없었죠.”
사고성 재해도 잦다. 급식실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급식실 노동자 48%가 근무를 하다가 사고를 당해 다친 적이 있었다. 경기도 ㄹ중학교에서 일하는 임순희(가명·54)씨는 다친 동료를 직접 목격했다. 잔반을 말려서 캐러멜과 같은 물질로 배출하는 ‘음식물 처리기’에 장갑이 딸려 들어가 손이 으스러진 경우였다.
“전날 넣어놓은 잔반이 제대로 빠져나오지 않아서 손으로 빼내려다가 다쳤어요. 오른손 네 번째 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이 움직이지 못하게 됐지요. 수저를 소독하는 열탕기 물을 버리다가 장화에 뜨거운 물이 들어가서 화상을 입거나 정신없이 일하다 넘어져 다치는 경우도 흔히 벌어집니다.” 임씨의 증언이다.
급식실 실태조사에도 “기계에 손이 끼어 손가락 두개를 절단했다”, “튀김을 한 뒤 기름 솥을 들고 가다가 식은 기름에 미끄러졌다. 그 일로 손가락을 다쳤는데 가끔 손가락이 구부려지지 않는다”, “뜨거운 물이 장갑 사이로 들어가 손목에 화상을 입었다”, “잔반을 비우다가 미끄러져 손목 인대가 늘어났다” 등과 같은 수많은 사고 사례가 나온다.
청소하다가 독한 세제 때문에 화상을 입은 경우도 많았다. 특히 액체 세제를 이용해 환풍기를 청소하다 얼굴이나 팔뚝에 세제가 흘러 화상을 입는 경우가 가장 흔했다. 사고성 재해는 사업장에서 당한 사고이면서 인과관계가 비교적 명확해 산재 승인이 쉬운 편이다. 하지만 급식실 실태조사 결과 이 경우에도 산재처리를 한 경우는 8.7%에 불과했다.
김규연 전공의는 25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작은 사고성 재해가 너무 많은 점을 주목해야 한다”며 “작은 사고가 쌓이다 보면 결국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산재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도 (사업주 등이) 사고성 재해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지 못하게 하는 이유 중 하나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임씨는 손가락 두개를 쓰지 못한다. 오른손 새끼손가락에는 염증이 생겨 2013년에 수술을 했다. 올해 1월에는 중지에 철심을 박았다. 평생 손가락을 제대로 굽히지 못한 채 살아야 한다. 임씨는 최근 중지 수술로 병가를 낸 채 쉬며 산재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급식실 노동의 어려움을 한창 이야기하던 임씨는 아이들 이야기를 하는 순간 밝아졌다.
“애들하고 지내다 보면 웃음이 나오는 일이 많아요. 가끔 학생들이 와서 오늘 반찬 누가 만들었냐고 물어요. 누군지 가르쳐 주면 ‘어머니 짱입니다’ 하면서 맛있었다고 칭찬하고 가요. 그렇게 3년 밥을 먹인 애가 졸업하는 거 보면 제가 키워서 보냈다는 느낌도 들어요. 요즘 애들이 아침을 안 먹고 와서 점심을 많이 먹게 되고 그러니까 잘 먹거든요.”
학교 급식 노동자들은 매일 불판 앞에서 좋은 재료를 안전하게 조리해가며 574만 학생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의 위험한 하루를 책임지는 이들은 찾아볼 수 없다.
출처 급식노동자 94%가 ‘골병’…“튀김하는 날은 가스실 같다”
학교급식 조리 중 유해가스 심각
수백명분 음식·식판 다루며 골병
전국 7만여명 대부분 중년 여성
“공정임금 실현” 내달 3일 총파업
[한겨레] 정환봉 김민제 기자 | 등록 : 2019-06-25 17:59 | 수정 : 2019-06-25 21:44
▲ 학교 급식실 노동자들이 튀김 기름 솥에서 음식을 조리하고 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제공
한민영(가명)씨는 지난해 4월 숨졌다. 한씨는 2007년부터 10년 동안 경기도 ㄱ중학교 급식실에서 조리실무사로 일했다. 2017년 4월 전보 인사가 났고, 다른 학교로 옮기기 위해 보건증을 발급받다가 청천벽력같은 통보를 듣게 됐다. 폐암 3기라고 했다. 1년 동안 투병했지만, 이미 깊이 진행된 병은 한씨의 삶을 더 허락해주지 않았다.
한씨와 같은 급식실에서 일했던 강수지(가명)씨는 2017년 5월 16일 급식실에서 일하다 갑자기 쓰러졌다. 뇌출혈이라고 했다. 올해 환갑을 맞은 강씨는 그때 일로 몸의 절반이 마비됐다.
ㄱ중학교 급식실에서는 사실 한씨의 폐암과 강씨의 뇌출혈 전에 이미 신호가 있었다. 2016년 이 급식실에서 일하던 노동자 2명이 어지럼증과 구토 증상 등으로 병원 신세를 졌다. 이렇게, 모두 5명이 일한 중학교 급식실에서 4명이 세상을 떠나거나 병원 치료를 받았다.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쓰러지고 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학비노조)이 지난 4일부터 9일까지 급식 노동자 3056명을 상대로 한 ‘학교 급식실 산업안전실태 조사 결과’(급식실 실태조사)를 보면, 최근 1년 동안 1주일 이상 근골격계 통증이 지속된 경험이 있냐는 질문에 94%가 ‘그렇다’고 답했다.
설문조사의 자문을 맡은 김규연 녹색병원 직업환경의학과 전공의는 “근골격계 질환을 많이 겪는다고 알려진 농업인을 상대로 한 2006년 연구를 보면, 같은 질문에 80.5%가 ‘일주일 이상 통증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변했다. 노동 강도가 높은 선박 제조업종 노동자의 경우도 이 수치가 70~80% 정도”라고 말했다.
전국의 학교 급식실 노동자는 7만1219명(2018년 2월 기준)이다. 대부분 40~50대 중년 여성들이다. 이들은 전국 1만1800개 학교 급식실에서 매일 574만명의 학생들을 위한 점심을 만든다. 이들이 만든 돼지 두루치기나 오이생채, 오징어볶음 그리고 따뜻한 밥과 국은 피곤한 눈을 비비며 매일 새벽 도시락을 싸야 했던 ‘엄마’들의 짐을 덜어줬다. 하지만 그 짐은 고스란히 또 다른 ‘엄마’들이 지고 있다.
이들은 교무보조, 돌봄전담사 등 다른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공정임금제 실현과 교육공무직 법제화 등을 요구하며 다음달 3~5일 총파업에 들어간다.
▲ 학교 급식실 노동자가 튀김 기름 솥에서 음식을 조리하고 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제공
환기되지 않는 급식실…쓰러지는 노동자
ㄱ중학교 급식실에서 쓰러진 노동자들의 가족과 학비노조는 연이은 비극의 원인으로 환기용 ‘후드’를 지목하고 있다. 수백명이 먹을 분량의 재료를 튀기고 굽고 볶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해물질과 제대로 빠져나가지 않는 가스 때문에 폐 등 호흡기 질환과 뇌 질환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 ㄱ중학교 조리실무사들은 2016년부터 후드의 흡입력이 약해졌다며 학교에 수리를 요청했다. 하지만 학교는 한씨가 폐암 진단을 받을 무렵에야 모터가 낡아 흡입력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강씨가 쓰러진 지 6일이 지난 뒤에야 환기 시설을 고쳤다.
현재 한씨의 산업재해 여부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고, 강씨의 경우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업재해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행정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진실은 여전히 다툼의 영역에 있지만, 하나는 명확하다. 환기 문제로 정신을 잃은 경험이 있는 급식실 노동자들이 비단 ㄱ중학교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경기도 ㄴ중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는 민선영(가명)씨가 그랬다. 지난 3월 민씨가 전 당번을 맡은 날이었다. 800명이 먹을 전을 부치려면 뜨거운 불판 앞에 2시간 30분은 꼬박 서 있어야 한다. 전을 모두 부치기 전, 어지럼증과 메스꺼움이 동시에 닥쳐왔다. 결국 쓰러지다시피 조퇴를 했다. “평소에도 전을 부치는 불판 앞에 있으면 눈이 따갑고 했어요. 그런데 그날은 정말 딱 연탄가스를 마셨을 때 나는 느낌이었어요.” 민씨는 그 일이 후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급식실이 반지하에 있어요. 후드가 5개 정도가 있는데, 환기되는 통로가 구불구불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가스가 제대로 빠져나가지 않는 것 같아요. 가스가 샌다는 느낌도 받았고…. 보통 튀김 같은 걸 하는 날이면 숨쉬기가 어려워요. 몸 안에 있는 산소가 빠져나가는 느낌. 그게 2~3일은 가요. ‘뇌에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닐까’하는 걱정이 계속 들어요.” 폐암도 남의 일이 아니다.
수도권의 한 학교에서 일했던 급식 노동자는 “조리사들이 폐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자주 듣는다. 하지만 그게 급식실의 환경 때문인지 확인하는 게 어려우니 대부분 그냥 일을 그만두거나, 치료를 받으면서 일을 하더라”라고 말했다.
실제 대한폐암학회 연구위원회가 대학병원 환자 가운데 비흡연 여성 폐암 환자 478명과 폐암에 걸리지 않은 여성 환자 45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 지난해 발표한 결과를 보면, 민씨가 말한 대로 눈이 따가울 정도로 환기가 안 되는 곳에서 요리한 여성들의 폐암 발병률이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5.8배나 높았다. 같은 해 대한폐암학회가 펴낸 ‘한국인 비흡연 여성 폐암’ 책자에도 “(비흡연 여성 폐암 환자의 경우) 요리할 때 기름을 자주 사용한 경우가 많았다”고 적혀있다.
▲ 학교 급식실 노동자가 뜨거운 물로 조리 도구를 소독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장화 안으로 뜨거운 물이 들어가 화상을 입는 일이 잦다고 한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제공
94%가 근골격계 질환 앓아
폐암이나 뇌출혈이 불확실한 두려움이라면 근골격계(근육 및 골격계) 질환은 확실한 고통이다. 수도권 ㄷ초등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는 정수연(가명·46)씨는 어깨 근육(회전근개)이 파열돼 지난해 9월 수술을 했다. 지난해 1월부터 어깨가 너무 아파 한의원과 정형외과를 다녔지만 증상이 나아지지 않았다. 정신없이 일할 때는 잊었다가 점심 배식을 마칠 때쯤 팔을 못 들 정도의 고통이 찾아와 다음날 출근 때까지 계속됐다. 12년째 급식실에서 일해 온 정씨였지만, 1인당 170명의 급식을 책임져야 하는 데다 각 교실에 급식을 배달까지 해야 하는 ㄷ초등학교에서 일은 유독 힘들었다.
정씨가 보내는 급식실의 하루는 이렇다. 당번일 때면 오전 7시에 출근해 식자재 검수 등을 한다. 영양사가 그날 급식 재료의 상태를 검수하면 10㎏ 남짓 무게의 양파와 무 등 채소 박스를 전처리실(야채·고기 등 재료를 다듬는 곳)로 옮긴다. 동료들이 출근하기 시작하는 오전 7시 40분부터는 높이 2.5m의 소독고에서 개당 0.5㎏ 무게의 식판 1500개가량을 카트로 옮긴다. 4㎏짜리 수저통과 반별 인원에 맞는 식판을 배식차에 넣으면, 일단 급식을 위한 사전 준비는 대충 마무리된다.
이후에는 고기 100㎏, 김치 40㎏ 등을 냉장고 아래에서 허리 숙여 꺼내 담아 조리실로 옮기고, 1.8ℓ 식용유 6~7개를 둘레 2.5m의 튀김솥에 넣은 뒤 본격적인 조리를 시작한다. 냉동상태의 재료를 손목과 어깨를 써서 다듬고 쌀은 70㎏가량을 10㎏씩 나눠 쌀 씻는 기계에 붓는다. 볶음요리는 1m가량의 조리삽으로 쉴 새 없이 저어 재료가 솥에 눌어붙지 않도록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급식을 배식차에 싣고 가 반별로 나눠준다. 온통 어깨, 팔목, 허리, 무릎 관절과 근육을 동원해야 하는 일이다. 배식이 마무리된 뒤 빈 식판을 들고 와 세척하고 급식실을 청소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MRI 촬영 결과, 정씨의 근육이 파열됐다고 했다. 여러 병원에 다녔지만 대답은 똑같았다. 결국 병가를 내고 수술을 받은 뒤 7개월을 쉬었다.
문제는 산재 신청 과정이다. 산재 승인을 위해서는 어깨를 많이 쓰는 일을 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정씨와 노조는 정씨가 조리실에서 근무하는 장면을 찍겠다며 학교에 협조를 요청했다. 하지만 학교는 ‘일하는 모습을 (연출하며) 촬영을 하다가 어깨가 더 안 좋아지면 학교의 책임이 아니다’라고 정씨에게 말했다고 한다. 정씨가 수술 9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산재 신청을 하지 못한 까닭이다. “최근에 바뀐 교장은 호의적이긴 하지만 그 전 교장은 ‘죽어도 산재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어요. 학교에서 싫어하는 게 너무 티가 나니까 눈치가 보여 산재를 신청할 수 없었죠.”
▲ 학교 급식실 노동자가 환풍용 후드를 청소하고 있다. 많은 노동자들이 독한 청소용 세제를 사용해 청소하다가 얼굴이나 팔에 약품으로 인한 화상을 입는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제공
손가락 잘리고 끓는 물과 세제에 화상도
사고성 재해도 잦다. 급식실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급식실 노동자 48%가 근무를 하다가 사고를 당해 다친 적이 있었다. 경기도 ㄹ중학교에서 일하는 임순희(가명·54)씨는 다친 동료를 직접 목격했다. 잔반을 말려서 캐러멜과 같은 물질로 배출하는 ‘음식물 처리기’에 장갑이 딸려 들어가 손이 으스러진 경우였다.
“전날 넣어놓은 잔반이 제대로 빠져나오지 않아서 손으로 빼내려다가 다쳤어요. 오른손 네 번째 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이 움직이지 못하게 됐지요. 수저를 소독하는 열탕기 물을 버리다가 장화에 뜨거운 물이 들어가서 화상을 입거나 정신없이 일하다 넘어져 다치는 경우도 흔히 벌어집니다.” 임씨의 증언이다.
급식실 실태조사에도 “기계에 손이 끼어 손가락 두개를 절단했다”, “튀김을 한 뒤 기름 솥을 들고 가다가 식은 기름에 미끄러졌다. 그 일로 손가락을 다쳤는데 가끔 손가락이 구부려지지 않는다”, “뜨거운 물이 장갑 사이로 들어가 손목에 화상을 입었다”, “잔반을 비우다가 미끄러져 손목 인대가 늘어났다” 등과 같은 수많은 사고 사례가 나온다.
청소하다가 독한 세제 때문에 화상을 입은 경우도 많았다. 특히 액체 세제를 이용해 환풍기를 청소하다 얼굴이나 팔뚝에 세제가 흘러 화상을 입는 경우가 가장 흔했다. 사고성 재해는 사업장에서 당한 사고이면서 인과관계가 비교적 명확해 산재 승인이 쉬운 편이다. 하지만 급식실 실태조사 결과 이 경우에도 산재처리를 한 경우는 8.7%에 불과했다.
김규연 전공의는 25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작은 사고성 재해가 너무 많은 점을 주목해야 한다”며 “작은 사고가 쌓이다 보면 결국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산재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도 (사업주 등이) 사고성 재해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지 못하게 하는 이유 중 하나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임씨는 손가락 두개를 쓰지 못한다. 오른손 새끼손가락에는 염증이 생겨 2013년에 수술을 했다. 올해 1월에는 중지에 철심을 박았다. 평생 손가락을 제대로 굽히지 못한 채 살아야 한다. 임씨는 최근 중지 수술로 병가를 낸 채 쉬며 산재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급식실 노동의 어려움을 한창 이야기하던 임씨는 아이들 이야기를 하는 순간 밝아졌다.
“애들하고 지내다 보면 웃음이 나오는 일이 많아요. 가끔 학생들이 와서 오늘 반찬 누가 만들었냐고 물어요. 누군지 가르쳐 주면 ‘어머니 짱입니다’ 하면서 맛있었다고 칭찬하고 가요. 그렇게 3년 밥을 먹인 애가 졸업하는 거 보면 제가 키워서 보냈다는 느낌도 들어요. 요즘 애들이 아침을 안 먹고 와서 점심을 많이 먹게 되고 그러니까 잘 먹거든요.”
학교 급식 노동자들은 매일 불판 앞에서 좋은 재료를 안전하게 조리해가며 574만 학생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의 위험한 하루를 책임지는 이들은 찾아볼 수 없다.
▲ 다치고 찍히고 붓고 잘린 학교 급식실 노동자들의 손.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제공
조리실무사 5만여명 중 정규직은 다해야 473명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지난해 2월 기준 7만1219명이다. 교육부가 작성한 ‘2017 학교급식 실시현황’을 보면, 급식실 노동자는 학교 급식 전체를 총괄하는 영양교사 1만169명, 급식실에서 ‘반장’ 역할을 하는 조리사 1만572명과 조리실무사(조리원) 5만478명으로 구성된다.
학생들이 먹는 급식을 만드는 이들은 대부분 5만여명의 조리실무사인데, 473명을 제외한 모든 조리실무사가 비정규직이다. 국공립 학교의 조리사와 조리실무사들은 교육공무직이라는 이름의 비정규직으로 시·도교육청에 소속되어 있다. 하루 8시간 근무하고 조리와 배식, 식기 세척 등을 책임진다. 사립학교는 학교 법인 소속이다.
이들은 쉼 없이 크고 작은 상처를 입으며 일한다. 교육부가 김종훈 민중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2016년부터 지난해 11월까지 학교 급식 노동자들은 근로복지공단에 모두 1929건의 산재를 신청했으며 이 가운데 1850건이 승인됐다. 매년 600건 이상의 산재가 발생하는 셈이다. 문제는 이 숫자가 실제 산재 현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학비노조)이 지난 4일부터 9일까지 급식실 노동자 3056명을 상대로 조사한 ‘학교 급식실 산업안전실태 조사 결과’(급식실 실태조사)를 보면, 근골격계 질환의 경우 산재처리 비율이 1.8%에 지나지 않았다.
급식실 실태조사 답변에도 이같은 내용이 그대로 드러난다. “끓는 죽이 얼굴에 튀었는데 자비로 치료했다”, “근골격계 질환이 생기면 대부분 자가비용으로 처리하고 학교에서 산재 처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현장에서 사고가 나서 다친 게 아니라면 산재를 인정받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인 것 같다” 등이다.
애초에 근무 중 입은 부상을 산재로 인지하지 못하거나 산재 신청을 꺼리는 학교 분위기 때문에 치료비를 대부분 자비로 충당한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학비노조를 비롯한 급식 노동자들은 급식실도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적용대상이 되는 사업장에 포함한 고용노동부의 지침을 이행하라고 각 시도교육청에 촉구하고 있다. 2017년 2월에 노동부는 ‘국가·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의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범위 판단 지침’을 마련해 학교 급식실도 산안법 적용대상에 포함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산안법 적용대상 사업장은 △노사동수로 구성하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산보위) 운영 △급식실 업무 종사자 대상으로 한 안전교육 실시 △안전 보건 관리자 채용 등의 의무를 지닌다. 하지만 일부 교육청이 이 지침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박정호 학비노조 정책실장은 “경기도와 충청남·북도, 전라북도 등 일부 교육청은 노동부 지침과는 달리 산보위 설치 등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학생들이 먹는 식품 위생은 여러 규정을 만들어 관리하는데 정작 그 식품을 만드는 급식 노동자들의 안전에 관한 규정은 전무하다”고 지적했다.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지난해 2월 기준 7만1219명이다. 교육부가 작성한 ‘2017 학교급식 실시현황’을 보면, 급식실 노동자는 학교 급식 전체를 총괄하는 영양교사 1만169명, 급식실에서 ‘반장’ 역할을 하는 조리사 1만572명과 조리실무사(조리원) 5만478명으로 구성된다.
학생들이 먹는 급식을 만드는 이들은 대부분 5만여명의 조리실무사인데, 473명을 제외한 모든 조리실무사가 비정규직이다. 국공립 학교의 조리사와 조리실무사들은 교육공무직이라는 이름의 비정규직으로 시·도교육청에 소속되어 있다. 하루 8시간 근무하고 조리와 배식, 식기 세척 등을 책임진다. 사립학교는 학교 법인 소속이다.
이들은 쉼 없이 크고 작은 상처를 입으며 일한다. 교육부가 김종훈 민중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2016년부터 지난해 11월까지 학교 급식 노동자들은 근로복지공단에 모두 1929건의 산재를 신청했으며 이 가운데 1850건이 승인됐다. 매년 600건 이상의 산재가 발생하는 셈이다. 문제는 이 숫자가 실제 산재 현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학비노조)이 지난 4일부터 9일까지 급식실 노동자 3056명을 상대로 조사한 ‘학교 급식실 산업안전실태 조사 결과’(급식실 실태조사)를 보면, 근골격계 질환의 경우 산재처리 비율이 1.8%에 지나지 않았다.
급식실 실태조사 답변에도 이같은 내용이 그대로 드러난다. “끓는 죽이 얼굴에 튀었는데 자비로 치료했다”, “근골격계 질환이 생기면 대부분 자가비용으로 처리하고 학교에서 산재 처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현장에서 사고가 나서 다친 게 아니라면 산재를 인정받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인 것 같다” 등이다.
애초에 근무 중 입은 부상을 산재로 인지하지 못하거나 산재 신청을 꺼리는 학교 분위기 때문에 치료비를 대부분 자비로 충당한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학비노조를 비롯한 급식 노동자들은 급식실도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적용대상이 되는 사업장에 포함한 고용노동부의 지침을 이행하라고 각 시도교육청에 촉구하고 있다. 2017년 2월에 노동부는 ‘국가·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의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범위 판단 지침’을 마련해 학교 급식실도 산안법 적용대상에 포함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산안법 적용대상 사업장은 △노사동수로 구성하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산보위) 운영 △급식실 업무 종사자 대상으로 한 안전교육 실시 △안전 보건 관리자 채용 등의 의무를 지닌다. 하지만 일부 교육청이 이 지침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박정호 학비노조 정책실장은 “경기도와 충청남·북도, 전라북도 등 일부 교육청은 노동부 지침과는 달리 산보위 설치 등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학생들이 먹는 식품 위생은 여러 규정을 만들어 관리하는데 정작 그 식품을 만드는 급식 노동자들의 안전에 관한 규정은 전무하다”고 지적했다.
출처 급식노동자 94%가 ‘골병’…“튀김하는 날은 가스실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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